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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여자들의 수다에 관하여.txt

주갤러119(112.155) 2024.04.30 17:10:06
조회 112 추천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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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난 4월 27일 토요일,


유난히 더웠고 그만큼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던 때의 일이다.




별 약속이 없던 느긋한 주말이라 늦잠을 잘 요량으로 전날 밤늦게 잤지만


평소 출근하던 습관이 남아있어 일찍 눈이 떠지고 말았다. (그나마 1시간정도 더 잤을 뿐.)


약간은 아쉽고, 또 그만큼 일찍 일어나 휴일을 즐길 수 있다는 마음에 기분이 좋기도 한,


그런 미묘한 감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버티컬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에 괜히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가장 먼 거리는 집 현관까지라


각종 예능, 드라마를 재방하는 tv채널을 무표정으로 몇 번 돌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소파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나서야 게으른 몸뚱이를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아 귀찮아...유효기간 연장하고 다음에 갈까...'




사실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꽤 오래 전, 친구가 선물해준 스타벅스 기프티콘 덕분.


몇 번이나 먹으려고 결심을 하다가도, 멀어서, 귀찮아서, 딱히 먹고싶지 않아서 미루다보니


어느새 유효기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양말을 신으면서도 내내 고민하다가


'혼자서 카페를 간 적이 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약속이 있거나, 회사 사람들과 함께.


때로는 어울리기 피곤한 자리임에도 맞추기 위해 갔던 카페였던지라


이번만큼은 조용히 혼자 멍때리며 앉아오기로 작정을 했다.





하지만, 주말 점심 즈음의 카페는 역시나 사람들로 가득했고,


겨우 자리가 나서 앉은 곳은 옆 테이블과의 거리가 제법 가까워 살짝 불편한 느낌이었다.


'테이크 아웃으로 할 걸...'




짧은 후회를 비웃듯, 직원이 만들어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자리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 밖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더랬다.




그 때,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던 대화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늘 '다른 사람 신경쓰지 말아라' , '아무도 너 신경쓰지 않는다' 하는 소리를 듣고 자라왔고


그만큼 나도 타인에게 신경쓰지 않겠노라 다짐도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이고,


거기에 성별이 다른, 이성끼리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같은 인간이지만 다른 종(種)의 이야기이기에 흥미를 돋기 충분했다.




흘깃 본 옆 테이블에는


펑퍼짐한 핑크 원피스를 입었고, 볼에는 심술보가 붙어있는 육중함이 느껴지는 30대 후반의 여성 하나,




네이비 색상에 왼쪽 허벅지에 xexymix이라 적혀있는 레깅스를 입었고, 


상의는 명치와 배꼽 그 어딘가까지 오는 크롭 티셔츠를 입은, 코끝이 과하게 올라가있고 입술이 매우 두툼한 (필러가 아닐까.)


성형한 티가 제법 나는 여성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 넓은 블랙 슬랙스와 때에 잘 맞지 않는, 약간 더워보이는 블랙 트위드 재킷을 걸친 매우 새초롬한 표정의 여성 하나가 있었다.




"그러니까 초반에 잘 잡아야 한다니까? 봐, 그러니까 이렇게 주말에도 애 맡기고 나올 수 있잖아!"


핑크색 원피스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니까, 너무 내가 풀어준 것 같아 결혼 전부터 좀 잡아야하는데! 날짜 잡고 프로포즈 했다고 이제 긴장을 풀더라니까?"


블랙 트위드가 맞장구치며 말했다.




"프로포즈는 어떻게 했는데?"


레깅스가 관심없는 척, 그러나 누구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질문을 했다.




"아니 뭐 호텔 방 하나 빌려서 꽃이랑 가방이랑 지갑 이런거 늘어놓고 했지, 인스타에 올렸잖아 별 거 없었어 그냥 평범했어."


살짝 심드렁한, 그러나 자랑하는듯한 트위드의 말투에 핑크색 원피스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며 말했다.


"좋겠다..나는 그 뭐야, 차 트렁크에 꽃장식해놓고 프로포즈랍시고 하던데 으휴! 그걸 또 좋다고 실실거렸으니! 너무 순진했어!"


목이 타는 듯 트렌타 사이즈의 바닐라 크림 콜드브루를 벌컥 들이키는 원피스.




"나도 곧 남친이 프로포즈 할 것 같은데..근데 좀.."


망설이는 레깅스의 표정에 트위드와 원피스가 호기심에 눈이 빛났다.




"왜? 무슨 일 있어?"


걱정되는 말투와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이 끊겨 살짝 언짢은 표정으로


눈은 프로포즈 할 때 받았던 명품백의 버클을 만지작거리는 트위드.




"슬쩍 결혼 얘기 꺼내봤는데 부모 지원을 안받겠다고 그러잖아 전세부터 시작하자고."


레깅스의 짜증섞인 말투에 이미 음료를 반 이상 비운 원피스가 흥분해 말을 꺼냈다.


"야야 효자 났네 효자. 너 잘 생각해. 이해가 손해로 바뀌는거야"


자신의 일인 양 씩씩거리는 원피스와는 달리 냉소적인 트위드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런거 진짜 짜치지 않아? 집안에서 좀 팍팍 밀어줘야지,


  나는 이번에 서울에 집 하나 '저쪽에서' 해준다던데? 이정도는 해줘야하는거 아니냐면서. 인생 한 번 뿐인 결혼이잖아!"


그러며 느긋한 동작으로 앞머리를 넘기는 트위드의 손가락에는 까르띠에 트리니티 링이 반짝였다.


(아마 프로포즈 할 때 받은것이리라.)




반지를 본 레깅스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그니까, 진짜 마음먹으면 충분히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는데 시간아까워.


 얼마전에 헬스장에서도 지인짜 괜찮은 오빠가 말 걸고 번호 주던데 프사보니까 대기업 다니고 집도 빵빵한거같더라고. 몇번 밥도 먹었는데 괜찮더라"




"야 안걸리면 되고, 무조건 돈 잘 벌고 조건 좋은 쪽을 만나는게 맞아"


이미 얼음만 남은 음료를 빨대로 휘저으며, 언제 먹었는지 입안에 머핀이 가득 찬 원피스가 말했다.


이어 작은 목소리로


"그것도 아니면 부모 없는 남자도 좋지! 으히히"




능글맞은 원피스의 표정에 트위드와 레깅스가 박수를 치며 "아우 얘 진짜!"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잠시 깔깔거리던 셋.


트위드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우자


원피스와 레깅스의 표정이 싸늘해지며


"쟤 돈 그렇게 좋아하더니 결국은 남자 하나 잘 물었네, 내가 본 것만 몇 명 갈아치웠는데" , "반지 자랑하는거 봤어? 어후.." , "하여튼 재수없다니까..."


하는 소근거림이 들려왔다.




이윽고 돌아온 트위드는 '예랑이가 데리러 온다' 며 같은 방향이면 태워줄테니 나가자고 했고,


넉살좋게도 원피스는 실실거리며 트위드의 팔짱을 끼고 같이 나갈 준비를 했으며,


레깅스는 얼마 전 번호를 따간 오빠를 만나기로 했다며 새로촘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사실, 위의 대화 외에도 그녀들은 참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카페 안이 워낙 시끄럽고 음악도 나왔기에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원피스는 끊임없이 시어머니와 시댁, 늘 부족한 남편의 벌이에 대해서,


트위드는 현재 만나는 남자의 재산과 연봉, 그리고 결혼 후 받을 수 있는..아니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해,


레깅스는 남자친구와 본인에게 들이대는 또다른 남성과 끊임없이 저울질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 말을 꺼내면 '그치그치' , '진짜?' 등의 추임새 말고는 없었던.




그녀들이 나간 후,


테이블은 금방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고, 또 다른 대화가 들려왔지만 더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복 상태에서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속이 더부룩했고


왠지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한 느낌이 들어 피로감과 살짝 현기증이 몰려왔다.




대충 마신 커피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뜨거워진 햇살이 인상을 찌푸리게 했고


미적지근한 바람이 썩 불쾌한 끈적함을 가져다 주었다.




묘하게 찝찝한 기분이 들어


게워내듯 숨을 내뱉고 크게 들이마셔봤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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