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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이 고개.

만철조사부장 2006.04.05 21:17:40
조회 4138 추천 0 댓글 15




오늘 일정이 좀 일찍 마무리되어서 집에 들린 김에 글을 쓰오. 내일 또 코스 돌리고 강의 뛰고 해야 하는 고로 좀 일찍 자야 하기는 하지만서도 생각 난 김에 질러야 글이 나오는 법이니 한번 내 질러 보도록 하겠소. 위의 사진이 우스이 고개에서 가장 유명한 앵글이라 할 수 있는 것이오. 우스이(碓氷)로 검색하면 이 사진이 자주 눈에 띌 것이오. 앞에 보이는 적벽돌제의 교량이 1893년 개통 당시의 것이고, 뒤의 열차가 다니는 교량과 그 뒤의 희미하게 보이는 교량이 폐선 직전까지 사용한 신선 교량이오. 아래 사진은 우스이 고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조물인 일명 "안경 다리"요. 현재는 하이킹 도로를 만들어 놔서 저 교량 위를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소. 지금도 그렇지만, 워낙에 험준한 곳이어서 여러모로 건설에 애를 먹었다고 전해지오. 저 외에도 터널과 교량 개소만 11.2km 정도의 구간에 20개소가 넘소. 사진은 아마도 ED42형이 다니던 시절의 것으로 보이오. 웹에서 구했소. 신에츠 본선의 우스이 고개는 주요 간선의 3대 고개로 꼽히던 곳이오. 오우 본선에 있는 4연속 스위치백에 최대 구배 38퍼밀로 유명한 오우 본선의 이타야 고개와 산요 본선의 보기사업구간인 22.6퍼밀의 "세노하치(瀬野八 ; 瀬野-八本松)"와 함께 꼽히는데, 개 중에서도 66.7퍼밀의 급구배로 악명이 높은 구간이오. 그 덕에 현재 가장 약한 세노하치를 제외하면 모두 폐선이 된 상태지만... 이 우스이 고개는 앞서 말했듯이 1893년에 개업한 구간이었소. 이 우스이 고개는 고대의 나카센도(中山道) 구간에 속하는 곳이고, 전국시대에는 사나다 가문이 한바탕 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우리나라에는 이니셜D로 알려져 있소. 도로의 경우도 국도 구간이 사고가 잦아 대체도로로 우스이 바이패스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지금은 별도의 고속도로 구간이 뚫려있는 곳이오. 표고차는 553m로, 요코가와(표고 387m)-가루이자와(표고 939m) 사이에 있소. 고개 정점이 1000m 근처던가 그렇고, 철도가 가장 약한 지점을 뚫어서 960m 지점을 통과하오. 이 구간은 앞서 말했듯이, 나카센도 루트의 중간에 있소. 도카이도와 함께 양대 노선이었는데, 도카이도는 하천과 평야를 지르는 번거로움이 있다면 나카센도는 험한 산길의 압박이 있는 옛 길이오. 초기 일본 간선철도 건설시에 나카센도 쪽으로 마음이 가 있었는데 워낙에 험악하고 지지부진 해서 도카이도가 현재의 간선으로 결정되었다고 하오. 애초에, 우스이 구간에 최초로 개업한 것은 1884년의 국도와, 1888년의 마차철도였소. 이 구간에 진입하기 위한 철도로 타카사키-나오에츠 간의 철도 공사가 이루어지는데, 타카사키-요코가와 간이 1884년, 나오에츠-가루이자와 간이 1888년에 개통되었소. 그리고 1884년의 우스이 구간의 측량이 이루어지고,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갈등을 때리기 시작하였소. 우스이 외에 이 구간에 고개가 여럿 검토되기도 했지만 역시 너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고, 이걸 넘는 방법에 대해서도 루프, 우회선, 인클라인, 스위치백 등이 검토되었지만, 역시 답이 안나올 만큼 험지다 보니 지지부진했었소. 이때, 독일의 랙레일 방식 산악철도를 누가 보고 "이걸 쓰면 된다!"라고 보고를 올려서, 이른바 아프트식 철도를 부설하자고 하였소. 구배는 최대 66.7퍼밀, 랙레일 구간이 8km, 터널 26개, 교량 18개가 설치되는 그야말로 경사도의 압박을 보여주는 구간이 되었소. 해당 구간에 2개의 신호장, 쿠마노타이라(熊ノ平), 마루야마(丸山)가 있으며, 이 중 쿠마노타이라의 경우 급수와 급탄 작업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하오. 이 우스이 고개 구간 선로는 1891년에 착공되어, 1892년에 완공을 보았다고 하는데, 1년 9개월의 공기동안 밀어붙여서 만들어 내는데 성공은 했지만 500여명의 사망자를 낼 정도로 험악한 구간이었소. 당시 선로 건설시에 철제 침목을 독일에서 수입해서 설치했다고 하며, 기관차는 증기식의 랙레일 용 기관차로 역시 독일제였소. 독일에서 부품을 도입해서 4량을 신바시에서 조립해 가져다 썼다고 하오. 일반적인 수동, 진공식 브레이크 외에도 피니언 랙을 이용한 제동기에, 반압제동기라고 해서 엔진브레이크 식으로 피스톤을 공기압축기로 써서 제동을 거는 방법까지 쓰도록 설계된 기관차를 사용하였소. 급구배 철도에서는 제동이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하게 만들어진 셈이오. 이 구간에서의 시운전을 영국인 기사와 함께 시작했다가 고장이 나고 제대로 주행도 못하는 등 처음에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하오. 지금이야 시운전이 좀 귀찮을 수 있는 요식행위로 볼 정도가 되었지만, 저때는 기계적인 신뢰도를 어느 누구도 확답하지 못하는 고로 시운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 수 있소. 이때 이 우스이 구간의 효용성에 대해 비판이 나왔지만, 당시의 수뇌부가 거의 돌관하다시피 밀어서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하오. 이 당시 아프트 구간의 최고속도는 9km로 75분이 소요되었다고 하오. 한번에 수송하는 양의 척도인 견인정수는 70톤으로 당시로서는 기적이지만, 요즘 기준으로는 객차 한두대 달고 가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인 숫자였소. 물론 당시 기관차에 보기형 객차 물리면 가지도 못하긴 하지만 말이오-_-. 이후 영국제 기관차 도입으로 100톤까지 늘렸다고 하는데, 속도는 요지부동이었소. 이후, 중간에 기관차를 하나 더 편성해 넣어서 140톤까지 끌어올리기 까지 하오. 이후 마루야마 신호장의 안전측선 부설, 중간의 치차 완급차 연결(톱니가 달린 브레이크 차 라고 보면 될 듯) 등 안전을 강화해 가오. 이 구간 운행을 하면서, 일단 안전도 쪽은 그래도 어느정도는 되었지만 다른 문제가 생기오. 증기기관으로 다니는 구간에 터널이 너무 많아서 터널 내에서 매연에 질식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오. 9km/h로 수백m 길이 터널을 간다고 생각해 보시오.-_- 터널 가득히 매연이 들어차게 되고 승객만이 아니라 승무원까지 질식할 지경이 되었다고 하니, 문제가 간단한게 아니라 할 수 있었소. 그래서 나온게 터널 입구에 배연막을 달아 열차가 지나갈 때 이걸 여닫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그리 큰 효과는 없었고 안전사고만 생겼다 하오. 이 구간은 하여간 크고작은 사고가 나지만, 1901년에는 철도 기사장이 자기 아들과 이 구간을 타고 가다 차량의 역주(뒤로 밀려남)을 감지하자 패닉에 빠져 차에서 뛰어내렸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나오. 이 급구배 구간에서 역주는 말 그대로 죽음을 의미하는 사건이고 그래서 이 기사장은 겁을 먹었던 것이오. 하지만, 그 역주차량은 겨우겨우 차를 세울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무사했다고 하니 너무 아는 것도 참 문제라 할 수 있다 할 수 있소.-_- 이후 전기화가 추진되는데, 질식사고와 기관차 성능 문제가 사람 속을 썩인 만큼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엇소. 1910년에 제3궤조 방식으로 전기화가 추진되어 1911년 부터 전기기관차가 투입되게 되오. 이후로 완전히 전기화 되는데는 시간이 걸리게 되오. 전기기술의 신뢰성 부족 등이 그 이유라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증기기관에 질식하는 것 보다는 이게 나으니 전기차량으로 이후 완전히 대체되게 되오. 당시의 전기기관차는 스위스제의 것이 쓰이는데, 이로 인해 최고속도가 18km/h로, 수송능력도 1량 80톤, 2량 140톤, 3량 230톤으로 향상되었다고 하오. 이때, 중련을 한다고 해도 총괄제어가 아니라서 기적 등으로 신호를 보내 각 기관차의 운전원이 조작을 맞춰 하는 식으로 운행을 했다고 하오. 이는 증기시대랑 그리 달라진게 아니었소.-_- 1918년 최초의 대형 사고가 생기게 되오. 쿠마노다이라 역에서 화물열차가 역주해 탈선하는 사고가 생겨서 승무원과 역무원 4인이 사망하는 사고가 나오. 여객열차가 아닌게 정말 천운이라 할만한 일이고, 역시 급구배의 무서움을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던 사고였소. 이후 1923년에는 오미야 공장에서 일본 최초의 자국산 전기 기관차가 생산되어 이 구간에 투입되오. 이 기관차 중 1대가 아직 일본에 보존중이라고 하오. 이후에 스위스제의 신형 기관차(ED41)가 도입되는데, 이때 발전브레이크가 최초로 도입되었다고 전해지오. 이후 ED41형의 국산화인 ED42 기관차가 도입되는데, 이때가 이른바 아프트식 철도의 전성기였다고 하오. 그리고 역시 1940년대부터 이 아프트식(랙레일 식) 구간을 어떻게든 점착식으로 다녀보려는 노력이 실험되지만 별로 재미를 못보던 모양이었고, 발전제동 대신 회생제동을 도입하는 등의 소소한 변화가 이루어졌소. 1950년에 이 구간에서는 가장 큰 참사가 일어나오. 다행히 열차 사고가 아닌 산사태였는데, 쿠마노다이라 역(당시 신호장에서 역으로 승격) 구내의 터널에서 산사태가 나 선로가 매몰되고 그 복구작업을 벌이오. 그러나 거기에 이어서 대규모의 산사태가 나서 복구작업중인 직원들과, 그 직원들의 숙사에 있던 직원 및 식솔까지 희생되오. 50명이 사망하고, 24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 참사였소. 1주년 째에 쿠마노다이라 역에 추모비가 서게 되고, 이는 지금도 폐지된 역 안에 남아있다고 전해지오. 이후 용량 부족과 위험문제가 제기되면서 개량 계획이 나오게 되오. 개량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는데 하나는 25.2km 정도로 크게 우회를 해서 25퍼밀화 하는 방안, 그리고 다른 하나는 66.7퍼밀 선로를 신설해 스트레이트로 넘되 특수성능 기관차로 점착 운전(즉 그냥 달려서 올라가는 것)을 수행하는 방안이 나오게 되었소. 전자의 경우 화물열차의 경우 특수 기관차나 보기가 필요해 지긴 하지만 대개 그냥 갈 수 있고, 후자는 특수기관차가 반드시 붙어야 하지만 짧게 갈 수 있는 안이라 할 수 있소. 결국, 돈과 시간이 덜 드는 66.7퍼밀 안이 추진되오. 1961년에 신선 공사가 착공되어 1963년 완공이 되고, 이때 카테나리(공중가선) 급전과 1500V화 등이 추진되오. 또 이와 동시에 이 구간을 위한 특수 기관차 EF62, EF63이 설계되어 투입되게 되오. 이떄의 EF63은 말 그대로 당시로서는 기술의 극치라 할만했던 물건이었소. 과속 감지장치를 설치해서 일정 속도를 넘으면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체결하는 시스템이 설치되었으며, 브레이크 역시 전통적인 브레이크들 외에 자기흡착 브레이크라고 전자석을 이용해 레일 면에 브레이크를 붙여서 제동을 가하는 것이 채용되오. 이외에도 활주방지장치 등 급구배에 대처하기 위한 갖가지 장비가 설치되었소. 중량은 108톤에 축중 18톤으로, 당시 일본제 기관차로서는 매우 무거운 물건이었는데, 이는 출력 강화를 위한 장비에 저런 급구배용의 각종 안전장치가 대량 채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대한 점착능력을 올리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오. 축중이 무거울수록 점착력이 올라가기 때문이오. EF62는 이 신에츠 본선을 위한 화물견인기인데, 그 성능 설계를 하면서 EF63과의 협조운전을 할 수 있도록 그 속도나 인장력을 맞추고, 발전 브레이크등의 각종 제동계통을 강화하였으며, 선로 조건의 충족을 위해 경량화를 추진하였다 하오. 일본 기관차 중에서는 몇 안되는 Co-Co 대차 채용으로 또 유명하오. 총중량 96톤에 축중 16톤이라 하오. 그래서 우스이 고개 하면 이 두녀석을 떠올리는 철도 광(이라 쓰고 오덕후라 읽을지도-_-)이 많다고 하오. 우스이 고개에서 EF63의 연결은 여객열차나 동차의 경우 1량이 앞에 붙어서 가고, 화물열차는 원래 기관차 외에 2량의 EF63보조기관차가 붙어서 운행하게 되었소. 단 화물의 경우 앞에 1량, 그리고 뒤에 1량이 붙는 식으로 연결되게 되오. 이는 축중이 무거워서 3중련 붙이면 선로에 부담을 주는 문제도 있고, 브레이크 반응 속도 문제도 있어서 그렇게 조처했다고 하오. 총괄제어는 당연히 가능해졌소. 이로서 400톤까지 이 고개를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오. 이때 이 구간의 최고속도는 25km/h. 다른 노선에 비하면 하품나는 수준이지만, 아프트식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고속이라 할 수 있었소. 그러나, EF63이 붙는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문제(연결기, 대차 등)가 있어서 결국 우스이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기종은 별도로 관리를 해야 했다고 하오. 통과가 가능하도록 개량이 실시된 차량은 차번 표기 앞에 40mm의 점 표시를 해 두었다고 하오. 이후 이 구간의 복선화를 추진하게 되는데, 워낙 악조건이다 보니 일종의 병렬선 개념으로 선로를 설치했다고 하오. 구선의 부지를 활용해 선로 개량을 실시하되, 일부 구간은 또 따로 분리된 노선을 취하게 되었소. 그게 맨 위 사진의 2개의 다리라 하오. 복선화가 되면서 앞서 개통한 선로가 상행선, 나중 개통한 선로가 하행선이 되었소. 재밌는건 상행선은 내려가는 선로, 하행선은 오르는 선로라고 하오. 도쿄 기준으로 이걸 정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라 할 수 있소. 복선화 하면서 쿠마노다이라 역은 폐지되었다고 하오. 이때부터 각종 급행열차(즉 우리로 치면 우등/특급)이 투입되는데, 이 당시에는 협조운전 시스템이 없어서 8량 제한으로 다녔다고 하오. 그러나, 고도성장기의 인구이동이 늘면서 8량으로는 열차 용량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협조운전이오. 즉, 동차도 동력을 받아 주행을 하고, 이를 기관차가 보조하는 것이오. 이를 도입함으로서 12량까지 운행이 가능해 지고, 이후 이 구간 투입 전동차의 설계는 모두 협조운전 기능을 부여하게 되오. 이때부터는 성공적으로 이용객도 늘고 분위기도 좋았소... 1975년에 이 구간에서 대형 사고가 나오. 회송중이던 EF63 2량 및 EF62 2량이 언덕을 내려가다가 폭주해서 커브에서 탈선하는 사고가 벌어지게 되오. "철도사고 왜 일어나는가"라는 책을 보셨다면 이 사고의 사진을 보셨을게요. 삼나무 밭에 기관차 4대가 뒹굴고 있는데, 이 4량은 모두 폐차되었고 승무원 3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하오. 안전장치를 그렇게 했음에도 이게 탈이 나서 벌어진 사고였소. 이후 1970년대의 자동차화 압박도 있고 경영 상태가 나빠지면서 이런 힘들고 돈드는 구간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와중이기도 해서, 이 구간의 수지는 계속 악화일로를 걷게 되오. 화물과 스키 행락객이 주 수입이라 할 수 있었는데, 화물은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또 스키 행락객은 토호쿠신칸센 개업등의 압박으로 점차 감소하는 일이 벌어지오. 1984년에 이 구간의 화물이 전부 폐지되오. 그리고, 1986년의 일본국철이 없어지고 JR 7사로 쪼개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서 여객 열차도 단편성화 및 축소편성이 실시되오. 이렇게 비틀거리는 우스이 고개를 관짝에 쳐넣고 못질하는 것은 신칸센이었소. 이 구간의 신칸센 정비계획은 크게 세 가닥으로 잡혔소. 타카사키 까지는 풀규격 신칸센, 타카사키에서 나가노 까지는 미니신칸센(정비신칸센), 그리고 나머지 신에츠 본선 구간은 수퍼 특급으로 가닥이 잡히게 되오. 이 와중에서 이 문제많던 구간은 수요부족 등을 이유로 대체교통화 후 폐지를 결정하게 되오. 지역주민 등의 격렬한 반대가 나오긴 했지만 대세를 엎을 수는 없었고, 나가노 신칸센의 개업으로 1997년 9월 30일 이 파란만장한 철도는 폐업하게 되오. 가루이자와의 경우 신칸센 역이 생겨서 그런대로 유지가 되지만, 요코가와 역은 과거 기관차구가 있던 동네답지 않게 엄청 쪼그라들게 되오. 그러나 이 우스이 고개에 관심가졌던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던 고로 이를 기념하기 위한 문화사업이 시작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즈이 고개 철도 문화 마을"이오. 이 구간에 쓰이던 기관차 등을 전시하고, 각종 모형이나 기록물 같은 것을 모아서 일종의 소규모 테마파크화를 한 셈인데,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라던가 하는 장점 덕인지 그런대로 호조를 보였던 모양이오. 근래에는 우스이 고개의 철도구간 중 25퍼밀로 부설되어 있는 요코가와-마루야마(옛 신호장)간에 토롯코 열차를 투입하기에 이르오. 여기에 마루야마를 좀 넘어 토게노유 라는 온천까지 개업해서 거기까지 운행을 한다고 하오. 3대 고개 중 그냥 저냥 사는 세노하치, 지금은 거의 폐업해서 찾는 사람도 마땅히 없는(이벤트성 관광 식으로 가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지만) 이타야 고개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소... 아니, 아예 더 나가서 이 우스이 고개 운행을 부활시키자는 운동도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기도 하오. 과연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갑을 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소. 우리나라는 그리 길지 않은 철도지마는, 이 3대 고개를 다 합쳐놓은 급의 대고개가 하나 있소. 바로 통리재요. 지금은 터널등으로 빙빙 돌려놓은 우회로와, 흥전-나한정 간의 스위치백이지만, 더 전에는 심포리에서 흥전까지 가기 위해 윈치로 케이블을 감아올려서 열차를 올리는 인클라인이 설치되어 있던 그야말로 극악한 곳이라 할 수 있소. 또 지금도 최대 구배는 30퍼밀에 이르는 겁나는 동네기도 하고 말이오. 물론 최대 구배는 우스이에, 스위치백의 숫자는 이타야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게 한 선구에 다 몰려 있는 건 꽤 진귀한 일이라 할 수 있소. 2007년에 루프터널 개업과 동시에 이 구간의 운행은 화물열차 등으로 한정지을 것으로 보이는데, 늦기 전에 한번 스위치 백을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오. 청량리-강릉 7시간의 압박이 무섭긴 하지만 말이오.-_- 현재, 이 구간에서도 우스이 고개의 경우를 봐서인지 철도공원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지자체에서 덤비고 있는 걸로 아오. 그러나, 아무래도 긍정적인 상황이라기는 어렵소. 서울에서 너무 멀기도 하고 교통도 극악하기 때문이오. 또 이 구간을 한눈에 아우를만한 것도, 또 대규모 시설을 할만큼 넓은 땅도 마땅치 않고 말이오. 그러나, 이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은 나름대로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소. 부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기를 비오. P.S.: 나머지 2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소.^^ 역시 이야기 꺼리가 우스이 만큼 많지가 않으니 말이오. 이타야 정도가 이야기거리가 있겠지만, 여긴 자료 찾기가 귀찮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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