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히어로가 회귀를 했는데요.

“미친, 이런 미친. 이런 개 같은.”

난 거울을 부여잡고 온갖 욕설을 메들리로 외우고 있었다.

분명 회귀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왜 이렇게 꼬인 건가?

난 크림슨 피스트.

본명 알렉스 케인.

회귀 전, 나는 히어로 협회, 스트럭쳐의 히어로였다.

난 내 한쪽 눈과 여동생의 다리를 앗아간 빌런, 마이다스 걸을 처단하고, 대전쟁에서도 활약했다.

꽤나 성공적인 히어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스트럭쳐의 리더에게 비밀 임무를 하나 받았다.

“비밀결사 에큐메니컬을 조사하라.”

[에큐메니컬]

초인과 사회 고위층의 비밀결사.

자신들만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할 권리가 믿는 음험한 놈들.

심지어 빌런 뿐 아니라 히어로도 있는 단체다.

난 나름 신중을 기하며 놈들의 정체를 추적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너무나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협회 최강의 히어로, 드레이크까지 에큐메니컬이었을 줄이야.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놈들의 명부를 확보했을 때 녀석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당연히 나는 팔 몇 번 휘둘러보다 두들겨 맞고, 녀석의 손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쩝, 그때 진짜 조금만 더 하면 다 잡아들일 수 있었는데.’

물론 배부른 소리긴 했다.

사실 그 시점에서 난 죽고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우연히 우주적 존재, 코즈믹 드래곤의 눈에 띄는 행운 덕에 살아남은 거다.

드레이크의 손에 심장이 파괴돼 죽어가던 때.

시간이 멈추고 용과 인간의 형상을 고루 갖춘 미녀가 내게 걸어왔었다.

“억울하지? 증거 다 확보했는데 그렇게 끝난 게.”

그녀는 내 곁에 쪼그려 앉아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대답할 수는 없었다만, 당연한 이야기였다.

“특별히 다음 기회를 줄게. 시간을 거슬러 두 번째 기회를 갖는 거야. 너의 정신만을 5년 전으로 보내주지.”

“!”

그때 난 정말 기뻤다.

이렇게 에큐메니컬의 정보를 다 모은 상태에서 과거로 간다면, 놈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5년 전이라면 내가 잘 아는 시기라 적응하기도 좋았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온 소리는 좀 꺼림찍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나도 처음 하는 일이야.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는 있어.”

‘엥?’

그렇게 말하며 코즈믹 드래곤의 손이 빛났다.

“야 잠깐!”

그 빛과 함께 내 의식은 5년 전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거울을 붙들고 울부짖고 있었다.

“이건 약간의 오차가 아니잖아! 이 도마뱀아!”

날아가며 시간이 틀릴 수 있다는 각오는 했다.

회귀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각오도 했다.

회귀한 시점에 적응 못할 수 있다는 각오도 했다.

그런데 이건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아닌가.

“남의 몸에 박아넣는 회귀가 세상에 어딨냐고요. 심지어 성별도 다르고.”

원래 남자답게 생겼단 말을 많이 듣던 게 나, 크림슨 피스트다.

하지만 난 지금 보라색 머리, 보라색 눈의 뽀얀 피부를 가진 여자 몸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무엇보다 빌런의 몸에 들어간 게 말이 되냐! 그것도 내 손으로 죽였던 빌런의 몸에!”

회귀는 했는데, 남의 몸에 들어갔다.

내가 죽였던 빌런, 마이다스 걸의 몸에.

곧 과거의 나, 크림슨 피스트가 날 죽이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