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랑가 모르겠다만, 

민도는 특정한 행동을 하고 안 하고 이따위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행동 자체가 아님. 

"어디어디 민도가 높다" 또는 "어디어디 민도가 낮다" 라는 말을 누군가가 했을 때, 

그 말이 갖는 권위의 크기에서 나오는 거야.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내가 예를 들어주지.

(A) 내가 사는 동네는 거주민들이 길거리에 쓰레기 안 버린다. 졸라 민도 높지

(B) 내가 사는 동네는 거주민들이 길거리에 쓰레기 많이 버린다. 거칠 것 없이 자란 유년기를 보여주는 거지. 졸라 민도 높지.

자 어떠냐? (A) 와 (B) 는 완전히 반대 상황을 근거로 삼고 있지만 어쨌든 결론은 똑같지? 자기 동네 민도 높다는 거지.

압구정 거주민은, (A) 라고 말해도 되고 (B) 라고 말해도 되는 거야. 그게 압구 거주민이 갖고 있는 헤게모니지. 

그런데 말야, 저어기 촌구석 썩다리 거주민은 (A) 라고 말해도 반박 당하고 (B) 라고 말해도 반박 당해. 

왜 그런 줄 아냐? 그냥 헤게모니가 없는 거야. 

먼 말을 해도 반박 당하고,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말의 최종 컨펌을 부촌 주민들이 해줘야만 인정 받는 지역. 

바로 그게 민도가 낮다는 증거인 거야. 

이걸 깨닫고 나면, 어떠어떠한 현상 하나둘을 가져와서 민도가 높니 낮니 어쩌구 하는 게 다 개소린 걸 알 수 있다. 

썩다리 거주민들이 합심해서 압구 거주민들이 보여주는 그 어떤 형상을 갖추었다고 가정하자. 

불행하게도, 바로 그 순간, 썩다리 촌동네 거주민들이 추구해온 그 이상은 더 이상 높은 민도의 기준이 아닌 거야. 

왜냐? 촌동네 썩다리가 따라온 순간 압구 거주민이 그러한 특성을 민도 설정 기준치에서 해제할 거거든. 이해 감?

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 

이런 식이면 한번 민도 높은 곳만 영영 민도 높고 나머지 지역은 영영 떨거지인 거 아니냐고.

근데 그건 아니야.

이 부분은 나도 설명 못하겠지만, 특정 지역이 서서히 저런 헤게모니를 만들어가는 상황도 분명히 존재한다. 

구린 동네인 줄만 알았던 곳 주민들이 하는 소리가, 과거에는 개소리에 자위로 들렸지만 어느 순간 합당하고 옳은 의견인 것처럼 들리는 순간이 와. 

바로 그 순간, 과거에 구렸던 그 동네는 과거에서 벗어나서 헤게모니를 손에 쥔 거임. 높은 민도를 달성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