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 행복한 사나이 ‘Mr. 빅뱅’ 방성윤방성윤은 도전자다. 대학시절 KBL무대를 밟기도 전에 NBA를 위해 D-리그(美 프로농구 하부리그)에 진출했다. 프로데뷔 후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에 그는 또 한 번 D-리그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능성을 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이번 도전은 미국이 아니었다. 일단 SK를 정상에 올리는 것이 그의 최우선 목표란다. 계속되는 도전은 그를 뛰게 하는 힘이었다.
키워드 1부상의 연속, 새로운 기회
실력에 있어 그는 늘 리그 최고의 슈터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잦은 부상과 부진한 팀 성적은 그의 능력에 의문부호를 달게 했다. 방성윤은 2004-2005시즌 데뷔 이후 매 시즌 장기 부상에 시달려 왔다. SK 선수단과 팬들은 ‘이번엔 뭔가 되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있다가도 방성윤의 부상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답답했던 이는 바로 방성윤 본인이었다.
요즘 몸 상태는 어떤가요? 시즌 중에 다친 무릎과 목 부위가 아직 완전하지 않아요. 계속 재활 중이죠. 원래는 시즌 끝내고 바로 미국 들어가서 재활을 하려고 했는데, 대표팀 소집일정을 몰라서 국내에서 재활을 하고 있었어요. 미국에서 재활 방법을 배운 덕분에 팀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으면서 재활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재활을 어디서 하나요? 이번에 팀에서 포틀랜드와 샌안토니오로 연수를 가거든요. 그 팀의 재활 프로그램에 따라 운동을 할 생각이었어요. 아직 일정이 확실히 나온 것은 아닌데, 대표팀 소집일정과 겹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매 시즌 부상을 당하고 있는데, 본인도 답답할 것 같아요. 안 다치면서 잘 해야 하는데, 자꾸 다치다보니까 답답하죠. 부상 때문에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호흡이 잘 맞지 않은 부분도 나오고요. 그 와중에 안 좋은 이미지로 비치게 되니깐 더 속상했어요.
부상을 자주 당하는 이유를 본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요?(웃음) 부상 부위를 신경 쓰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은 쉬는 기간이 많지가 않았어요.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자꾸 운동을 하다 보니 그 피로가 쌓여서 정작 해야할 때 부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휴식이 충분했나요? 이렇게 길게 쉰 적이 없다고 느낄 정도였어요. 운동을 하면서 한 달 이상 쉰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충전이 됐어요.
지난 시즌엔 정말 크게 다치고도 플레이오프를 치렀어요. 후유증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죠. 완전히 나은 다음에 뛰었어야 했는데…. 이번 시즌에 똑같은 부위를 다친 것이 작년의 영향도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심리적인 이유도 큰 것 같아요. ‘또 다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 말이죠.
이번에는 SK에 주희정이 가세했는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죠?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었죠. 희정이 형을 처음 본 건 되게 오래 전이에요. 그때는 희정이 형이 나래(현 원주 동부)소속이었고 저는 휘문중에 다니고 있었죠. 희정이 형이 야간 훈련을 저희 학교에 찾아와서 했었어요. 정말 추울 때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말 열심히 했죠. 정말 대단하고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같은 팀에서 뛰게 되니 반갑죠. 열심히 하는 선배인 만큼 팀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요.
호흡을 맞춘 적이 없는데, 어떨 것 같은가요? 일단, 비시즌 동안 얼마나 몸이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몸이 만들어 진 후에 손발을 맞추다보면 조금씩 맞아 들어가겠죠. 제게도 희정이 형에게도 뜻 깊은 시즌이 될 것 같아요.
주희정 선수는 방성윤 선수에게 맞춰가겠다고 하던데…. 저도 당연히 희정이 형에게 맞춰야죠. 워낙 리딩이 뛰어나고 경기 운영에 뛰어난 선수이다 보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느낌이 좋아요.
‘팀 중심이 누구냐’를 두고 마찰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어요. 경기에 들어가면 일단 가드의 손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희정이 형이 저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많이 움직여야겠죠. 오히려 전술의 중심이 누가 되든 더 다양하게 펼쳐지지 않을까요? 희정이 형이 안 좋은 날엔 제가 더 하면 되고, 서로 상호보완을 해야죠. 그런 면에서 잘 융화된다면 누가 중심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어땠나요? 활약이 대단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도착하자마자 게임 뛰는 데 거의 졸면서 뛴 것 같아요. 몸을 풀려고 싸이클을 탔는데, 페달이 도는 건지 제 다리가 도는 건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물론 미국에서 운동을 계속 했기 때문에 준비는 되어있었지만, 제가 괴물이 아닌 이상, 시차적응을 할 틈도 없이 계속 강행군을 치를 수는 없죠.
부담이 많이 됐겠군요? 그렇죠. 그 때부터 몸에 무리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부상까지 당하게 된 것 같아요. 복귀경기는 어떻게 잘 치르기는 했지만, 정말 그 때 인터뷰에서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예요.
SK는 항상 우승후보로 주목받았는데, 정작 성적은 그렇지 못했어요. 핑계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외국인선수 쪽에서 항상 문제가 있어요. 물론, 저도 팀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죠. 지난 시즌에도 중간에 합류하면서 팀을 다시 바꿔야 했잖아요. 올해는 몸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희정이 형도 왔으니 지금까지보다 확실히 SK의 팀 색깔을 찾는 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외국인선수 문제는 디앤젤로 콜린스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죠. 콜린스가 알려진 것보다 문제가 더 많았어요.
테런스 섀넌이 공격력은 뛰어났지만 수비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그 부분을 콜린스가 채워주기를 기대했는데, 콜린스는 ‘내가 왜 이런 것을 해야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자기도 공격을 하겠다는 것이었죠. 대화도 부족했고요. 다 지났으니 하는 얘기죠. 다음 시즌은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물론, 그만큼 준비도 할 것이고요.
키워드 2D-리그…계속되는 도전
지난 2004년, NBA 진출을 꿈꾸며 D-리그에 진출했던 방성윤은 지난 2008-2009시즌을 앞두고 다시 D리그로 향했다. 두 번째 도전이었다. 국내에서 최고선수 대우를 받을 수 있음에도 그는 도전을 택했다. 비록, KBL로 리턴을 결정하면서 방성윤의 이번 도전은 짧게 막을 내렸지만 그의 도전의지는 아직도 NBA를 향하고 있었다.
D-리그 생활이 두 번째였는데, 어땠나요? 처음에는 긴장도 하고 준비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번에는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장점이 생겼죠.
D-리그는 어떻게 달라져 있던가요? 선수들의 면면이 바뀐 것이지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대신 시설이나 환경이 좋아졌더라고요. 제가 처음 갔을 때는 6개 팀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3배 가까이 늘었죠. (D-리그는 현재 총17팀이다)
리노 빅혼즈의 키 식스맨으로서 경기력이 괜찮았어요. 아쉽지 않나요? (한숨을 쉬면서)아쉽죠. 어쨌든 제가 한 결정이니 지금 상황에서 열심히 해야죠. 기회가 있으면 가겠지만 일단, 다음 시즌에는 SK만 생각하려고요. 미국은 차후 문제죠.
관심을 보이는 NBA 팀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사실, 그 전부터 얘기는 있었어요. (LA)레이커스를 좋아해서 그 팀에 들어가기 위해 드래프트 전부터 레이커스의 하부 팀인 LA 디펜더즈에서 연습을 했어요. NBA 코치 한 분을 알게 됐는데,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SK 시절 포틀랜드에서 연수를 받을 때 알게 된 쿱(다렌 쿠퍼)이란 친구가 마침 그 팀에 있어서 운동도 같이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지명은 리노에서 했잖아요? 험프리스 감독님이 그 팀에 있었는데, 생각보다 높은 순위에 저를 뽑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리노에 가게 됐죠. 리노에서 뽑지 않았다면 디펜더즈에서 뛰었겠죠. 리노에서 처음 시범 경기를 하는데, 세크라멘토에서 저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들었어요. 아시아선수가 뛰니깐 좀 다르게 보였던 것 같아요.
D-리그와 KBL은 어떻게 다른가요? 농구 스타일 자체가 완전히 다르죠. 작전은 있지만, 대부분이 1대1에 의한 플레이고요. 전부 NBA를 가려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정말 전쟁터 같이 치열해요.
의사소통도 되어야 할텐데, 영어는 잘하는 편인가요? 저 영어 잘 못해요.
그럼 의사소통은 어떻게 했나요? 살려고 하면 되요. 말은 잘 못하는데 눈칫밥으로 알아듣는 편이죠. 워낙 공부하는 걸 싫어해서…. 그러다가도 하도 답답할 때는 책도 좀 보고 그러죠. 주변에서는 영어도 못하는데, 혼자 돌아다니고 생활하는 걸 보면 신기하대요.
에피소드도 있었겠군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공항에서 애틀란타를 갔는데, 비자가 잘못됐다고 해서 애먹은 적이 있어요. 제 딴에는 열내가지고 짧은 영어 한다고 한 것이 더 화를 불렀어요. 9시에 애틀란타에 도착했었는데, 2시간 잡혀 있다가 12시쯤이 넘어서 “철창 안에 있을래, 1시 비행기 탈래?”하고 물어 보길 래 바로 비행기 탔죠.
D-리그에서 느끼는 NBA의 벽은 그렇게 높게 보였나요? 안 높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최고의 선수들 뛰는 곳이잖아요.
플레이오프에서 하승진을 보고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지금의 하승진이라면 NBA진출이 가능할까요? 당시의 승진이는 기회를 못 잡았던 것 같아요. 승진이 같은 경우엔 감각을 익혀나가면서 뛰어야하는데 벤치에만 있다 보니 체력도, 자신감도 떨어진 케이스죠. KBL로 오면서 직접 부딪치고 뛰는 시간을 늘려가면서 기량이 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여요.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요.
앞으로도 계속 도전을 할 생각인가요? 일단, 올 시즌은 SK만 생각하려고요. 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선수들도 미국농구를 배우고 부딪쳐보면서 느끼고 경험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부딪쳐봐야 포기를 하던 도전을 하던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린 선수들 중에서도 좋은 선수가 많던데, 기회가 없어서 아쉬워요. 꼭 기회가 돼서 가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자신이 만들어서라도 부딪쳐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정말 배우는 것이 많을 거예요.
한국에 있으면 최고선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힘든 D-리그에 도전하려는 이유는 뭔가요? 후회할 거 같아서요. 기회가 평생 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도전도 하지 않고 기회를 놓쳐버리면 후회할거 같아요. 여기서 우승하는 것도 영광이죠. 하지만 NBA 진출이 더 큰 영광이잖아요.
키워드 3Pride of Korea
방성윤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혜택을 받았다. 태극마크를 달면서 얻은 영예와 함께 혜택을 톡톡히 누린 것이다. 그러나 이후 ‘태극마크를 단’ 방성윤의 활약은 미비했다. 계속되는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합류해 있는 동안에도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해 오히려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안게 되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대표팀을 소홀히 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속상한 것이 많아요. 저는 몸만 된다면 무조건 대표팀에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대표팀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것이에요. 대표팀이 아니었다면 제가 미국에 갈 생각을 할 수나 있었겠어요? 대표팀을 통해 얻은 혜택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죠.
계속되는 부상도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기지 않았나요? 도하 아시안게임 때가 제일 심했죠. 그 때 발목을 다쳐서 안 그래도 욕을 먹고 있었어요. 아시안게임에서 뛰려면 최대한으로 발목에 힘이 가해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목발을 짚고 비행기에 탔죠.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내리려고 보니 발목이 더 많이 부어있었어요. 제 딴에는 조금이라도 덜 걷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어린 놈이 그거 아프다고 휠체어를 탄다’고 난리가 났었죠.
부상 때문에 못 뛰다가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무려 42점을 올리기도 했잖아요. 다들 운동을 하는데, 저만 부상 땜에 빠져있어서 시선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부상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뛰기로 결심하게 됐어요. 그런데 슛이 다 들어가면서 오히려 더 오해를 사게 됐죠. 제 생각이 틀렸던 것 같아요. 차라리 부은 발목을 보여주면서 도저히 뛸 상황이 아닌 것을 알리는 것이 낫지 않았나 싶어요. 부상 때문에 몸이 완전치 못한데, 가끔 나가서 경기는 치르고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안 좋은 시선들이 쌓이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을텐데, 준비는 하고 있나요? 일단 몸이 완벽하게 회복되는 것이 우선인데, 지금 상태로 6월에 열리는 동아시아 대회는 힘들 것 같아요. 좀 더 시간을 주신다면 ABC 대회에는 좋은 몸 상태로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2위안에 들어야 내년에 세계선수권을 나갈 수 있으니 노력해야죠.
최근 들어 대표팀을 꺼려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어디 있다고 보나요? 아무래도 관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죠.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고 나면 잔부상이 많아요. 부상이 있는 부분은 병원 치료나 대표팀에서 재활이 이루어져야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잘 이뤄지지 않죠. 비교하기가 좀 그렇지만, 축구 대표팀을 보세요. 관리가 정말 잘 되잖아요. 트레이너가 재활 다시키고 운동시키니깐 선수도 그렇고 팀에서도 그렇고 안 보낼 이유가 있나요.
그렇다면, 대표팀이 선수 관리면에서 보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겠군요? 당연하죠.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부상걱정이 제일 크죠.
대표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중국을 이기는 것이죠. 제가 느꼈을 때는 아직 차이가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아시아권에서도 카타르나 레바논은 체형이 유럽 쪽에 가까워지고 기술면에서 미국스타일을 접목하면서 한층 우위에 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이만큼 하는 것도 신기한 거예요. 오로지 한국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놓은 농구로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거잖아요.
농구에는 이승엽, 박찬호가 없다고들 하는데? 제일 아쉬운 부분이죠. 아무래도 농구는 직접 부딪치기는 운동이기 때문에 세계수준과는 차이가 많죠. 농구가 ‘우연’이라는 것이 없는 경기에요. 축구처럼 슛을 쐈는데, 수비수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간다거나 그런 일이 거의 없죠. 홈런하나로 승부가 나는 것도 아니고요. 수비를 피해서 똑바로 던져도 점프를 떠서 막아내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더 도전해보려고 하는 것이죠. 제가 기술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점프 많이 뛰는 것도 아니잖아요. 좋은 선수들과 부딪쳐서 이겨내 보려고요.
키워드 4청년 방성윤 방성윤은 ‘미스터 빅뱅’의 모습으로만 비춰졌을 뿐 코트 밖 ‘청년’ 방성윤의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다. 방성윤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28살. 코트 안에서는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화려한 스타이지만, 코트 밖에서는 친구들과 만나 맥주 한 잔 기울이고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만남에 설레이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농구장 밖의 방성윤에 대해서는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 않았어요. 평소 어떻게 지내나요? 뭐, 특별한 것은 없어요. 쉬는 날에 주로 집에 있는 편이에요. 가끔 나가서 친구들 만나서 당구치고 맥주도 한잔하고 그러죠. 당구는 시작 한지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150정도 쳐요. 술은 워낙 잘 안 받는 체질이라 많이는 못 마셔요.
젊은 선수들은 주로 게임을 즐겨하던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즐기는 편이에요. 위닝 일레븐도 하고 2K9도 해요. 2K9은 딱히 가리는 팀 없이 여러 팀으로 번갈아 하면서 하는 편인데, 레이커스를 좋아해서 주로 레이커스로 하죠.
코비 브라이언트를 좋아하는 군요? 하하. 잘하는 선수죠. 좋아한다기보다 예전에 레이커스 선수들과 연습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한번은 연습하다가 눈이 찢어지는 일이 있었어요. 원래 D-리그 선수들은 레이커스 트레이닝 룸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응급처지를 하려고 들어간 적이 있었죠. 치료받으러 들어갔는데, 레이커스 선수들이 있는 거에요. 깜짝 놀랐죠. 연예인들보는 기분이라 할까요? 그때 코비가 저를 기억했는지 연습 때 알아보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고마웠죠.
미군부대에서 농구도 했었다고 들었어요. 미국에 가보겠다고 미군부대 군인들하고 한 거죠. 영어도 할 겸해서요. 그 중에서는 기량이 좋은 사람들도 꽤있어요. 요즘은 갈일 없죠.
이정석(서울 삼성)과 아주 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농담으로라도 함께 뛰자고 얘기한 적은 없나요? 왜 없겠어요. 항상 얘기는 하죠. 기회가 있어야 같이 뛰는 건데, FA규정 변경으로 이적이 힘들게 되어있더라고요.
선수들은 비시즌이 되면 여행을 많이 가던데, 여행 계획은 없나요? 여행을 좋아해요. 그동안을 떠올려보면 놀러가기보다는 농구하러 이곳저곳을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웃음) 이번에는 친구들과 제주도를 놀러갔었는데, 노는 것도 놀던 사람이 놀아야지, 잘 놀더라고요. 왠지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은 들고, 살은 계속 찌고 그러다 보니 영 맘이 편치 않더라고요.
오늘(5월 8일)이 어버이날인데, 선물은 드렸나요? 어제(5월 7일) 꽃 달아 드린 것이 전부에요. 이번 시상식(스포츠토토 프로농구 대상) 상금을 드리려고 했는데, 현금이 아니더라고요. 하하.
부모님께는 어떤 아들인가요? 재미없는 아들이죠. 원래 말이 없는 편이에요. 수다쟁이 아들이 되어서 좀 재밌게 해드리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항상 감사드릴 뿐이죠. 부모님께서는 제게 고맙다고 하시는데, 제가 더 감사하죠. 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거잖아요. 제가 부상을 당해서 힘들어 할 때, 제가 힘든 걸 아시니깐 별다른 말보다는 그저 “괜찮냐, 마음 편히 가져라”라고 격려해주시죠. 저보다 더 속상하실 텐데 말이죠. 더 성공해서 효도하고 싶어요.
방성윤은…
1982년 6월 3일생으로 휘문고-연세대를 거쳐 2004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TF에 지명됐다. D리그를 거쳐 조상현과의 트레이드로 SK 유니폼을 입고 KBL에 데뷔한 방성윤은 리그 최고의 슈터이자 대표팀 부동의 슈터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 정지욱 기자 사진 이청하 기자
JUMPBALL 2009년 06월호(발행일 05월 25일) 기사
2009-06-18 [
<U>점프볼 구독</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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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065&article_id=0000028876
에이구 ㅠㅠ 잘 좀 하지 ... 나도 재작년 시즌까지, 아니지 작년 12월에 처음 복귀했을 때
뽕 맞은 것처럼 활약해댈 때까지는 너의 골수 팬이었는데 ㅜㅜ
동부 전이었나 ? 2,3쿼터에 나와서 캐삽질하고 경기 말아먹고 ... 그 때부터 GG였지 ㅠㅠ
올 시즌은 제발 딴 거 필요없으니까 주키드하고 짝짜꿍해서 한 시즌만 풀타임 소화해보자 ㅠㅠ
얘는 맨날 다쳐요 ㅡ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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