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와 말리부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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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차와 말리부에 대한 단상

프로이트

2010.09.02 10:37:36

조회 704 추천 0 댓글 8

그냥 주절주절 단상을 쓰는 글이니 이데올로기 적으로 해석하진 말아주길..

개인적인 일로 미국에 자주 다니는 편이라 렌트도 하고 친척 차도 빌려 타고 이래저래 미국 차를 많이 타게 되는데..

내가 좀 굼뜨거나 무딘건지는 몰라도, 뭐 하나 사러 마트를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15분은 가야하는 그 광활한 땅의 특성 때문인지,

그놈의 대륙에 가면 지극히 미국스러운 - 기름 제법 먹고 등빨 좋은 - 차들이 멍청하다는 느낌까지 들진 않았다.

물론, 합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도시 생활자들은 당연히 일본 차 많이 선호하는게 사실이지만,

도시를 조금 벗어나서, 하다못해 베이커스필드 같은데만 가도 지극히 미국스러운 차들 투성이다.

사업소에서 사용하는 차가 셰비 실버라도 인데, 장거리 뛸때는 사실 무진장 든든한게 사실이다. 기름은 더럽게 많이 먹지만..

(LA와 세크라멘토를 연결하는 5번 고속도로의 언덕길을 오를 때면 기름바늘 움직이는게 실제로 눈으로 확인된다!)

물론 미국애들도 미국차가 트렌드를 못 쫓아간다는걸 너무나 잘 안다.

백인 애들이랑 얘길 나눠보면, 토마호크 미사일로 바다 바깥에서 내륙 어딘가의 동네 축구장 골대에 강슛을 날리는 미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스스로 만드는 회사 조차 없을 만큼(이게 진짜 아이러니다) 전자부품산업의 체계에 어떤 공백 같은게 있기에, 차량이 전자지향으로 가면 갈 수록 미국이 후달릴수 밖에 없다고 말하더라. 하다못해 엔진 전자제어 관련 업데이트나 맵핑 같은 것도 미국차가 일본차들에 비해 훨씬 오류도 잦고 트렌드도 늦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게 그런 이유라고 그들은 생각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기름 좀 더 먹고 등빨 더럽게 좋은 차들을 승용이든 밴이든 계속 만들어 낸다.

그게, 미국에서 프리웨이를 달려보면 왜 그런지 안다. 내 말은 그러니 미국차가 좋다는게 아니라, 왜 계속 그렇게 만들어대는지 이해나 공감이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동서를 연결하는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내륙을 달리다 보면 생각보다 돌풍을 자주 만난다. 물론 돌풍이야 우리나라도 만날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게 차의 앞뒤로 만나는게 아니라 횡으로 가로지는 돌풍이 많다는 거다. 캠리를 타면 확실히 차가 밀린다. 소나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88년도에 나온 구닥다리 올즈모빌은 그런 느낌을 별로 못느낀다. 무슨 차가 더럽게 투박하게 생겨 벽돌 같은 느낌이 드는데, 대신 차 안의 의자가 무슨 쇼파 같이 생겨서 딱히 불편할 것도 없다. 즉, 지극히 미국적으로 설계된, 무겁고 좌우폭이 넓은 대륙형의 차량이라는 뜻이다.

이런 차들이, 오밀조밀 아기자기 복작대는 한국에 어울릴리 만무하다. 기름만 많이 먹고, 그저 등빨 크기 만큼의 철지난 위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덕과 커브길이 굽이치니 안그래도 성질급한 한국사람들에게 가속페달 응답성 만큼 중요한게 없고, 기름 안나는 나라다 보니 연비는 좋아야 한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러면 말리부는 어떡하지?

해안가의 한가로운 고급 저택단지 말리부이니,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고급스러우려나?

아니, 전혀. 내가 타본 말리부는 그저 GM스러운, 그 올즈모빌 스러운 그런 차였다. 사실 미국처럼 도로가 직선 위주의 구성이고 특별히 언덕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곳에선(샌프란시스코나 덴버 같은데 빼고) 승차감이라는게 생각만큼 그렇게 뭐 치열한 경쟁부문은 아니다. 넓고, 튼튼해 보이는 프레임에 밋밋하고 다소 멍청해 보이는 뒤태, 여유롭게 달리기 좋고 뭐 특별히 어떤 컨셉이 느껴지지 않는 그냥 그런 실내 인테리어, 그냥 그런 차...... 나쁠 것도 없지만 특별히 더 좋을 것도 없는... 바로 그래서 안팔리는...

나도 토스카 후속으로 인시그니아로 나왔으면... 하고 마지막 까지 기도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아니, 엔진 마력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디자인 만이라도 인시그니아로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글로벌 디비전이고 뭐고 다 떠나서, 모기업이 GM인 이상, 우리에게 미국적 냄새가 배제된 그 완전히 다른 GM차를 예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느 브렌치에서 만들었든, GM의 손길만 닿으면 다 그냥 미국차가 되니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라프 시리즈의 \'독특한\' 특성 - 단단하고 묵직한 차체강성, 안좋은 연비, 느린 응답성 - 은 그냥 그게 미국차의 특성이라고 바라보면 특별히 더 속터질 것도, 더 열광할 것도 없다. 그냥 그게 미국스러운 DNA일 뿐이다.

첨언: GM SUV 중에 트래버스Traverse가 괜찮게 나왔다는 느낌은 들었다. 미국애들 많이 타고 다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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