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 교육회관에서 프로농구 사상 처음으로 귀화 혼혈인 선수 드래프트가 실시됐다. 이날 참가한 7명의 선수들은 자신의 실력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듯 비장한 모습을 나타냈다.

오후 1시. 국내 프로팀 2군 선수들과 함께 7명의 혼혈 선수들이 나뉘어 연습경기를 시작했다. 출발은 캐빈 미첼과 에릭 산드린이 좋았다. 미첼은 빠른 움직임으로 코트 내, 외곽을 휘저으며 10득점을 기록했다. 2m 6cm 장신인 산드린은 시종일관 골밑을 장악한 가운데 강력한 원 핸드 덩크슛을 보여주는 등 10개 프로팀 감독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경기는 계속해서 진행 됐다. 감독들은 선수들의 움직임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2쿼터 초반 크리스 벤이 벤치에 앉아 있자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은 “선수들 기량을 봐야 되는데 왜 쉬게 하냐”며 진행 관계자들에게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경기는 모두 끝났고, 감독들은 저마다 고민스러운 표정을 연출했다. 그러나 전창진 원주 동부 감독은 달랐다. 확실히 마음에 드는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수는 바로 크리스 벤.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NCAA에서 활약한 벤은 180cm가 안 되는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1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득점은 19점. 빠른 스피드와 환상적인 드리블,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이 일품이었다. 

경기장을 빠져 나온 전창진 감독은 크리스 벤의 옆에서 체중은 얼마나 나가는지 한국말은 어느 정도 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물어봤다. 그리고 여러 감독들 앞에서 “벤은 내가 찜했으니 넘볼 생각하지 말라”고 웃으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4시. 본격적인 드래프트가 실시됐다. 1개의 상자 안에는 10개 프로팀의 이름이 적힌 구슬이 담겨 있었고, 또 다른 상자에는 지목할 수 있는 순위의 숫자가 적힌 구슬이 10개가 있었다.

이제 운이 따르기를 바라야 하는 순간이 왔다. 처음으로 뽑힌 울산 모비스. 그러나 9번째다. 이후 창원 LG는 3번째. 양 팀 감독의 희비가 교차됐다. 벤을 강력히 원한 전창진 감독. 6번이 나오자 한숨을 내쉬었다.

1순위부터 차례대로 전주 KCC, 서울 삼성, 창원 LG, 안양 KT&G가 마음에 든 선수를 지목했다. 이때까지 벤은 지명이 안 된 상황. 전창진 감독에게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5번째로 지명할 수 있었던 부산 KTF 추일승 감독이 벤의 이름을 불렀다. 눈앞에서 진주를 놓친 전창진 감독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지명권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