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여섯 번째, 이번엔 부산경남입니다.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여섯 번째, 이번엔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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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 문화마을 전경. 20년 동안 인구가 1/3로 줄어들 정도로 낙후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외국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 ⓒ 선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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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마을이 있다. 산 아래에서 가파른 경사의 도로를 따라 한참이나 올라가야 한다. 빨간 불에 멈춰 선 차량은 파란 불이 되자 뒤로 밀린 후 힘겹게 움직였다. 마을 들머리에 닿자, 산자락을 감싸 안은 마을이 보였다.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색을 입은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런 첫인상은 마을 내부로 들어서자 곧 뒤집혔다.
가구 하나 옮기기 어려워 보이는 좁은 골목을 따라 집들이 이어졌다. 골목도 미로처럼 갑자기 끊기기 일쑤였다. 16.5㎡(5평) 정도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한 뼘의 마당도 허용되지 않았다. 가파른 골목은 젊은 사람도 금세 지치게 만들었다. 곳곳에 공동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시간이 수십 년 전에 멈춰버린 듯했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돼지국밥집에 들렀다. 이곳 주인인 박수경(53)씨는 이 마을에 시집을 와 30여 년을 살았다. 박씨는 "예전에 이 마을에 산다고 하니까, 정말 못사는 동네라고 놀림을 받은 적 있다"며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그 다음부터는 이곳에 산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마을이 이렇게 바뀔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벽에는 유명 배우의 사인과 중국어로 된 방명록이 적혀있었다. 박씨는 "주말이면 200명이 넘는 관광객이 마을을 찾는다, 노인들만 살던 낡은 동네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 문화마을 이야기다. 지난 17~18일 이곳을 찾았다.
[과거] 건설사도 재개발 포기한 마을... 인구 1/4이 소외계층 ![IE001372711_STD.jpg](http://nimg.nate.com/orgImg/oh/2011/11/26/IE001372711_STD.jpg) |
▲ 감천 문화마을에는 사람 1명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져있다. | ⓒ 선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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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 문화마을은 부산의 대표적인 산복도로 마을이다.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직후 부산 원도심이 피난민으로 가득차자, 1955년부터 이곳 천마산 능선까지 주거지가 확대됐다. 이곳 토박이인 김문생(66)씨는 "주민들이 곡괭이 하나만 들고 널빤지와 기름먹인 종이로 집을 만들고 마을을 세웠다"고 전했다.
1960~70년대 벽돌을 구할 여건이 되지 않자 마을 주민들은 속이 빈 시멘트 블록을 쌓아 집을 개조했다. 단열이 안 돼 겨울엔 춥다. 집이 좁아 화장실을 갖추기도 어려워,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현재 마을의 모습은 이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대 들어 마을은 더욱 쇠락해갔다. 인근 공단의 신발공장 등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났다. 마을엔 노인들과 돈이 없어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았다. 1990년대 후반 주민들이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사업성이 부족해 건설사들도 손들고 나왔다.
손창민 감천2동장은 당시 마을 분위기에 대해 "정부나 부산시, 건설사조차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낡고 활력이 사라진 마을이었다"며 "수십 년 동안 공공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앞으로도 개발이 이뤄지기가 어려워 보였다"고 밝혔다.
1992년 2만9000명에 달했던 감천2동 인구는 현재 1만207명으로 1/3로 줄었다. 주택 4466호 중 300호가 빈집이다. 인구의 1/4인 2342명은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으로 분류된다. 인근에서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라는 예술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금속공예가 진영섭(53)씨는 "이 마을의 쇠락을 보여주는 숫자들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진씨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이 마을을 알리고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며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에 당선돼 사업비 1억 원을 따낼 수 있었다.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라는 이름으로 10점의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이듬해에도 예술작품 12점을 설치하는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당시 주민들은 예술가들의 작업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김문생씨는 "관광객들을 오게 한다는데, 우리가 동물원의 동물도 아니고 구경거리가 된다는 데 거부감을 가진 주민이 많았다"며 "또 일회성 사업으로 마을이 바뀌겠느냐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손창민 동장이 "지속적인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http://news.nate.com/View/20111126n03345&mid=n0411&cid=309934저런곳까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오다니....
좋아해야 하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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