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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명 팬픽) 모스크바의 혁명

TS좋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12 14: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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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모스크바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벨카, 그렇게 서둘러 가시면 안돼요! 뭐가 있을 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요!”

 

 와웅!”

 

 내 말을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벨카는 복스러운 꼬리를 요리조리 흔들며 잔해 더미 사이를 지나갔다. 그 모습이 걱정돼서 얼른 뒤따라가보지만, 정작 벨카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잘만 뛰어갔다.

 

 깨어져 나간 거리의 유리창, 흉하게 찌그러져 쓰러진 레닌 동상, 그리고아직도 남아있는 거리의 핏자국들까지.

 

 불과 몇 달 전에 있었던 참극의 흔적이 아직도 자신의 흔적을 기억해달라는 듯이 거리 곳곳에 서려 있는 게 보였다.

 

 흐윽, 휴우우정말이지 벨카, 그렇게 뛰어가셔도 뭐가 있을 지는 모르는?”

 

 와앙! 와웅!”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벨카, 그런 벨카가 안내한 곳은 이 혼란 속에서도 비교적 멀쩡하게 남아있는 식료품 상점이었다. 아무래도 잔해들 사이에 가려지고 구석진 골목에 있어서 폭도들의 눈에 안 띄었던 것 같았다.

 

 벨카대단하네요…”

 

 등에 매단 묵직한 모신나강 소총을 조심스럽게 손에 들어 올린다. 겉으로 보기에 다른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고, 벨카도 특별한 반응은 없었지만, 그래도 만일의 사태라는 게 있다.

 

 총알이 별로 남지 않은 데다가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큰일나니까 조심해야겠어요. 그렇죠 벨카?”

 

 와우웅…!”

 

 후후 벨카씩씩한 모습이 보기 좋네요. 안에서도 저를 지켜주는 거, 부탁할게요?”

 

 자신을 믿으라는 듯이 당차게 꼬리를 흔드는 벨카의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알레스칸 말라뮤트 특유의 덩치와 북슬북슬한 털 때문에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벨카는 정말 훌륭한 친구다.

 

 내 말을 다 알아먹는 건지는 몰라도 뭘 시키든 척척 따라준다. 어쩔 때는 사람보다도 더 똑똑하다. 정찰, 사주 경계, 야간 보초 그 어느 것도 벨카만 있으면 안심이 된다.

 

 게다가 껴안고 같이 자면 또 얼마나 따뜻한 지! 슬슬 날씨가 추워지는 모스크바에서 안심하고 뗄 장작도 부족한 지금의 상황 속에서는 벨카만큼 좋은 담요가 없었다.

 

 그런 믿음직스러운 벨카가 내 앞으로 1미터 정도 선행을 한다. 벨카의 예민한 코와 귀는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적도 예리하게 감지해서 나에게 경보를 해줄 수 있다.

 

 식료품점은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은 모습이 다른 건물들과 비교했을 때 이질적이었다. 8월의 쿠데타와 9월의 격렬했던 인민 항쟁 동안 멀쩡했던 건물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곳은 정말 깨끗하다.

 

 레닌부르크로 도망간 반란군이 이꼴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자기네들이 벌인 쿠데타가 비교적 떳떳했다고 지하에 파묻힌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자랑이나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겉면이 깨끗하다고 속까지 깨끗하다는 법은 없는 법, 몇 달 동안 청소조차 되지 않아 먼지가 부옇게 끼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컴컴한 식료품점은 어딘가 썩는 냄새가 아련하게 풍겨왔다.

 

 으윽, 채소들은그럴 만하죠.”

 

 채소와 유제품, 이 두가지는 내전이 벌어지고 모스크바 시민 대다수가 별장으로 도망간 이후로 구경조차 못 하는 물건들이었다. 간혹 가다 있는 탈지분유가 아닌 이상은 손대기도 싫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당연하지만 내 목표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상태가 온전한 통조림을 원할 뿐이다. 은신처에 여유분이 꽤 있기는 하지만, 이 내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니 만약을 항상 대비해야 했다.

 

 어제 들었던 단파 라디오에서는 미국이며 서방권의 국가들이 무슨 결의안을 선포했다고 했다. 아무나 좋으니 빨리 이곳으로 와서 나와 벨카를 구해주기만 하면 좋을 텐데.

 

 부질없는 생각은 여기까지다. 드디어 통조림 코너를 발견했다. 보르시 통조림, 쌀로 통조림, 연어 통조림일단 보이는 건 모두 가방에 챙겨 넣는다.

 

 가방 바닥에 얼마 안 남아 있는 7.62mm 탄약이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부터는 이 위에 응급용 붕대라도 얹어서 소리를 조금 줄일 필요가 있겠다.

 

 다된 것 같네요 벨카. 이정도면 벨카랑 저랑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와웅! !”

 

 개사료 포대까지 용케 찾아내서 질질 끌어온 벨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벨카의 몸에 둘러놓은 벨크로테이프에 잘 고정되게 묶었다. 졸지에 방탄복 비슷한 게 생긴 꼴이됐다.

 

 내가 맨 가방의 통조림도 정말 무겁지만, 이걸 버티고 돌아가야 오랫동안 안전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가려고 하는 그때였다.

 

 크르르릉…”

 

 벨카…?”

 

 갑자기 벨카가 상점 뒷문을 향해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보통 조짐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벨카는 나에게 경고를 하려는 듯이 짧게 으르렁거리기만 하고는 소리를 죽인 채 경계태세를 잡았다. 누군가 들어오기만 하면 바로 덮치려는 듯이 사납게 털이 곤두 선 상태였다.

 

 나도 침을 꿀꺽 삼키며 총을 들었다. 총소리가 나면 귀찮아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묵직한 모신나강을 뒷문에 겨누고,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얹은 채로 조용히, 살며시 걸어갔다.

 

 과연 뒷문에는 누군가 가까이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식은땀이 절로 흐르고,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쩌면 여기서 누군가를 죽일 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내 몸을 굳게 만들었다.

 

 총을 겨누고, 가만히 있었다. 정말 누군가 들어오면 바로 쏴버릴 수 있게 준비한 채로. 그리고 그때였다.

 

 똑똑똑

 

 거기 혹시누구 있나요?”

 

 떨리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 나와 동갑 나잇대의 어린 학생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목소리기도 했고.

 

 에르네스트…?”

 

 잠깐, 이게 무슨타티아나?”

 

 순식간에 문이 열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는, 오랜 내전으로 꼬질꼬질해지기는 했어도 얼굴만은 익숙한 내 친구, 에르네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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