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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것들 ㅗㅜㅑ
고구려 안학궁 고구려 법궁으로 장수왕의 평양 천도이래 고구려 후기 24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하지만 나당연합군 손에 평양이 함락되자 안학궁도 불길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근데 불태우라고 지시한건 신라 장군이 아니라 당나라 장군 이세적이다 이게 안학궁 치미인데 치미란 동아시아 건축물에서 지붕의 양끝을 뿔이 난거서럼 장식하는 장식품이다 근데 안학궁의 치미는 무려 210cm 크기다 거대하다고 알려진 신라 황룡사의 치미가 180cm이니 안학궁의 전각들이 얼마나 웅장하고 컸는지 알 수 있다 (치미는 지붕 크기에 비례해서 그만큼 커진다)그 중 안학궁의 정전 중궁 1호의 규모가 정말 어마무시한데 높이가 86m에 좌우길이가 27m이였다고 한다 이는 경복궁 근정전과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 일본의 동대사 대불전 합친것보다 더 크다 만약 안학궁이 남아 있었다면 당연히 세계 최대의 전통 목조 건축물이였을 것이다 (대불전은 20세기 초중반에 해체하고 지붕과 내부를 철근 콘크리트로 떡칠해서 재건한거라 겉만 목조인 근현대 건축물임)이는 아파트 30층 높이라고 하는데 어디는 20층 높이라고 하고... 내가 아파트 안살아서 모르겠네당연히 이런 우람하고 웅장한 전통 건축물이라면 랜드마크도 되고 뽕빨기 이보다 좋은게 어딨겠노? 그래서 북괴가 안학궁 터 옆에다 안학궁이랍시고 지었는데문제는 남북 모두 삼국시대는 건물이 하나도 이어진게 없어서 양식을 전혀 모른다 당연히 이 가짜 안학궁도 상상에 기반해 지은거다 (근데 2017년에 정은이가 해체 했다고 한다)이렇듯 고구려의 안학궁은 어떤 건축물과도 비교가 힘든 한민족 최대규모의 건축물이였다소실된게 참으로 통탄스러울뿐.. 이세적 개새끼...정릉사정릉사는 고구려 최대 사찰로 백제의 미륵사, 신라의 황룡사와 함께 고대 3대 사찰이라 불린다 근데 배치구도가 좀 특이한편이다 원래는 대웅전이 중심에 있어야 하는데 정릉사는 탑이 가운데에 있다 아마 고구려인들은 탑을 메인으로 내세웠던게 아닐까 싶다 당연히 북괴가 복원을 한다고 했는데 목탑 대신 쥐좆만한 크기의 석탑을 지어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많은 비판 받는 부분도 이 석탑이다 지을 능력이 없으면 짓질 말던가 정은이 씹쌔끼야특이한건 단청인데 우리는 삼국시대 건축물도 그냥 조선시대 단청으로 떡 발라서 대중적으로 욕을 뒤지게 처먹는데 (예: 부여 백제 왕궁)북괴는 조선 단청 빼고 다른 단청을 칠했는데 이 단청 출처가 4~6세기 고구려 고분군의 그려진 단청 문양이라 한다이는 조선시대 단청으로 떡칠 하는 것보다 낫긴하다 하지만 이게 옳다는건 아니다 달리 말하면 고구려의 단청 양식이 한두개가 아닐텐데 무덤에 있는 몇개의 단청으로 다 도배해버린거니까다만 이건 그만큼 자료가 부족해서 그런거라 참작이 가능할 뿐... 청암리 대사찰 청암리 대사찰은 정릉사,황룡사,미륵사 등 네임드들에 밀린 비운의 대사찰이다 왜냐면 청암리는 이름이 아니라 현재 대동군 청암리에 있다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배치 구조는 위에 정릉사와 비슷하게 탑이 중심에 있다 근데 이 사찰이 중요한 것은 탑의 기단을 보면 8각형 모양인데 그 규모가 상당해서 청암리 사지의 탑도 높이가 최소 60m에서 크게는 80~90m까지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탑으로 치면 황룡사의 9층 목탑과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백제미륵사 그야말로 백제 모든 문화재 중 최대의 문화재로 백제의 상징과도 같다 미륵사를 지은 왕은 백제 마지막 왕의 아버지 무왕으로 무왕 재위기간이 40년인데 미륵사 공사기간이 35년이다즉 무왕은 재위기간 내내 지어진 고대 건축물이였던 셈 그래서 현재 미륵사가 있는 익산시의 상징물에도 이 미륵사와 관련 된 것이 많다 하지만 현재는 이 석탑 빼면 전해져 오는 미륵사의 유적 건물은 없다 그마저도 이렇게 두부 깨진 모습이다 특히 이 석탑은 총 2개인데 윗잘 오른쪽에 현대에 복원 된 석탑이 보이는데 저건 현대 한국 건축사에서 최악의 복원 중 하나라고 손꼽히고 있다 특히 저 석탑 밑에서 이 유물들로 학계가 뒤집힌 적이 있었는데 오른쪽 종이에 무왕의 아내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이제껏 무왕하면 선화공주와 서동요로 유명했는데 정작 백제인들이 기록한 문헌엔 선화공주 얘기가 없다? 그래서 현재 학계에서는 선화공주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라가 백제 유민들을 억누르기 위해 퍼뜨린 선전이라고 주장도 한다쉽게 말해 "봐라 느그 왕비도 신라인이였으니 백제와 신라 왕가는 한집안이나 다름 없다 그러니 신라의 통치에 순응하라" 는것당연히 반박도 있는데 가장 유명한 반박은 일부다처제 설로 무왕은 선화공주,사택적덕의 딸과 쓰리썸 관계였다는 것 ㅗㅜㅑ 정말로 선화 공주와 서동요 모두 신라의 프로파간다였을까? 진실은 저 너머에... 익산 왕궁 익산은 백제의 수도가 된 적은 없지만 무왕 시절 무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곳이다조선으로 치면 정조대왕과 수원 같은 관계라 보면 된다근데 수원엔 왕궁이 없다이는 즉 무왕은 정말로 익산으로 천도할 큰그림을 그리고 있던게 아닌가 추측이 가능하다 백제는 삼국 중에 가장 수도를 많이 옮겼는데 그 중 익산 왕궁은 그 터가 뚜렷해서 매우 중요한 유적지다신라황룡사신라의 전성기를 연 진흥왕께서 창건한 절로 약 100년뒤엔 선덕여왕이 백제한테 뒤지게 처맞자 정신승리 할려고 9층 목탑을 추가했다 당연히 하이라이트는 이 9층 목탑인데 높이가 81m라 못도 없는 시대에 아파트만한 크기를 나무로만 올렸다근데 정작 이 9층 목탑을 설계한 총 책임자는 백제 사람 아비였다는게 아이러니 세간에는 아비지로 알려져 있으나 지는 존칭이지 이름이 아니다(현대로 치면 "님 같은 포지션이라 보면 됨)그러나 고려 광종때 번개가 한번 굽고 이후 더 작은 크기로 재건 됐으나 몽골이 처들어와 캠프파이어 땔감으로 쓰면서 완전 몰락했다 오리지널 불국사 신라의 황룡사와 함깨 신라 건축물 원투펀치나 다름 없다 그런데 현재의 불국사는 조선 영조가 다시 재건한 사실상 조선시대 사찰이다역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졌다가 통일신라 가서 더 벌크업 했다 (다보탑 쓰까탑 모두 이 때 지어졌다)이후 몽골의 침입도 견디며 쭉 이어오다 왜란 때 쪽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 씨발놈이 다 태워버렸다 이는 승병의 저항도 쌘대 불국사에서 대량의 무기가 발견 됐기 때문이다 웃긴건 이새낀 불교신자다 불교 신자면 시발롬이 좀 봐주지 이걸 태우냐.....그렇게 조정의 관심 밖이 되어 쭉 이어지다 드디어 영조 때 이르러 다시 재건 됐다근데 상록하단의 단청을 가진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찰 모습으로 복원 됐을 뿐...그러나 이후 다시 버려졌고 폐사지 되어 구한말에 오면 상당수가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는 사실 계단만이고 전각들은 상당수가 구한말까지 그대로 쭉 이어졌다 위에 사진 잘 보면 부숴진건 계단들이지 전각들은 형태를 갖추고 있다보통 불국사 폐허하면 위에 사진이 유명해서 착각을 많이 한다 정작 중요한 전각을 안보고... 참고로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불국사의 규모는 무려 천칸이였다고 한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대사찰이였던 것번외 - 현재 위치조차 모르는 대유적지서울 백제 왕궁 백제는 장수왕한테 서울을 내주기 전 까지 서울 위주로 돌아간 수도권 왕조였다 무려 서울에서 지낸 기간이 493년으로 동서울 지역은 백의 수도 위례성이 있던 곳이다 근데 500여년간 수도였는데 왕궁터가 어디에도 없다 왕들의 무덤으로 추측되는 돌무덤들은 많은데 백제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 유적지가 모호하다현재는 사진의 풍납토성부터 몽촌토성까지 별별 설이 다 나오고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전혀 없다 그러다 드디어 작년에 잠실진주 아파트 공사 도중 첨으로 위례성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첨에는 다들 백제 지역이니까 그냥 백제 유물인가 보다 했다 근데 6세기 신라 유물들도 섞여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즉, 백제 뿐 아니라 신라도 이 지역을 중요하게 사용 했다는건데 이 정도로 두왕조의 유물이 겹쳐서 쏟아져 발견 됐다는건 이곳이 중요한 지역이였다는 것일거고 그렇다면 유추되는 장소는 하나 뿐 백제의 수도 위례성이다 실제로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거리가 멀지 않다만약 이 가설이 맞는다면 백제의 서울 왕궁은 현재 잠실과 그 주변에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위에 이미 아파트부터 상가가 다 점거 하고 있어서 지금처럼 공사나 아니면 발굴 작업이 있기 전까진 땅 밑에 잠들어 있겠지만... 그래도 얼추 유추할 단서라도 나온 것에 큰 의의가 있다 본다 요약 고구려의 정릉사,안학궁,청암리 대사찰백제의 미륵사,익산 왕궁,서울 왕궁 신라의 황룡사, 오리지널 불국사 모두 실제로 노무 보고 싶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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