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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읍성 vs 일본 산성 : 선진적일까, 후진적일까?

lemi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7.18 07:20:01
조회 25670 추천 213 댓글 659

- 관련게시물 : 조선의 읍성은 왜 평지에 지어졌을까?



지난 연재글인 조선의 읍성은 왜 평지에 지어졌을까?(링크) 에서는, 조선 전기에 왜 평지에 읍성이 대거 축성되었는지, 조선 이전의 한반도에서 일반적이었던 산성에서 왜 읍성으로 방어의 중심이 옮겨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인구밀도의 증가와 생태환경의 변화를 통해 설명해 보았습니다.


조선은 건국 이후 임진왜란 이전까지 읍성을 대거 축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시기에 읍성은 대부분 제대로된 요새로 작동하는데 실패하게 됩니다. 이러한 실전사례와 현재 남아있거나, 복원된 읍성의 낮은 성벽과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모습으로 인해 우리 머리속에서 조선의 읍성은 "허접한 성벽"이라는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조선의 읍성은 방어적 효과를 기대하지 못할 만큼 개판이었을까요? 만약 개판이었다면 대체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선 전기 읍성은 의외로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조선 전기 읍성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은, 왜구를 막거나 치안 목적으로 대충 지어진 성곽이라는 점입입니다. 지난 연재글인 조선의 읍성은 왜 평지에 지어졌을까?(링크) 에서도 읍성이 행정적 목적이 아닌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전체 군현에서의 읍성 건축이 33%로 제한적이고, 읍성의 위치도 연해방어와 주요 교통로 방어에 있음을 통해 설명드린바 있습니다.


이를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조선 전기 읍성의 기본 구조입니다.


조선 읍성을 일본 전국시대 후기~에도시대의 석축성곽과 비교하면서 평가절하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순수히 성곽의 방어시설의 구조나, 개념에 있어서 일본의 전국시대~에도시대의 석축성곽은 조선 전기 읍성하고 비교해서 더 "선진적"인 것은 아닙니다.


간단한 사례로 비교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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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성 오테몬(大坂城大手門)의 코구치(虎口) https://shirobito.jp/article/680 참조-----


일본 성곽의 실전적 성격을 찬탄할 때 자주 언급되는 코구치(虎口)는 성문을 돌파한 적을 내부의 좁은 길에서 다시 공격하여 저지할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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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사야마성(篠山城)의 남쪽 우다마시(馬出)의 터와 북쪽에 있었던 오테우다마시(大手馬出) 복원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우다마시(馬出)는 성문 앞쪽에 설치되어, 성문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성 밖으로 출격해 공성측을 공격하는데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 성곽의 핵심 방어시설인 호리(堀), 즉 해자를 메우거나 공략하기 어렵도록 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오사카 겨울의 전투에서 새롭게 만들어져 활약한 사나다마루(真田丸)가 대형의 우다마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이런 방어구조가 제대로 발전하여 꽃피운 시기는 전국시대 후기에 접어든 이후로 봐야합니다. 석축인 이시가키(石垣)의 등장 자체가 1556년이며, 본격적인 건축물로서 망루와 성문을 설치하는게 일반화된 것도 전국시대 이후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구조를 보며 우리 조상은 뭐했나 부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이 실전을 통해 독자적으로 중세 말기에 가서야 코구치나 우다마시를 만들었다면, 우리 조상들은 그보다 적어도 1000년 전에 고대 삼국시대부터 석조로 이런 시설들을 만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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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국내성의 어긋문터와 1910년 국내성 평면도에 기반한 역사스페셜 복원도----


삼국시대에 이미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어긋문과 옹성(甕城)이 등장하며, 고구려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 국내성에서 발굴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라나 백제에서는 옹성을 찾기 어렵고 현문(懸門)식이 사용되는데, 지면에서 일정 높이로 성벽을 쌓아올려 그 위에 출입구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이는 고구려가 중국과 직접 교류하고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중국의 옹성(甕城)을 더 빠르게 도입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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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시기 편찬된 무경총요에 묘사된 성문 앞의 옹성-----


이러한 성곽에서의 발전은 고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1123년 고려에 방문한 북송의 서긍(徐兢)이 남긴 고려도경에는 고려에서도 중국에서 사용되는 이중문과 옹성이 개경 선의문에 설치되어 있음을 기록에 남기고 있습니다.


선의문은 곧 왕성의 정서문이다. 서쪽은 금방(金方)이 되며 오상(五常)에선 의(義)에 속하기 때문에 선의문이라 명명한 것이다. 그 정문은 겹문[二重]이고 위에는 누각[樓觀]이 있는데, 이를 합쳐 옹성(瓮城)으로 삼았다

선화봉사고려도경, 권4


일본이 폐쇄적으로 독자적인 축성기술을 발전시켜온 반면, 한국의 경우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1000~1500년 전에 이미 성문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도입한 상태였습니다. 전쟁 빈도에 있어서 일본이 독립적인 지방세력과 반복되는 내전으로 훨씬 잦았을지 몰라도, 유교문화권 내에서 중국과의 교류를 계속해온 한반도의 기술습득이 더 빠를수 밖에 없었던거죠. 신라나 백제의 축성기술이 고구려보다 중국의 영향을 더 늦게 받은 것처럼요.


조선 전기 읍성에서도 이러한 중국의 영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성곽은 발굴자료를 통해서만 중국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문헌자료를 통해 성곽의 개념을 정리하고 용어가 통일되어갔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51년(문종 1년)에 삼남 지방의 읍성이 규식(規式)에 맞지 않아 개축할 것과 그대로 둘 곳을 분류하는 기록을 통해, 조선 전기에 축성된 읍성에 대한 개략적인 자료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록에 남은 이 사료에 나오는 읍성들의 수는 38개에 달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옹성(甕城), 적대(敵臺), 해자(海子)입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사료에는 옹성, 적대, 해자와 같은 명칭은 거의 나오지 않았었습니다만 조선 전기에 와서 이런 명칭이 나타나죠. 옹성과 적대의 명칭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3가지 시설은 지형의 이점이 산성에 비해 취약해진 읍성에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어시설의 적극적 설치는 조선 전기 읍성이 분명히 군사적 목적을 가진 방어시설이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삼남의 읍성 38개소 중 84%인 32개소가 적대(敵臺) 즉 치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61%인 23개소에는 옹성(甕城)이 설치되어 있으며, 32%인 12개소에 해자(海子)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 읍성은 적대와 옹성은 해자에 비해 보다 기본적으로 설치되어야할 방어구조물로 인식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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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읍성에는 일본의 코구치(虎口) 같은 시설은 없지만, 일반적인 성벽보다 대형 석재로 쌓은 옹성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성기구로 성문을 공격하는게 까다롭습니다.


고려 말기~조선 전기까지 옹성의 효과를 제대로 볼 만큼 유의미한 공성기구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비교적 낮습니다만, 고대로부터 규모면에서 압도적인 공성전을 경험해온 전통과 남송 시기까지 치열한 공성전을 발전시켜온 중국의 영향을 받아 온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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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적대(敵臺)로 지칭되는 치성(雉城)과 각루(角樓)는 조선이 고대-중세 주류 문명들이 공통적으로 발전시켜온 가장 기본적인 성곽 방어시설을 고대로부터 보존해왔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치성(雉城)은 평행한 성벽에 일정 간격으로 설치된 돌출구조물이며, 각루(角樓)는 성벽을 4각형으로 구성할 때 각 모서리에 설치되는 돌출구조물을 말합니다. 조선 전기 읍성에서 거의 대부분 설치되는 치성은 지형의 방어효과가 제한적인 평지에 설치되는 읍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었습니다.


고대로부터 중세 유럽 성곽이나 중동 및 인도의 성곽들에서 탑(Tower)이나 할리파(+++)등으로 불리는 치성은 성벽에 접근한 공격자를 공격하는 가장 중요하고, 전통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문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이 구조물의 사례는 이전 연재글인 인도 4천년 메쌓기(링크)메쌓기 성벽의 한계(링크) 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로마, 그리스,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과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치성은 기원전부터 근대 직전까지 가장 일반적이고 핵심적인 성벽 방어시설이었습니다. 조선 전기 읍성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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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의 방어 효과 : 성벽 하단에 붙은 적에 대한 공격-----


치성의 방어기능을 이해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일단 성벽은 높이를 통해 공격자가 수비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지만, 성벽 아래 붙은 공격자는 수비자의 공격범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죠.


성벽 바로 아래에 접근한 적을 성벽에서 돌출한 치성에서 측면으로 사격을 가해 제압할 수 있습니다. 치성의 가치는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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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의 방어 효과 : 성벽에서의 사격범위와 치성에서의 사격 범위-----


성벽 위에서 여장(女墻)의 뒤쪽에서 수비자가 원거리 무기로 공격을 가할 때, 실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각도는 제한됩니다. 반면에, 돌출된 치성에 배치된 수비자는 보다 광범위한 사격 각도로 공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보다 적은 병력이더라도 치성에 집중 배치함으로서 성벽을 보다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거죠.


일반적으로 조선 전기 읍성의 문헌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적대와 적대간 간격은 300~450척 정도로, 미터 기준으로는 포백척으로 140~210m, 영조척으로는 86~130m정도 됩니다. 이는 적대가 충실히 설치된 곳은 한쪽 적대에서 한쪽 적대 밑의 공격자를 화살로 공격할 수 있고, 띄엄띄엄 설치된 경우에도 적대와 적대 사이의 성벽 밑에 접근한 공격자를 화살로 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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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곽의 요코야(横矢), 일본 성곽에서는 본격적인 치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에서 유사한 역할을 하는 요코야(横矢)는 본격적인 치성구조물이 아니며, 성벽 하부에 접근한 적에 대한 견제 능력은 중국이나 한국 성곽에 비해 제한적입니다. 일단 성벽 가까이 적병이 접근하게 되면 방어효율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죠.


이런 관점에서 왜 일본 성곽에서 해자인 호리(堀)가 방어의 핵심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일본의 코구치, 우다마시 역시 이런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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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와하라성(諏訪原城)의 발굴유구를 통한 코구치와 우다마시 상상도 https://shirobito.jp/article/553 참조----


일본은 해자인 호리(堀)는 토루의 경우 아예 성벽 자체를 대체하기도 하고 석축인 경우에도 성벽에 바싹 붙어있는게 일반적입니다. 성문은 해자를 건너는 협소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옹성을 설치하기에 부적합하죠.

옹성과 유사한 겹문구조를 성문 안쪽에 설치한 코구치(虎口), 그리고 성문 위치를 해자 건너편에서 보호하는 우다마시(馬出)의 구조는 해자의 방어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코구치가 옹성과 다른 구조인 것은 중국이나 한국 성곽과 달리 해자와 성벽이 바로 붙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옹성 대신 해자 건너에 설치되는 우다마시는 작게는 성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넓게는 해자를 메우기 위해 접근하는 적을 견제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옹성의 설치를 위해서는 성벽과 해자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유공간을 가지거나, 해자가 없는 경우에 적합하겠죠. 중국의 경우는 해자와 성벽 사이에 공간을 두고 여기에 일종의 낮은 외성벽이라 할 수 있는 양마장(羊馬墻)을 설치합니다.


일본의 성곽은 일단 해자를 극복한 이후에는 일반적인 유럽, 중국, 한국등의 성곽에 비해 성벽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이는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산성 위주로 축성기술이 발전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반면에 충적평야에 네모 반듯하게 성곽을 쌓아야 하는 경우에는 해자가 있더라도 치성이 필수적이었을 것입니다. 유럽과 중국의 성곽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치성(雉城), 또는 탑(Tower)의 설치는 이런 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대, 또는 치성이라 불리는 구조물은 조선 전기 읍성이 본격 방어시설일 뿐만 아니라, 비교 대상을 일본으로 둔다고 볼 때 "후진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걸 이해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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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성의 각루------


북송 시기의 수성록(守城錄)에서는 성을 공격하는 자들은 반드시 먼저 모서리부터 공격하는데, 공격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조선의 읍성에서는 치성과 유사하게 성곽의 모서리 부분을 보호하는 각루(角樓)를 설치합니다. 북송 시기 무경총요에서는 이렇게 모서리 부분에 설치하는 돌출구조물을 적단(敵團)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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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의 모서리 부분이 취약한 이유----


성벽의 모서리가 취약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서리 양쪽 성벽에 있는 수비병은 사격각도의 제한으로 모서리 너머로 접근해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모서리쪽으로 접근하는 적은 보다 사격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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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루가 가지는 효과-----


각루가 있는 경우, 모서리로 접근해오는 적을 보다 잘 방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서리에 양쪽으로 접근해오는 공격자에게도 화살을 퍼부어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성의 모서리 부분을 더 튼튼하게 보강함으로서 성벽이 무너지는 사태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각루는 치성과 유사한 구조물로서, 유럽에서도 모서리에 탑을 세워 유사한 효과를 노리고자 합니다. 모서리 부분은 연결된 성벽 위의 수비병이 모서리를 공격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보강된 돌출구조물을 설치하고 병력을 배치해 방어하도록 하는 것은 일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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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효고현 아코성(赤穂城)의 스미야구라(隅櫓) http://castle.jpn.org/harima/akou/2.html 참조-----


일본에서도 스미야구라(隅櫓)라는 망루를 설치해 모서리 방어를 보강하며, 일부는 위 사진의 아코성과 같이 돌출구조를 취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두드러지게 돌출된 구조인 경우가 드뭅니다. 치성이나 각루와 같은 성벽 및 모서리부의 돌출구조는 유럽이나 중국, 한국에 비해서 일본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개념이 주류 문명권에서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성곽, 정확하게는 전국시대 후기의 성곽의 구조는 유례없이 독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후진적이라고도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이는 일본이 외부와의 교류 없이 독자적인 축성기술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나타난 "갈라파고스"적인 특징 때문일 것입니다.


적어도 방어구조에 있어서 조선 전기 읍성들은 훨씬 이후에 나타난 일본 전국시대 후기 성곽보다 "선진적" 개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진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방어력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전기 읍성들은 진주성 전투와 같은 사례를 포함하더라도 상당한 취약점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조선 조정도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조선 전기 읍성들은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기 어려웠을까요?





난폭한 자를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조선의 읍성



성이란, 난폭한 자를 막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城者, 禦暴保民之所)는 춘추의 주석서인 송나라 호안국의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에 나오는 내용으로, 여기서 어폭보민(禦暴保民)은 조선 전기 읍성의 설치 목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문헌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나라를 지킴에 있어 성곽(城郭)이 없을 수 없고 또한 낮거나 부실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 나라가 남쪽으로는 섬 오랑캐에 이웃하고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에 접하여 배와 등으로 적을 맞으니, 강포(强暴)한 것을 막고 백성을 보전하는 곳을 급급하게 배치하여 음우(陰雨)의 경계를 예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열성(列聖)께서 서로 계승하시어 요해처(要害處)에 혹은 장성(長城)을 쌓고 혹은 읍성(邑城)을 쌓아 방비하였으니, 나라를 지키는 원대한 염려가 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성은 낮고 부실하여 적을 막을 수 없고, 읍성은 좁고 작아서 민중을 수용할 수가 없으니, 되려 고려[前朝] 때에 폐지하여 버린 성곽만도 못합니다.

성종 17년 1월 16일 (1486년)


대몽항쟁기 험한 산악지대에 위치한 입보용 산성들을 비롯해서, 조선시대에 사용된 주요 산성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포곡식 구조입니다. 포곡식(包谷式)이란 산의 능선을 따라서 산성을 쌓음으로서 능선 사이의 계곡을 감싸는 구조입니다. 당연히 내부가 넓을 뿐만 아니라 계곡을 따라 수원지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많은 인원을 내부에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테뫼식 산성의 경우는 산의 정상을 둘러쌓는 방식으로 지어지는데, 내부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고, 규모가 작습니다. 고대 삼국시대에는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이 동시에 사용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포곡식이 한반도의 주류 산성이 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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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포곡식 산성은 어폭보민을 상징하는 구조물입니다. 대규모 남녀노소를 성안에 받아들이기 위해 내부 너비와 수원지가 방어력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읍성 역시 그 목적은 어폭보민이기 때문에 내부의 너비와 수원지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우리 선조들도 이를 방어력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때문에 읍성의 축조에 대해 검토할 때 샘이나 우물의 수, 그 안의 너비는 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죠.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것이 일본 성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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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겐신의 가스가산성 모형과 그 구조도-----


오사카성이나 구마모토성을 보면 그 거대한 규모에 놀라겠지만, 진짜 실전에서, 좀 더 오랜 기간 일본 성곽을 상징하는 성곽들은 평지가 아닌 산에 위치했습니다. 우에스기 겐신의 거성이었던 가스가산성(春日山城)은 전형적인 전국시대 일본 성곽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본 산성은 우리 기준으로는 테뫼식 산성으로 볼 수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극단적으로 방어력을 극대화시킨 구조에 가깝습니다. 산 정상을 둘러 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능선을 따라 산위의 해자라 할 수 있는 가라보리(空堀)로 분리되어 있는 각각의 구루와(曲輪)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위해서 가장 포기해야 하는 것이 바로 내부공간입니다.

일본식 산성은 방어력은 물론 우수하며 일부가 점령당하더라도 후퇴하여 계속 싸울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다수의 백성을 입보시켜서 보호하기에는 확실하게 부적절해 보입니다. 수원지도 매우 제한되기도 하구요.


이는 전국시대 일본 산성이 근방의 백성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재지영주와 무사집단이 유사시에 들어가 농성하려는 목적에서 발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규모가 커진 이후에도 이러한 성격에 따른 구조는 이후의 평지에 설치된 일본 성곽에서도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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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정사각형 모양을 한 언양읍성----


조선 전기 읍성은 충적평야에 건설된 중국 성새도시처럼 딱 4각형으로 건설된 경우는 드물지만, 가능한 내부공간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는 점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조선의 읍성은 "중앙조정"이 지방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것인 동시에, 주민을 동원해서 국가의 방어에 투입하는 "병농일치" 사상이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 경제, 사상적 요인은 읍성의 방어력에 당연하게도 영향을 줍니다.


가용한 노동력과 예산 대비 읍성의 규모는 커지게 되고, 이는 성벽의 높이, 성벽의 둘레 대비 치성의 개수, 해자의 깊이와 너비를 제한하게 합니다. 또한 크기가 커질 수록 유지관리에 들어가는 자원이 증가하면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죠.


게다가 이런 문제를 극대화하는건 조선의 사회, 경제적 발전 수준입니다.




읍성은 도시성벽(City Wall)이 아니다.



중국, 유럽, 중동 등 주류 문명권에서 읍성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성벽으로 둘러싼 지방 도시들일 것입니다. 이런 성채도시들은 성벽 내부에 인구가 밀집한 거주지역이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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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세기에 지어진 중세 도시 아빌라의 성벽 위성사진-----


스페인의 아빌라는 11~12세기에 건축된 성벽이 남아있습니다. 성벽의 평균 높이는 12미터이며, 그 둘레는 2.5km에 달하며, 88개의 치성 역할을 하는 탑이 성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습니다. 성벽 내부의 면적은 대략 37만 제곱미터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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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형태가 잘 보존된 낙안읍성의 평면 위성사진----


현존하는 순천 낙안읍성의 성벽길이는 1.5km 정도입니다. 문종 1년(1451년)에는 낙안읍성에는 적대가 4개소밖에 없고, 성문은 3개에 옹성도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부 너비는 14만 제곱미터 정도입니다. 아빌라보다는 작긴 하지만 절반 정도 크기의 생각보다 규모 있는 내부면적을 보여줍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낙안군의 호수는 306호, 인구는 1439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인구의 대부분은 낙안읍성이 아닌 낙안군의 촌락에 거주하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아빌라의 도시 인구는 1250년경 6,615명에 달했습니다. 아빌라의 절반 정도 크기인 낙안읍성 내에 거주하는 이들은 아마도 지방관과 그 가솔, 그리고 향리나 아전과 그 가족들 정도에 불과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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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년 영국군이 대포를 사용해 성벽을 파괴했던 프랑스의 성채도시 아르플뢰르(harfleur), 성벽에 둘러쌓인 시가지와 인구밀도는 조선 읍성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낙안읍성과 아빌라만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일반적으로 읍성과 비교할 수 있는 동시대 중국, 유럽, 중동등의 성새도시들은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인원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전기 읍성들은 근본적으로 마을이나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 아닙니다. 읍성 내부에 민가가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인구밀도는 매우 낮았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동경(東京)이라고도 불렸고, 한때 신라의 수도이기도 했던 경주(慶州)인 경주부의 본부 인구는 호구가 1,552호, 인구는 5,894명이라 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경주치소 근방에 거주한다기 보다는 경주부에 있는 촌락에 거주한다고 봐야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지방에 시장인 장시(場市)가 출현하는 것은 15세기 후반이었습니다. 읍성 내에 상업시설이 설치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로 경주부, 전주부, 나주목 정도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즉 상업 및 수공업자와 시장이 존재하는 도시나 마을로서의 지방도시의 출현은 조선 전기에는 택도 없는 일이었다고 봐야겠죠.


읍성이 도시가 아니고 인구밀도가 낮은데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넓적한 성벽을 쌓고 그걸 감싸는 해자를 파야 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조선의 지방 읍성에는 과세가 용이한 비농업 인구 자체가 적은데다, 조선은 인두세나 토지세 이외의 과세체계가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조선 전기의 지방재정은 주로 지방 관청에 할당된 토지인 아록전(衙祿田), 공수전(公須田), 관둔전(官屯田)이나 지방의 공물인 향공(鄕貢), 환곡의 이자인 모곡(耗穀), 군역을 면포나 삼베를 바쳐 대신하는 군포(軍布)에 의존합니다. 지방관의 녹봉과 판공비, 지방관청의 경비는 국가의 전세를 건드리지 않고 여기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되죠.


이런 과세체계로는 축성에 필요한 자재나 기술자 고용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대부분 등록된 호구에 대한 인두세적 성격을 띤다는 것도 문제죠. 재정소요를 위해 과세부담을 올리면 농민에게 즉각적인 타격을 가하며 이는 민란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앙조정에서 축성비용을 대주는것도 아닙니다. 그런 사례는 조선 후기에서나 나타납니다.


과세가 인두세나 토지세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농민에게 과중한 재정부담이 가해지게 됩니다. 부담만이 문제가 아니라 재정소요를 충족하지도 못하게 되어 이중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명나라 말기의 대규모 민란이나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 같은 사태는 재정소요의 증가를 후진적인 과세체제를 혁신하지 못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의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읍성의 규모나 개수에 비해, 가용한 노동력과 재원은 더더욱 부족해질 수 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성벽이나 방어시설, 해자가 제대로 축조되고 유지관리되기가 어려워졌으리란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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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동래읍성 남문의 번화한 사진, http://panzercho.egloos.com/10814042 참조----


사람들이 성문을 통해 드나들고 읍성 안에는 시장이나 상점이 늘어선 광경은 조선후기나 구한말에 읍치가 점차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지방도시에 가깝게 성장한 이후의 일입니다. 조선 전기의 읍성은 대부분 백성이 거주하지 않거나 소수만 거주하는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읍성을 유지관리하고 보수하는 것은 근처 촌락의 농민을 농한기에 부역으로 동원해서 이루어집니다. 해당 지방관청은 재정부족으로 성곽을 쌓는데 소요되는 자재, 장비의 동원이 용이하지 않았을 겁니다.


조선 후기에 가서야 수원 화성을 비롯해, 노동자나 장인들에게 급료를 지급하고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는 사례가 등장합니다. 전주부성, 동래부성과 같은 조선 후기 축성사례는 조선 전기와는 전혀 다르게 자재를 구매하여 조달하거나 상당한 수준의 재정이 투입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발전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는 조선 전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조선 전기 읍성은 이런 면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입니다. 지방도시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피용 성곽부터 만들어지고, 축성이 이루어진 오랜 이후에서야 그곳에 지방도시가 형성됩니다. 중앙집권화는 빨랐지만, 반대로 경제적 발전은 미진했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유럽의 성채도시들과는 전혀 다르죠.


이런 여건 속에서, 조선 전기 읍성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잘 건축되고, 잘 유지 되었을까요? 당연히 그럴리가 없겠죠?


다음편에서는 구체적으로 조선 전기 읍성에 생기던 문제들과, 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상세히 파고들어가 보겠습니다.



레퍼런스

https://shirobito.jp/article/769

https://www.casasgredos.com/ciudad-de-avila/demografia.html

김헌규, 조선시대의 지방도시 읍치의 성립과 계획원리에 관한 연구

전종한, 조선후기 읍성 취락의 경관요소와 경관 구성

전종한, 내포지역 읍성 원형과 읍치경관의 근대적 변형

이영호, 신라왕경에서 고려의 지방도시로, 경주(慶州)

이재용, 조선 초기 경제구조-국가재정-지방재정, 신편 한국사

심정보, 읍성축조에 있어서 ‘築城新圖’의 반포 목적과 고고학적 검토





출처: 군사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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