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기간이 너무 너무 짧다..
좀 곱씹을 수 있게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했어.

극 자체가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리석거나 미련하거나 무심하기 그지없는데
미워할 수가 없네.

빚 갚아주고 병수발 들어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간 남편을 그래도 사랑하는,
당장 전재산이 경매에 넘어가게 된 상황에서도 동정을 비는 사람에게 금화를 건네는
털끝만큼도 현실감이 없는 류바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잠자코'를 바라지만
극 내내-아마 평생-결국 한번도 그런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못미더운 삼촌

영글지도 못한 지식으로 깨어있는 신지식인이 되고싶어하지만
말뿐인, 심지어 열살 이상 나이차가 나는 어린 연인에게 키스 한번 못하고
그저 전진하자고 외치기만 하는 무능한 빼짜

충동적으로 경매에 참여해 보증금에 9만루불이나 웃돈을 얹어 아버지의 지배자에게서 벚꽃동산을 사버린 로파힌을 사로잡은 건,
열등감과 추억과 그보다 더 복잡한 감정.
타협점을 찾지 못해서 실패해버린, 류바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행위는
아직도 마음 한켠을 차지한, 해방되지 않고 남은 농노의 아들 로파힌으로 할만큼 했다는 자책을 피하기 위한 변명이 아니었을까.

최후의 최후의 최후까지 결국 청혼은 커녕 꽃한송이 건네지 못한
바보같은 모습에
그딴 8루불 샴페인 한큐에 들이키고
그 꽃을 들고 그녀를 쫓아가라고, 얼마나 외쳤는지.

사랑스럽고 용감하지만, 주위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남자의 그럴싸한 언변에 눈을 반짝이는, 남자보는 눈은 없는, 철부지 아냐.

사람들과 사랑을 고백한 여인에게 비웃음당하고
늘 무시당하고 볼품없는, 걸어다니는 불행, 예삐호도프.
하지만 예삐호도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도 꿋꿋하게 말한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
짐작도 못했겠지만 류바일가에게 닥친 현실처럼.

그리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피르스 할아버지.

극을 따라 가면서 확신 했던건,
분명 마지막은 늙은 피르스일거라는 점이었는데..

류바를 위해 가져다주는 발쿠션이 번번히 외면받는 것처럼
피르스 할범은언제든 외면할 수 있는 존재였지만
가예프가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피르스의 보살핌을 요청하는 것처럼,
류바와 가예프가 돌아올 곳, 그들이 나고 자란 벚꽃언덕.
자유조차 거절하고 그 집을 지키며 주인을 기다린 피르스는 이미 그 존재 자체로 남매의 집-벚꽃동산 자체가 되어버린거야.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빈 집에 홀로 버려진 늙은 피르스 할범은,
벚꽃언덕의 벚꽃나무과 함께 쓰러졌고
남매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거야
벚꽃동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피르스 할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류바의 발치에 발쿠션을 가져다놓고 외면당하고도
다시 그녀를 위해 발쿠션을 가져오는 피르스 할아버지의 어리석은 한결같음에 대한 경애로,
원작을 읽어봐야겠다.


ㅎㅈㅇㅇ. 피르스 할아부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