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전력으로 월급루팡을 하고 싶어! 0.01편

야리진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8 14:19:18
조회 74 추천 0 댓글 3



이 이야기는 픽션이며 실존하는 인물, 지역, 단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

 

 

 나는 디씨 퇴물이다. 겜안분이다. 핑거프린세스다.

 내 삶에 의욕이라는 것은 없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취미마저 직구금지라는 명목으로 박탈당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만화와 소설도 안 보게 된지 오래.

 사람답게 살고자 꿈꾸며, 어린이들의 행복을 위해 일 해보겠다는 노력 또한 어린아이라는 존재가 소멸해가는 국가 덕분에 물거품.

 일자리가 없어 손에 들고 있는 낡은 자격증 몇 개 들고 휘청이듯 길바닥을 떠돈 끝에 도착한 곳이라는 곳이, 딱히 수당도 없이 주말에 당직근무까지 시키는 집앞 상점가의 중소규모 병원이라는 곳이다.

 병원의 사무국장-이라고 하면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고 그냥 그 사람들이 하기 귀찮은 업무를 대신 떠맡아 처리하는 서류작성 기계일뿐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의욕이라는 것이 생길 리가 없지. 토요일 근무 서는 내내 의미없는 웹서핑만 반복하며 (어쩌면 이제는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내가 직구했던 미니어처들을 바라보며 한 줄기 눈물을 흘릴뿐인 무기력한 직장인이라는 거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다.

 나에게도 열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쓸데없는 떡밥에 열을 올리며 말도 안되는 논리로 댓글을 달아대던 시절이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안좋게 보든 어그로 취급하든 저능아 취급하든 상관 없고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이는 고집이 있었고, 아무튼 하루에 7연x를 하더라도 유유코의 나풀거리는 기모노자락 한 번만 보면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열렬한 오타쿠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없다. 아무것도.

 이 자리에 앉아 무표정하게 서류를 작성하는, 타다 남은 오타쿠의 잔재뿐.

 

 사람이란 이렇게 늙어가는 것인다.

 누군가는 철들었다고 말한다지만.

 

 "그리고 철이 들든 말든, 주말에 사무실에 혼자 있는 것 자체가 심심하다고."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다.

 책상 위 여기저기에 정신없이 쌓여있는 서류에는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다.

 이런 날도 있는 법이다.

 아무런 의욕도 셈솟지 않는, 적막한 오후와 같이.

 

 "......"

 

 그대로 눈을 감는다.

 어차피 나를 보러 올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고작 하루 정도의 일탈도 괜찮지 않겠는가.

 어차피 난 이 직장에서 필수인력이 아니고, 환자는 의사랑 간호사들이 열심히하면 어떻게든 된다.

 그렇다면 모처럼 맞이한 이 사고도 없이 평온한 주말, 부족한 수면이라도 보충하며 내일의 무기력한 삶에 보태도록 하자...

 

 

2.

 

 

 눈을 떴다.

 그러고보니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던가.

 반곱슬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뺨을 간질였다.

 지금이 몇 시지? 이제 퇴근시간은 지났나?

 아무리 월급루팡을 하더라도 어제 입원한 환자들의 서류는 처리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지.

 어차피 루팡하고 있는 것 야근을 찍어서 원장의 등골이나 더 빨아먹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 머릿속에 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화나겠지. 분노하겠지. 이렇게 게으른 직원을 본 고용주가 응당 지어야 할 얼굴이 떠오른다.

 그야말로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흠. 그런가.

 원장님께서는 의외로, 이렇게까지 대놓고 월급루팡하는 직원을 보면 언뜻 당황하실지도 모르겠군.....이 아니라!

 

 "으악 씨발!"

 

 튕겨내듯 몸을 일으켰다.

 왼 손이 자연스럽게 키보드로 옮겨진 건 그 동안 수도 없이 딴 짓을 해왔던 경험의 잔재.

 신속으로 알트탭키를 눌러 엑셀을 띄우며, 나는 요동치는 동공을 진정시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원장님. 나오셨나요!"

 "너 뭐냐?"

 

 훤하고 밝은 대머리와는 반대로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한, 그냥 아주 쉽게 삐지고 쉽게 화나기가 세 살짜리 꼬맹이보다도 쉬운 나의 개같이 사랑스러운 상사님께서 늘 하던 질문을 던진다.

 이럴 때는 내가 하던 일을 대충 읊어대면서 빠져나가면 되는데, 아뿔싸.

 오늘 존나 아무 일도 안했다.

 출근 즉시 네이버 웹툰만 보면서 전력으로 월급루팡했다.

 

 "뭐, 뭐긴요!"

 

 병원장 가라사대. 원래 나처럼 경력이 부족한 사람을 국장으로 앉힐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굳이 나를 이 자리에 앉혀놓은 것은 그야말로 온갖 개소리도 그럴싸하게 들리도록 만들었던, 면접에서 보여줬던 희대의 혀놀림 때문.

 세치 혓바닥 하나로 지역 병원의 no.2가 된 인물답게, 나의 혀는 그야말로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욕설 한 두 번 자연스럽게 먹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다.

 

 "원장님께서 채용하신 사무국장이죠. 지금 휴식 중이었고. 그 전에는 입원자 서류 정리 중이었고요. 간호사들 근무표 좀 확인하는데 효진이가 갑자기 휴가를 쓴다지 뭐예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 날 인력은 채워두려고 미경선생님한테 전화했는데요. 지금 답변 기다리는 중이거든요? 살짝 눈을 붙이다는 게..."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 내 병원인데."

 

 내 고용주는, 지금까지 내가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야말로 분노를 넘어 의심, 내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만 같은 눈빛으로 물었다.

 

 "당신 대체 누구냐고."

 

 그제야, 내 목덜미를 간지럽히던 머리카락의 존재가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기운에 삐걱거리던 뇌세포가 정상가동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며, 책상 한 구석 (원장이 들어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백미러의 용도로 설치한) 손 거울 속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깨 위까지 흘러내리는 반곱슬 머리카락을 지닌, 아마 길거리에서 봤다면 최소한 5초 정도는 나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째깍째깍.

 아무런 사고도 없이 흘러갈 것만 같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무료한 주말의 시간이,

 그야말로 미친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공지 판타지 갤러리 이용 안내 [215/1] 운영자 21.09.02 31264 35
5973377 근데.나무위키 무직전생 문서 진짜 개지랄낫엇더라 alemb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0 4 0
5973376 한남재기 이거 jtbc에서 물 것 같음 그림먼저본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0 0 0
5973375 노벨쨩 몸 좀 멀쩡함? [5] 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9 12 0
5973374 예전에 어떤 작가가 만든 속성 표 다시 보고 싶음 ㄹㅇ 아니오아니오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9 9 0
5973373 감평해줄 사람 구함 [1] 용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9 8 0
5973372 급양 차출나가서 임마들하는거 똑같이 일해본적은 몇번있음 [4] 24생공김정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8 16 0
5973371 무직전생 긍정적 평가 뭐고 ㅋㅋㅋ [8] 유동성까마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7 19 0
5973370 고오쓰하다가 전설모드해볼까싶어서 PSN계정으로 오랜만에 로그인햇더니 D5C서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7 6 0
5973369 노벨피아 챌린지 제목 대한민국의 안락사 어떰 [1] 오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0 0
5973368 모든 속성이라햇을때 모든이 어느정도의 범위인지가 중요한 [4] D5C서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9 0
5973367 이동음표지좀꼴림 우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5 14 0
5973366 영어 단어는 왤케 ㅈ같냐....... 김도연24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5 4 0
5973365 와 이 프라모델 짱깨산치고 되게괜찮네 삐리릭빠바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5 0
5973364 우우... 퓌부이... [6] 피채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3 22 0
5973363 모든 속성의 하급 재능 vs 한 가지 속성의 상급 재능 [8] 아니오아니오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3 33 0
5973362 저이부대 급양 간부식당바깨안써서 만난적이 엄슴 뇽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3 5 0
5973361 이리 캐릭터 나무위키에 스캇 얘기 쳐써넣는 새끼 징하네 진짜 [3] 구르미엄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2 26 0
5973360 아 나 대남이라는 단어만보면 왤케웃기냐 고햐쿠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2 9 0
5973359 짬밥도 잘 만들면 맛있다(진실) ㆁ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2 4 0
5973358 한남 재기 감정조종 심하네 [3] 오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0 22 0
5973357 난진짜 단체생활 적응못하는타입이라 군대갔으면 사고났을듯 고햐쿠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9 11 0
5973356 포케로그 때문에 개망했음 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8 15 0
5973355 군대밥은 근데 취사병이 만드는 거라서 [3] alemb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7 31 0
5973354 저 여자 소개 좀 아무나 다 가능함 [4] 오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7 20 0
5973353 비밀감정쓰레기통구함 [5] 고햐쿠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6 20 0
5973352 다카라~와타시 [1] 나는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6 8 0
5973350 [남녀역전] 10일 후 따먹히는 남역작가.TXT [6] 용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4 48 0
5973349 급양 << 어차피 끌려온거 일안해도 알빠노 하는거 ㅇㅋ 24생공김정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4 29 0
5973348 걸밴크 빈상자는 진짜 언제 들어도 힐링이 되네 [2] 그림먼저본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4 13 0
5973347 으흐흐 우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3 7 0
5973346 근데 행정장교 하면서 군수처랑 일해보니까 군대짬밥 고충이 [4] 그림먼저본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2 28 0
5973345 박화애 가사 보고 걍 패배선언함 고햐쿠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2 11 0
5973344 저도 독신인데 여소 좀 부탁드립니다 [2] 루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2 18 0
5973342 한번씩 생각나는 중갤 여초딩 괴담... [2] 게임애호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9 35 0
5973341 쌍니은아 너 멸튜버 유지하고 대신 저그 사랑개 해라 유동성까마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8 12 0
5973340 전역 안시켜주나 뇽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8 5 0
5973339 Bts도 전역하는데 나는 언제 전역하냐... [4] 해연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6 28 0
5973338 자야하나 깨야하나 구분이 안되네 STG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6 7 0
5973337 비밀친구구함 [3] 우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5 23 0
5973336 근데 난 군대에서 우유를 너무 많이 먹은듯 [5] alemb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5 29 0
5973335 박화애 이사람 나랑 가사쓰는 스타일이 비슷한데 고햐쿠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4 12 0
5973334 근데 펍 가서 독신이라고 하니 사장님한테 일장연설을 듣긴함 [16] 뭬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4 82 0
5973332 근데 최근에 군대 다녀온 사람 잇냐 [6] alemb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3 32 0
5973331 마음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우주멍멍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3 6 0
5973330 당신은 이 고양이에게 살해당할수도 있습니다 [5] 나는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2 32 0
5973329 내가 한남재기 볼생각이 안드는게 군대를 안가서그러나 [3] 고햐쿠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2 24 0
5973326 진짜어지러워서멀미약찾는중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1 8 0
5973325 ㄴ음 근데 맞는말이긴 하네.. 고햐쿠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0 4 0
5973324 본인특) 화생방정비병이었는데 [1] 수구사응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39 22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