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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토토로 돈을 절대 딸 수 없는 이유
일단 사설토토라고 얘기하는건 한국인이 해외에서 불법으로 어떠한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걍 야동사이트 같은 곳에 들어가면 배__너광고로 걸려있는 그런 곳을 애기하는거임.이런 사설토토는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알아야함. 일단 사이트 운영하는 놈들이 있음 대부분 필리핀, 베트남 같은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에서 몰래 사이트 운영을 함. 근데 필리핀, 베트남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운영하기에는 어려움.그렇기에 한국에 직원들이 존재해야하는데 이 사람들은 대포통장, 한국 내 돈 입금, 환전, 돈세탁 등을 함.이 사람들은 동시에 '총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홍보까지 겸하는데총판은 쉽게 얘기하면 토토사이트에 사람을 유입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임.이 사람들은 가족방이라고 불리는 카카오톡방 혹은 텔방에서 픽을 주며 리딩을 하는 역할도 맡음.스포츠토토를 제외한 완벽히 무작위성에 의존하는 홀짝 50% 게임의 경우 잘맞추는 사람, 못 맞추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알 것임.그렇기에 픽을 준다는 그 행위는 아무 의미가 없음. 이 총판들은 자신의 코드로 도박사이트에 가입하라고 하며, 그 코드로 가입한 이용자들이 돈을 잃는 경우 그 잃은 돈의 일정 비율을 커미션으로 지급 받음.즉, 자기 코드로 들어온 사람이 100만원을 잃었고 커미션 요율이 40%라면 100만원 잃은 돈을 사이트 윗대가리들이 30%, 중간 관리자가 30%, 총판이 40%를 지급받음.그러면 실제 사이트 운영진들은 사용자가 100만원을 잃는 경우 30~60만원을 벌게 됨.(중간 관리자가 사이트 운영진과 밀접 할 수 있고, 아닌 경우도 존재함)이때 배당률이 1.95라면 50% 확률로 원금의 1.95배가 되고 50% 확률로 자신이 건 돈을 전부 잃게 됨.그럼 당연히 시행 횟수를 늘리면 사용자는 돈을 잃고, 사이트는 이익을 가져감. 근데, 확률을 따져도 사이트는 총판한테 돈 주고 나면 돈을 딴 사람에게 돈 주기가 애매해짐. 물론 막대한 돈을 벎.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순수익률을 더 높이고 싶어함.그래서 발생하는 것이 먹_튀임총판한테 줄 돈 주고하면 오히려 손실이 나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그 때 사이트 외부로 출금을 해주지 않음.총판한테 커미션 지급을 안 하는 경우도 있음.즉, 사설토토 운영자는 걍. 무적임.(잡히지만 않으면)더 웃긴건 사이트를 운영하다가 먹__튀를 많이 치고, 어느정도 소문이 퍼지면 사이트를 닫고 다른 사이트를 운영함.그 때, 먹_튀 사이트라면서 자기들이 운영하던 사이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자신들은 보증금이 있니, 뭐니 그런 미사여구를 붙여서 홍보함.물론 보증금 그딴건 실제 먹_튀를 당해도 지급해주지 않음.또, 사이트 내 특이한 것이 있는데 롤링이라는 것임.롤링이란 큰 수의 법칙을 따르게 만들려는 의도로 만든 시스템인데, 확률과 배당률이 토토사이트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적은 시행횟수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것을 막기 위함임.롤링 300%, 500%, 1000%라는 단어는 내가 100만원을 입금했다면 원금 100만원의 300%인 300만원을 실제 배팅해야 그때 출금을 해준다는거임.즉, 100만원 걸고 홀짝 맞춰서 195만원 되고, 이걸 바로 출금하려고하면 롤링을 채워야함.그래서 하고싶지 않아도 게임을 해야함.근데 이러한 롤링이라는 규칙을 먹_튀할 때 악용하는데출금 신청을 하면 해주지 않고, 문의 할 시에 비정상적인 활동이 감지되어서 롤링을 더 해야된다고 함. 즉, 이전에 롤링을 채워서 돈을 따고 일반적으로는 출금이 되어도 더 배팅을 강제함.아니면 뭐 이벤트, 신규가입자 뭐 등등 별의 별 이유를 들어서 롤링을 채우라고함. 즉, 돈을 따서 출금하려고하면 잃을 때까지 배팅하게 만든다는거임 ㅋㅋㅋ근데 정말 극악의 확률로 롤링 채우라는 양 만큼 채우고, 돈을 벌어서 출금을 한다?그때는 규칙위반이라며 그냥 계정을 잠궈버린다. 혹은 끝까지 뽕뽑기 위해 돈 받을 계좌로 사이트 계좌에 돈을 입금을 하면 딴 돈들을 출금해준다고 한다.물론 거기다가 돈 넣으면 추가로 넣은만큼 잃게됨.(뭐 10만원이건 20만원이건 그 정도를 요구함.) 뭐 차단당하는 경우가 제일 많음. 근데 대부분 돈 따고 출금 할 때 먹_튀당하는 경우보단 그냥 돈 잃는 경우가 더 많음 ㅋㅋ근데, 돈을 따면 돈을 받을 수 있는거랑, 돈을 따도 못 받는거랑은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르니. 걍 사설토토는 안 하는게 답임.총판들 단톡에서 이용자 언제 먹_튀할지 등에 대해서 논의함. 즉, 사설토토에서는 절대로 돈을 딸 수 없다 ㅇㅇ그리고 간간히 체리피킹하려는 사람들을 막기도 함 ㅋㅋ뭐 신규가입하면 10+5 뭐 그런 이벤트를 하는데 실제 입금하고 추가금 받고, 돈 넣고 배팅해서 롤링 다 채우고 출금하려고하면전화와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안 된다고하거나, 나중에 더 돈을 입금하고 우리 사이트 쓸거냐? 이런식으로 물어봄거기서 잘 구슬려서 사이트 계속 쓰고 돈 더 많이 넣을 것처럼, 지금 환전 잘 되는지 확인해본거다. 뭐 이런식으로 얘기하면 해주기도 함 근데 결국에 많이 따면 안 해주는건 매한가지임 대어를 잡기 위해 치어는 놓아주는거지그리고 더 웃긴건 오히려 역으로 협박을 하기도 함자기들은 필리핀, 베트남이라 안 잡히는데 너는 한국이고 내가 니 전화번호, 이름 등등 알고있으니 불법도박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고 출금을 안 해주기도 함사설 사이트 이용은 이유가 뭐가 됐건, 돈 버리는 멍청한 행동임.배당이 높아서, 이벤트가 있어서 등등의 이유로 사용을 하겠지만 진짜 사설 사이트를 믿고 사용한다면 그건 자기 지능을 좀 의심해봐야함...근데 애매한 경우가 있음.대한민국에서 공인받은 베트맨 외에는 전부 불법이고 처벌받는게 맞음.하지만, 타국에게 공인 받고 운영되는 인터넷 사설도박사이트가 존재함.이런경우 아마 먹_튀를 하진 않음.하지만, 실제 입금하고 도박하면 그 즉시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므로 처벌받음. 이것도 하지말아야함.근데 회색지대가 존재하는데...암호화폐를 이용해서 입금하고 암호화폐로 지급받는 토토사이트들이 늘어나고 있음...이 경우 암호화폐를 이용해서 암호화폐를 늘리는 도박행위니깐 법률적으로 모호해져버림 실제로 겜블파이라는 섹션이 존재함.대표적으로 암호화폐 카지노는 롤빗($RLB)이 존재함.얘네는 퀴라소라는 국가에서 공인받고 운영되는 사이트임.자신이 코인에 진심인 코인충이라면 롤빗 얘기를 꽤나 들었을거임.겜블파이 섹션이 엄청나게 핫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 때 대표적으로 미친듯이 올라간 토큰이 $RLB임.차트는 이러함.77.135%가 초기사용자에게 에어드랍 되었고, 22.865%는 스테이킹 보상으로 주어짐.대략적인 설명은 이러하고이 토큰을 가지고 있는다면 사이트 내 혜택이 존재함.10% 레이크백(좀 찾아보니 도박해서 잃은 돈 10% 돌려주는듯?)내부 코인 선물(코인 선물 1000배까지 사용 가능) 수수료 60% 감면복권 참여가능토큰 유동성 공급가능(이건 뭐... 혜택이 아니지)롤빗측에서 카지노 운영해서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는 $RLB를 바이백하고 소각함. 뭐, 미국주식회사나 바이낸스와 비슷하게 주주환원 개념.롤빗의 화이트 페이퍼는 아래 링크 참조https://whitepaper.rollbot .com/rlb-whitepaper About Rollbit | RLB WhitepaperRollbit, Crypto's Most Innovative Casinowhitepaper.rollbot.com해당 카지노 사이트 URLhttps://rollbit .com Just a moment...Just a moment...rollbit.com특이하게 국내 차단도 안 되어있음.걍 구글에 치면 대놓고 나옴.사이트 UI는 이러함. 또, 롤빗의 성공으로 우후죽순 다른 겜블파이 사업자들이 생겨났는데텔레그램과 카지노를 결합한 TGCasino ($TGC)의 경우 퍼블릭 세일로 토큰을 판매했고, 이를 구입해서 잘 팔았으면 꽤나 벌었을거임.하지만, 돈이 된다는건 위험도 도사린다는 것.ZK(영지식증명)을 활용하여 카지노를 운영한다는 것을 위시한Zkasino는 이미 다들 알겠지만,1티어 VC들에게 투자까지 받아놓고 러그를 쳤음. 완벽하게 세상에 안전한건 없고, 항상 조심하며 접근해야함.이러한 암호화폐 카지노 사업(겜블파이/게임파이)들은 아직 성문화된 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있음.따라서 회색지대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법적으로 모호한 상태로 보임.타국가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증받고, 위험도가 비교적 낮은 암호화폐 카지노 사업체들이 존재한다는걸 알아봤음.그 사업체들의 자체토큰을 통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음. 카지노라는 사업은 매우 수익성이 뛰어나고 이를 WEB3,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한 형태는 장기적으로 전도유망할 것으로 보임.도박을 장려하는 것은 절대 아님. 카지노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은 카지노에 투자할 수 있다는걸 알려주고 싶었음.도박할거면 저기 정선이나 가길바람마지막 기회는 세상에 없으며, 기회는 재차 삼차 온다. TON과 프라그먼트 때에도 그랬지만, 기회를 잘 잡으면 대부호가 될 수 있다.롤빗도 판도라도 비슷한 기회였었다. 다음에 찾아올 기회는 여러분들이랑 저랑 다 잡았으면 좋겠읍니다.*공익을 위한 정보 공유 목적이며, 법률을 고의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장려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저는 도박을 장려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법적 문제가 있을 경우 연락 주시면 조치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자 : =세루=고정닉
남북한 아프리카 외교전, 그리고 그 후.
1월에 쓴거 여기에도 업데이트 해서 올려봅니다. https://youtu.be/oOdBRAK_BoU ?si=xW7imNwSb2FUTPbp HANS ZIMMER - Mombasa (extended version 1-hour)Taken from the O.S.T. of the movie "Inception" (2010)youtu.be 아프리카는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한 대륙이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들으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재밌는 대륙이기도 하다. 21세기 전세계 인구 성장을 주도하고 자원 매장량이 많지만 제대로 된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비운의 땅 아프리카. 이 글은 대한민국과 북한이 국가적 차원에서 아프리카에 파고든 이야기를 설명하는 글이다. 남북한이 왜, 그리고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경쟁했는지, 북한이 어쩌다가 패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냉전 이후 북한과 우리나라의 아프리카 정책을 다루는 긴 글이다. 남북한과 아프리카의 관계는 크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전후로 나눌 수 있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전 남북한은 국제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유엔 가입을 위한 외교전을 펼쳤다.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이 이뤄져 외교전에서 한국이 승리한 이후, 북한은 외화벌이와 독재체제 유지, 고립 타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아프리카 정책은 주로 현지 진출과 자원 확보, 2차적으로 북핵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한국-아프리카 관계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1960년대에 대거 독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유엔의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48년 이후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만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으나, 남북한 모두 여전히 유엔에 가입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유엔 가입국들은 매년 한반도 문제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남북은 모두 자신들이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국제적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서방 진영은 유엔 감시 하에 남북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결의안을, 공산 진영은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 결의안들은 강제력이 없었으나 남북간의 정통성과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비록 국력은 약할지언정 유엔에서 차지하는 의석 숫자가 상당했다. 따라서 이들의 표는 한국 문제에 대한 유엔의 표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스팅 보트가 되었다. 남북한은 모두 국제적 정통성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에 공을 들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친미, 제1세계 진영에 지나치게 중심된 진영 외교가 아닌 비공산 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신경 쓴다는 '중립 외교론'을 내세웠다. 그는 인도와 미얀마 같은 3세계 국가들과 수교하는데 성공했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도 똑같이 국교를 맺으며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박정희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의료와 기술 원조를 제공하는 식의 경제 발전을 제안했다. 이 시기 북한 역시나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외교를 펼쳤다. 북한은 아프리카의 반-제국주의, 반서방주의 정서를 건드리면서 자국을 자립경제 달성에 성공한 국가라고 홍보했고,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한 쌍방 발전을 내세웠다. 한편으로는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업어 국력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성공했다. 두 강대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북한은 아프리카에 성공적으로 침투했고, 우리와 먼저 수교한 콩고와 모리타니와 수교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한국은 '하나의 한국' 원칙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과 대만의 '하나의 중국' 원칙처럼 북한과 수교하는 나라는 남한과 수교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서독을 모방한 것이었다. 하나의 한국 원칙을 강경하게 고수하던 우리 정부는 분개하며 두 국가를 대상으로 단교와 공관 철수를 감행했다. 1965년 우리 정부는 북한의 공세에 반격하기 위해 상주공관과 겸임공관을 증설하고 현지 지도자들을 초청하며 기술자들을 파견하는 계획을 짰다. 그리고 이후 몇 년간 꾸준히 사절단을 파견하면서 아프리카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월남전 파병으로 인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박정희 정부의 베트남 전쟁 참전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등 나라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나, 한편으로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3세계 국가들의 지지를 약화시키는 측면도 있었다. 이들은 미국과 남베트남보다는 북베트남에 더 동정적이었고, 한국의 참전으로 '중립 외교'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한국은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서 배재당하는 등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월남전 파병 이후, 북한은 아프리카에서 남한에 비해 확연하게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강경책의 한계를 느끼고 하나의 한국 원칙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다가 1973년 6.23 선언에서 완전히 폐기하기에 이른다. 이후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무역량과 원조액을 확대해나가며 북한을 추월하고자 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최우방으로는 가봉이 있었는데, 가봉 대통령 오마르 봉고의 방한때 수많은 국민들이 환영 인파로 나서기도 했다. 북한은 이에 맞서 문화적 교류를 확대하고 좌익 정권과 반란군에 대한 군사 지원을 늘리면서 발자취를 넓혀갔다. 양측은 모두 한 해에 10만달러 이상을 아프리카에 무상으로 지원하며 이들의 환심을 사자고 했다. 1973년, 유엔은 북한이 남한처럼 유엔 옵저버 국가가 되는 것을 허용했다. 기존에 남한 정부만을 합법 정부라고 인정하던 태도가 뒤집힌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유엔에서 북한 영향력의 증가를 보여주는 한편 남한에게 정치적 타격을 줬다. 이렇게 되자 유엔에서 표를 벌기 위한 외교 활동에 대해 회의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유엔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었기에 이미 상징적인 연례행사가 된지 오래였다. 다만 상대방에게 밀릴 경우 국제적 정통성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밀리지 않겠다는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진행되던 것이다. 1975년, 기어코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받는 결의안과 공산권이 밀던 결의안이 동시에 채택된 것이다. 이 사태 이후 박정희는 유엔에서 이런 씨름을 벌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 더이상의 결의안 상정을 멈췄고, 역시나 지친 북한도 이에 따라 결의안 상정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결의안 상정이 끝났다고 해서 아프리카 외교전도 끝난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안을 지지했으나, 김일성은 '고려연방' 결성으로 형식적인 통일을 한 이후 단일 국가로서 유엔에 가입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하여 여전히 마찰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북한이 점한 우위는 80년대부터 뒤집히기 시작했다. 80년대는 공산주의 이념이 서서히 그 한계를 드러낸 반면,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가 부활하던 시대였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북한의 그것을 완전히 뛰어넘은 시점이기도 했다. 1981년 아프리카 나라들이 올림픽 유치전에서 한국의 손을 들어주자, 당시 국민들은 물론 대통령이던 전두환도 해당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1982년 가봉•케냐•나이지리아•세네갈 4개국을 동시에 순방하며 최초로 아프리카를 방문한 한국 대통령이 되었다. 한국의 영향력 확대에 위협을 느끼던 북한은 1983년 미얀마를 방문하던 전두환을 암살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작전은 실패했고, 아프리카 나라들을 비롯한 전세계가 북한을 규탄했다. 대한민국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북한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친북 성향 국가들도 점차 대한민국에 문을 열었고, 교역이 꾸준히 증가했다. 북한은 아프리카 수교국들과 좌익 세력에게 무리하게 군사 지원을 해가며 어떻게라도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유럽에서 민주화의 바람이 불며 냉전이 그 끝을 보이자, 북한은 완전히 수세에 몰렸다. 대한민국 민주화 이후 첫 민간 정부인 노태우 정부는 공산권 및 구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하고 관계를 맺는 북방 정책을 실시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 소련마저 한국과 수교하는데 이르렀다. 중공과 소련은 모두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북한은 결국 사실상 국제적 패배를 인정했다. 유엔 가입안에 있어서 한국이 제안한 남북한 동시 가입안을 수용한 것이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기존 회원국들의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다. 사실상 남북한 외교전에서 대한민국이 승리의 깃발을 꽂는 순간이었다. 북한은 대한민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벌일 능력을 상실했다. 이후 김정일 체제에 들어선 북한은 한동안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며 몰락했고, 동시에 자체 핵개발을 추진하며 무리해서라도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북한의 대내외적 여건과 외교 대전략이 변신함에 따라 아프리카 정책도 자연스럽게 그 기류를 따라갔다. 먼저 경제난으로 인해 외교에 투자할 예산이 한동안 크게 축소되었다. 공관 몇 개가 폐쇄되고 무상으로 이뤄지던 각종 원조와 기술 협력도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김씨 정권에게는 다행하게도, 그러나 북한 인민들과 세계 평화에는 불행하게도, 북한이 수십년간 아프리카에서 쌓아올린 인맥과 평판 같은 외교 자산이 어디 간 것은 아니었다. 북한은 이 자산을 꾸준히 활용하고자 했다. 북한은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외화 벌이를 위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아프리카 각지에 무기를 꾸준히 수출하며 돈을 벌여들였고,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파견해 그 대가로 달러를 획득했다. 독재 국가들과 협업해 통신망 사업에도 진출했고, 경호 사업에 경쟁력 있는 위치를 점하였다. 재밌게도 아프리카 각지에서 동상 제작 사업을 통해서도 수천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아프리카 현지에 담배 공장과 탄약 공장을 건설해 현지 불법 거래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현지의 다양한 범죄 조직들과 손을 잡고 위조지폐 제작 사업과 상아 암거래 사업, 국제 마약 밀수 사업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중국은 이런 북한의 뒤를 몰래몰래 봐주며 사실상 지원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반서방 정서를 공유하는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과도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북한은 이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국제적 고립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자 한다. 심지어 아프리카 현지에서 주체 사상 연구와 전파도 다시 조금씩 재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아프리카 외교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이했다. 핵개발로 점점 평판이 악화되던 판국에 대북 제재와 코로나, 러우전 때문에 본국 경제 상황이 계속해서 안 좋아진 것이다. 외교 예산이 또다시 축소되었고, 북한은 아프리카 주요 우방이던 우간다와 앙골라 등의 대사관을 폐쇄하면서 다시 한번 긴축에 들어갔다. 한국의 민주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냉전의 종식.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이 세 가지 사건은 한국-아프리카 관계의 새로운 변곡점이었다. 한동안 구 공산권 국가들에 외교력이 집중되면서 기존의 남북한 외교력 경쟁의 주요 전장으로 인식되던 아프리카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런 아프리카를 재발굴한 대통령은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아프리카 대륙을 우리나라의 새로운 시장이자 자원 공급처로 보았고, 한국에서 찬밥 신세던 아프리카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이 아프리카 나라들만큼 가난한 후진국에서 유럽에 준하는 선진국으로 올라선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며 한국이 아프리카 또한 경제개발을 이룰 수 있게 돕겠다고 말하며 신뢰를 구축하고자 했다. 2004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전두환 이후 24년만에, 노무현은 이집트와 나이지리아, 알제리를 방문하면서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고유가 시대에 노무현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세 국가와 여러 에너지 계약을 체결하면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를 지키고자 했다. 그 밖에도 이들과 IT 분야에서 협력하고 직업훈련을 돕기로 했다. 노무현은 또한 나이지리아 방문 도중에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코리아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골자는 3년의 시간 동안 한국의 아프리카 원조액을 3배, 총 1억 달러로 늘린다는 것이었다. 노무현은 이런 대외 원조를 향후 우리나라의 아프리카 진출의 토대가 될 것으로 여겼다. 한국-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회의도 2006년에 처음 열렸다. 한국의 아프리카 발전 지원과 자원 협력, 그리고 기업들의 수출에 대해 회의하는 이 모임은 격년마다 열려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끝으로, 노무현 정부는 한국-아프리카 포럼을 출범시켰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각료들과 학자, 언론인 등이 모여 양측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자 만들어진 협의체였다. 2006년 11월 8일 개최된 제1차 한국-아프리카 포럼은 성황리에 끝났다.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 확대, 한국 기업들의 아프리카 진출과 투자 등이 합의되었다. 노무현의 뒤를 이은 이명박은 외교 정책을 포함한 국정 운영 전반에 있어서 노무현과 매우 다른 접근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 정책만큼은 노무현 정부의 성과를 계승, 나아가 발전시켰다. '자원외교'를 캐치프레이즈 삼은 이명박은 노무현처럼 주요 천연자원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다. 이명박 정권은 마다가스카르와 니제르,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광산 개발에 나섰다.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던 자원외교는 대부분의 사업이 엎어지거나 막대한 적자를 기록해 실패로 평가되었으나, 최근 자원값 폭등으로 암바토비 광산 등 일부 사업이 드디어 빛을 보고 있다. 이명박은 신년사에서도 아프리카 대륙을 언급하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노무현 정부가 처음 개최한 한국-아프리카 포럼도 이명박때 두 차례 열렸다. 한국의 아프리카 원조액도 2.5억 달러까지 대폭 증가했다. 아프리카 주재 대사관에 대한 지원도 강화되었다. 한편 이명박은 자신의 대북 정책을 아프리카 외교와 다시 연결시키기도 했다. 2011년,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를 순방했다. 이 중 콩고민주공화국과 에티오피아는 북한과 수십년째 협력을 하던 나라들이었다. 이명박은 이 나라들에서 경제 협력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또한 논의하며 한국이 북한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고, 한국의 아프리카 정책에 지정학 또한 주요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이러한 정치적, 지정학적 요소는 박근혜 정권에서 절정에 달했다. 박근혜 정권의 외교 정책은 전반적으로 북한에 맞서면서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데 집중되었는데, 아프리카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박근혜는 취임 초부터 우간다와 모잠비크라는 북한의 주요 우방국들의 지도자들을 초청하는 등 북한 견제에 힘을 썼다. 박근혜 정권이 가장 공을 들인 나라는 바로 우간다였다. 우간다의 독재자 요웨리 무세베니는 1980년대 말 집권한 이후 10년간 세 번이나 방북하면서 김일성을 만난 친북 지도자였다. 그는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하지만 이후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보이면서 한국을 롤모델로 삼는 발언을 몇 번 하기도 했다. 박근혜는 임기 도중 무세베니와 3번이나 정상회담을 진행하는데 성공했다. 양국은 단순한 경제 협력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 기간 동안 우간다는 북한과 그동안 제공하던 모든 군사 협력을 한국의 것으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북핵 개발을 규탄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를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승리였다. 하지만 우간다는 여전히 북한과 무기를 몰래 거래하고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북한의 영향력이 약화될 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박 대통령의 북한 견제 전략은 제한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는 그 밖에도 경제대국 케냐, 북한과 인연이 있던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면서 이들과 경제 뿐만 아니라 대북 문제에 대한 협력도 강화했다. 그녀는 아프리카 연합에서 특별 연설을 할 때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이 계획한 '코리아 에이드' 이니셔티브는 이런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 정책이었다. 취약 지역에 의료와 한국 음식 등을 제공한다는 이 계획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이고 현지 사정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부실하게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친북 성향 문재인 정부의 아프리카 정책은 다시끔 대북 정책보다는 경제 협력에 더 중점을 두었다. 문재인 시절 대외 원조도 상당수가 우리 기업의 현지 진출과 자원 확보라는 중점들을 수행하는 도구로 쓰였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 시기 대통령 본인의 아프리카 순방은 임기 말 이집트가 유일했다. 아프리카 외교는 주로 이낙연 총리가 담당했는데, 이낙연은 케냐•탄자니아•모로코•알제리•튀니지 총 5개국을 방문했다. 방문은 전부 우리 기업의 현지 진출과 공공사업 참여, 경제 개발 협력에 관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아프리카 협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한국-아프리카 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사내 괴롭힘으로 2년만에 직원 절반이 퇴사하고, 명확한 비전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샘 오취리의 인종차별과 성희롱 논란이 일어난 후에도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등 초창기 막장 운영으로 말이 많은 기관이었다. 그나마 이후 점차 정상화 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윤 정부 들어서도 회계조작을 하는 등 여전히 내부 문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 그 밖에도 문재인의 이집트 순방 당시 이뤄낸 2조원 규모의 자주포 수출은 한국 방산업계의 큰 승리로 기록되었다. 한국 방산 기업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이집트를 비롯한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권들 중에서 가장 아프리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경제적 협력 확대에 집중하는 한편, 정부 차원의 주요 과제로 설정한 부산 엑스포 개최 지지도 주요 외교적 목표로 삼았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해외 원조 예산을 무려 45%, 약 2조원이나 인상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는 쌀 농사 기술 전수 사업과 기반 시설 구축 프로젝트, 의료시설 건설 사업, 신재생 에너지와 전력 개발 사업 등의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윤석열 본인과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주요 정부 인사들은 아프리카 정상들과 활발히 회담하며 경제 협력을 강화했고, 한편으로는 엑스포 유치전에서 부산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30년 엑스포 유치전이 한국의 참패로 끝나면서 엑스포 지지 운동은 뼈아픈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양측간 고위인사 교류도 늘어나고 있다. 윤 대통령 본인은 '아프리카의 밤' 행사에 참석하여 아프리카 국가들과 FTA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한국•아프리카 통상산업헙력포럼도 2023년에 두 차례 열렸다. 특히 지난 6월에 열린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는 사실상 한국-아프리카 포럼을 더욱 확장시킨 초대형 이벤트였다. 아프리카 48개국이 참여한 자리에서 윤 정부는 아프리카와 핵심 광물 공급 계약을 맺고, 전반적인 원조 금액을 6년 안에 100억불까지 인상하고, 아프리카 진출을 시도하는 한국 기업들에 140억불의 금융 지원을 제공하고, 무역과 투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오늘날 우리나라의 아프리카 정책은 정권을 안 가리고 꾸준하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타개해야할 문제도 있다. 대표적으로 서방과 중러, 일본 같은 경쟁자들에 비하면 여전히 아프리카에 깊게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특히 기업들은 접근성과 안보 때문에 여전히 아프리카 투자를 꺼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앞으로 효율적인 원조 사업을 실시하고 현지 정부들과 더욱 협력을 강화하여 아프리카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주요 자원 공급망을 확보하고, 아직도 드리워진 북한의 그림자를 지워내야 한다. 한국이 항상 그래왔듯이 아프리카에서 계속 성과를 냈으면 바라며 글을 마친다. 참고자료 김도민. 2022. "1964~1968년 박정희 정부의 중립국 외교와 유엔에서 한국문제의 ‘자동상정’ 문제" 김도민. 2020. "1948~1968년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 연구" 원지우. 2016. "북한의 대중동 및 아프리카 외교 : 외교정책결정요인을 중심으로" https://www.jstor.org/stable/523764?read-now=1&seq=11 François Nicolas. 2020. Korea in Africa: between Soft power and economic interests 박수길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외교 이야기" https://pida.or.kr/pium/?idx=12830031&bmode=view https://m.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35086847#policyNews https://m.etnews.com/20231220000074 https://dealsite.co.kr/articles/97212 https://thediplomat.com/2019/08/south-koreas-africa-outreach/ http://m.cine21.com/news/view/?mag_id=98366 https://african.business/2023/11/trade-investment/seoul-trains-its-sights-on-african-relations https://www.usip.org/publications/2021/02/north-korea-africa-historical-solidarity-chinas-role-and-sanctions-evasion https://www.38north.org/2021/06/north-koreas-enduring-economic-and-security-presence-in-africa/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310260163 https://www.kjis.org/journal/view.html?uid=258&pn=lastest&vmd=Full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40127 https://www.dw.com/en/why-is-north-korea-shutting-some-embassies-in-africa/a-67318476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0/10/10/2020101000009.html https://m.mk.co.kr/news/hot-issues/9924059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31129_0002539109 https://www.yna.co.kr/view/AKR20221123149851001 https://www.dailian.co.kr/news/view/1296799/ https://www.oecd-ilibrary.org https://m.korea.kr/briefing/speechView.do?newsId=132036708&pageIndex=1&cateId=&srchType=&srchWord=#speech 제3의 위치 갤러리.
작성자 : 라파헤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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