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후회와 실수로 얼룩진 삶이었다.
그 두 가지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잃었기에 그것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싫어서 계속 살았다.
죽기 싫어서, 살고 싶어서… 그러고 저들의 삶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해서, 나는 계속 살았다.
계속 살수록 후회도, 실수도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또 많은 걸 잃었지만, 그래도 계속 살았다.
내가 죽으면 그들의 삶이 전부 무의미해지니까… 나는 계속 살았다.
그렇게 계속 길을 걸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길을 걸으면서, 내가 가는 길을 가로막는 녀석들은 전부 배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전부….
그러고 나는 마침내 이 세상의 꼭대기에 섰다.
“내가 이딴 거나 보려고, 이렇게 살았다고?”
그러나 내가 걸은 지옥도의 끝에는 공허함만이 있었다.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 세상, 그 끝에 내가 서 있었다.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잖아?”
『축하합니다, 세상의 끝에 도달하셨습니다.』
『당신은 초월자, 「지옥도의 수라」가 되셨습니다.』
“닥쳐!”
그렇게나 염원하던 정상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렇게나 원했던 것이 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세상의 신이 새로운 초월자의 탄생에 경탄합니다.』
『신의 은혜로 초월자, 김현수에게 하나의 소원이 주어집니다.』
“지금 이제 와서 소원이나 빌라고?”
그렇게 절망하다가, 갑자기 눈앞에 떠오른 창을 신경질적으로 바라보았다.
소원? 그래, 분명히 수도 없이 많은 소원이 있었다.
그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빌 만한 소원 따위는 없었다.
처음 이 세상으로 왔을 때, 나는 이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처음 내 친구가 죽었을 때, 내 연인이 죽었을 때, 날 위해주던 사람들이 죽었을 때도… 나는 무언가를 잃을 때마다 저 빌어먹을 신에게 늘 돌려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소원이라고 했지? 그래, 시발 그러면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잃은 것들을 다 돌려줘.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날 위했던 사람도, 내 친구도! 전부! 전부 돌려줘 개새끼야! 내가 잃은 거 전부 돌려달라고!”
만약에 저 신이라는 놈이 내 눈앞에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놈의 멱살을 부여잡고 흔들었을 것이다.
『당신의 소원이 수락되었습니다.』
“뭐…?”
무슨 헛소리 인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저 소원이 수락됐다고…?
『개연성의 초과로 당신의 소원이 변형됩니다.』
『초월자, 김현수의 소원은 과거로의 회귀로 변형되었습니다.』
“하하… 개연성? 지랄하네, 처음부터 다시 구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아니고? 이 미친 새끼야.”
저 신이라는 녀석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새끼다.
본인의 목적을 위해서 온 세상을 투기장으로 뜯어고치는… 그런 미친1놈.
그런 미친1놈이 램프의 요정이 소원 들어주듯 바로 들어줄까?
저 신은 지금 이렇게 말한 거다. 네가 잃은 건, 네가 이 개 같은 세상을 다시 살아가며 알아서 구하라고….
『소원, 과거로의 회귀를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래, 까짓것 한 번 더 살아보지 뭐.”
하지만 딱히 내가 저 소원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과거에 너무나 많은 후회와 실수를 했었고, 살면서 늘 그 후회와 실수를 지우고 싶었다. 그러고, 지금 후회와 실수를 지우라고 신이라는 놈이 판까지 깔아주었다.
“딴말하기 없다.”
한번 세상의 끝에 서봤다.
비록 지옥도를 걸었지만, 끝은 끝이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끝에 서는 법을 알고 있기에, 나는 과거와는 다른 끝을 볼 것이다.
지금처럼 지옥도를 걷지도 않을 것이고, 실수로 소중한 것을 잃지도 않을 것이다.
얻지 못한 것들을 얻을 것이며, 잃어야 할 것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지금처럼 홀로 세상의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그때가 되면 너도 꼭 죽여주마, 이 개자식아.’
『시간의 모래시계가 뒤집힙니다.』
『초월자, 김현수는 스타트 라인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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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이 지끈거렸지만, 상관없었다.
과거로 돌아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기뻤으니까.
영화 속 정신병원의 밀실과 같은 하얀색의 방...
지금 내가 있는 이 하얀 방은 튜토리얼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머무는 장소였다.
그렇게 주변에 귀를 기울이자, 곳곳에서 당황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여기가 어디인지, 혹시 옆에 누군가가 있는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각각 다른 목적으로 당황한 채 말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까… 분명히 베타테스터에 당첨됐다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이곳으로 옮겨졌었지….’
과거의 나는 평범했었다.
지구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하지만 어느 날 베타테스터에 당첨되었다는 이상한 메시지를 받자마자 이곳, 튜토리얼 지대로 옮겨졌었다.
‘그건 그렇고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 나쁘지 않아.’
그 자식이 스타트 라인으로 돌아간다고 했지, 정확한 때는 말해주지 않았다.
솔직히 「인테그라」로의 통합 이전이나, 아카론들을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갔어도 감지덕지했지만, 그보다 더 좋은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온 상황.
‘...일단 정리부터 하자.’
단단히 준비하고 과거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기에, 지금 내 머릿속에는 기억들이 정리되어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나마 여유가 있을 때 미리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하나하나, 머릿속의 기억들을 정리하며 하얀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
시간이 지나 중구난방 했던 내 기억들의 정리가 얼추 끝나자, 사방을 가로막고 있었던 하얀 방의 벽이 허물어졌다.
그렇게 벽이 허물어지자마자 내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각각의 나라의 언어로 다시 자기 생각을 지껄이기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
‘좀 닥치고 있으면 안 되냐….’
총 2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저마다의 나라의 말로 지껄이는 건 솔직히 소음공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나는 미간을 구기며 귀를 막은 채, 지금 이 아비규환의 상황을 정리해줄 한 꼬마를 기다렸다.
그렇게 소음공해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하늘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쩌적 소리가 나며 하늘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하늘에 거울이 깨진 것처럼 생긴 거대한 균열이 생기자 횡설수설 떠들던 사람들은 그저 침묵한 체 균열을 바라본다.
‘조용하니까 한결 났네.’
그렇게 생각하며 내심 기뻐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생긴 균열에서 한 꼬마가 허공을 걸어오며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알비노에 걸린 것만 같은 모습의 꼬마가 점점 이곳을 향해 다가왔다.
그렇게 꼬마는 지상까지 걸어왔고, 걸어오자마자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가 베타테스터구나?”
앳된 소년 특유의 목소리가 이 넓은 평원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소년의 질문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이성이 마비되었기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을 터.
“내 질문에 대답해 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너희들 베타테스터 맞지?”
“베타테스터가 뭔지는 자세히 몰라도, 베타테스터에 당첨됐다는 이상한 메시지를 받고 여기로 왔는데….”
그렇게 질의응답이 끝나자, 데미안은 만족한 표정을 지은 채 모두가 볼만한 높이까지 자신의 몸을 부양시켰다.
“너희는 지금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거야. 여기가 어딘지, 네가 왜 여기로 왔는지,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등등… 너무 궁금하고 불안하고 당황스럽겠지.”
맞는 말이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메시지를 받자마자 이런 곳으로 왔다면 적잖게 당황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술렁였고, 데미안은 그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크게 박수를 쳤다.
데미안의 손에서 나는 커다란 박수 소리는 이 넓은 평원의 250명 전원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그렇게 박수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순식간에 술렁거리기를 멈추고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나는 일단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그것부터 설명해줄 건대, 진짜 중요한 일이니까 흘려듣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데미안은 작게 자신의 손가락을 튕겼다.
데미안이 손가락을 튕기자, 마치 거대한 영화관의 스크린 같은 화면이 허공에 생겨났다.
그렇게 허공에 떠오른 스크린에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재생되는 영상 속에는 지구와는 세상들의 모습이 먼저 보였고, 그 세상들을 나누던 경계가 무너져 서로 하나가 돼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모든 세상에는 이 통합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신이라는 미친1놈은 초월자를 선별하기 위해서 모든 세상을 하나로 통합시킨다.
그렇게 서서히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세상은 추후 「인테그라」라고 불리는 거대한 투기장이 된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초월자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운다.
‘개 같은 새끼….’
지금도 인테그라에서 내가 겪은 개고생들을 생각하자면 이가 갈렸다.
“통합은 세상을 구별하던 경계가 무너져, 하나의 세상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이지. 그런데 이런 통합 현상이 곧 너희가 사는 세상에도 일어날 거야. 년으로 나누자면 약 9년 뒤, 너희가 사는 세상은 다른 거대한 세상의 일부가 될 거야.”
데미안의 말은 사실이다.
앞으로 9년 뒤, 인류는 인테그라로 강제로 이주를 당한다.
“그런데 너희는 너무 약해. 다른 세상의 생물들에 비교하자면 개미보다 못하게 약해서, 아마 들어가자마자 멸종할걸? 그래서 우리의 상냥하신 신께서는 그것이 공평하지 못하다며, 너희를 강화하기로 하셨지.”
신이 상냥하다고? 그건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다.
그 자식은 개미처럼 무참히 짓밟히면 재미없으니까, 조금이라도 저항해보라고 우리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뱀이 쥐를 잡아먹는 것보다는, 고양이를 잡아먹는 게 좀 더 볼 게 많은 편이니까.
“너희는 선택받은 거야. 먼저 통합될 세상을 겪고, 너희 동족들을 강화할 발판을 만들고, 나중에 하나가 될 세상에서 동족을 이끄는 역할을 하도록 선택받은 사람들이지.”
그런 데미안의 말에 사람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저 사람들 기준으로는 영문도 모르고 이상한 곳으로 불려왔는데, 갑자기 세상이 하나가 된단다. 그런데, 그 하나가 되는 세상에는 괴물들만 있다고 하고,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류 전체를 강화하는 역할을 맡았고, 나중에는 그 인류를 이끌어야 한다고 한다.
알 수 없는 헛소리와 이해하기 어려운 개소리들의 완벽한 콜라보에, 사람들은 모두 얼이 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데미안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얼이 빠진 사람들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고?’
허허벌판 같은 평원에 앉아있는 250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뭐 어떻게 인류를 강화하나?
“그러고 두 번째.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마.”
데미안은 손가락 2개를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너희 세상에는 게임이라는 게 있지? 혹시 여기서 게임 안 해본 사람 있나? 있다면 손 좀 들어보지그래?”
데미안이 이곳에 모인 250명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지만, 그 누구도 손을 들지는 않았다.
물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1세기에 태어나서 게임 한번 안 해 본 녀석이 어딨겠는가?
“뭐, 게임 안 해본 녀석은 없는 거 같고. 그러면 설명하기 더 쉽겠네.”
데미안은 대단하다면서 작게 박수를 치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 그 게임들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지? 스킬이라는 것도 있고, 아이템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몇몇 게임들은 능력치라고 불리는 것도 있고. 그래서 신께서는 이 세 가지로 너희를 강화하고자 하셨어.”
생각할수록 웃기지만, 신은 게임 시스템을 적용해서 인류를 강화한다.
스탯, 아이템, 스킬… 이렇게 세 가지의 방법을 기본 토대로 잡고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너희의 삶은 일종의 게임이 될 거고, 너희는 그런 게임을 먼저 체험하는 베타테스터로써 선별된 거지.”
‘진짜 설명 하나 참 더럽게 기네….’
데미안이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연설의 내용은 전부 다 아는 내용이었기에, 나는 연설을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다시 꼼꼼히 기억들을 검토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바로 잡을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전생에는 정말 많은 실수를 했었고, 정말 많은 후회를 했으니까….
‘솔직히 너무 많아서… 바로 잡는 것도 일이네, 시발….’
만약에 지금 담배가 있다면 한 대 피우고 싶었다.
그만큼 고민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얻지 못한 기연부터 시작해서, 적으로 돌려버린 강자들, 거창하게 말아먹은 일까지… 이쯤 되면 인류가 멸망한 게 내 탓인 것만 같다.
‘아니야, 그때의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까 너무 책망하지 말자 현수야….’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끝내고, 내가 수많은 계획을 얼추 다 세웠어도 데미안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전할 내용이 많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자식은 말이 너무 많다.
‘그냥 빨리 스킬이나 받았으면….’
***
그렇게 시간이 지나,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말에 버금갈 정도로 길고 길었던 데미안의 연설이 끝났다.
그렇게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있었다.
아마 저들은 ‘내가 인류의 미래다’… 라는 거창한 사명을 떠안고는 굳은 결의를 맺었을 것이다.
“상태창이라고 마음속이나 입으로 말하면, 너희가 게임에서나 보던 상태창이 떠오를 거야.”
데미안이 그렇게 말하자, 나는 속으로 상태창을 말하고는 내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
이름 : 김현수
특성 : 아직 개화하지 않았습니다.
고유 스킬 : 빠른 이해력, 빠른 습득, 스킬 강화
스킬 : 아직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룬 : 백색 (0%)
+++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백지라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의 상태창이 보였다.
‘역시 변한 거는 없네.’
회귀하면서 뭔가 추가되는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 그 미친1놈은 포상 같은 건 주지 않았다.
‘뭐, 상관없어.’
물론 없어도 상관없다.
애당초 나는 과거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
“상태창을 외우듯이 인벤토리라고 외우면 새로운 창이 나타날 거야. 그러고 그 인벤토리 안에는 「일반계 베타테스터 특전」이라는 선물이 하나 있어.”
일반계 베타테스터 특전은 튜토리얼 스킬을 하나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아이템이다.
그런데 웃긴 건, 튜토리얼 스킬이라고 해서 ‘달팽이 던지기’ 이딴 걸 주는 게 아니다.
어이가 없지만 몇몇 튜토리얼 스킬들은 인테그라의 끝에 서 있는 13명의 마왕에게도 통할 정도다.
그러고, 전생의 나는 여기서 스킬을 잘못 고르고는 상당히 곤욕을 치렀다.
‘물론, 지금 그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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