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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훌쩍 세번 죽은 남자 누가 안식을 훔쳐갔나
1995년 7월 26일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한 건물에서 대학원생 조교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교수 한명이 정년 퇴직을 하면서 빈 사무실을 다른 임용자에게 내주기 위해서였다 사무실 내 철제 선반 위에는 낡은 종이박스가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 박스를 내린 조교는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박스안에 든 것은 사람의 머리뼈였다 한 구도 아니고 여섯구 씩이나 발견된 것을 본 대학원생은 이 유골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지만 교수는 나중에 생각하고 청소나 하라고 한다 그러나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던 대학원생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대학 캠퍼스에 일본 경찰이 출동했다 당시 대학원생이 위령제를 지내준 모습 그중 한 구는 조선인, 그것도 동학농민군의 유골이었다 위령제 사진 중에서 맨 왼쪽 흰 두개골이 바로 동학농민군의 유골이다 어떻게 이 유골이 조선의 동학농민군 유골임을 알수 있었을까? 간단했다 유골 뒤통수에 붓글씨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유골 목구멍 뼈 부분에는 메모지가 한장 들어 있었다 메모를 펴보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촉루(해골). 메이지 39년(1906년) 9월 20일 진도에서 메이지 27년, 한국 동학당 궐기가 있었다. 전라남도 진도는 그들이 가장 극심하게 창궐한 곳이었다. 그들을 평정하고 돌아올 때, 그 수괴자 수백명을 죽여서 시체가 길을 가로막고 있을 정도였다. 수괴의 머리는 효수되었는데 이 촉루는 그 중의 하나로 해도(海島)를 시찰할 때 채집한 것이다. 사토 마사지로. 이 유골은 1906년 전남 진도에서 사토 마사지로라는 일본인에 의해 빼돌려진 것이었다 사토 마사지로는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학교 출신으로, 통감부 관료로 대한제국에 와 해방 직후까지 잘 처먹고 잘 살았다 제국주의가.기승을 부리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종학적인 연구가 발달해 일본에서도 일본인과 인근 국가 민족, 일본 내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학 우생학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 유골들도 연구 목적으로 반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동학 운동 당시 참수당한 이 남자는 일본의 인종학적인 연구 교보재를 찾던 사토 마사지로에 의해 두번째 죽음을 맞은 셈이다 국내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외교부까지 나서서 항의하면서 1996년 동학군의 두개골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참수당해 진도 송현리 고개에 버려진 지 101년, 일본땅으로 반출된 지 90년만이었다 그러나.... 세번째 죽음이 남아 있었다 그 과정이 드라마틱하면서도 신원을 알 수 없는 유골에 똥파리가 안 꼬일 수가 없다유골에 언급된 진도군과 동학농민운동 기념사업회가 있는 전주시는 장장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정싸움을 해왔다 이면에는 지방자치단체와 동학단체들이 정부 예산을 타내기 위한 꼼수가 있었다 이 유골이 자기네 지역 출신이니 고향에 안장하게 자기네 지역에 유골과 예산을 달라는 언플을 하다가, 그러다 예산이 반영되지 않으면 알빠노랑께 하는 식이었다 결국 시민단체가 나서서 그낭 안장하라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2019년에야 두개골은 전북 전주에 안장되었다 함께 발견된 러시아 소수민족 유골들이 1996년 삿포로 총영사관을 통해 러시아로 반환되었고, 일본인 유골마저 2007년 사찰에 안장된 것을 생각하면 정말 길고 긴 기다림이었다
작성자 : 윤의철군단장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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