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가 연초부터 브랜드 교체문제로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다. ‘시보레’로 바꾸느냐, 아니면 GM대우로 그냥 남느냐 혹은 두 브랜드를 같이 사용하느냐를 놓고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GM대우의 공식 입장은 오는 3월까지 마이크 아카몬 사장이 결단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내부 보고서는 작성 중이며, 보고서가 전달되면 마이크 아카몬 사장이 결정을 내리는 일만 남았다. 제이 쿠니 부사장은 “마이크 아카몬 사장은 질질 끄는 타입이 아니어서 3월 이전에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GM대우의 판매부진으로 촉발된 이 문제를 과연 브랜드 교체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GM대우는 정말 형편없는 브랜드였던가?

시간을 24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86년 출시된 ‘대우 르망’은 당시 국내 소형차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다. 수입차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환상적인 디자인, 고속주행의 안정감은 기존 국산차와 격이 달랐다. 이를 바탕으로 대우자동차는 한때 월간 판매에서 현대차를 꺾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르망의 상품성이 워낙 탄탄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자만한 대우차 임직원들은 르망을 우려먹기 시작한다. 현대차는 르망에 위협받던 엑셀(X1)을 X2 엑셀(89년), 엑센트(94년), 베르나(99년), 뉴 베르나(2002년) 등으로 계속 업그레이드해 경쟁력을 높였다. 반면 대우는 르망 이후 에스페로(90년)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이후 르망을 살짝 바꾼 ‘씨에로’를 내놓고 급기야 해치백 ‘넥시아’라는 초유의 실패작을 내놓는다.

대우자동차는 시장 점유율 만회를 위해 5개 차종 동시개발이라는 유례없는 신차 개발에 나서면서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마티즈, 레조 등을 차례로 내놓는다. 문제는 급하게 신차개발을 진행하다보니, 라노스와 레간자는 기존 플랫폼을 변형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라노스의 플랫폼은 사실상 르망에서 가져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우차의 르망 우려먹기는 2002년 라세티를 내놓으면서 비로소 막을 내렸다. 한 차종을 가지고 무려 16년 동안 ‘푹’ 우려먹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우차의 점유율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씨에로에서 떨어진 점유율을 라노스가 회복하는가 싶더니 이미 대세는 준중형차로 넘어가고 있었고, 대우 누비라는 아반떼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 과정에서 엑셀을 타던 이들은 아반떼로, 또 아반떼를 몰던 이들은 쏘나타로 차례로 갈아탔다. 현대차는 충성고객이 갈아탈만한 차를 미리 예측해 제때 내놨던 것이다. 쏘나타가 질릴만하니 그랜저 TG를 내놔서 30대 직장인도 그랜저를 타는 시대를 만들었다. 

현대차와 기아차 브랜드를 얘기해보자. 이 회사들의 브랜드 이름이 크게 문제된 적이 있던가? 기아차가 미국 진출 초기에 ‘Kia\'라는 단어가 주는 비호감 때문에 잠시 문제가 되긴 했어도 지금은 그런 논란을 별로 들을 수 없다. 그건 바로 품질로 이미지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에서 싸구려 차의 대명사였던 현대차가 지금의 위치에 올라선 것은 여러 차례의 좌절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라는 브랜드만이 문제의 핵심이었다면 현대는 만년 ‘싸구려 브랜드’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GM대우는 만년 2등도 서러웠는데, 이제는 내수 4위까지 추락했다. 제품 구성뿐 아니라 서비스나 판매에서도 뭔가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직원들이 뼛속 깊이 ‘대우의 실패’를 떨쳐내지 않는 이상 GM대우는 4위 탈피가 힘들어 보인다.

다음은 어느 블로거가 GM대우 기업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GM대우 관계자들은 이미 봤겠지만, 다시 한 번 느끼는 바가 있으면 하는 의미에서 옮긴다.

“토스카에 GM대우 대신 시보레 붙이면 판매가 늘어날까요? 소비자들이 시보레 달렸다고 쏘나타 대신 토스카 살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왜 그럴까요? GM대우는 국내에서 현대차가 가진 장점을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품 가치 높일 생각 안 하고 브랜드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발상에 기가 막힙니다. GM대우는 한국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