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우파라는게 사실 거창한 사상을 가지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
단순히 말하면, 내가 있는 집단에서 내 포지션이 괜찮다고 느끼면 우파고, 그렇지 않으면 좌파가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학자엘리트 계층에서도 좌파사상을 지지했지만, 포커스를 맞추자면, 비기득권 계층에서 쉽게 좌파 세력의 논리에 매료되었는데, 그에 따라 과거 국민의 80%이상이
좌파사상에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먹고 살만한 곡창지대 농민이 집단화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전라도였다. 농학농민운동부터 해서 구한말이나, 해방후 토지획득
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일종의 집단화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른 바 지금으로 치면 '중산층' 들이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평민들이 전라도에 가서 지주 밑에서 농사지으면 밥 괜찮게 먹고 사는 나름 꿀 동네였고, 지금으로 치면 경제적으로 공업화된 지역인 것이였다.
과거, 경상도는 '보리문둥이'라고 불릴정도로 가난하여 대구나 마산 진주 등 경상도 지역도 국지적으로 좌파 운동이 일어나긴 했으나 농민의 규모나 약한 경제력으로 그 응집의 한
한계가 분명했다. 하지만 향후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경상도를 중심으로 중화학공업단지를 육성하면서 빠르게 경상도출신들은 현대에 들어서, 중산층 계급에 진입하여 일종의
'기득권'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과거는 쉽게 잊혀질 수 있었다.
서울경기는 수도권이였기 때문에 비교적 정치적 스텐스가 다양했고, 충청도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으며, 제주도와 강원도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너무 미미했다.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전라도는 낙후지역이 되었고 서울수도권 부울경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퍼지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빈약하고 못사는 사람이 타지 생활을 하니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고 기존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전라도에 대한 차별의식이 강해졌다.
여기에, 한국은 전후 리셋이 되어 자기의 조상이 가난한 농민이라고 생각을 안하고 보통 양반이거나, 잔반, 최소 중인은 될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으며 제사를 지내며 어려서부
터 어디 성씨 어디 파인지를 종종 논하면서 크기 때문에 그 기저에는 크고 작음의 약간의 기득권 의식을 갖으면서 살아와 이촌향도해서 어렵게 살아가는 전라도인을 가난한 농민
이라고 생각하기 쉬웠는데 실상은 전라도 농민들이 '중산층' 지역이였다.
이 사람들이, 중화학공업개발의 일차적 수혜자는 아니였지만, 밥먹고 살려고 올라간 이촌향도가 향후 수도권중심개발에 힘입어, 부동산 버프와 서울에 직장을 얻어 빠르게 서울경
기 중심의 중산층으로 서울경기에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라도 인구가 남한 인구의 30%인거를 생각하고, 수도권에서 타지 사람과 혼인을 한것 까지 생각하면 절반
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전라도는 먹고 살만한 농민들이 많은 '중산층'지역으로 문화가 비교적 축적된 지역이였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돈을 열심히 벌려는 의지가 있는 문화적 자산이 있었던
계층들이었다.
이게 일시적으로, 농민이 흩어지는 과정에서 못사는 사람을 취급하고, 한국의 광역거점개발, 전후 특유의 왜곡된 자기집안에 대한 왜곡된 인식(정신건강에는 좋은?) 으로 인해
전라도를 좌파적 인간이라고 보기 쉬운데, 기득권이 되고 싶었던 중산층 계급이었다.
상대적 약자인 이민자, 여성, 힘이약한 유색인종을 괴롭히는 것을 절대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보통은 이 집단의 대부분은 분열되어 있고, 소수인 경우
가 많다. 근데, 캘리포니아와 뉴욕이 크고 작은 질시나 경쟁 의식은 있어도 한쪽이 완전히 몰리는 경우는 없고 이웃나라인 일본도 관서나 관동 한쪽이 완전히 몰리는 경우는 없다.
이미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집도 있고 공부도 좀해서 먹고살만한 전라도인도 시장친화적이고 보수적 스텐스가 자기한테 유리하다고 느껴도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차별받는 자신의
고향을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해, 정치적 스텐스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
좌파를 만들면 안되는 규모의 인구와 신분상승욕구가 강했던 집단을 중화학공업발전 시기에 편입시켜, 계층에 따른 정치의식을 가지게 했어야 했는데 지역논리, 정치논리, 또게다
가 전라도인은 타지에 가난한게 살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 기존거주자에게 네이티비즘을 발동하게 되었고 그들을 끊임없이 폄하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더욱 한국은 시장친화적 정책을 시행하고 강한 대북정책, 중국경계에 대한 안보관을 강하게 형성하는게 쉽지 않아보인다.
한국인의 네이티비즘과, 아시아인 특유의 여성적이며 방어적이고 우월적 정서를 유지하기위한 모함과 폄하, 자기 조상에 대한 왜곡된 인지가 한국의 답 안나오는 분열을 만들어냈
다.
사람들은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데, 양반이나 기업가 다음으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농부들이 원래 축적된 문화유산이 가장 크고 열심히 산다. 결국 가장 많은 인구와 중산층
이 많이 살고 상승욕구가 강한 전라도인은 결국 자리를 잡는건 역사적 흐름이였던 것이였다.
전라도에 대한 차별의식은 자기방어적이고 분열적인 한국인들의 행동으로 인해 패망적인 정치구도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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