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색채

  직업상으로 말하자면, 정연은 시간강사다. 그녀의 수입 대부분은 강의와 프랑스 문학 번역에서 나온다. 전공은 서양근대문학이고 대학원은 파리 제3대학을 졸업했는데, 평범한 서민 가정 출신으로서 쉽게 택할 만한 길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길 바라던 엄마의 헌신 덕에 겨우 학비와 생활비를 댈 수 있었다.

  직업을 제외하고 나면 정연의 삶은 아주 단순해진다. 여행이나 스포츠같은 활동적인 취미는 없고, 이따금 남자친구와 모텔에서 자지만 더이상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섹스에 대한 관점에 있어, 그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정신분석적인 촌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섹스는 사랑의 패러디이다.'

  하긴 비단 연애에 대한 것뿐만은 아니다. 정연은 자기 내면에서 불씨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요컨대 어떤 종류의명백한 열정, 문장 하나의 해독에 영혼과 운명을 거는 그런 열정은 이미 소진되고 말았다. 그녀의 삶은 이때까지 단순했고앞으로는 더 단순해질 것이다. 사랑에 이어 섹스까지 끝장나고 나면 그녀는 외톨이가 될 것이다. 아마 매일 아침 혼자 일어나 매 끼마다 혼자 밥을 먹겠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몸무게가 늘어나거나 죽기 직전까지 비쩍 마를지도 모른다.

  일요일 오후,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도 정연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장례식장에 보내야 할 조화가 있다며, 자기 대신 식물원에 가서 받아줄 것을 부탁했다. 배달시키면 되지 왜, 하고 툭 내뱉자 받아가기로 예약해둬서 그럴 수 없다고. 그녀는 짜증을 내면서도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남자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누군가를 위해서.

  바깥은 끔찍하게 더운 여름이다. 볕은 무던하다기보다도 차라리 작열한다는 말이 어울린다.



먼가... 먼가

장르를 쓸 수 업는 뇌가 되어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