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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인류를 지켜준 아저씨
러시아와 미국의 냉전이 한참 진행중이던 1983년잘 알다시피 지구의 주딱은 과연 누가 맡을것인가를 주제로 지구의 권력을 양분하고 있던 거대한 두 제국의 기싸움이 팽배해있던 시절이다실질적인 무력충돌은 없지만 살얼음판을 걷 듯 하다고 해 붙은 이름 냉전(Cold war)사실 이런 뜻에서 냉전이란 이름이 붙은건 아니고 냉병기와 열병기처럼 Hot war, Cold war로 나눠 부르게 된게 시초다사실 열병기(Hot weapon)라는 이름도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냉병기의 대조어로서 생겨난 말이다 화기라는 단어가 이미 있으니까 아무튼위 아저씨는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다 후술할 내용과는 다소 무관하지만많은 싱붕이들이 알고있을 트황상의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은사실 로널드 레이건이 내걸었던 슬로건을 재활용 한 것이다아무튼 이 아저씨가 1983년 어느날 교회 총회 연설에서 다소 뜬금없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 공개적으로 비난해버리며 미국과 소련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그러나 이것은 팩트와는 조금 궤를 달리한 악의적인 편집에 가까웠는데악의 제국은 한발짝 물러서 사태를 관망하며 '소련과 미국 둘 다 나쁘다' 며 양비론을 펼치는 편협한 기독교인들을 꼬집는 도중에 인용한 단어였지만당시 소련과 미국 양측에 퍼져있던 국가적 기조를 생각해보면 대통령의 입으로부터 나와선 안되는 자극적인 단어임에는 분명했던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들은 소련측의 반응 역시 무척 열렬했다소련의 인민들은 로널드의 이 발언을 거진 선전포고로 받아들여 당장이라도 전쟁을 원하는 듯 들끓었지만 소련 수뇌부의 생각은 달랐다바로 상호 확증 파괴라는 개념의 존재 때문이었다최근 전쟁을 벌였던 많은 나라들이 미사일을 쐈다던가 드론을 날렸다던가 하는 소식은 싱붕이들도 많이들 접했을거다 그러면서도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상호 확증 파괴, 통칭 MAD라고 불리는 개념 때문이다동귀어진과 완벽히 일맥상통하는 뜻인데 한마디로 소련이 핵을 쏘면 미국도 가진 핵을 전부 쏠수있으니 서로 눈치만 본다 이런 뜻이다당시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의 개수는 약 2만여개로, 소련이 보유중이었다고 추측되는 갯수인 4만개의 절반에 간신히 닿는 수치이지만 10개만 터져도 나라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핵폭탄을 2만개를 갖고있든 4만개를 갖고있든 나라 하나를 통으로 지우기에 차고 넘치는 갯수임에는 분명했다연설이 있은 후 반년이 흐른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의 007편이 소련 영공을 지나다 미군의 정찰기로 오해한 소련군의 전폭기에게 격추당하는 일이 있었는데그 자체로도 비극적인 일이지만 이 비행기에는 무려 미국인 다수와 하원 의원이 탑승하고 있었다즉 힘,명분,수단 전쟁의 3박자를 모조리 갖춘 미국이 언제라도 소련의 본토에 미사일을 쏟아부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였다즉 반년 전 레이건의 이 '악의 제국 연설'은 당시 소련에게 있어서 그 의미가 심각하게 와닿는 선전포고 얼리억세스와도 같은 발언이었다소련의 참모들은 항공기 격추 직후 미국이 당장이라도 소련에 핵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는 생각에 촉각을 곤두세웠고이전 미국이 독일과 이탈리아에 탄도 미사일을 배치해 소련 본토를 타격 사정권 안에 넣은 이력이 있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항공기 격추사건이 있고 약 3주의 시간이 흐른 후인 9월 26일 0시 늦은 밤, 소련의 위성 관제센터가 발칵 뒤집힌다소련의 US-K 오코 대탄도탄 조기경보 인공위성으로부터 '미국에서 쏜 것으로 추정되는 ICBM 한 발이 소련 본토로 향하고 있다' 는 탐지 경보가 관제센터에 전달된 것이다이 소식이 날아든 즉시 소련이 보유한 모든 핵 미사일 격납고가 비상 가동되었고 관제센터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게된다미사일 발사를 조기에 탐지했으니 문자 그대로 1초라도 빨리 적국의 본토에 날릴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필요한 상황인 것바로 그 급박한 순간 제목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된다소련의 방공군 장교로 임관해 당시 관제 센터의 당직 사령으로 근무하고 있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조기경보기의 보고를 받아들고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러나 그가 당면한것은 조국 영토가 적국에 의해 무참히 파괴될 것이 분명한 극한의 상황이었고 관제 센터는 그의 시급한 판단을 요했다설상가상으로 당초 1기만 탐지되었던 미국에서 발사한 ICBM의 갯수는 시간이 지나자 점점 수가 불어나 5개까지 그 수를 늘려갔다관제 센터에 수많은 경보 알람음이 세차게 울리며 그의 정신을 흐트렸고 그런 그의 눈앞에는 발사 버튼이 붉게 점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류의 명운이 걸린 극한의 사태에서도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고심끝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내린 판단은 이러했다'미국이 전쟁을 원한다면 그들이 보유한 모든 ICBM과 핵폭탄을 일거에 발사했을 것이다'찰나의 시간,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굳게 마음을 먹고 교신기를 집어들고 입을 열었다 Кажется, это ошибка компьютера.-컴퓨터 에러인 것 같습니다.이 보고는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입장에서도 리스크가 큰 보고였다미국이 핵전쟁을 일으킬 각오로 선제공격을 할 것이라면 일거에 전력을 쏟아부었을 것이라는 그의 판단은 아주 합리적이었지만당초 미국이 소수의 미사일만을 발사해 단순히 이쪽의 컴퓨터 오작동 정도로 상황을 인식시켜 EMP를 일으킨 후 전면전을 개시하는 '블랙 아웃' 작전을 폈을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지상에 설치되어 있는 레이더로선 미국이 있는 수평선 너머 건너편 대륙까지 감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추가 미사일이 탐지될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ICBM이 진퉁일경우 1초라도 빨리 대응사격을 해야하는, 그야말로 소련의 존망이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한명에게 달린 상황이었다그러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직면한 상황을 단순한 컴퓨터의 오작동 정도로 보고했다소련의 관제 센터에는 짙은 긴장감이 흘렀고, 몇시간 후 탐지 경보는 소련의 인공위성이 햇빛을 ICBM의 추진 섬광으로 잘못 인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 순간의 기민한 판단으로 인류의 절멸을 막아낸 이 젊은 영웅은 직후 아이러니하게도 한직으로 물러나게 된다그러나 이것은 대외적으로 소련군의 이미지 실추를 막기위한 상부와 페트로프의 wwe로 쫓겨난 이후에도 급여는 정상적으로 지급되었다페트로프의 일화가 밝혀진 것은 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소련이 해체되었음에도 1급 기밀로 취급되고있던 이 일화는 1998년 마침내 기밀 해제가 이루어지며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다수많은 언론사와 취재진들이 그를 찾아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내가 할 일이었으며,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라며 담담히 인터뷰를 일축하기도 했다그는 기밀이 해제된 후에도 그는 자신의 일화를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티를 내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모스크바의 자택에서 2017년 5월 19일 폐렴 투병끝에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어쩌면 우리가 지금도 배꼽 벅벅 긁으며 싱벙갤을 할수있게 큰 기여를 해준 아저씨일수도 있으니아주 잠깐이라도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작성자 : mbti고정닉
일본의 박정희.jpg
영화 백투더퓨처를 보면 85년의 주인공과55년을살던 박사와의 대화이다박사는 일제를 싸구려라고하저85년의 주인공은 일제는 최고라고하는 모습그리고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서는주인공이 “이대로면 일본이 미국땅 전부 다 사들일거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도대체패전후 폐허였던 일본이 어쩌다 세계최강미국의 목을 움켜쥐게까지 크게된걸까?1980년대 말, 많은 이들이 일본이 미국 경제를 추월할 것이라 예상했다. 일본 기업들은 미국 기업을 대거 인수하고 있었고, 이는 패전국이었던 일본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보여줬다. 이러한 성장은 통계학자 에드워드 데밍이 전후 일본에 와서 통계적 품질관리(SQC)를 전파한 영향이 컸다.1950년 도쿄에서 데밍은 일본 제품의 저품질 이미지를 5년 안에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고, 핵심은 통계적 프로세스 통제(SPC)였다. 그의 지도 아래 2년 만에 품질 향상이 나타났고, 일본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에드워드 데밍은 일생을 일본에서 미국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품질혁신에 헌신했고, 그 결과 일본은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는 1950년 JUSE 세미나에서 일본 기업인들에게 품질관리의 중요성을 강연하며, “내 말대로만 하면 일본이 세계시장을 장악할 것”이라 예언했다.이말에 일본인들은 계몽하였고,전후 잃을게 없던일본의 기업들은 그의 말을 철저히 실현했다.데밍의 통계적 품질관리와 리더십 철학은 일본 특성에 맞춰 TQC(전사적 품질관리)로 발전했고, 토요타를 비롯한 후지, 혼다, 캐논 등은 이를 통해 생산성 향상과 품질개선을 이뤘다. 이 철학은 미국에도 TQM(전사적 품질경영)으로 역수입됐다.그의 14개 원칙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제시한다:1.일관된 목표의 수립→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비전이 필요하다.2.새로운 철학을 수용하라→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와 학습 중심의 기업문화로 전환하라. “좋은 게 좋은 것” 시대는 끝났다.3.검사에 의존하지 말고 품질을 내재화하라→ 불량을 찾기 위한 검사보다, 처음부터 불량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설계와 공정 개선이 중요하다.4.단순히 최저가만으로 거래하지 말라→ 총비용(품질, 신뢰, 납기 등 포함)을 고려하여 거래처를 선택하라. 싸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5.지속적 개선을 추진하라→ 제품, 서비스, 시스템, 프로세스를 끊임없이 개선하라. Kaizen(개선) 정신과 연결된다.6.직원 교육에 투자하라→ 품질을 높이려면 직원이 올바른 방법을 배우고 적용할 수 있도록 꾸준히 훈련시켜야 한다.7.리더십을 재정립하라→ 리더는 단순 지시자나 감시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돕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8.두려움을 없애라→ 직원들이 실수를 숨기지 않고, 질문하거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을 보장하라.9.부서 간 벽을 허물어라→ 부서 간 경쟁이 아닌 협업을 통해 전체 시스템의 최적화를 추구해야 한다.10.구호나 슬로건을 강제하지 마라→ “실수하지 마!” 같은 슬로건보다,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만들라는 뜻이다.11.할당량과 숫자 목표를 없애라→ 수치에만 집착하면 질보다 양, 속도만 중시하게 되어 근본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12.자부심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라→ 직원의 사기를 꺾는 방식(무의미한 규칙, 불공정한 평가 등)을 없애고 성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라.13.교육과 자기계발을 장려하라→ 모든 구성원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지속 가능한 조직이 된다.14.변화를 위한 행동을 실행하라→ 좋은 말만 하지 말고, 조직 전체가 품질혁신을 실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 체계를 구축하라.이러한 원칙들은 일본 제품의 품질경쟁력을 높여 1980년대 미국 시장을 잠식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데밍의 품질관리 이론은 전후 미국에서는 외면받았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일본에서는 열렬히 받아들여졌다.일본 기업들은 이를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그 결과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미국 제품이 침체되는 반면, 품질을 중시한 일본 제품은 세계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토요타의 간판, JIT, 업무 표준화 등은 모두 데밍 이론에 기반했고, 일본 기업들은 고품질·저비용 생산체계를 구축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로써 데밍은 “품질을 발견한 사나이”로 불리게 되었다.1980년, NBC 텔레비전은 ‘일본이 했다면 미국도 할 수 있다’라는 (ㄷㄷ;)제목의 뉴스 특집방송에서 ‘일본 산업의 기적’ 뒤에 숨어 있는, 품질혁명을 이끈 데밍을 소개했다. 이때부터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미국 기업들이 데밍의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일본은 1950년에 데밍의 이름의 '데밍 상'(Deming Prize)이 제정됐다. 당시 데밍상은 일본에서 노벨상 다음의 최고 영예로 꼽혔다. 토요타가 데밍 상을 받은 건 1965년이고, 일본 차들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 이다. 이후 데밍 상은 자동차 관련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했다.1970~80년대, 일본 제품은 미국·유럽 시장에서 ‘가성비와 품질’의 대명사가 되었다.미국은 오히려 자국에서 외면한 데밍을 다시 초청하게 되었고, 뒤늦게 ‘품질을 발견한 사나이’라 부르며 그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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