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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ie2님 글 김재호도 있음 앱에서 작성

ㅇㅇ(106.101) 2019.10.28 23:07:40
조회 314 추천 33 댓글 3

02년 여름부터 03년 가을까지 난 늘 재호의 경기장에 있었다.
어쩌다 처음으로 본 경기는 재호가 끝내기를 쳤던 그 경기였고 그날 이후 난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중앙고의 팬이 되었다. 재호가 유망한 1차지명 후보자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그 여름에 난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재호와 그의 동료들은 늘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난 재호가 있는 곳이라면 목동이든 동대문이든 따라다녔다.
그들은 역전의 명수들이었다. 이문광과 남찬섭이 지키던 마운드는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늘 대량실점을 하기 일쑤였지만 중앙고의 살인타선은 너무나 쉽게 벌어진 점수차를 따라잡았다. 마운드에 서있는 어린 투수들은 중앙고의 살인타선에게 한번 난타당하기 시작하면 폭포수처럼 무너져내렸다. 그들은 3점, 5점, 8점, 10점을 우습게 따라잡았다. 그래서 그들의 경기는 늘 역전의 기억과 함께 남아있었다.
오재영도, 이경민도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중앙고의 경기를 보는 것은 참 편했다. 투수들이 아무리 실점을 해도 늘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살인타선의 중심에는 재호가 있었다. 남찬섭이나 김태우의 뜬금홈런도 좋았고 2학년이었지만 주전에 끼어든 김지수의 재간둥이 안타도 보기 좋았지만 그래도 역시 중앙고의 핵심은 김재호였다. 내야의 반을 커버하는 유격수 수비는 물론이고 필요할 때 꼭 한방을 해주는 재호는 그야말로 중앙고의 꽃이었다. 언제나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던 재호는 중앙고의 주장이었다.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야수들을 격려하던 재호의 까만 얼굴, 그리고 삐쩍 말랐지만 탄탄했던 그의 모습은 늘 정겨웠다.
늘 그렇게 역전으로 상대팀 마운드를 무너뜨리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우승을 한 적이 없었다. 늘 4강 문턱 쯤에서 무너져내리곤 했는데 역시 투수력의 한계였다.오래된 학교였던 만큼 동대문에는 늘 중앙고의 동문들이 응원가를 불러댔고 동문이 많은 서울학교라는 이점 때문에 그들의 경기는 늘 저녁에 잡혀있었다. 어스름히 라이트에 불이 들어오면 그 소년들은 미친듯이 방망이를 돌려댔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응원가 소리가 드높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중앙고가 어느날복수라도 당하듯이 역전패했다. 10:4로 지고 있던 경기를 단숨에 12:10으로 뒤집었을 때가슴이 터질 정도로 흥분해서 그들을 바라봤는데 바로 다음 회에 그들은 12:12 동점을 허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기를 맞고 졌다. 끝내기는 그들의 특기였는데... 늘 끝내기를 치고 흥분해서그라운드로 뛰쳐나오던 그들. 응원석의 동문 선배들에게일렬로 뛰어가 큰절을 올리곤 했던 그들이 끝내기를 맞았다. 아마도 경주고와의 경기였을 거다. 황사기였는지 청룡기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타구는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꿰뚫었고 경주고의 선수들이 모조리 그라운드로 뛰쳐나올때 유격수 재호는 인조잔디에 몸을 던진 채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흐느꼈다. 재호 뿐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은 잔디에 쓰러진 채 아이처럼 펑펑 울었고 역전을 허용한 에이스 남찬섭은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팔뚝으로눈물을 닦으며 엉엉울었다. 늘 남의 눈물을 밟고 승승장구하던 소년들은 그날 너무나 오래도록 울었다. 그리고 스탠드에서 바라보던 나도 왠지 가슴이 뜨거웠다.
그해 봄에 재호는 두산에 1차지명을 받았다. 유격수의 한에 사무치던 우리 팬들은 재호를 반가워했다. 누가 뭐래도 서울권 최고 유격수였으니까. 재호가 지명을 받고 한달 쯤 지나 혜성처럼 나타난 손시헌이 아니었으면 아마 재호는 누구보다 먼저 기회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홍성흔과 최훈재 코치의 동문 후배인 재호는 그렇게 두산에 입단했다.
그리고 병역 비리로 인해 재호는 1군 그라운드에 몇번 서보지도 못한 채 처분만을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늘 이빨을 드러내고 실실 웃는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재호는 아마 때와는 달리 프로에 와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떤 공이든 탁탁 걷어내면서 빨래줄 같은 적시타를 날려대던 재호는 프로에 와서 아주 오래도록 첫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고교 시절 최고유격수 소리를 듣고 청대 유격수로도 활약했던 재호였지만 같은 팀에는 수비의 신 손시헌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유격수 자리를 감히 넘볼 수도 없었다. 재호는 그렇게 잊혀지는 듯 싶었다.
기껏해야 수비 백업. 그것도 1,2군을 오가는 처지의 재호는 오랜만에 2군에서 1군으로 컴백했다. 그리고 대수비로 들어서서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2:0으로 힘겹게 이기고 있던게임에서 결정적 실책을 하고 결국 그 실책으로 말미암아 2:2의 동점을 허용했다. 경기는 지리한 연장으로 접어들었고 재호의 타석에서 대타가 들어섰다. 재호는 그 실수를 만회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고 또 기회가 주어졌다 한들 자신의 힘으로 만회할 만큼 노련하지도 능숙하지도 못했다.
재호는 올시즌이 끝나면 군대에 입대한다. 그리고 돌아온 후에는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기량이 떨어질 것이다. 1차지명자의 자부심을 보일 시간도 없이 재호는 그렇게 시한부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선수들은 누구보다도 찬란했던 아마시절을 가지고 있다. 재호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고 그들중 대부분은 프로에서 그저그런 커리어를 가지고 1,2군을 오가다가 결국 팬들에게 존재감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다. 재호도 어쩌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재호의 아름다운 날들을 기억하는 나는, 그 뜨거운 동대문에서 그의 이름을 연호했던 나는 그가 아쉽다. 오늘의 무승부가 그의 결정적인 실책 때문이었음을, 부디 자책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철저하게 반성하고 후회하길 바란다. 그가 아니었으면 휴식을 가질 수 있었을 불펜투수들에게 미안해하고, 그가 아니었으면 승리의 기쁨을 가졌을 동료들과 선배들에게 미안해하길 바란다.끝내기를 맞은 후 인조잔디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철철 흘리던 그때처럼, 그리고 그날 이후 다시 끝내기를 쳐대던 그 모습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반성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다음에 주어질 기회에는 부디 그 기회를 꽉 부여잡기를. 그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언제가 되든 그라운드에서 자기 존재감을 뿜어내는 선수가 되길.
재호에게는 빛이 있었다. 그 빛을 다시 만나고 싶다.
euni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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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재원 김재호가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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