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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1-

S.야이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0.12.28 00:37:02
조회 586 추천 0 댓글 15

어느 좋은 봄 날,누군가의 뒤를 따라 동네 뒷산을 시작으로 산을 배운 사람들의 로망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등산을 배운 사람들의 로망은?
산악회에서 빠따를 맞으며 산을 배워 온 사람들의 로망은?
남자,혹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로망은?


등산이 운동?
목적이 있는 행동?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고상한 취미?
자기수양의 한 방법?
멋진 브랜드의 때깔 좋은 등산복?
백두대간 종주?
정복?


리베로라는 브랜드의 쿨맥스 티를 2만원 주고 처음 샀을때 그 벅참.
어느 뜨거운 여름날, 한참 북적거렸던 미시령 휴게소에 앉아서,보름만에 맛 본 콜라에 목이 찢어질 듯 쓰리던 그 느낌.
어느 터미널에서 다 찢어지고 바랜 옷에 덥수룩한 수염..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지도를 보던 나를 외계인처럼 바라보던 한 여고생.
가랑비에도 홀랑 젖어버리는 오래된 배낭.
땀내나는 옷과 텐트.
동냥으로 얻은 쌀과 김치,그리고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조그만 시골가게 할머니가 손에 꼬옥 쥐어 주시던 200짜리 롯데껌.
서로의 등에 포개어 추운 밤을 지냈던 강원도의 어느 겨울밤.


산우들과 헤어진 후 몇 년 동안 혼자 산에 다녔습니다.
혼자 지도를 보고 물을 뜨고,혼자 텐트를 치고,혼자 고기를 굽고,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외로움.
결국 등산도 이 외로움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
적막함.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외롭다고 말하면 울 것만 같아 전화기는 항상 꺼두었습니다.
한겨울, 인적없고 눈만 그득한 능선에서 혼자 야영하며 마시던 별님한잔 달님한잔 나한잔 소주.
외로움이 커져 갈수록 배낭은 무거워져만 갔고,몸도 마음도 점점 메말라 갔습니다.
배낭과 몸무게의 차이가 딱 10kg이 되던 어느 날.
어느 시골 터미널에 앉아 막차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면서 캔맥주를 마시다가..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스틱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는 내 알량한 자존심에 무릎은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고.
한 차례의 산행이 끝나면 어깨와 허리의 피멍은 며칠을 잠 못들게 했습니다.
누가 꼭 안아주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다 가입한 인터넷 동호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등산을 시작하는지,어떻게 산을 느끼는지,어떻게 걷는지,어떤 옷을 입고 어떤 것을 먹는지..
너무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끊어왔던 나는 이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립고 궁금했습니다.


느릿느릿 걷지만 정말정말 오래 잘 걷고 잘 웃던 병주.
바삭하게 말랐지만 강철같은 정신력의 소유자 재석.
체력은 약하지만 근성하나는 끝내줬던 진현.


옛 산우같던 사람들은 없었지만 다들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옷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디를 얼마나 빨리 다녀왔다고 자랑했습니다.
술이 좀 얼큰해지니 언성을 높이며 군대이야기를 했습니다.

비오늘 날의 풀냄새며,안개냄새.
젖은 낙엽의 냄새와 들꽃냄새.
듣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사람 말소리처럼 우는 새.
오대산의 어느 산정에서 자야만 볼 수 있는 잠을 못 잘 정도로 밝은 별들..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재미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직장에 찌들고 사회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에겐 너무 사치스럽고 재미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습니다.

난 너무 고리타분했고.
그들은 스마트 했습니다.

산행할 때 면 옷 입기를 좋아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고.
근교산행에도 큰 배낭을 메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나봅니다.
언제부턴가 전 그 곳도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고. 우연한 연락으로 그 동호회에 있던 우리 아가씨와 단 둘이 산행을 갔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다 삭아서 가랑비에도 젖는 내 배낭이 이쁘다고 했습니다.
물에 몇 번이나 젖었다 말랐는지 기억도 안나는 내 등산화가 멋있다고 했습니다.
땀에 삭아 곤색이 보라색으로 변해버린 내 촌스러운 면 모자가 빈티지스럽다고 했습니다.
아....
난 결국..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걸까요?

-중략-


.....

늦은 밤 잠을 자려니 잠도 안 오고..술을 끊어서 술도 안 땡기고..
그냥 요새 질문글도 많이 올라오고 해서 글이나 하나 써볼까 하다가 그냥 끄적거리던 글이..너무 멀리왔음ㅋㅋㅋㅋㅋㅋㅋ
나 술 안 먹었음ㅋㅋㅋ

이번주나 다음주에 아가시랑 간만에 야영가려는데 배도 나오고 젖일 체력이 된 이놈의 몸땡이땜시 걱정이 좀 되기도 하고..
눈도 살랑살랑오니 옛날 생각도 나고..

자랑글이 되버렸지만 기왕 쓴 거 지우기는 아까워서 올림ㅋ

매일 하는 이야기지만 정말 뉴비훃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가의 옷을 사기전에 내가 왜 이 옷을 사야하는지 10분만 곰곰히 생각해보길 바랍니다.이쁘게 보이려고?고산이라도 등정하려고?돈이 있으면 사입고, 없으면 안사입으면 장땡이라는 불변의 진리같은 명언이 있는데 왜 까냐고?

정말 필요가 없으니까.그런 혹한에 뉴비가 혼자 산에 갈리도 없으니까.이제 산 배운 사람이 혼자 텐트랑 침낭메고 올라가 야영 할 일도 없으니까.그리고 비싼 옷 없어도 안죽으니까.바지 10만원 등산화 10만원 안에 입는 티 5만원 이렇게 딱 25만원만 투자해도 겨울에 안 얼어죽고 땀 훈훈하게 내면서 산행가능함.

근데 추천은 안해줌.왜냐고?어차피 비싸고 이쁜 브랜드옷 사입을 거 아니까.실컷 물어보고 디자인 보고 브랜드 보고 사 입을 거 아니까.입어보고 후기 올리는 것도 아닌 거 아니까.
그냥 브랜드 매장가서 직원의 추천받아 주머니 사정 되는대로 사입길 권합니다.

지갑사정은 별론데 브랜드 옷이나 좋은 옷은 입고 싶다?그럼 산에 평생 못 갑니다.

P.S - 금일 오전 09:00시에 자삭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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