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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_20

스타폭스(118.32) 2015.04.24 21:50:06
조회 1394 추천 11 댓글 3

세스는 아스토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그가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자신의 가치관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긍정하고 이해하려는 아스토가 아무래도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세스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스토의 순박한 눈망울엔 거짓이라곤 단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구슬피 우는 봄비가 스테인드 글라스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방 안에 속살대는 가운데, 세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솟아오르는 상념을 곱씹었다.

 

“…왜? 너 다른 수인 먹었어?”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른다니?”

 

세스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켜켜이 솜을 채워 넣은 부드러운 침대에 그의 몸 자국이 고스란히 남았다.
뜨악한 표정으로 세스를 지켜보던 아스토 역시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스에게 다가갔다.

 

“누구? 누구를 잡아먹었어?”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지 내가 언제 먹었다고 했어?”

 

“그게 그거 아냐?”

 

“시끄러.”

 

“…혹시 그것 때문에 기분 안 좋은 거야?”

 

“…”

 

“정말인가보네…”

 

아스토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날쌔게 주위를 살폈다.
방 안에는 두 아이밖에 없었고, 밖에서 대화를 엿듣는 이도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아스토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세스의 손을 붙잡았다.

 

"뭐야?"

 

갑자기 손을 붙들린 세스는 얼마간 팔을 버르적거리며 저항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수그러든 태도로 아스토를 마주보았다.
그가 앞으로 무슨 행동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감각이 묘하게 부드러워서 그대로 놓아버리긴 아쉽기도 했다.


세스는 이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잠깐 동안 주어진 그 순간만큼은 아스토의 털 아래 박힌 굳은살을 마음껏 만져볼 수가 있었다.
매끈한 손가락을 더듬어 마악 털 사이를 비집으려던 찰나, 아스토가 사뭇 비장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세스.”

 

“또 무슨 말 하려고.”

 

“만약 진짜 다른 수인을 먹었다면 내가 끝까지 비밀로 할게. 걱정하지 마.”

 

“주변에 말할 사람도 없으면서.”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왜 없어? 내가 끝까지 비밀로 할게. 친구니까.”

 

“그러든가.”

 

“우리 친구 맞지? 친구니까 나한테만 말해준 거잖아? 그리고 이것도 있고…”

 

아스토는 얼버무리며 송곳니 목걸이를 수줍게 들어올렸다.
세스 역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것을 들어 보였다.
시계추처럼 천천히 흔들리는 상아빛 송곳니 너머로 늑인의 순박한 눈망울이 어른거렸다.

세스는 목걸이를 도로 내리고 이번엔 아스토의 얼굴을 전체적으로 훑어보았다.
항상 보아왔던 친숙한 얼굴에 다섯 살 배기 아이 같은 꾸밈 없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폭언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겠지만,그 날 만큼은 왠지 그럴 수가 없었다.
세스는 딱딱하게 구는 대신 나지막하게 투덜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뭐래 낯간지럽게.”

 

“너는 예전에 친구 있었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냥 궁금해서.”

 

“당연히 있었지.”

 

세스는 일단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세스에게는 친구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친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떤 물건을 교환하는 것, 예컨대 질 좋은 맥주 한 잔과 베이컨 조각을 바꾸는 것 같은 계약 관계로 맺어진 동료는 있었어도 진정한 친구 관계는 없었다.

 

물론 세스의 친화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버지의 악평이 마을 전체로 뻗어나간 영향이 컸다.
주변의 이웃들은 라다메스가 등을 돌리자마자 들리지 않는 야유를 쏟아내기 십상이었고, 세스가 머뭇거리며 다가올 때는 ‘라다메스의 아들이 왔다.’며 비웃기 일쑤였다. 


그만큼 못난 아비 카를라 라다메스가 아들에게까지 남겨놓은 족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비록 신전에 들어오며 그 족쇄를 풀었다고는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스는 여전히 혼자였고, 화려한 방 안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 대한 반발감이었을까?
세스는 간혹 신전에 찾아온 외지인들이 친구가 없어서 외롭겠다고 위로할 때마다 날이 선 목소리로 일일이 받아치는 나쁜 습관을 들이고 말았다.
그의 고귀한 지위 때문에 신관답지 않게 버릇이 없다고 지적할 만한 사람도 없었으며 세스 자신도 이러한 습관을 딱히 시정할 생각이 없었다.
친구가 없다는 것을 곧이 곧대로 밝히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내막을 알 리가 없는 아스토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응…부럽다… 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거든. 그래서 꼭 한 명 만나보고 싶었는데, 널 만나서 다행인 것 같아.”

 

“넌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야? 부끄럽지도 않아?”

 

“…그냥 좋으니까 좋다고 말하는 건데… 싫으면 안 할게.”

 

낯 간지러운 말을 하지 않는 것.
세스가 그토록 원하던 언약이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하면서도 뭔가 쑥 빠진 듯한 느낌, 지금껏 느껴본 적 없었던 생소하면서도 불쾌한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무룩한 아스토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당장에라도 그를 달래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게 생각하려 해도 여전히 불쾌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냥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세스는 결국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나무라듯 한 마디 했다.

 

“그냥 니 맘대로 해. 자꾸 신경 쓰이잖아 그러고 있으면.”

 

“…그럼 그냥 편한 대로 할게.”

 

아스토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이만큼 감정 변화가 휙휙 드러나는 수인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세스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는 와중에도 자신이 웃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희미하게 웃었다.
우정도, 사랑도 처음 느껴보는 풋내기 용인은 자신의 마음속에 생겨난 묘한 감정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가서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나도 먹어도 돼?”

 

“너 밥 먹으러 오는 거잖아.”

 

“아닌데? 너 만나러 오는 건데?”

 

두 수인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며 식당까지 걸어갔다.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아직 울리지는 않았지만 세스가 원한다면 언제 어느 때나 뜨끈한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레비 혼자 식사를 준비한 탓에 두 아이가 먹을 음식은 여전히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나마 제대로 요리된 음식들을 바지런히 나르던 레비는 곤란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식사 하러 오셨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

 

“그게,유사드 신관이 일이 있어서…”

 

“무슨 일?”

 

“식사 전에 들으실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 더 묻고 싶잖아. 말해. 무슨 일이야?”

 

“그것이…”

 

레비는 여전히 갈등 어린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끔벅이는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마을에서 아이 다섯 명이 숲으로 놀러 왔다고 합니다만, 다섯 명 모두 실종됐다고 합니다. 어제 저녁쯤에 보고 받은 일이니 하루가 채 안 되었군요.”
 
“다섯 명이나? 이 숲에 대체 누가 놀러 온다는 거야? 그래서 유사드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

 

“함께 숲에 들어가 수색대를 돕기로 했습니다. 뭐, 별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섯 명씩이나 되면 한 장소에 모여있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

 

매튜 (레비)

 

사피엔티아 대 신관이 레테 신전으로 파견되어 공식적으로는 그가 임시 총괄자 역을 맡고 있으나, 실질적 총괄자 역을 맡고 있는 것은 매튜이다.
자세한 이름은 불명.
본명을 물을 때마다 본인을 '레비'로 불러달라는 대답으로 일관해왔다고 한다.
그는 한때 대 신관 후보급의 신학적 지식을 지녔다 평가받을 정도로 높은 학구열을 보였으며 실제로 수도원 시절에는 대 신관의 직책을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서품을 받고 신관으로서 활동할 장소를 정할 때, 그는 어째서인지 레테 신전에 부임할 것을 자처했다.
그의 갑작스런 변심의 이유를 아는 수인은 아무도 없으며 매튜 본인도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철저히 침묵으로만 대응한다.
신전 내에서 주로 맡는 업무는 곡식 관리와 (사실상 논에 성수를 뿌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양의 곡식을 얻을 수 있기에 곡식 뿌리는 것이 역할의 전부다.) 성서 해독.
다양한 관점으로 성서를 해독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동기 신관 유사드와는 수도원 시절부터 친우로 지내왔다고 한다.

 

 

유사드 (티리오스카르 유사드)

 

교단 내 유일한 이단 심문관.
이단 심문관들은 태초의 용 아드만사스 이외의 다른 악룡을 신성시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써 그들의 죄를 다스린다고 전해진다.
심문 과정에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고문을 구사하는 관계로 교단 측에서는 이단 심문관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교단에는 본디 두 명의 이단 심문관이 더 있었으나, 어느 날을 기점으로 두 심문관 모두 행방불명 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최하 서열이었던 유사드가 자동적으로 수석 이단 심문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평소에는 레테 신전에서 신관으로서 업무를 보다가 본당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이단 심문관직을 이행한다.
신전과 블랙 힐 숲 입구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는 사피엔티아 대 신관의 보좌관 역할을 겸임하고 있다.
신전 내에서의 역할은 곡식 수확.
애용하는 거대한 낫으로 단 하루만에 모든 곡식을 쓸어 담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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