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다는 자신들이 공동체라고 믿는 어떤 관습적 정체성의 공유집단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채택하게 되는 것이 그 나라 고유의 정치시스템이 된다.

즉, 정치제도나 정치질서는 내부적인 지배-피지배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동지라고 믿는 이들끼리 적에 대한 방어체계를 갖는 질서로 정치시스템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의 대통령이 입법,사법부에 견제 받는 이유는 그런 나라들을 공격할 적이 실질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법치를 작동시킬 수 있다. 이 법치에 대통령의 권한도 종속되는 것이다.

반면 동남아, 중동,아프리카,남미와 같은 나라들은 정치공동체가 갖는 보편적 규범보다는 언어, 종족, 부족, 종교 등의 분화가 층위별로 다양해서 만장일치적인 주권 공동체의 성격이 약하다.

그래서 전쟁도 많고 내전도 많이 벌어진다. 그런 환경으로 인해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것이지, 대통령의 권한이 강해서 그런 정치 후진국이 된 것이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자연스럽고 효율적인 정치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도 대한민국의 적들로부터 방어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설정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하게 되었다.

우리는 외부의 공공의 적보다 내부의 적과 동지라는 이념적 내전이 정치시스템을 변태적이고도 불구적으로 만든 것이다.

다시말해, 내부적으로 만장일치가 되었어야 할 정치공동체(Polity)의 규범이 확립되지 못한 채, 해방 후 미국의 영향하에 대통령 공화제가 심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데서 공부하고 온 정치학자들, 법학자들에 의해 한국의 정치철학의 지형이 형성되고 그에 의해 정치 시스템이나 사법제도가 들어섰다.

한국인의 현실에 맞지 않는 이상한 옷을 입고 그 옷에 걸려 넘어지고 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작금의 한국 정치시스템이다.

이걸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가 박정희였다.
한국에는 한국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싱가포르 리콴유는 일찌감치 그런 것을 알았다.

한국인들에게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장기 군주형 대통령이 맞다. 다만 그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탁월해야 한다.

도덕적 탁월함이란 착하고 심성곱고 자비롭고., 그런 것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에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즉 ' Good Society'에 대해 밝은 눈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자들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선거를 통해 등장하지 않는다는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