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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흙수저의 어린시절 일화(긴글주의)모바일에서 작성

흙스푼(110.14) 2015.11.08 01:44:17
조회 164 추천 8 댓글 2

10살때 같은반 여자애 생일파티 초대를 받았다.

전날 엄마한테 친구 생일선물 사야한다고하자 엄마는 집에 있던 지우개랑 형광펜묶음을 꺼내줬다. 보험회사 전화번호가 박힌 사은품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초라했지만 친구에게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이 생소했던 어린나이라 제대로 불만을 표하지 못했고 센스없는 엄마는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애기 때는 달동네에 살았고 초등학생때까지만해도 다세대주택 반지하 이상되는 높이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어린나이에도 2층에 사는 집이 우리집보다 잘산다는걸 알았고 90년대였던 그때, 아파트 사는 애들은 클래스가 다르게 느껴졌다. 아파트에는 반장이나 바이올린, 플룻 같은걸 연주하는 친구들이 살았다.
생일을 맞은 애네 집에는 전에 놀러가본적이 있었다. 아파트도, 단독주택도 아닌 고급 빌라의 꼭대기 층=주인집 이었다. 높은 천장과 처음보는 모던한 인테리어, 번쩍번쩍한 욕실, 집에 돌아다니는 애완견까지.. 근데 그때 부러워하기보다 더 안쳐다봐지게 되더라. 부러워하면 지는거..라는 마음이라기보다 어차피 내가 누리지 못할걸 알아서 어린마음에도 자연히 경계(?)가 됐던 것 같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가 파티에 가기 전 집에 들렀다. 부모님이 다 일하러 가시고 어린 동생은 어린이집에 맡겨져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닐케이스에 든 3색 형광펜. 그걸 들고 생일파티에 갈 수는 없었다. 생일을 맞은 친구는 나를 퍽 좋아해주는 착하고 밝은 애였지만 나에 비해 부족한거 없이 살아왔을 그애가 나의 허접한 선물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반지하 단칸방 장판 위에 누워 엉엉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내서 울었는데 그 때, 내 인생 처음으로 가난때문에 비참했던것 같다. 사실 금전적인 '가난'보다는 엄마, 아빠 누구도 나의 체면(?)을 생각해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방치되고 있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서 서글펐던 것이다. 그즈음 나는 밤에 숨죽여서 몰래 울었다. 아니, 사실은 유년기 내내 그랬다. 잘시간이면 불이 꺼지고 엄마랑 동생, 내가 자는동안 벽쪽에 기대앉은 아빠가 어둠속에서 티비를 봤다. 주로 바둑이었는데 티비 바로 밑에 누워자는 나는 화면의 불빛과 바둑돌 놓이는 소리가 성가셨다.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거나 짜증을 내면 아빠에게서 빨리 자라며 싫은 소리가 날아왔다.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나를 사랑하는 않는다는 생각으로 연결되고 너무나 외롭고 슬퍼졌다. 혼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눈물을 흘리면 엄마가 만들어준 베개가 축축하게 젖었다.
한번은 모두가 자는 저녁에 그렇게 울다가 소리가 조금 났었나보다. 애가 운다는걸 안 엄마가 놀라서 깨고 아빠를 깨우고, 저녁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왜 우는지 다그쳤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노동의 피로로 지친 부모님은 걱정보다는 짜증을 내셨고 나는 실없는 애가 되어 꾸중을 들었다. 다시 누워자는데 또 눈물이 났다. 내가 울어도 아무도 나를 걱정 하지 않는다는 것에 더 서러웠다. 지금이야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사랑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지만 철없던 시절에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20대 초반에 결혼했던 부모님.. 나도 내 한몸 건사하기 힘든 사회생활을 해보니 맨손으로 애낳고 돈벌어서 가정을 꾸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나에게 무심했던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몰래 울던 날들이 잊혀지지 않을만큼 상처도 남았지만 좋았던 기억도 있다.

친구의 생일날 차마 가지 못하고 몇시간을 펑펑 울던 난 왜 안오냐는 친구들의 전화에 뒤늦게 집을 나섰다. 늦게 간 탓에 파티음식은 치워져있었고 얻어먹지 않았으니 선물이 작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다른 친구들이 가져온 포장된 문구류들을 보고 뜨끔 했지만 생일인 애는 노느라 바빠서 내 선물을 신경쓰지 않는것 같았다. 그애네 집 테라스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집에 왔다. 저녁이 되어 부모님이 퇴근했지만 내가 어떤 감정으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가족은 좀 더 지지고 볶고 살다가 내가 성인이 된 후 여러가지 이유로 부모님이 이혼했다. 아버지랑은 연락 하지 않는다. 부자 아빠가 아니라서 헤어진 것은 아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했다면 상황이 좀 더 나았을까? 생각해보면 재산없이 월급으로만 먹고사는 초서민이었지만 빚독촉을 받고 산것도, 아픈 가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IMF라는 위기때문에 안그래도 어렵던 형편이 더 꺾이긴 했지만 충분히 더 행복할 수 있었다. 우리가족이 이겨내지 못했던건 경제적 쪼들림보다 마음의 가난이었던것 같다. 서로 함께 있는것이 가장 큰 축복인걸 모르고 사소한 이유들로 왜그렇게 가슴이 아팠는지..

비빌 언덕 없이 성인이 된 나는 부모님이 그랬던 것 처럼 맨손으로 사회에 나왔다. 대학에 가고 취직 준비를 하고 평범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에는 돈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빚이 생겼다. 어찌어찌 사는데 일은 힘들고 돈은 적다. 미디어마다 시시각각 매력적인 상품을 소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당연하다는 듯이 누린다. 나는 일찌감치 내가 흙수저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부담갖지 않는다. 그냥 내가 이룬 작은 성과들에 만족해하며 느리더라도 나만의 페이스로 살려고 한다.

흙수저이기 때문에 가족이 흝어지고, 흝어진 가족 때문에 흙수저가 된다. 지금껏 흙수저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흙수저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내가 가장 후회되고 겁나는건 궁핍한 삶이 아니라 그때문에 가족을 잃는거다. 나중에 내 자식이 돈때문에 상처받을까봐 결혼 엄두가 안나고 평생 자식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가 노년에 돈때문에 서글플까봐 미안하다. 흙갤 와 보니까 흙수저의 삶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갤러들이 많지만 흙수저 부모님을 원망하고 도망치고 싶어하는 갤러들도 있는것 같다. 부모님께 잘해드리라고 하고싶지만 정말 대책없는 부모도 있을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나는 것만이 답인.. 그래도 연락만은 완전히 끊지 마라. 일년에 한 두번 짧게 안부전화라도 해라. 연락 끊은지 오래되면 나중에는 더 연락하기 힘들다. 정말 나 사는데 요만큼도 도움 안되는 사람이라도 가족이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소중한거더라.. 정말로..

넋두리가 길었네. 흙수저의 삶에 길들여져 버린건지 지금은 괜찮다.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있는 흙수저들 힘내자. 엿같은 세상 동수저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더 중요한건 정신적인 결핍에서 해방되는것 같다. 흙수저의 삶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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