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필독) 오글거리는 글 좀 써도 될까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19.17) 2019.10.26 01:55:41
조회 250 추천 5 댓글 9

우승까지 1승 남았는데 보고 가야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아주 어린 옛날부터, 아버지는 맨날 말씀하셨어. 네가 넉달만 일찍 태어났어도 OB 우승을 보는 건데.OB는 말이야 아주 멋진 팀이야,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이지. 박철순이 던지는 걸 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우승이 결정되던 그 마지막 순간에 김경문이 마스크를 냅다 던지고 마운드로 달려올라와 박철순을 얼싸 안던 그 모습은 아주 영화였어.
그래서 나는 늘 아버지와 잠실에 갔어. 삼겹살을 구워먹고 소주로 병나발을 불면서 응원하는 아저씨들은 신기하고 무서웠지만 흰 바지를 입은 야구선수들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생일선물로 아버지가 사준 글러브를 끼고 경기가 끝난 후에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으면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사인도 해주고 그랬어. 꿈이 뭐야? 박철순같은 투수요! 내게 그렇게 물어본 선수는 사인을 하다말고 씩 웃었다. 박철순이라고 써줄까? 그 선수는 계형철이었지.
아버지는 원년 우승의 영광스러운 날을 봤기 때문에 나를 OB팬으로 키우고 싶어했어. 그렇지만 내가 글러브를 끼고 잠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때는 OB의 지옥같은 날들이 펼쳐지고 있었고 관중석에서는 욕을 쏟다 지쳐 소주만 마시는 아저씨들이 더 많았어. 지고, 또 지고. 우리는 꼴찌를 했고, 나는 집에서 먼 야구장을 더이상 안가게 됐지.
하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태권도 안가도 돼, 아빠랑 잠실 가자. 맨날 지니까 싫어, 하고 투정을 부리는 나를 기어코 차에 실어 잠실로 갔지. 딱히 나아질 건 없었어. 준플에서 LG에 졌을 때까지만 해도 조금 희망이 보이나 했는데 그 다음해에 아버지는 정기구독하던 신문을 끊었다. 윤동균 감독이 중도사퇴하던 때였어. OB 경기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투정을 부렸던 기억도 나. 하지만 신문은 끊었을 망정 야구장은 못끊더라. 아버지는 그래도 나를 야구장에 데려갔어.
그 덕분에 나는 1995년 OB의 우승을, 1982년 OB의 원년우승을 직관했던 아버지처럼 야구장에서 볼 수 있었어.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어안이 벙벙해하면서도, 맨날 소주로 병나발을 불고 넥타이를 머리에 두른 채 OB를 외치던 아저씨들과 얼싸안고 기뻐했어. 집에 가지 않고 제물포로 가서 인생 처음으로 회도 먹어봤다. 넉넉치 않았던 살림에 처음 먹어본 회는 존맛이더라. 아버지는 나를 앞에 앉혀두고 이제 OB의 시대가 열렸다고, 김인식이 다 해줄거라며 큰 소리를 탕탕 쳤어. 아빠가 그랬지, OB는 멋진 팀이라고!
그 다음해는 더 끔찍했어. 우리는 우승팀이었는데, OB챔피언송을 외워 부를 수 있게 됐는데 막상 부를 기회가 없었지. 일년 전의 우승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지고 또 졌어. 상위권은 엄두도 못내고, 사인받은 글러브에 먼지가 쌓여가던 때 아버지가 다시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나를 끌고 또 야구장을 가더군. 거기서 김동주를 처음 봤고. 김동주가 왔으니까 다 될 거야. 아버지뿐만 아니라 관중석의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그래도 나는 우승과 최하위를 오갔던 그 끔찍한 기억 때문에 전처럼 마음이 가지 않더라고. 그래서 결국 2001년 그 미라클 두산을 볼 기회를 놓쳤지만.
OB에서 두산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팀에 대한 애정이 묘하게 식더라. OB BEARS가 아니라 DOOSAN BEARS라니. 내 팀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마침 고3이어서 야구장 갈 짬도 없었고. 그래서... 그 아름다운 우승을 독서실 라디오로 들었어. 아쉽게 아버지도 경기장에 가지 못했지. 일을 하다 다치셔서 병원에 계셨었거든. 독서실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벌떡 일어났는데, 아버지한테 삐삐가 와서 공중전화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어. 우시더라고. 그 때 생각했어. 대체 이게 뭐라고. 이깟 공놀이가 뭐길래 아버지가 우는 걸까. 근데 막 나도 눈물이 났어. 그리고 난 재수를 했지.
왜일까.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다가 겨우 취직해서 그럭저럭 살아가면서도 나는 계속 야구를 보고 있더라. 정수근이 떠나면서, 김성근한테 좆되면서, 김경문이 통수를 치면서, 그리고 김동주까지 그따위로 떨어져나가면서 온갖 정나미가 떨어져서 에이 이런 더러운 야구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더라. 그래도 두산은 우리 팀이더라고.
오늘 경기를 보고 오랜만에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야구는 계속 봤지만 의식적으로 경기장은 안가고 있었는데, 내가 없었던-아버지가 기억하는 원년 우승의 순간과, 나와 아버지 모두 놓쳤던 2001년의 기적이 생각나면서... 이번에는 꼭 야구장에 가고 싶어졌어. 우승은 안해도 좋으니 멋진 승부를 보여줘! 같은 거지같은 멘트는 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설레발 치듯 우승할거야라는 얘기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야구장에 가고 싶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이번에는 나 혼자 우승을 보면서, 에이 아버지가 일년만 더 사셨어도 두산 우승을 보시는 건데요 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미안 오글거리는 글 싸서. 잉여라서 딱히 두산 얘기 쓸 데가 없다보니 갤을 좀 빌림ㅋㅋㅋㅋ평소에는 갤 눈팅 잘하고 가끔 리플도 다는 순박한 갤러란다

추천 비추천

5

고정닉 1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외모와 달리 술 일절 못 마셔 가장 의외인 스타는? 운영자 24/07/01 - -
2107047 빵찬이가 9회 세이브한다면 걍 빵찬이 주자 ㅇㅇ(223.38) 19.10.26 10 0
2107046 저러고 개씹볼에 휘두르겟지 ㅇㅇ(175.197) 19.10.26 13 3
2107044 슬라 하나만 몰려들어라 하나만 ☆나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26 6 0
2107043 기자들이 북괴 좋아한다며 ㅇㅇ(39.118) 19.10.26 29 0
2107042 양팀투수 17명 출전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 [1] ㅇㅇ(1.11) 19.10.26 31 2
2107041 살아나가라 제발 oo(222.238) 19.10.26 1 0
2107040 므브프 얘기그만해 우승했냐 ㅇㅇ(222.120) 19.10.26 15 0
2107039 아 한가운데 쳤어야ㅜㅜ ㅇㅇ(211.178) 19.10.26 6 0
2107038 낭중지추남 가즈아 ㄱㄱㄱㄱㄱㄱㄱㄱ ㅇㅇ(211.176) 19.10.26 4 0
2107037 북낌표찍으면 시리즈 므브프다 진짜로 ㅇㅇ(223.62) 19.10.26 8 0
2107036 뭐칠건데 시발아 ㅇㅇ(220.80) 19.10.26 6 0
2107035 시발아 뭐치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26 6 0
2107034 느낌표찍고 시리즈므브프 먹어라 ㅁㅁ(211.201) 19.10.26 5 0
2107033 북괴님 mvp한번 먹읍시다 ㅇㅇ(121.165) 19.10.26 4 1
2107032 한 점 더 내자 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110.9) 19.10.26 6 1
2107031 투런 타이밍이냐 ㄴㄹ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26 3 0
2107029 치고 MVP 가자 ㅇㅇ(110.9) 19.10.26 6 0
2107028 투리런시 대북지원 200만 달러 [1] ㅇㅇ(120.50) 19.10.26 19 1
2107027 므브프얘긴 이기고해도 안늦어 ㅇㅇ(112.173) 19.10.26 5 0
2107026 아 존나 무섭노 ㄹㅇ ㅇㅇ(175.197) 19.10.26 13 1
2107025 북낌표 찍자 ㅇㅇ(223.39) 19.10.26 7 0
2107024 혹시 북괴가 여기서? ㅇㅇ(210.123) 19.10.26 8 0
2107023 북괴가 치고 시리즈먹자 ㅇㅇ(59.4) 19.10.26 8 0
2107022 허경민이 투런치면 드디어 드러나는 거냐 안 묻히고 ㅇㅇ(211.176) 19.10.26 18 0
2107021 그냥 허경민이 므브프 허자 ㅇㅇ(211.44) 19.10.26 8 0
2107020 이거 치면 허경민 mvp줘 ㅇㅇ(223.39) 19.10.26 6 0
2107019 한번 묻히지말아보자 oo(222.238) 19.10.26 3 0
2107018 북괴안타가자 no18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26 4 0
2107017 근데 이번 코시 존나 아쉽지 않냐? 좀 노잼이고 ㅇㅇ(223.62) 19.10.26 38 0
2107016 빵찬이 나와서 막으면 빵찬이가 mvp먹겠네 ㅇㅇ(124.254) 19.10.26 15 1
2107015 이대로 끝나면 mvp 누구냐 [3] ㅇㅇ(223.62) 19.10.26 60 0
2107014 섹도어의 저주가 만들어낸 시리즈 왓더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26 13 0
2107013 시발 떨리네 ㅇㅇ(14.36) 19.10.26 5 0
2107012 시리즈 mvp 누가먹냐이거;; 도찐개찐 [2] ㅇㅇ(223.62) 19.10.26 24 0
2107011 느낌표는 니미 물음표만 뒤지게 찍고있누 ㅋㅋㅋㅋㅋ ㅇㅇ(121.136) 19.10.26 11 0
2107010 므브프 북괴 가자 ㅇㅇ(223.62) 19.10.26 9 0
2107009 저새끼는 스윙 뭔데 씨발 ㅇㅇ(218.52) 19.10.26 6 0
2107008 북괴님 제발요 ㅇㅇ(124.111) 19.10.26 6 0
2107007 누가 어떻게 던져야 된다고 온갖 시나리오가 다 오는데 배영구는 없다. ㅇㅇ(112.214) 19.10.26 66 3
2107006 북괴 출루하고 재원이형 한번더 제발 ㅋㄷ(1.229) 19.10.26 9 0
2107005 북괴가 느낌표 찍자 ㅇㅇ(175.223) 19.10.26 4 0
2107004 아니 왜 이렇게 급해 씨발것들아 앞타자 풀카승부 했구만 ㅡㅡ ㅇㅇ(112.164) 19.10.26 21 0
2107003 걍 투런까고 영쑤 올리자 ㅋㅋ ㅇㅇ(182.222) 19.10.26 11 0
2107002 북괴가 치고 MVP먹자 ㅇㅇ(122.35) 19.10.26 6 1
2107001 북괴형 믿어요 oo(222.238) 19.10.26 4 0
2107000 북괴 느낌표각 ㄹㅇ ㅋㅋ 파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26 11 1
2106999 여기서 북괴가 투런치면 ㅇㅇ(14.52) 19.10.26 11 0
2106998 뭐해 시바 ㅇㅇ(122.47) 19.10.26 6 0
2106997 저딴게 무슨 MVP는 지랄 코인노래방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26 23 0
2106996 인태 나와줬으면 하는데 안나오내 ㅇㅇ(14.63) 19.10.26 6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