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남침 임박」
《긴급》제2차 대국민 안보보고서(총14쪽)
前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김영환
저는 지난 1월 15일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인터넷상에 공개함으로써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남침 임박」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 직후 북한은 “전면대결태세 진입”을 선언(1.17)한데 이어 ‘전군에
대한 전투준비태세 명령’을 하달(3.9)함에 따라 북한의 정규군은 물론 노농 적위대(민방위조직), 교도대(예비군), 붉은 청년근위대(학생군사조직)까지 전투준비에 돌입하는 등 남침준비를 완료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남침에 따른 미국의 개입가능성을 사전차단하기 위한 장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함으로서(대미 핵공격능력 과시) 오늘날 한반도 안보현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 정부와 언론 등은
북한의 미사일발사 이후, 마치 현 위기상황이 종료되기라도 한 듯이 또
다시 국내 정치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저는 지난번에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할 때 동일한 보고서를 국정원 지휘부에도 제출했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 지휘부는 저의 보고에 대해 “정신 나간 주장”이라는 공식 검토의견을 통보(2.5)한데 이어, ‘임의로 전쟁을 경고했다’는 이유로 저를 강제해직(2.12)시켰습니다. 또한 국방부 관계자도 저에게 직접 항의성 전화를 함으로써(2.2) 장거리 지하터널의 존재를
인정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남침
임박」을 경고하거나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할 정부기관이나 부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안보현실을 있는 그대로 우리 국민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저는 또 다시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즉, 더 이상 ‘방위태세가 튼튼하다’는 우리 국방부의 주장을 믿고 있다가는, 과거에 “경제의 펀더멘틀이 튼튼하다”는 재경원 주장을 믿다가 IMF 위기를 맞았듯이, 이번에는 안보분야의 IMF, 즉 과거 임진왜란과 6.25 등과 같은 미증유의 재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에 지금
당장 행동해주실 것을 호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고서 목차】
1. 긴박한 상황 對 안일한 대응-------------------------------2
2.「전술(戰術) 땅굴」對「전략(戰略) 지하터널」------------------2
3.「산업용 지하터널」對「군사용 지하터널」-------------------- 6
4. 극소수 군인의 안보 對 전체 국민의 안보---------------------13
1. 긴박한 상황 對 안일한 대응
지난 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번의 로켓발사는 기존의 도발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그간 북한이 말로만 했던 “불과 불, 철과 철이 맞부딪치게 될 전쟁
접경”, “가장 무자비하고 단호한 결판, 실천으로 보일 것” 등과 같은 남침협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무력시위임과 동시에 장거리 지하터널을 통한 기습의도를 숨길 목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허공에 고정시키려는 성동격서 전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방부는 여전히 가장 시급한 과제인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을 외면한 채 “최단 기간내 승리” 등과 같은 공허한 주장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지난 6.25 직전에 국방부가, ‘민심안정’을
기한다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말로만 다음과 같이 북진통일을 호언장담했던 전례를 반복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 방법(북진통일)은 군기밀이라 언급할 수 없으나, 백번 승산이 있으니
국민은 안심하라. 그리고 38선이 터지는 그 날만 두고 보라...”
2. 「전술(戰術) 땅굴」 對 「전략(戰略) 지하터널」
물론 오늘날의 상황은 과거 6.25때와는 전혀 다르며, 또한 군사력 면에서도 우리가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현재와 같이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여 비상경계 태세까지 유지하고 있다면 섣불리 남침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즉, 이번의 로켓발사 등은 ‘일전(一戰)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한-미 양국 등으로부터 정치․경제적인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벼랑 끝 전술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쟁을 원치 않는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본 결과(mirror-imaging)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김정일 시각에서 본다면, 현재와 같은 북한의 대내외 상황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체제 또는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비록 승산은 희박하다할지라도 남침을 감행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경고하고 있는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에 대해서도, 국방부가
진작부터 ‘단거리 땅굴을 이용한 북한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따른 대책까지 수립한 상태라면, 크게 염려할 필요 없다는 반박도 가능할 것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이나 단거리 땅굴 모두 지하갱도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만큼 국방부가 별도로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수립을 외면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기존의 단거리 땅굴은 고작해야 전술(戰術) 차원의 지하갱도에 불과한 반면, 장거리 지하터널은 전략(戰略) 차원의 지하갱도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전술땅굴이란 휴전선 일대(한강 이북지역)에서 전개될 개별 전투의 승리를 위한 지하갱도를 말하며, 전략지하터널은 개전과 거의 동시에 우리의 심장부를 점령함으로써 일거에 전쟁자체의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지하갱도를 의미하는데, 이처럼 기존의 전술땅굴을 전략지하터널로 확대발전시킨 것의 군사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히틀러의 전격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격전이야말로 모두들 전술무기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던’ 탱크를, 전략무기로 ‘통 크게’ 활용함으로써 일거에 전쟁자체의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에 독일만 탱크를 보유했던 것은 아니며 또한 독일제 탱크의 성능이 가장 우수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탱크는 프랑스제였으며, 그에 비해 독일제 탱크는 한
세대 뒤떨어졌다고 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프랑스 국방부는 “최첨단 무기와 세계최고의 방어요새를 보유하고 있다”고 큰소리쳤으며, 참모총장 가믈랭은 전쟁발발(1940.5) 3개월 전까지도 “만일 독일이 우리를 침공하는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10억 프랑을 주겠다”며 조롱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독일군 수뇌부도 처음에는(폴란드 점령
직후) 히틀러의 프랑스 침공계획에 대해 “무모한 전쟁”, “범죄와 다름없는 전쟁계획”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와 같은 전력상의 열세를, ‘전격전’이라는 작전개념상의 우위를 통해 극복했던 것이다. 즉, 독일은 탱크의 기동성을 높일 경우, 전쟁자체의 승부를 조기에 결정지을 수 있는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해 탱크의 화포와 장갑을 희생하는 대신 탱크의 속도를 높였던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 등은 탱크에 대해 개별 전투(참호전)에 있어 보병의 진격을 지원하는 전술무기 정도로 인식한 나머지, 탱크의 기동성보다는 장갑과 화포를 강화하는 데에 치중했다. 그 결과 프랑스군은, 독일군이 침공할 것이라는 사실은 물론, 심지어 탱크를 앞세우고 침공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미리 알고 그에 따른 ‘완벽한’ 방어계획까지 수립했음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독일군 기갑부대의 신속한 공격 앞에 여지없이 붕괴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무기에 대한 사용 방법상의 혁신을 통해 상대를 기습하는 것을 ‘작전교리상의 기습’(doctrinal surprise)이라고 부른다.
한편 ‘전격전 신화’의 배경에는 히틀러가 상대방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 공격방법을 선택한 것도 또 다른 결정적 승인(勝因)으로 작용했는데, 이는 그가 독일군 기갑부대로 하여금 ‘탱크는 절대 통과할 수 없다’는 아르덴느 삼림지대(森林地帶)를 돌파토록 함으로써, 영-프 연합군의 배후를 기습한 것을 말한다. 아르덴느 삼림지대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나, 프랑스군 지휘부는 ‘나무와 계곡 등으로 인해 탱크는 통과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기에 이 지역에 대한 방어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프랑스군 내부에서 이 지역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일부 프랑스 장교 등이 그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지만, 국방장관 페탱 원수가 1934년 상원 육군위원회에 출석, ‘이 지역은 탱크가 절대 통과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군 내에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것이다. 즉, 프랑스
국방부는 ‘독일군 기갑부대가 아르덴느를 통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가설(假說)을 공식입장으로 정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38년(전쟁 2년 전) 제2군 사령관 프레틀라 장군이 실제훈련 결과를 바탕으로 ‘독일군이 아르덴느로 기습할 경우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상부에 보고했을 때, 참모총장 가믈랭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보고내용을 철저한 비밀에 부치도록 명령했는가 하면 그를 문책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침공직전 주(駐)스위스 프랑스 무관이 독일군 주력부대가 아르덴느 방향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 보고한 내용과, 영국 정찰대가 독일군 탱크들이 아르덴느 지역에 집결중임을 발견한 사실 등도 끝내 프랑스 최고 지휘부에는 전달될 수 없었다. 그 결과 아르덴느 지역을 통한 히틀러의 기습계획은 이미 성공을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보다 확실한 기습효과를 노리고 상대를 기만했다. 즉, 조공(助攻:보조공격)부대로 하여금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토록 함으로써, 마치 제1차 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북부를 노리는 것처럼 위장했다. 이에 영-프 연합군은 정예부대를 벨기에 영토로 진격시킴으로써 보다 남쪽의 아르덴느 지역을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켰다. 이틈을 노리고 독일군 주력 기갑부대가 ‘나무를 베어내면서’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돌파하자, 연합군은 ‘절대 불가능한’ 방향에서 출현한 독일군의 공격과,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을 정도로 신속한 독일군 기갑부대의 진격 속도에 놀란 나머지 모두들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처럼 히틀러의 전격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의 안보 상황이 패전 직전의 프랑스와 비슷한 면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김정일을 대표하는 정치적 구호가 ‘속도전’(전격전의 북한식 표현)인데다, 그가 굴착한 장거리 지하터널 역시 ‘작전교리상의 기습’(전술 땅굴⇒전략지하터널)을 노린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군도
지난 1992년 국방장관 명의로 기자회견을 한 것을 계기로,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공식입장을 고수해온 점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군도 배후의
기습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데, 일례로 과거 6.25 기간 중에 있었던 현리전투(1951.5)의 경우, 우리 군은 미국의 군사원조 덕에 상대보다 압도적인 화력과 장비를 보유한 상태였음에도, 고작 1개 대대 정도의 중국군이 배후(오마치 고개)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1개 군단이 순식간에 붕괴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군단장은 비행기타고
도망갔고 사단장 등은 계급장 떼고 사병들 틈 속에 숨어 달아났을 정도로
혼비백산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군 지휘관들이 겁쟁이였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데, 그들은 이전의 영천대첩(군단장)과 춘천대첩(사단장)의 주역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기습을 당하면
누구나 겪기 마련인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심리적 충격효과’를 노리는 전격전(속도전)의 경우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오늘날의 국방부 대책에 대해 ‘안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따라서 국방부는 더 이상 ‘북한군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설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장거리 지하터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승산=0」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만이 임박한 남침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우리 안보현실에 비춰볼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군사를 쓰는 법은, 적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적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내가
조치한 바를 믿는 것이다(故用兵之法... 無恃其不攻 恃吾有所不可攻也)』
3. 「산업용 지하터널」對「군사용 지하터널」
하지만 현재와 같이 장거리 지하터널의 길이와 구조 등에 대한 기본정보조차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대책을 수립할 것인가.
이와 관련 우선 김정일의 입장에서 기존의 단거리 땅굴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부터 검토한다면 대책수립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할 것이다. 즉, 기존의 단거리 땅굴로는 한강 이북지역에 대한 기습은 가능해도, 이후 남진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은 과거 6.25 때처럼 또 다시 한-미 연합공군의 공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거리 지하터널은 우리의 후방 지역 어디까지 들어와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과거 월남전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데, 월남전의 경우 월남공산군이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미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정글이 아닌, 땅굴」을 이용한 게릴라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땅굴 덕분에 월남공산군은 미군의 공습 등에도 불구하고 병력과 군수품을 ‘안전하게’ 목표지점까지 수송할 수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즉, 월남의 땅굴은 단순한 지하갱도가 아니라, 다수의 군사적 거점을 서로 연결해주는 일종의 지하 네트워크로서 기능을 했다는 것인데, 그중 대표적인 쿠치 땅굴의 경우, 캄보디아 국경에서 사이공(현 호치민시) 외곽을 연결하는 총 연장 250km의 장거리 땅굴로서, 내부에 무기고 및 탄약고는 물론 식당, 병원, 극장(정치교육용)까지 갖춘 일종의 지하 소도시 역할까지 담당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북한군도 비록 극소수이기는 했으나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그 중에는 땅굴 요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김일성이 지난 1971년 ‘땅굴굴착’ 지시를 내리게 된 배경에는 월남전의 경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월남의 공산게릴라들이 1968년 장거리 땅굴을 이용한 ‘구정공세’를 통해 승기를 잡기 시작한 직후였음). 하지만 김일성의 땅굴은 곧 우리 군에 의해 발각됨으로써 ‘결정적 기습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 아들 김정일은 기존의 단거리 땅굴을, 전략차원으로 ‘통 크게’ 확대발전시킨 것이 바로 장거리 지하터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해, 월남의 장거리 땅굴을 ‘통 크게’ 확대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도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250km 이상은 남진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일 입장에서 보았을 때, 월남공산군이 수작업(手作業)으로 250km의 장거리 땅굴을 팠다면, 첨단 장비(TBM)를 보유한 북한군이 그 정도를 굴착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전문가에 따르면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함). 그런 점에서 지난 2002년(약 7년전)부터 경기도 화성 등의 땅속에서도 ‘TBM 작동음’은 물론 심지어 ‘전화 받는 사람목소리’까지 들렸다는 민간인들의 신고가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동안 단 한 개의 장거리 지하터널조차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을까. 진작부터 다수의 장거리 지하터널이 우리의 후방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와 있었다면 그 동안 남한 사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지하철 공사 등 각종 개발사업에도 불구하고 왜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장거리 지하터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위치, 예를 들어 지하 100m 이하 지점을 통과했을 가능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평양 지하철이 지하 100m 지점에 건설되었다는 사실과, 기존의 단거리 땅굴(제2, 제4땅굴)조차 지하 145-160m 지점에서 발견된 전례 등이 있기 때문인데, 그랬다면 장거리 지하터널이 그동안 우리의 개발사업 현장(지하철은 지하 20-30m 지점에 위치)에 의해 발견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할지라도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를 굴착할 때에는, 갱도막장이 지표면에 접근할 수밖에 없기에 그 과정에서 우리의 지하철 공사 및 대형 빌딩의 기초공사 현장 등과 조우할 가능성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의문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부분이, 다음의 그림과 같이 지표면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출구는 독가스(공기보다 무거움) 공격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북한군이 땅 속에서 ‘기어 올라오는’ 형태가 됨으로써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갱도가 지표면에 접근할수록 천장이 얇아지게 됨에 따라 공중폭격에 의해 쉽게 붕괴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군이 땅속에서 기어 올라올 것’으로 지레짐작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과 같은 산업용 지하터널의 구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해 군사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특히 과거 월남군이, 쿠치 땅굴을 구조를 ‘교묘하게’ 굴착함으로써 미군의 독가스 및 물(水) 주입공격을 무력화시킨 전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례를 잘 알고 있는 김정일이라면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가스 공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그가 다음의 그림과 같이 지하터널의 출구부분을 굴착함으로써, 가스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물론 북한군으로 하여금 우리 군의 ‘발밑에서 올라오도록’ 하지 않고 ‘머리 위로 내려오게’ 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음의 그림은 외국 갱도 전문가의 의견 등을 참고하여 그린 것임).
게다가 이러한 형태의 출구는, 천장이 두터운 암반층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적이 드문 산속에 출구가 위치할 경우 지하철 및 상하수도 공사 현장과 조우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상과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은,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남방 약 250km 내외에 걸친 지역에까지 남진한 가운데, 출구는 해당 지역 내에 위치한 높이 100m 이상 되는 산 중에서, 주요도로와 접해있는(신속한 기동을 위해) 산속에 개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게다가 그런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우리의 각급 군부대가 주둔(산기슭)해 있을 뿐만 아니라, 레이더 및 통신기지, 미사일 기지도 배치(산 정상)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 군은, 미군 전쟁 지휘소가 있는 청계산과 미2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소요산,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관악산 등에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가 개척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의 뒷산격인 북악산 또는 북한산에도 장거리 지하터널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는데, 김정일 입장에서 볼 때 청와대만큼 최우선적인 타격목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 1968년에 ‘1.21 사태’를 도발한 전례가 있기에 더욱 그러다. ‘1.21 사태’란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의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을 말하는데, 당시 국군 복장을 한 31명의 무장게릴라들은 황해도 연산을 출발, 휴전선-법원리(파주시)-노고산(구파발 부근)-진관사(진관외동)를 거쳐 북한산(비봉)에 도착한 다음,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을 ‘보무도 당당하게’ 2열종대로 행군함으로써 청와대 앞 500m 지점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상한 군인들’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종로경찰서장에 의해 검문을 받게 되자 무고한 시민 등을 향해 총을 난사하면서 도주한 것이 바로 1.21 사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때에도 우리 군은 북한의 목표가 청와대인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이미 무장공비에 대한 신고를 받고 비상경계령까지 내린 상태에서, 게다가 북한산(당초 목표는 북악산까지 산악구보로 접근하는 것이었음) 등지에서 공비들이 흘리고 간 탄피와 음식물까지 발견했음에도 청와대가 목표인줄은 ‘감히’ 생각조차 못했다고 하는데, 다음은 당시의 국방장관 회고내용이다.
“(법원리에서) 서울 진관외동의 진관사까지 산악 코스로 행군을 하면 해병대도 이틀(48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진관사를 거쳐 북한산 비봉의 승가사 아래까지 도착(10시간 만에 주파)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는 기겁을 했지요. 중무장하고 야간 산악 행군으로 북한산까지 올 수 있다는 건 제 군대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철통같은 방어선을 펼쳤는데 하루 만에 그 지역을 통과하면서 유실물(실탄과 탄창 등) 흔적을 남겨두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전례가 있기에 오늘날 국방부는 북한의 남침용 지하갱도에 대해, 고작 휴전선 부근에만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미 북악산 또는 북한산에까지 도달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에 산이 없는,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최우선 타격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국방부와 공군기지 등에 대해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은 어떻게 접근했을까.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땅 밑에서 곧바로 상륙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때에도 상기 두 번째 그림과 같이 인근의 산속에 있는 대형 터널에서 분기(分岐)하는 ‘보다 작은’ 지하터널을 통해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기습에 실패했다하더라도, 해당 출구부분만 점령당할 뿐 출발지 산속에 위치한 지하터널은 방어하기에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북한군이 지하세계의 고지를 장악한 형국).
이처럼 청와대 및 국방부, 그리고 각급부대와 공군기지 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장거리 지하터널을 통해, 북한군 특수부대(총18만 명)와 기갑부대 등이 국군복장을 한 상태에서, 우리 군이 잠들어 있는 틈에 ‘기습상륙’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2월 16일 김정일이 자신의 생일을 맞아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며 자신감을 보인 적이 있다는 사실과, 북한의 언론 매체도 다음과 같이 승리를 호언장담한 사실 등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3월 15일자 노동신문).
“우리 군대의 대응조치에는 한계가 없고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으며... 우리 혁명무력은 수십 년 세월 다져온 모든 군사력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적들에게 천백 배 무자비한 섬멸적 보복타격을 가하고 최후 승리를 이룩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 가공할 위력의 기습방법일수록, 그만큼 취약점도 정비례하기 마련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전격전의 경우에도 독일군 기갑부대 등은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수십 km에 달하는 극심한 교통체증에 갇히게 되었고 그 결과 프랑스 공군의 공습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프랑스 국방부의 확고한 ‘공식입장’(아르덴느에 대한 돌파는 절대 불가능) 덕분이었는데, 다음은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독일군 장교의 회고 내용이다
“단일 도로상에 이토록 천천히, 밀집대형으로 기동하고 있는 우리 사단은 적 공군에게 가장 좋은 표적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프랑스 정찰기는 단 한 차례도 출현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의 경우에도, 기존의 단거리 땅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공할 위력이 있는 만큼, 그에 정비례해서 단거리 땅굴에 없는 치명적 약점도 있을 수밖에 없음에 착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그 동안 장거리 지하터널 징후가 발견된 지역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땅 속에서 찬바람이 올라온다’는 신고가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상은 외부에서 송풍기 등을 이용하여 지하터널 내부로 공기를 강제 주입한 결과, 지하터널 내부의 기압이 지표면보다 높아짐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의 경우 갱도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그만큼 환기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환기구를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지표면은 남한 영토) 지하터널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그 동안 김포 및 연천, 그리고 화성 등지의 땅속에서 갱차 소리와 함께 “웅-” 하는 고압 전기 유도음이 들린다는 신고가 있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갱차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철로가 부설되어 있다는 것이며, 고압 전기 유도음이 들린다는 것은 고압 전선이 매설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징후들은 장거리 지하터널 내부에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것이다.(내연기관은 매연 등으로 인해 환기문제를 더욱 악화시킴).
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당연히 이와 같은 장거리 지하터널의 치명적 약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즉, 북한군이 상륙하는 즉시 지하터널 내부를 향해 소이탄(燒夷彈) 등을 이용한 화공(火攻)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출구 부분의 갱도는, 오히려 훌륭한 굴뚝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지하터널 내부는 화재와 연기 발생, 그리고 그에 따른 산소부족 및 고열(高熱)등으로 인해 아비규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재발생으로 인해 지하터널 내부의 고압전선마저 합선된다면, 정전사태까지 발생함에 따라 터널내부에 대한 공기공급은 물론 전동차 운행까지도 중단될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때 북한군이 입게 될 피해규모는 지난 2003년 2월에 발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를 생각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당시 2급 지체 장애인이 전동차 내부에 고작 10ℓ 밖에 안 되는 인화물질에 불을 붙였음에도 무려 300명 가까운 사상사가 발생하는 엄청난 재앙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에도 화재로 인한 정전사태마저 발생함에 따라 터널 안은 암흑세계로 변했고 그 결과 승객들은 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으며,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반대편에서 접근하던 또 다른 전동차에도 불이 옮겨 붙음에 따라 전동차 12량이 순식간에 소실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군의 각급부대는 이제부터라도 주둔지 인근의 산기슭, 부대 주변의 인적이 드문 곳, 그리고 하수도 등을 통해 국군복장을 한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이 ‘상륙’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중 하수도의 경우, 과거 스탈린그라드 전투(독일군의 구소련 침공) 당시 기습통로 역할을 한 적이 있다는 점과, 특히 구소련의 군사교리를 도입한 북한도 평양 시내의 하수도를 군사기밀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4. 극소수 군인의 안보 對 전체 국민의 안보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 국방부가 필자의 주장대로 장거리 지하터널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랫동안 고수해온 공식입장을 하루아침에 번복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 그럴 경우 국방부의 권위 실추는 물론 그 동안 민간인들의 신고 내용을 고의로 묵살 내지는 은폐해 온, 국방부내 몇몇 군인들에 대한 책임문제까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는, 그 발단 및 전개과정에 있어 ‘수지김 사건’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안기부도 지난 1987년 ‘황급히’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수지김)을 ‘북한 여간첩’이라고 발표하는 실수를 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직후 안기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은 수사과정에서 그녀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수지김은 간첩’이라고 공식발표한 뒤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안기부는 ‘수지김=간첩’이라는 공식입장을 무려 15년 동안이나 고수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안기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제적으로나 북한에게 망신당할 우려가 있다”는 핑계를 내세우면서 사건의 진실을 대외적으로는 물론 심지어 대내적으로도 숨겨왔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마치 오늘날 국방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이 관련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여타 국방부 직원은 물론 심지어 전후방의 야전군들에게조차 장거리 지하터널의 실체를 숨기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던 중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수지김 사건의 진실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는데, ‘수지김 사건’에서 보듯이,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 역시 국방부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우리 국민들이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 국방부를 대신해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가 장거리 지하터널의 실체를 우리 국민들에게 입증해줄 날이 머지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다음의 사례에서 보듯이 당장이라도 남침할 수 있는 준비를 모두 완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 최근 들어 북한 전투기들이 집중적인 실전훈련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하루 평균 100회 출격) 노동신문은 인민군 총참모부가 중대보도를 통해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보도(4.4)한 데 이어 조선중앙방송 역시 이를 5차례나 재방송함으로써 북한 주민들 사이에 “전쟁전야 같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의 전쟁 분위기 조성
#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4월 8일 평양 개최 ‘로켓발사 성공 환영 군중대회’에 참석,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최악의 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만약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감히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대응타격을 가할 것”임을 직접 경고(북한은 지난 3월 30일 남한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할 경우 “조선반도에 전쟁의 불 구름을 몰아오는 도화선이자 선전포고”라며 “즉시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한바 있으나, 우리 정부는 조만간 PSI 참여를 발표할 예정)
# 4월 9일 김정일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전시상태와 동원령을 선포할 헌법적 권한을 가지는 국방위원장에 재취임 함으로써, 자신의 남침결심이 전체 북한주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무모한’ 남침 결행에 따른 군부의 반발 가능성 등 사전 봉쇄)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필자는, 더 늦기 전에 국방부로 하여금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우리 국민들이 뜻을 한데 모아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구체 행동계획에 대해서는 저의 블로그에 들어오셔서 토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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