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내벤처 창업 활발

대기업 계열사에 포함 규제

김동연, 김상조에 검토 요청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혁신 창업을 방문하는 현장 간담회에 함께 가줄 것을 요청했다. 김 부총리가 이날 김 위원장에게 검토를 요청한 사안은 스핀오프(spin-off) 스타트업들의 대기업 계열사 포함 여부다. 대기업에서 분사한 벤처기업을 대기업 규제에서 풀어주면 창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공정위는 부작용이 우려돼 어렵다는 입장이다.

◆ 대기업 사내벤처 분사 창업 활발 

스핀오프는 회사 분할 방법이다. 모회사가 현물 출자 등의 방법을 통해 자회사를 신설하고 취득한 주식을 모회사의 주주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스핀오프 스타트업은 이러한 회사 분할 방법을 이용해 공공기관 출신 연구원이 연구 성과의 사업화를 위해 회사를 창업하거나 대기업이 특정 사업부를 따로 분리해 창업을 하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에는 스핀오프 스타트업 중 대기업 사내 벤처들이 별도 회사로 독립하는 분사형 창업이 주목 받고 있다. 이미 성공한 사례도 많다. 정보기술(IT)업계의 거대 공룡으로 자리매김한 네이버의 시작은 삼성SDS의 사내 벤처였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도 LG데이콤(현재 LG유플러스에 합병)의 사내 벤처로 출발했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SK엔카’도 사내 벤처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포켓몬 고’를 개발해 주목받고 있는 나이앤틱도 구글의 사내 벤처였다.

대기업 사내 벤처 창업이 성공을 거두는 건 다른 창업 기업 보다 유리한 점이 많아서다. 기존 대기업 내부에서 검증된 기술로 창업을 할 수 있으며, 기술이 성숙할 때까지 모기업인 대기업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기술·정보·자금과 시설 및 장비도 대기업에서 쉽게 조달할 수 있으며, 대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제품 판로도 안정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 모기업인 대기업도 사내 벤처의 창업이 나쁘지 않다. 대기업은 사내 벤처 운용 과정에서 직원 혁신 역량과 연구 동기를 크게 높일 수 있으며, 스핀오프가 성공하면 두 기업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잠재적 사업 파트너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창업 기업을 키운 후 다시 대기업으로 흡수하는 ‘스핀 인(spin-in)’도 가능하다.

대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크리에이티브 랩)'은 올해 상반기까지 총 25개 스타트업을 C랩에서 분사시켰고, 올해 연말까지 10개 스타트업을 추가 스핀오프해 총 35개 스타트업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대차 그룹도 사내 벤처 숫자가 38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창업에 성공해 분사한 기업은 9개다.

조선일보DB
◆ 대기업 계열사 포함 규제 적용

다만 스핀오프 스타트업에게 모기업인 대기업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의 그늘에 있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있지만, 그만큼 대기업이 받는 규제를 함께 적용 받기 때문이다.

현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대기업 기업 집단 범위를 ‘총수의 100분의 30이상을 소유하는 경우로서 최다출자자인 회사’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기업이 총 주식의 30% 이상을 소유하고 최다출자자이면 해당 회사는 대기업의 계열사로 분류된다는 이야기다. 대기업에서 분사된 스핀오프 스타트업도 해당 조건이 맞을 경우 대기업의 계열사로 포함돼 기업 집단 규제를 함께 받을 수 있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스핀오프 스타트업의 주식을 20~30% 이상 보유할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도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스핀오프 스타트업들은 대기업 계열사로 분류되면서 창업 기업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점도 어려움으로 꼽고 있다. 정부가 창업 기업과 중소기업에게 주는 지원 제도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어서다. 김동연 부총리가 김 위원장을 현장에 초청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관련 기업들이 대기업 계열사로 분류되면서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개선책을 요청한 것이다.

◆ 공정위 “편법 우려”

하지만 스핀오프 스타트업만 공정거래법에서 예외를 두는 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공정위는 대기업이 실질적으로 스핀오프 스타트업을 지배하고 있는데, 창업이라는 이유로 규제를 풀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이 스핀오프 스타트업 주식의 30%를 가지고 있으면서 최다출자자이면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대기업이 편법으로 계열사를 늘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스핀오프 스타트업이 대기업 계열사 지위를 벗어나려면 모기업인 대기업이 가지는 주식 비중을 줄이거나 최다출자자가 모기업이 아니면 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새로운 창업 유형을 장려해야 하는 건 맞지만, 대기업이 실질적으로 창업 회사를 지배하는데 중소기업으로 보고 규제를 풀어주긴 어렵다”라며 “자칫하면 대기업의 지배력 강화의 편법 수단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상조 위원장도 이날 현장 간담회에서 "벤처 활성을 위한 어느 한 채널 내의 해결 노력이 다른 채널에 미치는 부작용이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이 지나치게 대기업에 의존할 경우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기업의 하도급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기업인 대기업의 도움으로 쉽게 시장에 진입하지만, 어느 순간 자생력을 갖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스핀오프 스타트업이 대기업 계열사로 분류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스핀오프 스타트업 스스로 대기업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