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가 새로운 곡을 발표할 때마다 2NE1과의 유사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충분히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다만 투애니원스러운 것이 꼭 문제가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YG 소속의 아이돌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특유의 스타일을 블랙핑크라고 갖추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블랙핑크에 어울리는 옷이 있는데 유사한 스타일의 전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다른 옷을 입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투애니원의 히트곡들을 작곡했던 테디가 블랙핑크의 모든 곡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점만 봐도 YG는 블랙핑크를 억지로 투애니원과 다른 방향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를 굳이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외적인 면에서도 음악적인 면에서도 전체적인 인상은 투애니원과 유사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투애니원의 음악을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된 현 상황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음악을 블랙핑크를 통해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팬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만약 블랙핑크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시그널을 보내는 블랙핑크의 모습은.. 아무래도 아니다.

사실 블랙핑크의 실력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면 투애니원만큼 개성적이면서, 또 투애니원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멤버들 하나하나는 투애니원의 멤버들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지 않는다. ‘박봄이랑 목소리가 똑같다’라던가, ‘CL이랑 랩이 똑같던데’와 같은 무례한 감상을 내놓는 사람들은 블핑알못이면서 동시에 투알못(투애니원알못)이라 보면 된다. 날카롭고 거친 리사의 랩은 CL이나 공민지의 랩과는 확인히 다르고, 지수의 허스키한 보컬 역시 전에 없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개성적이지만 특히 제니와 로제를 얘기하게 되면 굉장히 놀라워진다. 제니는 랩도 훌륭히 해내지만 노래할 때에도 기교 없이 정직하게 내뱉는 인상의 단단한 보컬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로제는, 완벽하다. 흔히 말하는 음색이 좋은 보컬이라는 영역에서는 모든 걸그룹 멤버들을 통틀어 단연 최고라고 본다. 이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전체적으로는 투애니원의 음악과 유사하다고 생각될 수는 있어도 그 책임은 멤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YG 걸그룹’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결코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날 필요도 없는 굴레다.

이번 곡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 전에 먼저 이전의 곡들을 되돌아 보자. 데뷔곡인 ’휘파람’은 이제 막 데뷔하는 걸그룹에게 기대한 것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은 곡이었다. 같이 공개되었던 ‘붐바야’가 빠르고 강한 인상의, 어쩌면 좀 과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곡이었던 것에 비해 ‘휘파람’은 결코 한 순간도 불필요한 순간에 오버하지 않는다. 둥둥거리는 저음의 비트가 계속되는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되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아 더욱 집중하게 한다. 투애니원의 많은 히트곡들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다음으로 발표된 ‘불장난’은 한층 더 훌륭하다. 듣자마자 그 누구라도 어깨를 들썩일 수밖에 없는 건반 인트로와 파워풀한 신서사이저 라인이 완벽에 가깝다. 현재 활동중인 걸그룹 중 이런 스타일의 곡을 소화해낼 수 있는 걸그룹은 블랙핑크 말고는 없다. 블랙핑크가 시그널을 보낼 수 없는 것처럼, 다른 걸그룹이 불장난을 할 수는 없다. 투애니원이 그랬듯이, 블랙핑크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그래서 신곡 ‘마지막처럼’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다. 그러나 결과는 다소 아쉬웠다. 이 곡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점들은 (이 곡과 마찬가지로 이제 블랙핑크의 시그니쳐 라인으로 자리잡은 ‘BLACKPINK in Your Area’가 삽입된) ‘붐바야’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두 곡에는 모두 중간에 고음으로 올라가는 파트가 끝난 직후 사운드가 급변하는 순간이 있으며, 그 포인트를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사운드가 조화롭지 못한 나머지 별개의 작업으로 진행되던 파트를 무리해서 이어붙였다는 인상을 준다. 더군다나 ‘마지막처럼’에서는 그 변환의 포인트에 과도한 오토튠을 적용하여 더욱 어색하다. 이번 신곡을 홍보하면서 자부심을 느끼며 강조했던 리사의 킬링 랩파트 역시 곡의 나머지 부분과 따로 논다. ‘붐바야’에서 퀄리티 저하의 일등 공신이었던 ‘오빠!’의 역할을 담당하는 유치한 후렴구 ‘마지막처럼 마 마 마 마지막처럼’까지 겸비. ‘마지막처럼’을 듣고 나서의 감정은 투애니원이 2013년 ‘Falling in Love’로 컴백했을 때 느꼈던 것과 유사한 당혹감이다. 다만 음악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몇 번만 들어도 쉽게 귀에 익는 곡이어서 음원 차트 성적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요즈음 쏟아지는 노래같지도 않은 곡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만 블랙핑크가 이전에 발표했던 곡들에 비하면 매우 아쉬운 건 사실. 훌륭하지 못한 곡을 가지고도 멤버들의 역량과 매력이 그나마 숨통을 이어간다. 작년부터 이어져 온, 훌륭했던 Square 시리즈 사이의 쉬어가는 타임에 나온 곡이라는 점에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블랙핑크의 광팬으로서 다른 걸그룹이 어찌하든간에 블랙핑크만큼은 엉터리같은 곡을 부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에, 그리고 다음 번엔 메인 프로젝트인 “Square Three”이니만큼 YG의 프로듀서들이 다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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