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출도 슬슬 끝나가는 시점에 저녁 약속 나가기 전에 갑자기 군인감성 충만해서 대충 끄적여본다.

입대하기 4일전인가 아침에 티비에서 뉴스가 나왔다. 서해바다에 학생들이 수학여행가던 배가 하나 가라앉았다는데 학생들은 무사히 모두 탈출했다는 가벼운 해프닝 같은 뉴스가 흘러나왔고 티비에서 나오는 뉴스들이 다 그렇듯 으레 대충 흘려듣고 친구들이랑 입대전에 마지막을 불사르자며 놀러나갔다.

해도 뉘엿뉘엿지고 어스름이 산등성이를 휘감아 돌 즈음 집에 돌아와 티비를 켜니 사실 아침에 모든 학생들이 탈출했다는 말이 오보 해프닝이고 실제로는 다들 뱃속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절망적인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세월호가 가라앉고 4일후 새벽. 벚꽃이 화려하게 수놓아졌다가 모두 져버린 동네 개천변을 지나 강변역의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그대로 진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나는 병 739기로 공군 기본군사 훈련단에 들어갔다.

진주로 가는길에 엄마랑 진주는 냉면이 유명하니 냉면을 먹자는둥 왠지 짜장면이 땡기니 짜장면을 먹자는둥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터미널 옆에있는 돼지고기 두루치기 집에가서 점심을 한술 뜨는데 옆자리에 갑자기 개구리 전투복을 입은 야비군 한무리가 앉아서 두루치기에 소주를 한병시키더라. 그때는 그 모습을 보고 그냥 군인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훈련단 2주차때 그 모습이 부럽다고 생각하면서 눈가에 어룽거릴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중에 대연병장이라고 부를 입영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하늘을 달리다' 를 부르면서 목을 푸는 군악대 같은 사람과 음향장비를 점검하는 군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서 행사는 시작했고 여자친구 전상서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생략됐다느니 하는 단편적인 기억들만 지금 남았지만 이런 기억중에 연병장에서 마지막으로 경례를 하면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모님을 찾아보는데 수많은 청중들 가운데서 내 부모님이 있던 자리를 다시 보아도 엄마가 안보였던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무튼 행사는 막바지로 치닫고 738기들이 군가 '여기에 섰다'(이때는 군가를 하나도 몰랐을때라 이게 군가인지 아니면 수십명이 하는 웅얼이인지 몰랐다.)를 부르면서 2열 종대로 뛰쳐나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우리를 맞아주며 "시간 생각보다 잘갑니다! 낄낄" "머리가 눈썹보다 짧아질겁니다." 하는 말을 박수사이에 섞어서 보냈다. 이때는 이 치들이 하는말이 무슨소리인지 전혀 이해가 안됐지만 이 심오한 뜻을 알게되는데에는 물리적으론 그렇게 많은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수많은이들의 부모님과 오열하는 할머님들을 뒤로하고 모두들 5전천후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않아 나라사랑 카드만 딸랑 든채 앞으로 나가 알파고 쇼크가 있기 약 2년전인 그 시절 기계가 내 나라사랑 카드의 정보를 읽고 그자리에서 "입영대상자입니다." 라고 외치는걸 듣고 공포에 휩싸였다.

그 다음부턴 이산가족 상봉 방송마냥 빼곡히 붙어있는 종이에서 내 이름과 소속 대대 중대 소대를 찾아서 이동했고 곧이어 우시장에 끌려온 소들마냥 다들 한덩어리씩 묶여서 이동했던 기억만 어슴푸레 남아있다.

힘든날의 기억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단지 오래전 이야기라 그런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날 저녁이 짜장밥에 바나나였던 기억이나고 바나나를 왼손에 기묘하게 들고있던 조교가 '왼손파지'에 대해 다단계 세미나 강사마냥 열성적으로 설명하던걸 대충 흘려듣던 나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나나 쥐는법 하나가지고 사람을 이렇게나 화나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걸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수많은 군인들 처럼 그날밤 잠이 들면서 "눈 떠보면 집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품은채 눈을 감았고 다음날 6시 기상나팔은 나의 고막의 순결을 무참히 앗아갔다.

여담으로 나는 광화문 근처에서 사는데 초도외박때도 그렇고 상병 첫출타때도 그렇고 매 휴가때마다 그곳에 있는 노란 텐트무리를 보면서 세월호 사태가 군생활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