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울라리 사니 기분 좋아서 주변 지인들한테 열심히 자랑함
ai가 들어갔네, 성능이 좋네 어쩌구 하다가 누군가 물어봄
"얘는 화면이 왜이리 어둡니? 이래가지고 잘 보이겠니?"
아무것도 모르는 인싸들을 보며 우월감에 심취한 방지충은 우쭐거리며 대답합
"얘, 반사방지라는 기술도 모르니? 이 기술이 들어간 폰은 햇볕 아래에서도 폰이 잘 보인단다"
주위에 모인 애들은 감탄사를 외치며 칭찬해줌
"우리 방지충 되게 좋은 폰 샀구나"
"야 나도 한 번만 보자. 응?"
우리의 방지충은 평소처럼 푸헤헷이라는 씹덕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침을 튀겨가며 친구들 앞에서 웃어줌


그로부터 2주 뒤


우리의 방지충은 아무리 생각해도 쌩폰으로 사용하는 게 쫄림. 혹여 기스라도 나면 마음 아플 것 같아서 강화유리나 보호필름을 붙이기로 결심함
그런데 평범한 프로텍터를 붙이자니, 반사방지로 자랑질하던 본인의 모습이 떠오름. 그렇게 자랑질해놓고 남들처럼 반사율 높은 폰 사용하면 이게 뭔 망신인가 싶어 어쩔 수 없이 반사방지 기술이 들어간 프로텍터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음


컬러x케일 반사방지 강화유리가 제일 좋아보이는데 단종에다가 가격도 미친듯이 높음. 저 돈이면 쿠팡에서 신지모루 강화유리 수십개는 살 수 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음
그래서 차선책으로 삼성 정품 반사방지필름을 찾아봄.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기스가 쉽게 난다는 말에 손이 쉽게 가지 않음. 그래도 컬러x케일의 강화유리는 부담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삼성 정품 필름을 구입하기로 결심함
대망의 필름 붙이는 날이 찾아옴. 이번에 붙이면 오랫동안 사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깔끔했으면 하는 마음에 집 근처 서비스센터까지 열심히 걸어가서 붙이고 돌아옴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약간 삐뚤삐뚤하게 붙은 필름을 보고 속으로 눈물을 흘림. 하지만 다시 가서 붙여달라고 말 할 자신은 없음. 후기를 찾아보니 다들 조금씩 삐뚤삐뚤하다는 글을 보며 위안을 삼음

그로부터 1주 뒤


시발 ㅈ됐음. 반사방지 보호필름이 아무리 약하다곤 들었어도, 이렇게 쉽게 기스가 날 줄은 몰랐음. 반사방지기술이 빛을 발휘하는 시점이 대낮에 야외에서인데, 거기서 터치를 하고 스크롤을 하니 공기중에 떠다니는 먼지 때문에 기스가 좍좍 나버림. 심지어 폰을 꺼냈다가 주머니에 넣는 과정에서도 기스가 나버림. 필름을 다시 붙여도 이 지랄이 날 것이라는 걸 미리 깨달은 우리의 방지충은 어쩔 수 없이 기스가 난 필름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심함.

우리의 방지충에게 돈이 많았더라면 필름을 자주 교체했겠지만,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하는 것조차 방지충에겐 부담스러운 일임.

결국 우리의 방지충은 침대에 누워 필름에 난 기스를 바라보며 잠듦


그로부터 2달 뒤
방지충 친구의 폰 필름에는 기스밖에 보이질 않음. 지문방지필름이 더 깔끔하게 보일 정도로 오직 기스밖에 안 남아있음. 그렇지만 2달마다 필름을 바꾸는 것또한 방지충 친구에겐 매우 큰 돈이기 때문에 '아직 볼만해'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하루하루를 견딤
그러던 어느날, 하나밖에 없는 인싸 친구가 불러서 밖에서 다른 애들과 만나게 되었음
다들 밥을 기다리느라 다같이 유튜브를 보기로 했는데, 성격 좋은 인싸친구가 방지충이 했던 자랑을 기억하고 '우리 다같이 방지충 폰으로 보자. 이게 반사방지가 되어서 화질이 되게 좋대'라고 말해줌
우리의 방지충이 화면에 기스가 잔뜩 난 폰을 꺼내놓자 다른 애들의 표정이 씹창남
'이 폰은 원래 지문방지야? 화면에 기스가 왜저리 많아? 내 아이폰보다 별로인 것 같은데...'

'이거 필름 같은데 떼어내고 보면 안돼? 필름에만 기스가 많은 것 같은데'
우리의 방지충은 돌발스러운 상황에 뇌가 정지해버리게 되어버림. 저 필름을 떼어내기엔 돈이 아깝고, 안 떼어내자니 반사방지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폰보다 병신취급을 받는 게 용납되질 않았음. 결국 아이폰따위에게 질 수 없다는 결심을 한 반사방지충은 그자리에서 과감하게 필름을 떼어냄.
유튜브를 보다가 주문한 밥이 나왔음. 애들이 이야기하면서 먹는 와중에도 방지충은 떼어버린 필름이 아까워 표정이 어두움. 그 모습을 본 인싸친구가 '얘들아. 방지충 폰 되게 좋지 않아? 나도 하나 사고 싶어'라고 말을 꺼내주니, 다른 애들이 '근데 이거 아이폰이랑 뭐가 다른 거야?', '난 갤럭시 싫어... 죽어도 아이폰이 좋아'라는 말을 꺼냄.
인싸친구는 당황하면서 반사방지가 빛 반사가 덜하네 뭐네 하지만 팩트에 폭격당해버린 방지충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음.


그렇게 방지충은 세상이 무너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반사방지 필름을 붙이기 위해 삼성 서비스센터에 들림.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생각보다 컸지만, 새 필름을 깨끗해진 폰 화면을 보게 된 방지충의 기분은 한 결 나아졌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버즈 2 프로를 착용하고선 '멍청한 것들. 반사방지기술도 눈으로 못 느낄 정도면 눈이 사시인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속으로 함
홀가분한 기분으로 다른 음악을 틀기 위해 스크롤을 하던 방지충은, 방금 붙인 필름에 기다란 스크래치가 난 걸 발견하고선 또다시 우울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