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선 난징 사건 허구의 경력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전투 종료 후 많은 난민이 대피한 난징안전구에 대해서는 일본군은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일본군의 극악행위에 대한 여러 기록의 출처로 제시되고 있는 안전구역에 거주하는 구미인과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저널리스트의 기록의 신뢰성에는 의문이 있다.
예를 들어, 안전구의 구미인인 마이너 설 베이츠(Miner Searle Bates)는 중화민국 정부의 고문이라는 자료가 존재한다.
국민당의 전략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지나(중국)의 비참함”과 “일본군의 잔학함”을 세계에 호소하고 미국을 우방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지나사변(支那事変)에 말려들게 한 일본을 두들기는 것이었는데,
마이너 설 베이츠는 이 국민당의 전략에 따라 일본군의 잔학 행위를 정치적 모략 선전으로써 세계에 발신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시어도어 화이트(Theodore White) 등이 회상에 의거해 주장한 바 있다.
또한 해럴드 J. 팀펄리(Harold John Timperley)의 편저인 ‘전쟁이란 무엇인가(What War Means: The Japanese Terror in China)’(1938년)에서
“일본군에 의한 난징에서의 시민학살”이 대대적으로 다루어져 미국인들에게 일본군의 비도(非道)를 호소하고 그 후에 이는 일미전쟁(日米戦争)의 한 원인도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해럴드 J. 팀펄리는 난징이 아니라 상하이에 있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의 기술은 많은 경우에 전문(伝聞,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에 근거한 것이며, 도쿄방송(TBS)의 저널리스트인 스즈키 아키라(鈴木明)는 해럴드 J. 팀펄리가 중국 국민당의 고문이자 선전원이었음을 밝혔다.
국민당 정부가 감수하고 1939년 상하이에서 출판된 난징안전구 국제위원회 기록에서는, 난징의 인구가 일본군 점령 직전에 20만 명, 점령 1개월 후인 1938년 1월에는 인구 25만 명으로 기록되어 있었다.(‘국민당 정부 국제문제연구소(国民政府国際問題研究所監修)’ 감수 Documents of the Nanking Safety Zone, 1939년 출판, 상하이) 이 기록에 따르면 “30만 명 시민 학살”은 있을 수가 없다.
국민당 중앙선전부 국제선전처는 1937년 12월 1일부터 1938년 10월 24일까지 한커우(漢口)에서 300회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여기서 단 한 번도 난징학살이 언급된 적이 없다
또한 앞서 기록에는 일본군의 비행으로 신고가 된 것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는데, 살인은 총 26건으로, 이 중에서도 목격된 사건은 1건 뿐이며, 또 다른 1건은 합법적 살인으로 주기(注記)되어 있다. 이 기록과 “30만 명의 시민 학살”은 모순된다.
설령 난징에서 살해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편의병(민간인으로 위장한 게릴라)인 중국군의 약탈 소행이며
난징 시민들은 안전구역에 대피해서 학살이란 불가능 했다.
2. 마루타 사건은 어떠한가
수천명 이상이 희생된 생체실험이 자행되었다면 유골, 실험 기자재의 잔해, 사용된 의약품or화공약품 흔적, 소각재 등등 무수히 많은 직간접 증거들을 남길 수 밖에 없고
이는 소련군이 파죽지세로 만주로 진격하던(심지어 731부대의 위치는 만주에서도 북쪽인 하얼빈) 당시의 급박한 전황을 고려할 때 절대로 단시일 내에 은폐, 인멸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여지껏 건물터 외에는 발굴된 학살의 증거가 전무하다? 시나놈들의 일중전쟁 희생자 수는 1947년 470만 추정에서 2009년 7500만까지 말도 안되게 부풀려졌고 이를 뒷받침할 물적 증거는 어느 하나 제대로 제시된게 없다.
늘 그렇듯 황당무계한 날조 공작을 통해 반일 프로파간다 선동에 나서는 시나징의 얄팍한 수
마루타 사건도 난징사건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진이나 대량의 시체 같은건 발견되지 않은 반일 허구 날조에 불과하다
마루타에 대한 최초 서적은 이념 대립 당시 일본 공산당이 당시 일본을 비난하게 위해 만든 구라뻥이였고
홍콩에서 이를 영화화하면서 중화권을 통해 세계에 진실인냥 퍼진 것
그 책에 나온 사진은 의료시설에서 부상병이나 환자들을 치료하던 사진이었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공산당원은 사진은 가짜가 맞으나 글은 진짜라고 주장했지만 근거는 전혀 없었다
거대한 의료시설의 많은 피실험체중 탈출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고 생존한 증인조차 단 한명도 없었다. 이런건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다. 왜냐면 그런일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하수인이였던 클린턴 재단이 미국 의회를 통해 7년간 수백억을 들여 일본제국의 전쟁범죄를 조사했는데도 증거를 전혀 못찾으며
그럼에도 결론은 어쨌든 규탄한다는 저능아스러운 결론이였다. 물론 수백억을 들인 그 연구는 묻혔는데 누가봐도 증거하나 못찾아내서 오히려 일본의 손을 들어준 자폭 연구였기 때문
일본제국이 패망하고 공개된 문서에는 731부대가 등장하는데
만주지역의 방역부대로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전염병 확산을 막던 부대로
전근대 수준에 머문 중국의 낙후된 위생 시설 및 관념 때문에 만들어진 부대다
731부대의 마루타 증거랍시고 들고오는 것은 열의 열은 충국 시나국에서 만든
반일 마루타 소재 내용의 "흑태양" 영화사진
3줄 요약
1. 731부대의 마루타 등은 대량의 시체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반일날조 구라
2. 중국군은 자기들이 황하강 댐 개방시켜서 같은 중국인 1200만 팀킬, +허난성 대기근으로 500만명 아사 팀킬 해놓고
"일본군이 댐 폭파했다" 반일 거짓말 날조한 경력이 존재한다
3. 난징 사건, 731부대 마루타 사건 모두 반일 날조 거짓말이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