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사쿠마 마유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부지런함을 모토로 삼기라도 하고 있는지,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았는데도 예쁜 옷을 골라입고 집을 나선다.
그런 그녀의 다소곳한 손에는 검은 비닐봉투가 걸음에 맞춰 부스럭거리며 존재를 주장한다.
늘 감고 다니는 리본에 붉은 머리띠, 그리고 간단한 티셔츠와 치마를 입고 다소의 변장을 한 마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간혹 일찍부터 조깅이나 산책을 하는 인근 주민들이 변장을 한 상태의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오거나 사인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사실 평소보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부터 갈 곳에 도착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빠를지도 몰라 흥분되기도 했다.
기왕 이른 시간에 도착할 것 같으니 조금 더 서둘러 볼 요량으로 마유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신이 나서 향하고 있는 장소는 바로 그녀의 담당 프로듀서가 있는 아파트였다.
사무소의 기숙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의 아파트는 대부분의 아이돌이 위치를 알고 있지만 그녀처럼 대담하게 찾아가는 사람은 적었다.
프로듀서 역시 그녀의 방문에 난색을 표하는 것처럼 보여 처음에는 사무소의 높은 분에게 불려가 혼이 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들키지 않고 방문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후후.'
평범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서 프로듀서의 아파트로 찾아가는 일을 그만뒀겠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까딱하면 불법침입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알고 있을까.
실제로 그녀는 최근 무사히 프로듀서의 집에 숨어들어가 그가 자고 있는 사이 집안일을 한 뒤 나오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었다.
'열쇠를 숨기는 장소가 뻔하다구요, 프로듀서 씨.'
그녀는 오늘도 어떤 요리를 해둘 것인지 미리 정해두었으니 무사히 그의 아파트에 숨어들어 요리를 해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새 도착한 어두컴컴한 아파트의 복도에서 프로듀서의 집을 찾아 문 옆에 놓인 화분에 손을 넣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에 닿자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미소를 지은 마유는 바로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살살 돌려 문의 잠금을 풀었다.
너무 뻔한 자리에 예비용 열쇠를 숨겨두어 용케도 집을 털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말 그대로 그런 생각은 프로듀서의 아파트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밀려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아파트에 들어선 마유는 속으로 기쁜 비명을 지르며 부엌으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아직 잠을 자고 있을 그의 숙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오늘의 아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집 안 곳곳에 맛있는 향기가 퍼지는 사이 주섬주섬 챙겨온 것들을 정리한 마유는
문이 거의 닫힌 프로듀서의 침실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들어왔을 때처럼 조용히 문을 잠그고 사무소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 * *
"음. 오늘 일정은……."
"아, 자네. 마침 잘 만났군. 사쿠마 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만 시간 괜찮은가?"
연예기획부의 부장이 부르는 소리에 일정을 확인하던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가섰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할 지는 이미 알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가 방문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 그것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예상대로 부장은 곧 담당 아이돌의 행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반론을 펼치면서 설교를 늘어놓았다.
맞는 말이고 정론이기는 하지만 그걸 그대로 마유에게 읊어보라고 대꾸하고 싶은 기분을 꾹 참았다.
게다가, 방법은 잘못됐지만 마유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도 했으니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출근 직후부터 한참 일장연설을 듣고 나니 기운이 조금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한숨을 푹 내쉰 그는 곧 사무원으로 일하며 도움을 주고 있는 동료의 데스크로 향했다.
"치히로 씨,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 마유의 녹음 일정 말인데요. 조금 당길 수 있을까요?"
"앗,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씨. 그렇네요……조금은 당겨서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스튜디오 쪽에 연락을 해둘까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붙임성 좋은 사무원 센카와 치히로가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답한 뒤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어 스튜디오와 시간 조율을 시작했다.
유능한 동료를 둬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유에게 일정의 변경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낀 그는 치히로에게 인사를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프로덕션도 상당히 많이 발전해 상당히 넓고 화려한 사옥을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누군가 찾으러 다니기 시작하면 한참을 걸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마유만큼은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마유에게 곤란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그녀를 찾아내 도움의 손길을 건넨 것은 업계에서도 소문이 퍼졌을 정도다.
'지금 마유는……음. 휴게실이겠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유의 위치를 파악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인 그는 고민없이 11층을 눌러 아이돌 휴게실로 향했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는 금새 그를 11층으로 데려다주었고, 헤메거나 찾는 일 없이 바로 마유를 휴게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마유.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우후후……프로듀서 씨는 늘 저를 잘 찾아내시네요."
"담당 프로듀서니까 당연한 소양이지. 게다가 기숙사에서 나온 다음 찾기 쉽게 계속 휴게실에 있었잖아?"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웠어요. 후후후."
이야기가 탈선하는 것을 느끼며 프로듀서는 곧장 업무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녹음 일정을 조금 당겨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마유는 불평을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 씨에게 생각이 있으시니 일정을 바꾸셨겠죠. 물론 함께 가주실거죠?"
"오늘은 같이 가려고 일정을 당긴 거니까 말야."
"후후, 기뻐요."
어쩐지 둘 만의 세계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휴게실의 문이 쾅 하고 열리며 거대한 인영이 나타났다.
모로보시 키라리. 우리 사무소 소속 아이돌 중 한 명이다.
조금 미안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키라리가 질문을 던졌다.
"프로듀서, 안즈 어디있는지 봤어엉?"
"안즈? 아니 오늘은 본 적이 없네. 마유라면 어딨는지 알 수 있지만."
"프로듀서는 마유 일이면 왕자님처럼 쨘! 하고 나타나니까~ 으응, 그치만 안즈 어디갔을까?"
이상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키라리가 휴게실을 나섰다.
평소처럼 사탕을 뿌리고 다니면 알아서 나타나지 않을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청소 아주머니한테 한 소리를 들은 뒤로 자제하고 있는 참이다.
키라리가 떠나자 마유는 팔짱을 끼며 프로듀서에게 들러붙었다.
"후후, 다시 둘만이 되어버렸네요. 이대로 같이 스튜디오까지 갈까요?"
"그래. 그래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되도록 팔짱은 금지야."
"생각해볼게요~ 우후후."
* * *
"와……."
키라리를 피해 휴게실 구석에 숨어있던 안즈는 얼이 빠진 소리를 내며 소파에 몸을 뉘였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는데, 오늘은 좀 더 대단한 것을 들은 기분이었다.
"우와……."
마유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어째선지 매번 알아차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는 프로듀서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늘 의아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뭔가가 맞춰지는 느낌을 받으며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낸 안즈는 껍질을 대충 벗긴 뒤 입에 넣고 혀로 굴리며 한 차례 맛을 음미하고는 멍한 표정으로 숨을 들이켰다.
"마유는 그렇다치고, 걔가 기숙사에서 나온 다음 휴게실에만 있었다는 동선을 어떻게 아는건데 프로듀서! 스토커야? 깬다!"
"앗, 안즈 찾았당!"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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