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방치한 게임 속에 들어갔다.
“씨발. 이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나는 지금 허름한 빌라에서 욕지거리를 씹어대는 중이다.
방바닥에는 먼지가 무슨 카페트 마냥 켜켜이 쌓여 있고, 깨진 창문에서는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집 관리를 왜 이렇게 하냐고?
그야 여긴 내 집이 아니니까!
방금 눈떠보니 여기다!
이게 내가 화가 난 이유다.
스마트폰으로 게임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이런 어이없는 장소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다.
난 화가 났다고 욕을 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반면, 이 감정이 들 때는 나도 모르게 욕을 해댄다.
공포.
그게 내가 지금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끄어어어
-우어어어어
좀비들의 신음 소리.
내가 처음 들은 소리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듣고 있는 소리다.
처음 좀비 소리 들을 때는 게임을 켜놓고 자느라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내 방이 아니라 이상해서 창밖을 내다봤는데, 좀비들이 어기적어기적 돌아다니고 있더라.
이놈의 세계는 순진하게 영화 촬영이라고 착각할 여유도 주지 않았다.
일어난 곳이 내 집이 아니란 것은 둘째 치고라도 바로 곧이어 사람 하나가 잡혀 먹히는 꼴을 실시간으로 봤으니까.
난 눈을 뜬 지 1분도 되지 않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망할 놈의 좀비 디펜스 모바일 게임 [데드 서바이벌]안에 떨어졌다는 것을.
*
‘허어, 이거 정착지 완전 맛탱이 갔네. 게임 접어야 하나? 아니지. 그간 부은 돈이 얼만데.’
그러니까 몇 시간 전,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집(정확히는 부모님 집)에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뒹굴거리고 있었다.
이때 난 디스크 제대로 터져서 수색대를 조기 전역한 신세.
복학 타이밍도 애매하고 허리도 불편하니 할 게 폰질 밖에 없더라.
그 때문에 폰 게임을 이것저것 많이도 했다.
하지만 24시간 게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 게임들을 깔아만 놓고 방치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몇몇 게임은 방치하면 페널티가 부여되기도 한다.
이 망할 놈의 게임, [데드 서바이벌]도 그런 페널티가 부여되는 게임이다.
[데드 서바이벌]은 요즘 인기 많은 좀비 디펜스 게임이다.
별개의 스토리 모드를 진행해 요소들을 해금하고, 뽑기와 과금으로 영웅들을 육성하고, 기지를 키워 좀비와 약탈자들로부터 정착지를 지켜내는 게임.
여기까지는 평범한 양산형 게임이지만 이 게임의 특징은 실시간 연동.
접속하지 않아도 게임 속 시간이 흘러가고 이벤트가 쌓이는 시스템인 것이다.
긴장감을 부여해 몰입감을 늘리기 위한 개발사의 정책이다.
물론 플레이어들이 질려서 떠나면 안 되니 그렇게 혹독하지는 않다.
하루에 10분 내로 끝나는 출석보상 수령과 일일 퀘스트 수행만 해도 게임이 망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간단한 일도 까먹고 있었다.
출석보상 수령도 일일 퀘스트도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이 결과 게임은 시원하게 터져버렸다.
출석보상을 받는 것을 잊은 결과 자원은 바닥났다.
감염구역 청소 일일 퀘스트를 안 한 결과 최고 레벨 좀비 저거너트가 등장했다.
정착지 관리 일일 퀘스트를 안 한 것 때문에 기지 내구도는 바닥이다.
심지어 장기 미접속으로 통솔 수치가 0이 되는 바람에 영웅 유닛 중 2/3가 실종상태.
어지간하면 시원하게 접어버리겠지만 그러기는 싫다.
새벽에 술 처먹고 영웅 유닛들 뽑겠다고 현질을 잔뜩 질러 버려서 돈 아까워 못 접겠더라.
“끄응, 어쩐다. 이제 돈 아껴야 해서 현질로는 못 메꾸는데. 잔고가 아슬아슬하다고.”
난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띠링!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알림창이 하나 떴다.
그 찢어 죽일 알림창이.
[위기에 처한 정착지 리더님을 위한 특별 서비스! ‘특수 통솔’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내가 게임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위키는 철저하게 읽어본 사람이다.
그리고 위키 어디에도 특수 통솔이라는 기능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안 할 이유가 어딨어? 게임 터졌는데 돈 안 들이고 수습할 방법이면 해야지.’
하지만 이 멍청이(나)는 마음이 급해서 그걸 좋다고 눌렀다….
-꾹
*
예상했겠지만 그 뒤로 나는 정신을 잃었고, 눈 떠보니 여기인 거다.
좀비들이 뛰노는 아름다운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 세상.
좀비 디펜스물 [데드 서바이벌]의 세계.
난 한참을 패닉에 빠진 끝에야 냉정을 되찾고 중얼거렸다.
“진정하자. 일단 현재 상황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거울을 보니 역시나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다.
흑발에 준수한 외모.
이 난리통에도 말끔한 얼굴.
이 게임의 주인공 이서현이다.
그리고 스토리대로면 이 녀석, 아니 나는 동료들에게 버려져 이 외딴 빌라에 숨어있는 상태다.
‘일단 마지막으로 플레이한 파트 스토리 좀 떠올려보자.’
이서현은 동료들과 개조 버스와 호위 차량을 끌고 보급품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어린이집 생존자 집단을 만난다.
선량한 성격의 이서현은 아이들을 정착지에 데려갈 것을 주장했고, 긴 설득 끝에 아이들을 태우고 출발한다.
그런데 운 없게도 버스가 주저앉았다.
하필 타이밍 나쁘게도 특수 좀비가 포함된 좀비 무리를 마주쳤고 말이다.
이서현과 영웅들은 차량이 수리되는 동안 좀비들을 막아내려 싸웠다.
‘그리고 디펜스 하던 영웅겸 히로인들이 하나둘씩 겁에 질려 차 타고 도망쳤지. 난이도를 점차 높이기 위한 설계….’
어떻게 보면 의리 없긴 하다.
지들 대장이 목숨 걸고 싸우는데 자기들 살겠다고 도망이나 치다니.
[착한 척할 거면 혼자 죽어!]
[제길, 평소에도 잘난 척하고 맘에 안 들었다고.]
[너 없어도 우리끼리 잘 살아날 수 있거든!]
도망가던 녀석들 대사 중에 이런 것도 있었지 아마.
심지어 버스 몰던 애들도 고쳐지기가 무섭게 이서현 버리고 도망쳤다.
무슨 놈의 히로인이 악담 내뱉으며 주인공 버리고 도망치는지.
아니, 생각해보니 그 전 스토리 라인부터 악담계 히로인들이 많았네.
게임 설계한 인간 머리를 열어보고 싶다.
아무튼, 이 결과 이서현은 좀비밭에서 홀로 낙오되고,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 버려진 빌라에 숨는다.
‘바로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 외딴 빌라에 있는 거고. 하지만 꼭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야.’
겉으로 보면 고립무원 그 자체지만 살아날 길은 얼마든지 있다.
위키에는 이건 전초기지 건설 컨텐츠의 튜토리얼이라고 했다.
고립된 주인공이 외딴 빌라를 쉘터로 개조해 중간거점을 만드는 컨텐츠인 것이다.
마지막에는 신호탄을 만들어 정착지에 구조요청을 해 집으로 돌아간다.
당연히 게임 설계상 활용할 자원은 주변에 널렸다.
내가 조금만 위험을 감수해 자원을 획득하면 이곳은 안전한 거점이 된다.
문을 나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을 기억했다.
정착지 상태창이야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내 상태부터 확인하자.
‘상태창.’
__________
[이름: 이서현]
[스탯]
근력: C+
민첩: B-
감각: B+
내구: C+
HP: 80
SP: 70
[특수스킬]
통솔 강화: C
-당신을 따르는 동료들이 일정량의 버프를 받습니다.
혜안: D
-위험 감지, 적 약점 파악, 아이템 탐색에서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비]
<유니크 소총>은밀하게 위대하게
<전설 둔기>수박 망치
<유니크 전투 경찰 방어복>검은 표범
<유니크 진압 방패>조국의 방패
__________
상태창을 확인하고 난 중얼거렸다.
“좋아. 해볼 만하네. 개인 아이템은 그대로야.”
영웅 카드 팔아먹어야 하니 주인공의 스탯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주인공이 쎄다면 영웅 가챠를 적극적으로 돌리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약한 스탯도 템을 둘둘 둘러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반 좀비는 한방 컷, 특수 좀비도 약한 애들은 단독으로 잡을 수 있는 스펙이 나온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상술이고, 난 거기에 코 꿰인 거지만.
‘어쨌든 그 상술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지금 살 수 있었겠어?’
난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며 장비외 도구들을 챙긴 다음 문밖으로 향했다.
애초에 이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꼴도 당하지 않았을 거란 사실은 잠시 잊자.
-꾸어?
문을 열자마자 계단 아래의 좀비와 눈이 마주쳤다.
다행히도 이 세계 좀비들은 썩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지도, 구더기가 들끓거나 하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안구가 충혈되고 혈관들이 시퍼렇게 올라온 모습도 충분히 자극적이다.
-캬아아아아
좀비는 당연하게도 내게 달려들었다.
마치 부모님 원수라도 본 것 같은 살벌함이다.
‘하지만 유니크 무기를 가진 내게는 상대가 안 되지.’
난 먼저 방패를 들어 아래로 내리찍었다.
-퍽!
내 유니크 진압 방패, [조국의 방패]는 녀석의 무릎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 아이템의 방패 날로 때릴 시 추가 데미지를 붙여주는 기능은 착실하게 녀석의 무릎을 으깨놓았다.
-키에엑!
다음에는 전설등급 둔기의 차례다.
난 쓰러진 녀석의 머리에 [수박 망치]를 휘둘렀다.
-파삭!
그리고 [수박 망치]라는 이름답게 좀비의 머리는 마치 수박 마냥 깨져버렸다.
“우욱. 토 나올 것 같네.”
눈앞에서 고어물이 펼쳐지니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원래 19금 딱지 붙은 좀비 영화나 슬레셔 무비도 잘 못 보던 게 나인데.
[데드 서바이벌]은 12세 이용가라 고어한 거 다 편집돼서 한 거란 말이다.
하지만 비위나 신경쓰고 있을 여유는 없다.
밑에서 좀비들이 더 올라온다.
“덤벼. 씨발.”
난 방패와 망치를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발소리가 계단통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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