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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아스리엘] 황금꽃

<<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3.14 21:29:58
조회 407 추천 18 댓글 7

원작: 김유정 <동백꽃>


===============

오늘도 또 우리 달팽이가 한참을 달리었다. 딱 저녁을 마치고 아버지가 기르시는 꽃에 물을 주러 갈 때이었다. 막 정원에 들어서려던 참에 등뒤에서 귀에익은 노래가 들리키더라. 설마하여 재빨리 뒤돌아서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경주가 붙었다.


차라네 달팽이(는 껍질채로 커다랗고 빠르기도 제일가는 놈)가 한뼘 가는데 나절씩 걸리는 우리 달팽이를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서는 따라잡힐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기는걸음을 맞추면서 우리 달팽이를 농락하다가 결승선에 다가와서야 언제 그랬냐는듯 태연히 앞질러가는 행태가 주인이랑 똑 닮은 것이 밉상이다.


그러면 뒤쳐진 이놈은 용이라면 쓸대로 다 써가면서 나아갔는데도 지가 졌다는 것을 인정을 못 하겠는지 결승선은 이미 한참 지나고도 차라네 달팽이를 힘겹게 쫒아가고, 이러는 꼴을 가만히 내려다 보니 내가 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대뜸 차라네 달팽이를 보고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화염 마법을 써서 달팽이 파이를 구워버릴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친절 알갱이 정도로 겁만 줘서 쫒아내었다.


이번에도 차라가 경주를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초콜릿 건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손뜨개질을 하러 가면 갔지 남 정원 가꾸는데 와서는 대뜸 훼방을 놓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무슨 앞뒤로 몸을 이래저래 돌리며 춤이라도 추는것마냥 다가와서는 슬며시 웃으며 말하기를,


"얘, 아스리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는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하우디와 그리팅스 정도만 오갔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 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디?"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게 일만 하기 질리지도 않니?"


또는,


"어짜피 시들 꽃을 뭐하러 키우지?"


헛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이 놈의 계집애가 핫랜드에 놀러가서 더위를 먹고 드디어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하늘 쪽을 할금 할금 돌아보더니 바른손을 허공에다 갖다대고 뭔가를 뒤적거리길래 내 예상이 틀림없었구나 믿으려는 차, 안보는새 소환술이라도 닦아온 것인지 갑자기 공중에서 초콜릿을 낚아채어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듯 추운 냉기가 확 끼치고 이게 그 차원상자인가 인벤토리인가 하는 것인지 생각해내는 동안 딱딱하고 굵은 초콜릿 세 개가 내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지상 초콜릿이 맛있단다."


"난 초콜릿 안 먹는다. 너나 좋아하는거 많이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초콜릿을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요란스러운 효과음이 심장소리인지 발소리인지 모를것과 함께 울려퍼지던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차라와 알고지낸 것이 201X년 이후로 제법 오래되어 있으나 여태껏 차라의 눈이 그토록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그러고는 그 붉게 젖은 눈을 뜨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체 하며 웃는 얼굴로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다가 나중에는 눈물이라도 보일새라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몸을 위아래로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제 분을 가라앉히려 드는 것이 내 눈에는 그저 황당하면서도 안쓰러운 모양새였다. 그러고는 초콜릿을 다시 허공으로 집어넣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인데, 괜시리 미안해지려다가다도 내가 누굴 욕보였기에 저래하는건지 아주 별일이었다.


어쩌다 건넛집 과학좀 한다는 아가씨가,


"차-차라? 그런데 너 정말 누군가를 사귀어볼 생각은 없는 거야? 사실, 내가, 음... 정말 너랑 잘 어울리는 상대를 알고 있는데..."


하고 물으면,


"염려 마셔라. 누구처럼 화면이랑 사귀지는 않을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차라였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목덜미를 단검으로 한번 모질게 베어버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초콜릿을 안 받아먹는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지가 더 좋아한단걸 모르지 않는데 받아주질 않는다고 이럴것까진 없지 않는가. 그렇잖아도 저희는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이고 우리는 저희 땅에서 산 하나를 얻어 지하에 모여사는 입장임으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동굴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때 차관으로 수만 골드를 따주고 그 돈으로 나라를 세울 기반도 마련해 준 것은 모두 대사 프리스크의 의지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딸리면 프리스크한테 가서 멍멍이 잔여물을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그런 자비로운 인간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날 한시에 쌍둥이로 태어나 프리스크와 한지붕에 사는 차라가 열일곱씩이나 되어 나와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지하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차라 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대사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인간들에게 거의 몰살당하고 남은 것들은 결계로 봉인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괴롭히다 죽여서 EXP를 얻으려는 듯 하는 것이다.


차라의 눈빛이 바뀌고 그 담날 아침이었다. 워터폴까지 가서 물을 길어오려는데 어디서 천둥 달팽이 노래가 나온다. 근처 마을에서 농장일하는 유령이 또 뭣모르는 녀석들한테 사기를 치려 드나, 하고 바람부는 절벽 사이를 지나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뒤집어져 역안이 될 뻔 했다. 차라가 핫랜드 가는 다리 한가운데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바지 앞에다 우리 달팽이를 꼭 붙들어서는,


"이놈의 괴물.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워터폴에서나 이러면 모른다마는, 우리 달팽이가 무서워 떨고 있는 것은 아랑곳앉고 아주 말라 죽으라고 그 뜨거운 용암 위에서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눈에서는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서로 위치를 바꾸고 사지는 무지개빛으로 발광하며 부르르 떨렸으나 고개를 꺾어 사방을 한바퀴 빙 휘둘어보고 그제서야 이 근방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어디서 자연스레 뜨인 카오스 버스터로 차라를 겨누며,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달팽이를 튀겨먹지 못해 안달이 났냐!"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차라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달팽이 가지고 하듯이 또 죽어라, 죽어라, 하며 흔들어제끼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다리를 지낼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달팽이를 잡아가지고 있다가 네 보라는 듯이 내 앞에서 저러고 있음이 확실하다.

 

"아, 이년아! 남의 달팽이 아주 죽일 터이야?"


내가 정말 쏠 것 처럼 자세를 취하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내가 있는 절벽 쪽으로 쪼르르 달려오더니 내가 한 것 마냥 그대로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달팽이를 내팽개친다.


"에이 더럽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움켜쥐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다리께를 횡허케 뛰어나가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 라고 하는 것은 달팽이가 풍기는 서슬에 나의 이마빼기에다 점액을 뭍히는데 그걸 본다면 껍질만 새까맣게 탔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히 든 듯싶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 녀석아!"


"애! 너 울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그 아버지가 덤디덤이라지?"


"뭐 울아버지가 그래 덤디덤이야?"


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뒤로 꺾어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다리께에 있었던 차라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데 소환술로는 모자라서 이제는 경계서는 해골한테 순간이동까지 배워온 거더냐, 어지간히 할 일이 없었나 보다 하고 머리를 되돌리자 다시 앞에 나타나서는 아까에 한 욕을 한바가지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불 탄막 하나 못 쓰는 걸 생각하니 바닥에 내려놓은 카오스 버스터에 발이 걸려 용암으로 떨어질 뻔한 것도 모를 만큼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차라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달팽이를 좋아한다면서도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달팽이를 몰고 와서 우리 달팽이와 경주를 붙여 놓는데 제 집 달팽이는 썩 험상궂게 생기고 천둥달팽이 경주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달팽이가 달리느라 지치고 눈자루며 더듬이며 바싹 마르도록 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달팽이가 껍질속에 꼭꼭 숨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물을 퍼와 뿌려놓고 머리를 내밀면 그대로 내몰아 경주를 붙인다. 이를보니 분명히 도박이나 하는 달팽이 경주를 좋아한다는게 잘못되어 달팽이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린 듯싶다.


하여간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달팽이를 붙들어 가지고 열심히 기분을 복돋아 보았다. 이 쪽에는 통달했다고 볼 수 있는 워터폴의 유령이 말하기를, 달팽이에게 계속 응원을 해주면 병든 인간이 부모의 격려를 듣고 의지를 가지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물론 이 유령에게 한두번 당해본것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이 유령 말고는 따로 알만한 사람도 없기에 속아주는 척 들어봤더니 제법 그럴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팽이도 응원에 만족한 것인지 전보다 적게쳐도 서네 배는 빠르게 긴다. 그리고 나중가서도 이 기운이 돌아야 하는데 괜히 힘빼지 못하도록 장속에다 가두어 놓았다.


꽃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그 달팽이를 안고 지상으로 나왔다. 마침 산 근처 프리스크네에는 아무도 없고 차라만 그네 집안에서 스웨터를 짜는지 혹은 그림을 그리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팔자좋게 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차라네 달팽이가 노는 경기장으로 가서 가만히 달팽이를 내려놓고 또 차라네 달팽이도 불러보았다. 그러자 두 달팽이가 나란히 출발선에서 출발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차라네 달팽이가 멋지게 기는 바람에 우리 달팽이는 또 따라가려 안간힘을 쓰고 그러면서도 조금씩 뒤쳐지고 다시 가까워지고 할뿐으로 제법 한번 달려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번엔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꽤 기더니 한순간에 차라네 달팽이보다 훨씬 앞섰다. 차라네 달팽이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잔깐 멈씰한다. 이 기회를 타서 우리 달팽이가 또 날쌔게 달려 두 달팽이의 격차가 아주 벌어지니 그제서는 감때사나운 차라네 달팽이도 본 실력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옳다 알았다, 응원만 하며는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때에는 뜻밖에 내가 천둥달팽이 경주를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창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차라도 입맛이 쓴지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두 발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하며, 신이 머리끝까지 뻐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차라네 달팽이가 따라잡혔다는 위기감으로 분발해 호들갑스레 연거푸 기는 서슬에 우리 달팽이는 응원을 하면 할수록 찔끔찔끔 움직이다가 아예 막 멈춰서 불타오른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차라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하여 덤벼들어서 불이 붙은 우리 달팽이를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응원을 좀더 했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경주를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달팽이의 기운을 복돋아주었다. 하지만 실망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듣질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달팽이를 반듯이 눕히고 세상의 미래는 너에게 달려 있으니 의지를 가져라고 들려주는데. 이제서야 불이 사그라든 달팽이는 좀 피곤한지 껍질 속에서 나오지 않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피곤함은 매일 같이 뒤쳐지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러도고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달팽이가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내밀고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서 얼른 장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푹 쉬고 일어난 것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경주를 붙여 놓으니 이 망할 계집애가 필연 우리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장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달팽이를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워터폴로 물을 길으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양동이를 찰랑거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고년의 몸과 영혼을 갈라놓고 싶다. 이번에 돌아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물을 긷고는 부리나케 돌아왔다.


거진 뉴홈에 다 돌아와서 나는 또다시 노랫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우리 가족이 일구어 놓은 황금꽃 정원에 저물어가는 태양의 여명이 비춰왔다. 그 꽃밭 한가운데 앉아서 차라가 청승맞게시리 초콜릿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그 주위의 원형 경주로와 쓰려져 있는 우리 달팽이다. 필연코 요년이 그저 내 반응이 궁금하니 하나하나 일일히 알아보려고 또 달팽이를 집어내다가 내가 도착할 정원에서 끝없이 경주를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초콜릿을 먹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달팽이가 많은 점액을 흘리고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도대체 결승선 없는 원형 경주로를 어떻게 생각해낸 것인지 따지고 들기도 전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찬찬히 초콜릿을 음미하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지상 지하 가릴 것 없이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제 쌍둥이 동생만큼 예의바르고 영리한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하며 성격하며 꼭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소악마 같다.


나는 대뜸 화염 탄막을 생성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라네 달팽이를 단발로 때려 부쳤다. 달팽이는 푹 익혀진 채 더듬이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타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차라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달팽이로 파이를 만드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집 달팽이데?"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전쟁이 일어나고 동굴 속에 결계로 영영 봉인되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온세상이 어둠에 뒤덮히고 도저히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차라가 기척없이 앞으로 다가와서,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어떻게 바꾼다는 건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그렇담..."

"우리, 거래를 하자."


"그래 그래 그럴 테야!"


"자, 그럼 됐네."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황금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세상이 다시 시작되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분명 동의한거다!"


"그래!"


조금 있더니 이 근처에서,


"차라야! 차라야! 이년이 나레이터질을 하다 말고 어딜 갔어?"


하고 방금 세이브파일을 불러온 듯싶은 프리스크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차라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서서히 투명해지면서 아예 보이지도 않게 된 다음 나는 꽃으로 변해 땅속으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


참고로 여기서 나온 '천둥 달팽이 노래'는 이걸 말한 것

https://www.youtube.com/watch?v=M_fNJqIOeEk&t=2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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