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를 볼 때 제일 먼저 '매너의 부드러움'을 본다. '매너' 라고해서 꼭 절도있는 에티켓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여자의 말투나 생각, 그리고 몸놀림 등이 총체적으로 부드러운 유연성을 가질 때, 나는 그녀의 얼굴이 설사 좀 밉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사랑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여자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보면 '여성의 부드러움'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면서 '남성의 딱딱함'은 지극히 폄하해서 말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도덕경>에서 여성은 '물' 로 비유되고 남성은 '돌'로 비유되는데, 낙숫물이 바윗돌을 뚫는다는 식으로 약하고 유연한 물이 딱딱한 바윗돌을 결국은 뚫어버린다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노자가 보기에 남성의 페니스는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대상물이 아니라 오히려 조롱하며 불쌍해 하는 대상물이다. 쓸데없이 위험하게 돌출돼 나와있는, 거추장스러운 '혹' 같은 존재가 바로 남성의 성기인 것이다.

나 역시 노자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아름다움은 물같이 부드러운 유연성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여자가 부드러우냐 부드럽지 못하냐 하는 것을 단적으로 판단내릴 수 있는 방법은, 그녀와 함께 한번 블루스춤을 추어보는 일이다.

우선 블루스춤을 아주 가까운 연인들끼리나 출 수 있는 '음탕한' 춤이라고 생각하여 춤추기를 거부하는 여성은, 일단은 부드러운 여성의 대열에서 제외된다. 그렇게 촌스러운 행동을 하며 폼을 잰다는 것은 몸매나 매너의 부드러움 이전에 '생각의 부드러움' 즉 '사고방식의 유연성'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는 마지못해 블루스 춤을 추긴 추더라도 온몸이 경직되어 있어 마치 장작개비를 껴안고서 춤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오면 역시 낙제다. 대개 그런 여자들은 춤추는 동안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과 한알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려 든다. 그리고 서로 포옹하는 자세로 춤추는 것을 거부하고 어기 적 어기적 정식 스텝을 밟으려고만 한다.

이런 여성이라면 설사 그녀가 진짜 애인과 함께 블루스를 춘다 하더라도, 필시 장작개비 같이 뻣뻣하고 사이비 귀부인 같이 오만스런 몸놀림으로 춤을 출 것이 틀림없다.

어쩌다 내가 그런 여자와 함께 어정쩡하고 어색하게 춤을 추다가 "왜 이리 몸이 굳어져 있느냐. 절대로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몸을 좀 풀어라"라고 말하면, 여자쪽에서는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둘이서 꽉 부둥켜안고 춤을 출 거예요. 당신하고는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런 여자가 아무리 진짜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절대로 유연하고 섹시한 블루스춤을 못 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런 여자는 춤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주변사람들 눈치 보기에 급급해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진짜 부드러운 여성은 일단 블루스춤을 추기로 작정하고 나면, 스텝을 알고 추든 모르고 추든간에 남자의 품안에 착착 감겨 들어온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천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드러운 매너에 대해서 이미 당당한 자신감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바 '딱딱한 여성'들은 항상 남 눈치 살피기에 바빠서 자신의 몸을 '고상하게' 놀리려고만 든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여성'과 '딱딱한 여성'은 키스를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구별된다. 설사 서로의 마음이 맞아 떨어져 상호합의하에 키스를 한다 하더라도,부드럽지 못한 여성들은 입술이나 혀를 유연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딱딱한 여성들은 남자의 혀가 자기의 입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더러운 물건이 쳐들어오기라도 하는 듯이 지레 겁을 먹고 입을 움츠리는 것이 보통이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남자들이 속아넘어가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어떤 여자가 '혓바닥 놀리기'를 거북살스러워하면 (또는 블루스 춤추기를 거북해하면), 그것이 연애경험과는 무관하게 형성돼 있는 그 여자의 체질이나 속성인 줄도 모르고, 다만 그녀가 수줍어서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내심 흐뭇해 한다.

그러면서 '진짜 순진한 처녀'를 얻었다고 확신하며 바보같이 기뻐하는 것이다. 체질적으로 딱딱한 여자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지겹고 역겨운 '노동' 이라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서 말이다.

내가 부드러운 여성이 좋다는 것은 무조건 남자에게 복종하는 여성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여성은 '유연성'을 여성 특유의 무기로 삼아 더욱 당당하게 남성들과 겨룰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남성적인 매너만 곁들이면 그것이 곧 주체성있고 자존심있는 여성의 상징이 된다고 착각하는 여자들이 참으로 많다. 한심한 일이다.

(마광수 장편소설 <로 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