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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한겨레 신문 기사

반카이저핌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6.09 20:29:02
조회 315 추천 2 댓글 0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새 홍보수석에 윤두현씨를 임명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윤 신임 수석은 오랜 언론인 생활을 통해 균형감 있는 사고를 발휘해온 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개조 작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소통의 적임자로 판단했다.” 균형감? 그는 후배 기자들이 취재한 비비케이(BBK) 조작 편지를 보도하지 못하도록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과 당신의 수벌들이 아우성치는 국가 개조의 정체가 좀 더 선명해졌습니다.

지방선거 이후 청와대발 ‘국가개조론’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민 대변인은 선거 결과가 나오자 이렇게 브리핑했습니다.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 개조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당신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튿날 현충일 추념사에서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적폐를 바로잡아서 안전한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받아쓰기 전용 홍보수석 인사도 국가 개조 소통용이라고 했습니다. 똥이나 된장이나 국가 개조로 통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당신의 가장 기괴한 모습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말과 실제가 상반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오른손이라면서 왼손을 내밀고, 준법을 말하면서 불법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하고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돌리고, 경제 민주화를 말하고는 경제 독점을 강화하고, 불공정 관행 철폐를 말하면서 공정 관행마저 깨버리고, 복지를 말하면서 사회 안전망을 파괴했죠.

당신의 국가 개조에 꼭 따르는 말이 있습니다. 적폐입니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말이지요. 솔직히 말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적폐란 걸 알았습니다. ‘침몰 사건’을 ‘참사’로 만들어버린 저 거대한 무능을 저에게서 확인하고서야 적폐를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무지했으면 그랬겠습니다. 사고가 참사로 된 것은 이 정부의 무능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적폐 탓으로 돌렸으니, 이 얼마나 비겁한 일입니까.

게다가 참사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일갈하고, 없앨 수 없다면 다 내게 가져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얼마나 분별력이 없었으면, 사고는 그 직후 터졌습니다. 그러고도 본인이 그런 적폐를 바로잡겠다고 하고 있으니, 그것은 무지와 비겁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에 대해 눈 밝은 누군가는 ‘당신 자신이 적폐’라고 돌직구를 날리고, 누군가 신중한 이는 ‘당신이 적폐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내 생각은, 적폐의 꼭대기에서 적폐의 덕을 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된 것도 그 적폐 위에서였습니다. 국정원, 국방부, 보훈처, 경찰의 공작이 없었다면 어떻게 당신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승만, 박정희 때부터 계승돼온 정치공작의 적폐는 일등공신이었습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정권을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도 바로 그 적폐였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발언을 왜곡해 공개하는 공작이 없었다면 취임 후 1년을 어떻게 넘겼을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검찰총장의 사생활이나 뒤져 쫓아내는 따위의 정치 사찰의 적폐를 악용하지 않았다면, 나라는 이미 상당히 바로 세워졌을 겁니다.

하긴 그럴 만한 언덕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세요’라는 신파극 한 편으로, 과적이 아니라 적폐로 침몰하던 정부여당을 살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걱정이 앞설 겁니다. 비전이나 정책이 아니라 지질한 눈물로 선거를 치르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의 치마말기를 부여잡고 있던 후보들이 뇌까리던 구호와 정책은 오로지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박근혜를 지켜주세요’ 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미개한 신생 국가도 아니고, 당신은 세월호 탑승객도 아니며 더군다나 당신은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선장과 같은 입장인데, 당신의 눈물부터 닦아주고, 당신부터 구해달라고요?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란 게 그런 세상입니까. 그게 당신이 개조하고 싶은 대한민국입니까. 대부분 생산 현장을 떠난 노장년층들의 상실감과 소외감 그리고 공연한 분노를 앞세워 추진하고 있는 국가 개조 말입니다. 눈물 몇 방울이면 영혼을 내놓고 주술에 걸리는 사람들, 당신의 말대로라면 그들 역시 오랜 ‘적폐’입니다.

드론이라고 있죠. 영어의 우리 말 뜻은 수벌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인폭격기, 무인정찰기 등 원격조종 되는 비행기를 두고 드론이라고 합니다. 적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공격용 무기입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선악 판단도 없이, 조종자의 지시에 따라 살상을 하니까요. 드론 같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모두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페르몬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 드론으로는 쇄신이건 개조건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이만큼 발전시키고, 품격을 갖추게 한 것은 생식 본능, 권력욕으로만 가득찬 수벌이 아니라, 깨어있고 사고하고 고뇌하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아우성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드론을 선택해왔고, 당신 주위엔 그런 수벌형 인간들로 득시글대고, 당신은 국민을 수벌이나 아니면 일벌로 만드는 걸 국가 개조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당신이 국무총리로 염두에 둔 사람들이 손사래 치는 건 바로 그런 변함없는 ‘박근혜 스타일’ 때문일 겁니다.

곽병찬 대기자

당신은 일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동독의 몰락을 떠올리며 대북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 동독이 어떤 나라였는지 알고나 있었습니까? 시인 브레히트는 이렇게 묘사했었습니다. “6월17일 인민봉기가 일어난 뒤/ 작가동맹 서기장은 스탈린가에서/ 전단을 돌리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었으니,/ 이것은 오직 2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해결 방법’)

왜 국민을 바꾸려 합니까. 왜 국민을 괴롭힙니까. 당신만 바뀌면 되는데.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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