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또 쓸데없는 잠언으로 감상을 시작할까 했다.

'대중성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고, 따라서 대중성을 지향하는 것만큼이나 대중성을 배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으면 대중적인 게 되는 거니까' 운운...

근데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다.

미1친놈아, 매카시즘 시절 미국에서 엘프 쇼타를 여장시키고 따먹는 글을 쓰면서

그걸 '아 쇼타 따먹는 글이군' 하면서 읽어줄 사람을 기대하는 건 뭔 발상이고???

일단 전반적으로는, 빠꾸가 없어진 덕분에 1화는 전에 보여준 것보다 재미있긴 하다.

그 편지 복선 비슷한 게 나올 여지가 없나 싶기는 한데,

뭐 친절하지 않은 복선을 끼워넣는 게 귀찮으면 이대로도 괜찮은듯.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말하겠음.

사소한 건데, 굴러다니는 반 송장을 구하면서 조금 망설이는 장면은 있는 게 나을 거 같다.

이런 데서 인물 파악과 몰입이 좀 더 쉬워지는 부분이 있어서...

그 맥락에서 예전 댓글에서 '인물이 좀 더 덜 불쾌해진 건 맞는데' 였던가, 그런 톤의 댓글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전에 보여졌던 글에서 왜 그렇게 인물소개에 불필요한 부분이 많아졌는지는 좀 이해가 가네.

아무래도 주인공에 확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약한 건 맞어.

얘가 뭔 처지에 놓여 있는지, 왜 이렇게 빡쳐 있는지를 독자가 전혀 알 수가 없으니까.

내 생각에는, 어차피 엘프 쇼타에게 칼이 겨눠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이 새끼를 어떻게 가스라이팅해서 성노예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류의 인물이라면,

어차피 인물의 행동을 좀 더 멀쩡해 보이게 만든다고 해서 감정이입의 난이도가 낮아질 거 같지는 않음.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그래서 되려, 나는 얘가 어떻게 하면 이 꼬맹이를 괴롭게 만들 수 있을까 즐겁게 고민하는 장면들이랑,

아드리안을 에이드리언, 그리고 오드리로 만들어버리는 장면,

그리고 백인 좌파 리처드를 배배 꼬인 심성대로 경멸하는 장면에서 얘 캐릭터성이 팍 하고 와서 되게 좋았음.

얘가 불쾌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숨기려 들지 않고, 되게 인상깊게 제시해 주니까.

그래서 약간 느낌적인 느낌으로 말하자면, 지금 이 작품에서 내가 아쉬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인물이 너무 없다'는 걸 말할 거 같음.

주인공 캐릭터를 좀 이해하고 싶은데, 얘를 자극하고 얘한테 반응해 줄 거울로서의 인물이 아드리안밖에 없고,

심지어 그 아드리안조차도 걍 얘의 변태성 말고는 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단 말이지.

물론 주인공의 기나긴 독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판타지적 사물에 대한 비틀린 표현들은... 훌륭해.

약간씩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나 역시 이런 걸 되게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음.

근데 문제는 결국 이 책의 배경이 미국이라는 것에 있음, 결국 이 새끼가 뭔가 이리저리 장황하게,

쉬도 때도 없이 새로운 설정들을 던지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 '미국'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꼬무룩해진단 말여.

이건 그냥 묻고 싶은 건데, 설마 엘프를 일본인 생각하고 쓴 거 아니지? 맞으면 조금 실망이다.

괜찮은 표현들이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이, '나는 싫다' 외의 무엇인지 아직 감이 안 잡힌다.

물론 이건 뒤에 이 이미지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독자에게 '이것들은 무언가를 위한 도구에요' 라는 부분을 1화, 내지는

초반부에 제시해 주는 게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설정이 많고 자세한 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독자가 머릿속에서 꿰맬 수 있어야 한다.

이 설정들은...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뉴로맨서에서 너무 멀다. 뉴로맨서는 좀 지나치게 대중적이긴 하지만서도.

아마 이 작품이 전개가 느리다던가 지루하다는 반응을 듣는다면, 아마 이 부분이 문제일 거야.

인물은 적고, 설정과 이미지는 많은데, 그것들이 결국 뭘 그리는지 짐작이 안 간다... 는 부분.

개인적인 취향 영역에서 말하자면, 나는 뭔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어한다는 말을 참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뭔가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것과 좀 더 많은 관계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소비와 생존은 독자에게 있어 적극적인 관계로 여겨지기가 힘들 거라고도 생각하고.

차라리 자동차 정비기사가 그런 의미에서 미국인을 표상하기 좋지 않나 싶어. 

뭘 그리는 지 짐작이 안 된다... 이 말을 좀 정정하긴 해야겠다, 그려지는 거 하나 있긴 있어.

아드리안이 미친 듯이 박히는 거, 박아대는 게 주인공일지 리처드일지는 지금으로서는 약간 불확실하긴 한데.

그래서, 사실 이 작품을 평가하기가 좀 미묘하다. 지금까지의 장황한 독백과 느린 전개,

극단적으로 적은 인물과 주인공의 똘끼는 전부 BL적으로 보면 되게 좋은 요소들일 수 있겠다 싶은지라.

물론 이런 호모섹슈얼적인 분위기를 매카시즘 미국과 기술문명과 어떻게 엮어서... 할 수는 있겠다만

그래도 나 자신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관계 속의 에로티시즘으로 족히 만족할 거 같거든.

그래서 약간, 이 작품을 무슨 생각으로 어디다 올리려는 건지 모르겠음. 조아라 BL란에 올리려고?

만약 그 동네에도 소천되 독자들이 '덕성 높은 TS'를 즐거이 읽었던 것처럼, '덕성 높은 BL'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름 호응을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근데 진짜로 나한테 BL 감상 해달라는 거임???

혹은 반대로, 이게 BL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임???

어느 쪽이든 님은 레전드입니다.

그렇다.

단적으로 말해, 주인공이 아드리안을 오드리로 만들 때, 그리고 리처드를 경멸할 때

형이상의 '전력'이 매우 잘 드러났다고 생각해서,

내 입장에서는, 걍 소천되처럼 인물을 잔뜩 등장시키던지, 아니면 있는 인물이라도 자주 등장시키라고 하고 싶은 심정임.

모든 객관적 상관물에 대해 의식의 흐름을 구사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판타지랑 잘 안 맞는 거 같더라... 나도 좀 실험해 본 게 있어서 암.

그래서 ㄹㅇ BL코인 타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