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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도카이도 신칸센은?
도카이도 신칸센이 1964년 10월 1일(쇼와 39년)에 개통하고 그게 전후 일본 부흥의 상징인 것은 맞음. 어디선가 이런 사진 본 적 있을거임. 아타미 지나서 미시마 ~ 시즈오카 구간에서 저런 모습을 볼 수 있지. 각설하고 이 글에선 도카이도 신칸센에 대해 알아볼거임. 59년 전에 개통한 노선임. 1964 도쿄올림픽 개막 사흘 전에. 건설비가 당초 예상의 3배가 깨짐. 이유는 터널 뚫는데 별 희한한 일이 많아서. 이전에도 "신칸센" 계획은 있었음. 바야흐로 일본이 미국을 치기 이전 도쿄에서 출발해서 후쿠오카까지 도카이도, 산요 신선을 만들어서 200km/h 대의 운전을 하고자 했는데 이런 전쟁이 나버림. 토지 매수(몰수라고 읽는다)가 거의 완료되었는데 전쟁이 나서 삽은 신탄나 터널만 뜨고 흐지부지 되어버림 이걸 굳이 구태여 다시 파서 시작한 사업임 그럼 왜 신탄나 터널만 삽을 떴냐? 이유는 간단함 옆에 있던 탄나 터널이 ㅈㄴ 오래 걸렸거든 건설개시가 1918년인데 완공 후 개통이 1934년임 그래도 신탄나는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의 기술이라 5년 걸림. 여튼 용지 매수(몰수)가 거의 완료되어 있던 고로 거기서 공사만 시작함. 1930년대 계획이라 곡선도 많고 산도 피해갔지만 그냥 지음. 그리고 일본이 간토랑 간사이가 교류 전기의 주파수가 다름 간사이가 60hz, 간토가 50hz임 그래서 구간이 더 짧은 간토에 변전소 ㅈㄴ 박아서 60hz로 통일함 애지당초 설계속도는 250km/h 처음 1년은 노반안정까지 기다린다는 이유로 200km/h 속도제한 했음 최소 곡선반경은 2500m에 아타미 커브같이 개같은 곡선 구간도 많음 저기서는 제한 200km/h 걸리는데 현재 도카이도 신칸센 제한 최고 속도가 285km/h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커브임 심지어 과거엔 185km/h로 더 낮았다. 그런데 노선을 새로 지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제한 속도가 올라갔을까. 제한 속도는 차량의 축중과 곡선구간 탈선에 달려있다. 먼저 축중이 무엇이냐. 열차의 바퀴 역시 열차에 달려 있는 이상 회전축이라는게 필요하겠지? 이때 하나의 회전축에 가해지는 중량이 축중임 축중이 무거우면 선로가 부하를 받고 깨지거나 할 수 있음. 초대 신칸센인 0계는 축중이 14톤이었다고 함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1. 선로를 강하게 한다. 2. 열차를 가볍게 한다. 닛뽄의 기술자들은 2번이 해답이라 생각함. 그래서 나온 것이 300계 신칸센. 도카이도 신칸센의 제한속도를 220km/h에서 270km/h로 한번에 끌어올림. 얘의 축중이 11톤임. 다만, 가벼운 차체에 측면 하단부 즉 열차 밑으로 바람이 들어가는 조건이 만나서 열차가 공중에 뜨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건 승차감과 직결되어 후속 500계나 700, N700 등에서는 차체 하단부를 막아서 해결했다고. 또, 문제가 되는게 커브임 앞서 말했듯이 커브가 심하면 당연히 속도를 못 냄 그럼 해결 방법은? 1. 선로를 기울여 원심력 약화 2. 열차를 기울여 원심력 약화 1번은 300계가 270km/h의 영업속도를 갖게 해줌 근데 그 이상은 무리임 그래서 생각한게 2번 뜬금없지만 위의 사진은 영국의 고속열차 intercity apt이다. 얘네는 기존의 곡선 많은 선로에서 굴리고자 한가지 아이디어를 냄 바로 틸팅임. 오토바이가 회전할 때 기우는 모습 봤겠지만 열차 역시 회전할때 기울면 원심력이 약화됨 물론 apt는 20세기 중후반의 기술 부족으로 ㅈ망함 그러나 21세기의 기술이라면? 현재 도카이도 신칸센을 잡아먹은 N700a, N700A, N700S는 차체 경사 장치라는게 있음 말 그대로 차체를 기울임. 노선의 데이터를 경사 지령 연산부에 보내서 얼마나 기울일지 계산하고 가속도 센서, 지점 검지부 등을 이용해 차체를 기울임 이것으로 도카이도에서 285km/h의 속도가 나옴 처음 개통했을때 도쿄~신오사카 3시간 50분 정도 걸리던게 지금은 가장 빠른 편(상행 노조미 64호) 기준으로 2시간 21분 걸림 신칸센이 인명사고가 지금까지 없음 분명히 할 것은 "사고"는 있는데 "인명사고"가 없음 탈선은 지진 때문이 대부분이고 그거 외에는 정전이 많음 살인 사건이나 투신이 아니라 관리 부실에 의한 인명사고는 0임 일단 일본이 꼼꼼한게 첫 이유고 두번째로 애지당초 선로에 사람이 못 들어가는 설계임 이런 다리로 되어있거나 흙을 쌓은 성토라는 구조인데 그래도 철책을 만들고 방음벽을 만들어서 못 들어감 또 선로의 관리가 철저함 일본에 대해 조금 안다는 사람이라면 들었을 수도 있는데 닥터 옐로우라는 특별 편성이 있음 얘는 레이저로 선로 마모를 측정하고 카메라 2대로 전차선과 팬터그래프 사이를 관찰하고 신호 시스템 작동 여부 등을 관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열차임. 즉 꼼꼼한 관리 감독이 지금까지 도카이도 신칸센을 지켜옴 반응 좀 있으면 신칸센 개통 순서대로 들고옴.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흥미로운 조선시대 한강의 풍경
겸재 정선의 경교 명승첩에 나오는 한강변의 풍경이 흥미롭다.↑미사리 하남 미사신도시 부근의 풍경입니다.↑남산의 일출장면의 모습입니다. 용산 대통령실 부근의 풍경같네요 ↑동작구 동작진의 풍경입니다. 저기 나오는 건물들은 오늘날 '국립현충원' 의 자리라고 합니다.↑ 세검정 부근 추정 독백탄 = 두물머리 - 양수리 쪽인듯.. 녹운탄은 겸재의 그림이 시작되는 양수리 부근↑우천은 경기도 용인에서 발원하여 광주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었습니다. 경안천 하류는 팔당댐이 지어진 뒤 거대한 호수로 탈바꿈척재제시(惕齋題詩) 라는 작품입니다.'파초'라는 풀의 이국적인 풍경에 심취했던 조선후기 문인들은 한양 근교 한강변에 호화 저택을 지어놓고파초를 자신의 집 주변에 심어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했다고 합니다.대표적인 정자가 '압구정' 입니다.↑조선시대 최고의 저택이었던 압구정은 단순 정자가 아니었습니다.저택 문앞에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문전성시) 권문세가의 저택이 있었습니다.풍경또한 한강의 최고 풍경이었습니다. ‘사문탈사라는 말은 (寺門脫蓑· 절문에서 도롱이(우의?)를 벗다)’ 라는 말 입니다.귀래정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금의 행주산성 뒤편인 덕양산 기슭의 행호강변(현재 창릉천변)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정자선유봉은 겸재가 양천팔경에 담을 때 한강남쪽 양천현 강변에 있는 작은 산이었다. 양천구와 강서구가 서울에 편입되기 전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양화리 한강변에 홀로 솟아 있던 해발 40m 야트막한 산조선 양반들은 당시 한강변에 거대 저택을 지어놓고 한강을 내려다보며 갈매기들이 노니는 풍경을 즐겼다.종해청조 = 양천현 현령이 동헌인 종해헌에 앉아서 조수 밀리는 소리를 즐기고 있다는 뜻(오늘날 양천구청장 쯤 되는 인물이 강서구앞 한강에서 밀물이 들어오는 소리를 즐기고 있는 풍경)강서구 마포 까지 조운선이 들어와 조선팔도의 세금을 배로 징수했습니다.지금의 행주산성 뒤 덕양산 기슭 행호강변↑서울링이 들어서게될 '난지도앞' 풍경을 그린..↑조선 최고 양반 한명회의 별장이 있었던 압구정의 모습 오늘날 압구정 현대 아파트의 그 압구정이 맞다.오늘날 압구정이 있었던 위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가장 큰 평수가 위치한 압구정현대 76동 쯤에 있었다.80억원에 거래됐던 그 동이다. ↑정작 겸재 정선 그는 한양도성안 인왕산 자락(서촌) 부근에 거주를 했던것으로 보인다.↑그의 인왕산 아래 자리잡고있던 집으로 보인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임금님과 가까운곳에 살았는데,역대 최고 수준 미술품 거래가에 거래된 명작을 남긴다.↑인왕제색도 라는 작품이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가장 아끼던 그림이라고 한다. 국가에 기증하여 향후 건설될 이건희 미술관에서 만날 것 같다..)서구 미술학계에서는 겸재 정선 이후 한국미술이 중국의 미술과는 구별된 정통성을 갖게됐다고 평가한다.'실제 조선의 산하 풍경' 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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