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시작됐다. 게임도 슬슬 줄였고, 매일같이 출근하다시피 하던 친구 집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그 친구 집에는 콘솔 게임기가 있다. 엑박. 철권도 하고 헤일로 시리즈도 세 개 다 모조리 하고…여하튼 그 동안은 재미있었다.
한 2주 정도 지나고, 개강. 등록해놨던 반으로 갔다. 일단은 특반이었다.
남중남고 나와서 남녀합반 들어가니까 솔직히 눈돌아간다. 한동안은 앉아있기조차 불편했다. 한 2주쯤 지나서야 시선에 대해서 조금 편해졌다. 그리곤 마음먹었다. 재수할 땐 그냥 혼자 지내야지. 어차피 학교 때 친구들 중에 재수하는 인원이 꽤 됐고, 걔들 전부 나랑 같은 학원이었기 때문에 말상대 아쉬울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 이 결정이 잘 한 일이었는지 못 한 일이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잘 한 일이었던 것 같다. 왜 잘 한 일이라 생각하는지는 下 혹은 그보다 더 뒤에서 얘기할 것이다.
한 3월까진 별 일 없었다. 같이 온 친구 두 명과 함께 세명이서 지냈다가, 나중에 보니 두 명 더 있어서 그 두 명 합쳐서 다섯 명이 몰려다녔다. 나름대로 지낼 만 하더라. 반에 친구가 없지만-물론 만들지 않은 내 탓이지만-그거야 쉬는 시간에 반에 있지 않으면 그만이니 별로 아쉽지 않았다. 수업 들어가면, 그리고 자습시간이 되면 나는 벙어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집중은 비교적 잘 됐다. 학교 다닐 때에 비하면.
그리고 4월을 지나면서 슬슬 풀어졌다. 4월 중순, 5월로 넘어가면서 아직 초반 초중반일 때라 성적도 좀 나오고, 분위기도 아직은 널럴한 편이라 \'혹시 나는 공부 꽤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470가까이 맞고 나니 그 생각이, 가당찮게도, 매우 확고해졌다. 참고를 위해 말하는데 그 때 수리 나형 범위 다 들어가지도 않을 때다. 내가 작년에 엿 먹었던 수리 나. 지금 생각해 보면 방심도 정도껏이지, 싶다.
연초에 콘솔(친구 집)로 하던 철권을 본격적으로 오락실에 가서 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재밌었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그래도 자습은 다 했다. 결과적으로 오락실을 가면 주말 저녁시간 다 돼서 가는 거다. 정신 제대로 박힌 재수생이라면 다 공부할 때.
그러다가 6월 평가원을 쳤는데, 맙소사 수리가 또 2등급. 탐구도 그 즈음에는 거품이 빠지고 160점 정도밖에 나오질 않았다. 정신이 좀 난다. 오락실을 안 가겠다고 친구들 사이에 공언하고, 안 갔다. 떠나간 근현대사 점수는 쉽게 돌아오질 않는다.
그런 6월 평가원이 지나고 나서 한 명, 아니 두 명 더 왔다. 원래 더 친하던 애들이었고, 같은 다섯 명이지만 새로 온 두 명으로 나중의 두 명이 교체..? 됐다. 편의상 처음에 같이 시작했던 네 명을 A B C D, 반수하러 온 둘을 E F라고 하자. A와 B는 나와 무지 친했고 C와 D는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C와 D 대신 E와 F가 일행에 들어온 셈이다. 그 즈음 D는 서든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수능을 치는 바로 전 주까지 빠져 있는다-_-;).
난 6월 평가원 이후로는 별 굴곡 없이 공부했다. 바꿔말하자면, 적당히 했다. 그렇게 파멸적인 점수가 나오지도 않았고, 그렇게 뛰어난 점수가 나오지도 않았다. 어머니와 말싸움하는 횟수가 잦아진 것도 아마 이때쯤이다. 나는 내가 적당히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때쯤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께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떨어지는 게 점수니까. 하지만 어머니께서 \'더\' 열심히 할 수 없었냐고 물어보셨다면 아마 대답 못 했을 거다. 어머니께서도 그걸 아니까 그 질문은 하시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무난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친 듯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다. A가 그랬다. 고1 때부터 친구였는데, 작년에 수시를 엉뚱한 데 내서 정시를 내 보지도 못하고 학원으로 온 친구다. 분하다면서 무척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에 몰려서 놀다가도 가장 먼저 교실로 돌아가는 친구였다. 또 한편으로는 원래 잘하는 사람도 있다. B가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원래 잘 하는 건 아니고, 재능이 있고 또 재미를 붙여서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둘 다 이과다. B는 서울대 인재로 촉망받던 친구였기에, A보단 B가 좀 나았다. 아니, 많이 나았다. 여러 가지로, 특히 수리 가에서. 그런가 하면 보기 힘들어지는 사람도 있다. C랑 D. C는 집에 돈이 꽤 있는 편이라서, 집에서 공부를 한다며 자습을 빠진다. 결국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잘 됐겠지. D는 좀 다른 이유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서든에 빠진 게다. 대회를 나가니 어쩌니 하면서 자습을 빠지고 PC방을 가기 시작하더니, 점입가경으로 나중에는 아예 학원을 안 나오고 하루종일 PC방에서 살았다. 여하튼 둘 다 안 보인 거다. 그런 사람들을 걱정하면서, E와 F를 포함한 다섯 명은 무난하게 공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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