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에 어느 도랑이 약간 깊어 보였다. 도랑의 끝에는 파이프가 있었고 나는 이끌리듯 그 파이프 안으로 들어갔다.
파이프 옆에는 또 다른 동굴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긴 토굴. 빛 하나 들지 않는 토굴이었지만 기묘하게도 나는 토굴 안쪽의 형상들이 보였다. 계속해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보니 넓은 공간이 나왔다. 길은 여러갈래. 나는 그 중 하나를 골라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안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다.
이곳은 미궁이다. 나가려면 길을 조합해야 한다. 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길을 조합한다는 뜻은 모르겠지만 일종의 퍼즐이라고 생각했다. 안쪽에는 수많은 문이 있었다. 동굴의 벽에 붙은 빨간 문들. 그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그 문 앞에서 넋놓고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는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앞에는 그림으로 그린듯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아래쪽은 시멘트 바닥과 계단이었고. 조금 내려서면 초원을 밟을 수 있었다. 저 멀리 산 꼭대기에는 또다른 빨간 문이 있었다.
길을 걸으며. 붉은 털을 가진 토끼가 파란 털을 가진 양과 놀고 있었다. 그들은 맴돌며 걷거나 뛸 뿐. 풀을 뜯거나 하진 않았다.
몇걸음 걷지 않아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나는 빨간 문을 또다시 열었고 문 안에는 붉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그리고 정확히 아까 걸었던 길의 끝. 산 아래에 빨간 문이 시멘트 계단 위에 있었다.
또다시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다시 푸른 초원이 보였다. 나는 문을 닫고 잠시 생각했다. 닫았던 문을 열어보려 했으나 열리지 않았다.
문 옆의 허공을 보다 문득 손을 뻗었다. 그곳은 허공이 아니라 벽이었다. 푸른초원의 색지를 벽에 붙인 듯.
벽을 두드리니 벽이 조금씩 우그러졌다. 벽이 아니라 마치 굵은 종이 재질같다. 그곳을 쳐 떼너내니 바깥은 검은 암흑이었다. 푸른 초원의 경계에서. 나는 검은 암흑으로 들어갔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