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다키포스트로 한 장의 사진이 전달되었다. 제보자의 설명에 따르면, 직진으로 달려오던 NF 쏘나타가, 우회전으로 합류하려는 버스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했다고 한다. 사진에는 딱히 특별한 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가의 자동차 사고도 아니고,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스쿨존 사고도 아니다. 그저 불량한 시야 확보로 인해 일어난 전형적인 교통사고일 뿐이다.
반면, 사진을 ‘교통사고’가 아닌 ‘충돌 안전성’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차량의 일부분만 충돌시키는 ‘스몰 오버랩 테스트’의 실효성을 증명하는 교과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출시되는 차량들이 안전성을 강조할 때 꼭 언급하는 바로 그 충돌 테스트다. 그렇다면, ‘스몰 오버랩 테스트’란 정확히 무엇이고, 왜 자동차 회사들은 이 테스트 성적을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파헤쳐 보도록 하자.
스몰 오버랩 테스트란?
자동차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충돌 테스트는 유럽의 유로 NCAP, 중국의 C-NCAP, 호주의 ANCAP 등 전 세계 각국의 기관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시행하는 기관은 미국이 IIHS(고속도로 안전보험 협회)가 유일하다.
스몰 오버랩 테스트는 자동차의 앞부분을 모두 충돌시키는 일반적인 정면충돌 테스트와 달리, 자동차 앞부분의 25%만 시속 64km로 충돌시킨다. 테스트에 대한 결과는 차량과 더미(인체모형)의 손상도를 기준으로 4단계(G(좋음), A(양호), M(미흡), P(열등))로 나누어진다.
이처럼 독특한 충돌 테스트를 진행하는 이유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동’ 때문이다. 사고가 임박했을 때, 운전자는 사고를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티어링 휠(핸들)을 돌리게 된다. 이 경우 사진처럼 차량의 국소부위(모서리)로 충격이 가게 되는데, 충격을 흡수할 면적이 적어진 만큼 자동차와 탑승객은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또한 국소부위로 충격이 몰리게 되면, 그 충격은 차량을 지탱하는 기둥인 ‘A 필러’까지 전해진다. A 필러가 무너지게 되면 대시보드와 타이어, 그리고 엔진이 앞 좌석을 덮치기 때문에 자칫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IIHS는 연구를 통해, 교통사고 사망자의 25%가 위와 같은 유형의 충돌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기존의 정면충돌 테스트를 보완할 목적으로 2012년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신설했다. 이 새로운 방식의 테스트로 인해, 자동차 제조사들은 한동안 인고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도 피해 갈 수 없다.
스몰 오버랩 테스트가 신설된 이후, “프리미엄 브랜드는 안전하다.”라는 소비자들의 믿음을 뒤집어놓은 사건이 생겼다. 2014년, 프리미엄 세단으로 명성이 자자한 ‘BMW 5 시리즈’가 M(미흡)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전과 성능을 중시하던 BMW가 이런 결과를 받게 된 이유는 ‘연비 효율을 위한 경량화’에 있다. 당시 BMW 5시리즈의 대표 모델이었던 ‘520d’는 16.9km/L에 달하는 뛰어난 연비를 만들기 위해 차체의 중량을 1,630kg까지 감량했다. 동급인 ‘제네시스 G80’의 무게가 2,000kg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하지만 5시리즈는 경량화에 치중한 나머지,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 대응할 만한 안전성을 놓치고 말았다. 기존 방식의 충돌 테스트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국소부위의 충격을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충돌 시 왼쪽 다리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과거에 비해 안전성이 높아졌다고 홍보하던 대중차 브랜드 또한 스몰 오버랩의 마수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미국에서만 100만 대가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던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의 MPV 모델 ‘프리우스 V’는 7개의 세부 항목 가운데 5개가 P(열등) 등급이 나온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작고 가벼운 차체로 인해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소형 모델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2014년 10대의 소형 모델을 대상으로 한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는 G(우수) 등급을 받은 차량이 단 한 대도 없었으며, 다섯 대의 소형 모델이 P(열등) 등급을 받았다.
반면, 안전으로 유명한 자동차 메이커 ‘볼보’는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통해 다시 한번 안전성을 증명했다. 무려 2002년에 출시한 1세대 XC90가 G(우수)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볼보는 IIHS가 가장 안전한 차에게 수여하는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올해는 어떨까?
스몰 오버랩 테스트가 신설되고 약 8년이 흐른 지금, 대부분의 신차들은 스몰 오버랩을 완벽하게 대응한다. 2014년 굴욕을 겪었던 BMW 5시리즈는 7개의 세부항목을 모두 충족하며 G(우수) 등급을 받았으며, P(열등) 등급이 대다수였던 대중 브랜드의 모델들도 G~A(양호) 등급을 충족하고 있다.
기술도 더욱 다양해졌다. 단순히 국소부위 충돌을 대응하기 위한 설계가 아니라, 충돌 후 2차 사고를 막기 위한 기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볼보가 보여주었던 ‘슬라이드 어웨이’ 거동을 3세대 플랫폼을 적용한 DN8 쏘나타로 구현해낸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슬라이드 어웨이란, 충돌 후 차량이 크게 회전하지 않고 옆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거동을 연출하면 탑승객은 에어백과 안전벨트의 보호를 더욱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으며, 차선이탈로 인한 2차 사고의 위험도 적어진다.
반면, 2020년 지금도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처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모델도 존재한다. 바로 JEEP의 랭글러다.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과 카리스마 넘치는 마초 디자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모델이지만,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랭글러가 보여준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랭글러는 국소부위 충돌 직후 차량이 그대로 옆으로 넘어갔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차량 전복으로 인해 운전자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JEEP는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재시험을 요구했으나, ‘충돌 후 전복’이라는 결과는 똑같았다. 결국 JEEP 랭글러는 M(미흡) 등급을 받았다.
아예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받지 않는 모델도 존재한다. 기아자동차의 경형 모델 ‘모닝’은 한국의 KNCAP과 유럽의 유로 NCAP에서 무난한 점수를 받았으나, IIHS의 테스트는 아예 받지 않았다. 이에 소비자들은 “모닝이 IIHS의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의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기아자동차는 “모닝은 스몰 오버랩을 충분히 대응하며, 단지 미국 시장에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IIHS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았다”라는 찝찝한 해명을 남겼다.
에디터 한마디
자동차를 고를 땐 성능과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일부 브랜드는 자사의 모델이 충돌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며 홍보하지만, 정작 소비자가 원하는 IIHS의 스몰 오버랩 테스트는 진행하지 않아, 안전성에 의구심을 품게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우리나라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중국 브랜드의 경우, NCAP 충돌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는 중국 자체 충돌 테스트인 ‘C-NCAP’이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심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만약 새 차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면, 단순히 ‘충돌 테스트 성적 우수’라는 문구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이번 콘텐츠에서 소개한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통과했는지 꼭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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