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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4드론 써본거 한번 봐주셈...앱에서 작성

칠사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7.23 01: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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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위협하던 마왕은 어느덧 용사의 검에 베여 숨을 거뒀다.

용사 레오폴드, 기사 카린, 성직자 에르샤, 마법사 그레이스. 이 넷의 이름은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그럼, 일도 끝난 김에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

유쾌하게 입을 여는 용사의 입을 보자니, 그레이스는 입에서 쌍욕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저 더러운 용사 놈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만 할 뿐이다.

이유야 단순하다. 정말로 잘났던 용사는 파티원의 페이스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독불장군이었다.

그렇기에 여러 번 위기에 처했고, 늘 고난에서 그들을 구해주는 건 마법사 그레이스였다.

아카데미 때에는 그리 자주 사용하지도 않았던 공간 마법의 숙련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좆같은 새끼….’

허나 어디까지나 생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용사를 칠 명분이 없었음으로.

또한 그는 독불장군이었지만 용사였기에 그의 무모함은 사람들에게 용기로 포장되어 전해져 왔다.

그레이스 본인도 그러한 용사의 무용담을 듣고서 용사 파티의 마법사를 선발한다는 얘기에 솔깃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용사를 제외한 모두가 기진맥진한 이 상황에서도 파티원들은 용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파티에 합류한 시점부터 용사의 도구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긴급 탈출용 도구였고.’

그레이스는 혀를 쯧, 하고 차면서도 용사의 말을 따라 마법을 시작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것과는 다르게 장갑 형태인 스태프는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법진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그 때문에 평범한 스태프가 한 개의 선으로 마법진을 그리는 것과는 다르게, 다섯 개의 선으로 마법진을 그리는 장갑형 스태프는 사용 난이도가 높았다.

그런 스태프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점이 그레이스가 용사 파티에 들어갈 마법사가 되는 데에 아주 큰 공헌을 했으리라.

그레이스는 다른 마법사가 5분에 걸쳐서 그려야 할 대규모 마법진을 겨우 30초 만에 그려내고 손을 털고선, 주머니 속의 펜던트를 쥐었다.

그 순간, 마법진이 밝게 빛나더니 푸른 빛의 포탈을 만들어 냈다.

“힘들다고 실력이 없어지지는 않네?”

용사 레오폴드는 그리 말하며 그레이스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고 지나갔다.

푸른 빛의 포탈 너머로 사라지는 레오폴드의 모습을 보며 그레이스는 섬뜩한 생각을 품었다.

‘지금 닫아버린다면 다리 한 짝이라도 잘라버릴 수 있을 텐데.’

허나 어디까지나 생각으로 그쳤다. 저 용사는 팔다리가 한 짝씩 없어도 그레이스 정도는 순식간에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수고했어.”

“수고는 선배가 더 하셨죠.”

카린은 그레이스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포탈 너머로 사라졌다.

아카데미 시절 유일하게 그레이스와 면식이 있던 파티원이었다.

레오폴드는 애초에 다른 세계에서 떨어져 아카데미를 다닌 적이 없었고, 믿는 신도 없고 별로 다칠 일도 없었던 그레이스가 성직자인 에르샤를 만날 일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아는 사이인 카린에게 그레이스는 깍듯이 선배 대우를 해 주었다.

누구보다도 비인간적인 용사와 누구보다도 자애로운 에르샤 사이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상대였으니까.

“수고하셨어요.”

“성녀님도요.”

“성녀라고 하지 마세요. 그냥 성직자니까.”

실제로 에르샤는 성녀라는 칭호를 받은 적도 없었다.

다만 온갖 사태가 일어나면 무조건 출동하는 용사파티였기에, 사람들의 눈앞에서 기적을 발동시켜주는 에르샤는 사람들의 눈에 천사 혹은 성녀로 보일 수밖에.

그녀의 찰랑거리는 하얀 머리카락이 포탈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자, 그레이스는 한숨을 쉬었다.

‘마경과 현실의 시차는 대략 20배 정도.’

현실의 1분은 마경의 20분과 같다. 마경 전체에 새겨진 거대한 결계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감지할 수 있는 건 마법사인 그레이스와 성직자인 에르샤 뿐이며, 이를 해체할 수 있는 건 그레이스뿐이었다.

‘결계의 핵인 마왕이 사라지면서 결계가 불안정해졌어.’

눈에 마력을 서서히 입히자 결계의 정확한 내부 구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인 없이 날뛰는 결계는 곧장 사라지겠지만, 어디까지나 핵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그레이스는 품속에 넣어 두었던 보석을 하나 꺼냈다.

용사가 흑룡을 한 번에 베어내고 난 뒤에 그레이스가 몰래 뽑은 것이다.

‘용이라는 존재들은 대부분 마력 덩어리이며 그 중심이자 머리에 막힌 보석은 최상급 중에서도 최상급인 마석이다.’

아카데미 마법학부 시절에 지겹도록 외웠던 사실이었다.

어디까지나 마법학부만 배웠던 사실이었다. 애초에 머리의 마석은 약점도 아니었으니까 검술학부가 배울 이유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건 파티원 중에서는 그레이스 뿐이었다.

‘결계의 핵을 이 마석으로 대체하면….’

약간의 가설로 시작했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마왕만큼이나 마력의 향이 높았던 흑룡의 보석은 성공적으로 결계의 핵이 되었다.

무생물이 핵인 결계를 조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시차를 40배까지 늘린 그레이스는 손을 풀었다.

우두둑, 하며 뼈를 꺾는소리와 함께, 그레이스는 다시 마왕의 시체에 다가갔다.

명치를 검에 찔리고 목이 베였다. 눈조차 못하고 죽은 마왕의 목이 눈에 들어왔다.

“쯧.”

죽은 여인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는 건 거부감이 상당하기에 그레이스는 빈 포션병을 꺼내 빠르게 마왕의 피를 마법으로 모았다.

포션 병 하나를 꽉 채우고 나서야, 그레이스는 등을 돌려 포탈로 향했다.

문득 마왕의 모습이 눈에 밟히긴 했지만 애써 무시한 채로, 그레이스는 결계를 닫는 것과 동시에 포탈에 들어갔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포탈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레오폴드의 질책이었다.

“결계 닫느라.”

카린은 질책 받는 그레이스의 모습을 애써 무시했고, 에르샤는 안절부절못했다.

대답 이외의 반응이 없던 그레이스의 모습에 살짝 눈살을 찌푸린 레오폴드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제가 진짜 늦게 나왔어요?”

“아니. 우리랑 비슷했어.”

“그럼 쟤는 저한테 왜 저래요?”

“모르지. 하루 이틀 저랬던 게 아니잖아?

위로받는 그레이스의 눈에 포탈의 목적지이자 여전히 진을 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나는데도 어째서인지 그레이스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가죠.”

“네, 네!”

당황한 티가 물씬 나는 에르샤의 말과 함께 남은 파티원들은 막사로 향했다.

* * *

“내가 모가지를 딱! 비틀어버리니까 마족들이 으악! 하면서 도망갔다니까?”

“하하하!”

병사들은 이미 마족을 벤 무용담을 떠들기에 바빴다.

비록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온갖 성직자들이 달라붙어 그들을 치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면서도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휴식과 안정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성직자들도 포기했는지 이미 그들 사이에 끼어 술잔을 맞부딪히고 있던 판국이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아이러니한 존재라고 하면 바로 용사 레오폴드일 터였다.

“칼 한번 이렇게 휘두르니까!”

마왕 목이 바로 날아갔더라, 하며 레오폴드는 누구보다도 역동적인 자세로 무용담을 풀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병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며 착각할 정도의 친화력을 보여주는 그 모습과는 달리 다른 파티원들은 그 무리를 겉돌고 있었다.

말없이 술만 들이키는 카린과 그레이스를 보며 애가 타는 건 에르샤였다.

“그…. 저기요…?”

말없이 연거푸 세 잔째를 들이키려는 도중, 에르샤의 말에 둘이 술잔을 멈췄다.

카린과 그레이스는 잠시 눈빛으로 대화하더니, 이내 말을 꺼내는 건 카린이었다.

“…이제 뭐 할 거야?”

“돌아가야죠. 루이나도 보러 가고.”

“루이나…. 그 고향 소꿉친구 말하는 거지?”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는 그녀와 결혼을 약속할 정도로  사랑한다며 이미 여러 번 말했었다.

그 증거로 그레이스는 펜던트를 보였다. 루이나와 함께 맞추었다는 펜던트는 그리 고급품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아꼈는지 손때가 타 있었다.

미묘하게 아쉬워하는 카린의 모습과 이유 모를 씁쓸함에 잠긴 그레이스와는 달리, 이 대화에서 제일 안심하고 있는 사람은 에르샤이리라.

“에르샤는?”

“저, 저는…. 어…. 교단으로 다시 돌아가야죠? 아니면 아카데미?”

정작 본인이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는지 어버버하는 그 모습에 카린과 그레이스는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선배는요?”

“….”

“아카데미…가실 겁니까? 동생도 있잖아요.”

“글쎄….”

애써 고개를 숙이며 그레이스의 시선을 피하는 카린의 모습을 보며, 분위기의 미묘함을 느끼는 건 에르샤 뿐이었다.

마치,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패배한 여인의 모습 같지 않은가.

“…아마도 그래야겠지?”

어둑한 눈빛을 순식간에 숨긴 그녀는 살짝 웃어 보였다.

그레이스는 다시 술잔을 들이키며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레이스 있습니까?”

누군가 자신을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떠들썩한 분위기를 한순간에 정적으로 만든 병사는 이상한 눈초리에 당황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다시 그레이스를 찾으려던 그를 그레이스가 직접 나서서 제지했다.

손짓 한 번으로 병사들에게 상황을 파악할 단서를 주고는 자신을 찾던 병사에게 다가갔다.

병사들은 언제 조용했냐는 듯 다시금 떠들썩해졌지만, 그레이스는 한층 더 어두워진 표정으로 병사에게 다가갔다.

그레이스에게는 가족이 없었기에 편지를 보낼 만한 사람은 오직 루이나뿐이었다.

“그…. 황궁에서 온 소식입니다.”

“황궁에서요?”

“예.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고 그레이스라는 사람에게만….”

“편지나 뭐, 전갈 같은 것도 없습니까? 그냥 말로만?”

“전보로 온 소식이어서 그렇습니다.”

하여간 공돌이 새끼들이란, 하며 짜증을 삭히던 그레이스가 병사를 재촉했다.

“뭐 때문에 그렇답니까?”

“…직접 신변 보호를 요청하신 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 성함이 루이나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마왕군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랐기에 혹시 몰라 루이나의 신변 보호를 요청했던 그레이스였다.

병사가 차마 입을 열고 말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레이스는 불안감에 초조해졌다.

“…죽었다고 합니다.”

“….”

“…충격이 크시겠지만-”

“뭐로.”

“예?”

“뭐로 죽었습니까? 타살이면 무기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무기가 아니면 독? 아니면 병? 대체 뭐로 죽었다는 겁니까?”

“그…저도 들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레이스의 눈은 병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병사가 보인 콧등을 가볍게 긁는 행동은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었으니까.

그레이스는 그런 병사를 협박할 용도로 마법진을 그렸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마법진을 병사의 코앞에 들이밀자, 당황한 병사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에 따라 앞으로 나가는 그레이스의 눈은 독기를 품고 있었다.

“뭐로, 죽었냐니까?”

“….”

“말 안 하면….”

“자살! 자살입니다….”

“…왜?”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뜸 들이는 병사의 멱살을 잡고는 마법진을 목에 들이밀었다.

“본론만 말해.”

“지, 지, 진짜로 모릅니다. 저도 자살했다는 소식까지만 들어서….”

멱살을 쥔 손을 내려놓자 병사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얼굴을 양손으로 몇 번을 쓸어내린 그레이스는 결심하여 다시 한번 마법진을 그렸다.

포탈 마법진이 다시 한번 생겨나자, 그레이스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입구에서 그를 바라보던 카린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 * *

“어떻게 된 겁니까?”

갑작스럽게 황궁 귀빈 숙소에 나타난 그레이스를 다그치는 이는 없었다.

용사 파티란 그 자체로 황궁의 위세를 나타내는 도구였으며 그 때문에 그레이스는 일반 병사가 어찌할 수 없는 귀빈이었으니까.

다만 그들은 기록 마법으로 필름에 사건 현장을 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레이스. 조금 진정하는 게 어떤가?”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그레이스는 말을 꺼낸 기사단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 어느 때보다도 침착합니다.”

덜컹거리며 숙소의 창문이 흔들리는 건 그때의 일이었다. 그의 손은 주머니 속에서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제가 이보다 침착하지 못했다면 무슨 일을 벌였을지 모르겠군요.”

기사단장 베른슈타인은 한숨을 쉬었다.

분명 마법사이기에 근접전은 베른슈타인이 우위를 점할 것이다.

다만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마법사가 일으킬 수 있는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베른슈타인이었다.

그는 용사 파티보다도 많은 전투를 치뤄왔던 베테랑이기에.

“일단 진정하고. 그런다고 나아지는 건 없지 않은가?”

“….”

“일단 차나 한잔 하자고.”

“…지금 차를 한다면 구역질에 몸을 가눌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는 중의적인 말이었다. 상황의 심각함으로 인한 제 긴장감을 표현할뿐더러, 루이나의 사인이 독살일 가능성을 아직도 염두하고 있었으니.

베른슈타인은 사람을 대하는 것도 노련했기에 그 말뜻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래. 그럼 차는 물리도록 하겠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는 반어적 표현이었다. 그레이스는 베른슈타인에게 왜 자신을 이해하지 못 해주냐며 따지는 것이다.

베른슈타인은 이 사실을 당연하게 눈치채면서도 그토록 예의 바르던 그레이스가 정말로 화가 났을 때는 이런 식으로 화를 낸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야, 그레이스가 용사파티의 마법사로 일하면서 생긴 온갖 불만은 용사를 향했을 뿐 다른 이를 향하지 않았으니까.

“일단 사건 현장에서는 좀 나와 주겠나?”

“….”

그레이스는 말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그의 몸이 완전히 빠져나오자 베른슈타인은 한숨을 쉬었다.

나오자마자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그레이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우리도 미안하네. 하지만 정말 뭐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그 말,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책임지겠네. 귀빈 숙소에서는 방마다 전담 메이드가 최소 한 명은 붙어 있지만 마음대로 방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네.”

“….”

그레이스의 머릿속에서 대략적인 상황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없던 까닭에 이상함을 눈치챈 메이드가 무례를 무릅쓰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있던 루이나의 시체를 발견했을 것이다.

“사인은 정확히 뭡니까? 자살이라고 전부 똑같이 자살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베른슈타인은 제 오른 손목을 들어 올리고 왼손으로 손목을 긋는 시늉을 하였다.

“숙소에 나이프가….”

“나이프가 아니네. 마법이었지.”

마법이었다는 그 소리에, 그레이스의 눈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조금 전에도 눈에 화가 가득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무슨 일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단 진정하고….”

“…자꾸 진정하라고 하시면 정말 진정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베른슈타인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하는 시늉을 했다가 손을 내렸다.

그레이스의 감정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을 보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그레이스는 곧바로 발길을 돌려 숙소 내부로 들어갔다.

눈앞에 보이는 건 여전히 현장을 기록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으면서도 병사들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성큼성큼 걷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그가 어떤 인간인지 보여주는 듯했다.

그레이스의 걸음이 멈춘 건 침대 위의 핏자국이다.

분명히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손목을 그어야 생길 만한 핏자국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그레이스는 입술을 깨물며 마법진을 그렸다.

포탈을 열 때보다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마법진이 그의 손끝에서 생겨났다.

그레이스가 그 손을 핏자국에 살며시 올리자, 마력의 실이 뻗어나가며 방 전체를 감쌌다.

묵묵히 사건 현장을 기록하던 병사들이 당황할 정도로 장엄한 마법이었다.

마법진에서 뻗어나간 푸른 실은 곧 방 전체를 스캔하는 듯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끝난 푸른 실은 그레이스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했다.

“루이나의 흔적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움직이는 푸른 실은 핏자국의 살짝 옆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카펫을 만드는 공정을 연상시킬 정도로 엮이고 엮이는 마력의 실들은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나서야 움직임을 멎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그레이스는 마법진을 그리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푸른 실이 만들어낸 인형은 오른쪽 손목에 칼자국을 낸 채 잠든 듯 누운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눈물을 참는 것 같았던 인형의 모습은 병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것이 정말 그 죽음에 연민을 품어서 그러한지, 이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자신들이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잠시 가만히 서서 얼굴을 연신 쓸던 그레이스는 주변에 있던 의자를 하나 꺼내 걸터앉았다.

그는 아직도 마법진이 올라온 손을 살짝 돌려 인형을 움직였다.

인형은 그레이스의 의지대로가 아닌 그 형상의 주인이 생전 취했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

시간이 되감기듯 움직이는 인형의 모습은 어느새 쓰러지듯 누워 있던 모습에서 침대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변화했다.

퀭한 눈빛의 그레이스는 남은 손가락을 움직여 새로운 마법을 걸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베른슈타인은 마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밀실 회담이 불가할 때 마탑주가 임기응변으로 사용하던 방법이었던 음성 교란 마법이었으니.

인형이 연신 입을 움직였지만,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듯 움직이는 인형의 말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레이스는 가만히 기다리며 계속해서 마법진을 기울였다.

침대 위에 막 걸터앉았을 때의 모습이 되자, 그레이스의 손이 반대로 기울어졌다.

[어…. 안녕, 그레이스?]

사랑하던 그녀의 모습을 띤 인형이 말하는 모습을 그레이스는 표정 없이 쳐다보았다.

얼마 전까지 울고 있었는지 그녀의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차피 내가 유서를 남겨도 너가 볼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너를 믿고 이런 식으로 말하기로 했어. 너는 예전에도 기록 형상화 마법이라면서 보여줬었잖아?]

기록 형상화 마법이라는 말에 그레이스는 인형의 모습이 루이나의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기록 형상화 마법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오로지 루이나에게만 알려 주었으니.

비록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어도 음성 교란 마법에 의해 병사들은 그 이름을 듣지 못했다.

[…아 잠시만. 눈물이 다 나오네. 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지?]

그레이스의 굳은 얼굴이 살짝 변하기 시작한 건 그때의 일이었다.

[나, 그레이스한테 너무 고마워. 어…. 솔직히 말해서, 난 너가 없었으면 내가 여전히 거지꼴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전혀 아니라고, 내가 없었다면 너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며 말하는 듯한 표정이, 그레이스의 얼굴에 올라왔다.

[음…. 그래서 처음으로 귀족들만 들어가는 줄 알았던 아카데미에도 입학해보고…용사 파티 기사가 되는 분하고도 말해보고…. 또…]

그레이스는 더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떨군 채 여전히 그 목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다.

[…처음으로 황궁 귀빈 숙소라는 데에도 있어 보고, 또…]

푸른색의 인형은 더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한 번 훌쩍이고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황궁에서 명령이 내려왔대. 내가 용사의 보상이라면서, 용사의 아내가 되라면서]

주먹을 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탓에 음성 교란 마법의 마법진이 깨져 버렸다.

[그레이스는 알고 있었어?]

뭐를, 대체 뭐를 알고 있다는 건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대체 뭐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대체 어떻게 알겠어.

그레이스는 억지로 말을 삼켰다. 어차피 부질없는 짓임을 알기에.

[용사 파티는 그사이가 돈독하나 유독 용사와 마법사 사이의 불화가 돋보인다…. 이에 용사가 마법사의 친구 루이나와의 결혼을 보상으로 요청했다…]

숨죽인 그레이스도, 인형의 목소리를 듣던 병사들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베른슈타인도 침묵했다.

[나, 그레이스를 믿어. 그레이스가 그랬을 리는 없다고 생각해. 내 말 맞지?]

그레이스가 고개를 들자 붉게 충혈된 눈이 드러났다.

눈물을 참는 게 아닌, 눈물이 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를 대신해 울어주듯, 연신 푸른 빛의 눈물을 흘리는 인형이 있었기에.

자기가 대신 울어줄 테니 다시는 울지 말라며 말해주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기에.

[난 그레이스를 믿어…. 그래도 황궁의 말은 거스를 수가 없더라고…]

인형은 허리를 앞으로 조금 숙여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오로지 루이나와 그녀가 입은 옷가지만을 복구해낸 까닭에, 그녀가 무엇을 쥐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한숨을 쉰 채 손에 쥔 그 물건에 힘을 불어넣었다.

형태가 보이지 않는 물건에서 하얀빛이 검의 형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는 검술학부 출신인 그녀의 오러였다. 오러가 검의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실력자였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루이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약간의 심호흡 뒤에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랑해. 그레이스]

결단한 그녀의 검이 손목을 그어 선홍색 꽃잎을 흩뿌렸다.

꽃잎은 살며시 내려가 그레이스가 처음에 마법진을 가져다 댄 곳에 떨어졌다.

[그리고 살아. 그레이스. 나 같은 건 잊고…]

쓰러지듯 누운 그녀는 그대로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것이다. 즉, 손아귀의 힘이 사라져 손에 든 물건이 떨어졌으리라.

그레이스는 떨리는 손으로 침대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내 손에 잡힌 무언가의 정체가 드러나자 그의 마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때 가득한 그의 펜던트와 같은, 마찬가지로 손때 가득한 펜던트가, 그레이스의 손에 들려 있었다.

두 펜던트를 품에 꼭 안은 그레이스의 두 눈에는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을 영원이 담겼다.

이제 더는 그녀가, 사랑하는 여인이, 루이나가 담을 수 없는 생명이, 감정이, 투명한 눈물 너머의 그레이스의 눈에 지워지지 않을, 사람들이 낭만을 담아 사랑이라고 일컫는 고통스러운 낙인이 새겨졌다.

침대 위의 인형은 푸른 빛이 되어 서서히 사라져만 갔다.

그레이스는 그 빛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저 펜던트를 품에 안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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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분량이긴 한데 귀찮으면 그냥 한 화에 올려버릴거고

이 뒤에 회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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