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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 첫눈.

언갤러(212.89) 2024.02.21 22:36:39
조회 210 추천 7 댓글 1



남프리샌이고 약간 커플요소 있음

개연성 주의




*


눈이 풀풀 내리는 밤이였다. 하늘에선 멎을 기미도 없이 하얀 방울이 나풀거리고, 바닥은 새하얀 눈더미가 포슬하게 쌓여 있는 밤. 유일하게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해골 형제의 집도 눈에 반쯤 덮힌 상태였다.

- 헤, 그래서 제가 말했죠. 치과에 가보는 건 어때? '골'치가 아프다면 말야.

웃음 소리가 펑- 터져나온다. 평소라면 이런 농담은 질색팔색을 할 제 동생도 옆에서 쾌활하게 웃고 있다. 시끌시끌한 웃음이 공기 중에서 가볍게 톡톡, 터진다.

함성을 담은 술잔이 서로 맞물리고, 맛좋은 음식들을 나누며, 서로에게 즐거움을 안주 삼아 건넨다. 도태되는 괴물 하나없이 다같이 기쁘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평안한 날이 또 있을까. 적어도 과거에는 없었다. 불안에 저며 다시는 행복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시간 변동은 관측되지 않았고, 그렇게 두려움은 주제도 잊고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경계를 푼 건 아니지만. 토리엘과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맑게 웃는 저 아이. 아니, 더 이상 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커버린 남자가. 이제 저 녀석은 꼬맹이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였다.

그걸 떠올리자 왠지 속이 울렁거린다. 아까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셨나. 해골에게 언제부터 뇌가 있었다고 이렇게 취하는건지. 약간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괜찮냐는 말엔 느긋하게 웃으며-

- 헤, 잠깐 바깥 바람 좀 쐬고 올게. 지금 상태로는 뼈도 못 추리겠거든.

그렇게 답하고서 문을 열고 나선다. 뒤에선 아직도 소란스럽게 수다를 떠는 소리가 들리운다. 언다인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내기를 제안하는 것도 같았고, 토리엘이 그 내기에 자신의 파이를 내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렴 어떤가. 제 동생도, 친구들도 모두 즐거워 보이는데.

집 뒷편으로 걸음을 옮긴다. 밟히는 눈들이 뽀득뽀득,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발 밑으로 사그라든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그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내일 쯤이면 다같이 모여 또 눈사람을 만들고 또 조그마한 눈집도 짓겠지. 그걸 떠올리자 취기가 가시듯 약간 기분이 나아졌다.

어두운 벽에 기대 숨을 후욱- 내뱉었다. 입 밖으로 나온 뜨신 공기가 뿌연 김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이미 끊은 지 오래였는데, 주머니에서 조금 헤진 담뱃갑을 꺼내 마개를 열었다. 정확히 한 개쯤 남아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 정도면 운수가 나쁘지 않다.

- 샌즈, 여기서 뭐해?

담배를 입에 물고 막 불이 붙이려던 참이였다. 옆에서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운다. 프리스크였다. 다시 느른한 미소를 머금고서 담뱃갑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 글쎄, 잠깐 쉬고 있었지. 너는?

- 엄마가 좀 확인해보라고 해서. 너무 늦게 오니까 또 취해서 어디 엎어진 건 아닌가 싶었나봐.

- 헤, 아주머니는 가끔 걱정이 심하시다니까.

- ······.

적막이 흐른다. 이 틈을 타서 샌즈는 자신의 담배에 급히 불을 붙이고 다시 라이터를 갑이 있는 주머니에 함께 쑤셨다. 이내 담배 끝이 벌겋게 타오르며 잿빛 연기를 낸다.

- ···담배, 끊은 줄 알았는데.

- 끊었지, 공식적으로는.

하지만 가끔 살다보면 이런 게 절실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가령,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상상해버렸다던가.

담배를 입에서 떄어내고 숨을 내쉬자, 끄트머리에서 나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많은 양의 연기가 입 밖으로 왈칵- 새어나온다. 프리스크는 이 광경을 관찰하듯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이쪽은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담배를 공식적으로 끊었다고 치면, 프리스크와는 비공식적으로 껄끄러운 사이였다. 서로의 치부를 잘 알고 있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 결말이 어땠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 요즘 어때?

- ······.

이쪽의 의견을 묻는건가. 해봐야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담배를 다시 빨아들이기 직전에 답을 건넸다.

- 평소랑 똑같아. 파피루스는 요즘 새 친구들을 사겼다고 난리고, 그래서 집이 조용할 날이 없다니까.

- 아니, 그거 말고.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운채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눈을 감은 그의 표정이 시선에 들어온다. 뭐라고 답해줘야 하는거지. 네가 어떤 답을 원하는 지 알 겨를이 없다.

- 넌 어때? 요즘 말야.

- ······나라고.

- 그래. 샌즈, 너 말이야.

- ···.

- 좋지, 이렇게까지 편했던적이 있나- 싶기도 하고.

저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 고민하다, 이내 생각하기를 관두기로 했다. 사람의 탈을 쓴 현상 같은거다. 그것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기하학적인 현상.

- 잘됐네.

괜히 무안해져 시선을 태우던 담배로 옮긴다. 반쯤 타들어간 담배의 불건 부위가 뼛가락에 닿을듯 말듯, 아찔하게 타오르고 있다. 조금 잡는 자세를 바꿔 다시 입에 물었다.

- ······.

차마 넌 어떤데? 라고 물어볼 수가 없다. 애초에 그 답을 믿지도 않거니와, 모순되게도 그 자리서 '지루하다'라는 말이 나오면 턱없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 어느새 저도 모르게 이 순간에 정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그걸 깨닫자 헛웃음이 픽- 튀어나온다.

그때였다.

조금 거리를 두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던 네가 이리로 다가온다. 평생을 감고 있을것만 같던 눈이 열리자, 소름끼치도록 예쁜 금안이 드러났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저와의 거리가 채 한 뼘도 되지 않을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이렇게 보니 키가 정말 많이 컸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하기야, 이쪽은 저기가 땅꼬마일 시절에 이미 다 큰 해골이였으니까.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위압감이 느껴진다.

- ···샌즈.

하려던 대답을 삼킨다. 침이 목을 넘어가는 볼품없는 소리가 저쪽에도 들렸을까 약간 불안해졌다.

그가 천천히 손을 뻗는다. 제 얼굴로. 겁에 질리기라도 한건지, 심장은 눈치도 없이 뛰어댄다.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렸다.

툭-.

손이 이마를 살짝 건드리고 떨어졌다.

- 머리에 눈이 조금 쌓여있길래, 괜찮아?

-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어떻게든 입을 열어 괜찮다는 말을 꺼내려던 찰나에, 벽 너머에서 프리스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가 깨지는 소음이 함께 들린 것으로 미루어볼때, 아무래도 한바탕 소동이 난 모양이다.

- ···나 먼저 들어가볼게, 샌즈.

- 괜찮아지고 나면 천천히 들어 와, 엄마랑 파피루스한텐 내가 잘 둘러댈테니까.

그리고서 너는 다시 벽 너머로 사라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아마 벽이 없었다면 맥없이 주저 앉았을 것만 같다.

심장이 뛰는 걸 보니, 아까 그 상황이 그렇게 두려웠던건가? 눈도 마주하지 못할 정도로? 그게 그렇게까지 두려울 정도로 지금이 소중해진거야? 미쳤군.

제 이마를 짚자 뜨거운 열감이 느껴진다. 문득 프리스크도 이마에 손이 닿았을때 똑같이 뜨거움을 알아챘을지 걱정이 들었다. 떨리는 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고사하고 얼굴이 너무 뜨겁다. 온 몸이 간질거려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이런 감각은 처음인데.

어쩌면 이게 공포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건-···.

······아니다, 본인이 열 살 배기 어린 아이도 아니고. 가장 경계하던 대상에게 어떻게, 이런 감정을.

부정하던 것들이 어느덧 부정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뜨거워진 얼굴에 마른 세수를 한번 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타다 만 담배를 바닥에 흘린다.

눈에 묻힌 담배의 불이 치익- 하고 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신경 쓸 겨를따윈 없었다. 미친 게 틀림없어. 어째서, 어떻게, 왜? 온갖 물음이 머릿속을 뱅뱅 돌았으나, 답은 찾을수가 없다.

설마, 마음이 편해졌다고 그새 그런 상대를 찾은거야? 그것도 '그'를 상대로. 차라리 죽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그럴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열을 삭히려 차가운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지하에서 내리는 첫눈. 알피스가 지상 분위기를 내보겠답시고 코어를 한참을 들낙거렸던 게 눈에 선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지. 그걸 생각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이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을테고,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재앙 같은거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이 남은 길이겠지.

첫눈에 섞여 내리는 설렘이 지나치게 간질거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피드백이랑 후기는 항상 환영이다

그리고 주변에선 오랜만에 갈긴거라 글 특유의 분위기보다는 회지같다는 평이 많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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