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보면 둘이 붙기 전에 이런 구도 한번 보여주는 것도 있고...

애티튜드 시대 때야 별들의 시대였으니 스타 파워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싶지만, 그 후 좆노잼으로 까이던 시절인 에볼루션의 시대만 해도 장기적인 각본의 서사라는게 존재했음. 물론 중간에 확 사라진 각본이라거나 개병신 같았던 각본도 있었지만 여하간 뭘 하면 일단 '이야기를 풀어낸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한달짜리 TV 각본이라도 이야기가 있는 각본들은 확실히 자기 이야기가 있었음. 어느날인가 제프 하디가 매트 하디에게 자기의 무료함을 말하며 스릴을 추구한다고 말하더니, 타미 드리머가 뱉어낸 구토물 위로 통합 챔피언 언더테이커를 쳐박아 버렸음. 스릴을 추구하는 정신나간 반항하가 할만한 아주 적절한 행동이겠지. 

그리고 열받은 언더테이커는 매트 하디를 찾아서 두들겨 패고, 이후 형제는 힘을 합쳐서 언더테이커에게 대항하고, 마침내 언더테이커와 제프 하디는 그 유명한 Raw에서의 사다리 경기를 치루고 반항아 제프 하디는 언더테이커에게 인정을 받음. 

이건 02년에 sbs 스포츠에서 Raw를 본 사람이라면 13년이 지난 지금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인데, 이게 페이퍼뷰도 아니고 tv쇼에 나오는 한달 짜리 각본이었지.

지금은 어떠냐? 혼자서 어쏘리티 전원을 쓸어버리고 삼치와 페투페를 하던 라이백이 몇주 지나니까 돌프랑 쌍으로 대체 뭐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 있음.

02년에 트리플 h의 뒤통수에 숀 마이클스가 당한 뒤, 마이클스와 삼치는 02년 하반기 내내 정말 죽일듯이 대립을 함. 그리고 03년부터 트리플 h가 wcw 출신들을 차례대로 잡아먹어가면서 서로 맞붙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당장 급한 대립이 다른 사람하고 붙어서 그런것일 뿐이지 두 사람의 죽일듯한 관계는 계속 강조되었지. 

그러다가 03년 후반기에 다시 맞붙기 시작해서 그해 마지막 Raw에서의 맞대결은 03년 최고의 명경기 중의 하나로 남았고, 04년 로럼에서도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지만 이 지독한 관계는 절대로 결판이 나지 않아. 그런데 삼치에게 도전하러 벤와가 오는거야. 벤와가 로럼 도전권을 삼치에게 사용하는데, 2년간 죽어라 트리플 h를 노린 마이클스가 굴복을 할까? 

당연히 안하고 벤와를 공격하지. 그래서 둘 간의 경기가 Raw에서 열리고, 이 대결은 좀 덜 회자되는 편인데 역시 상당한 명경기 였음(그해 중순에 다시붙은것도 명경기였고). 서로 간의 실력도 팽팽했고, 이 팽팽한 승부는 삼치의 난입으로 끝나서 누가 더 우월한지 명확하게 결판이 나지 않아. 

그런데 지금은 뭐냐?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챔피언이 위클리쇼에서 패배하거나 도전자가 위클리쇼에서 다른 놈에게 패배하는 일이 비일비재함. 빅e는 잭스웨거를 압살했는데 루세프는 그 빅e를 압살함. 근데 그 빅e를 압살한 루세프에게 빅e에게 압살당한 잭 스웨거가 도전하는거야. 대체 이게 뭐냐?

그러다가 결국 오스틴에 의해서 트리플 쓰렛 경기가 열려서 엄청난 명승부, 명장면이 나옴. 그런데 다음 백래쉬가 캐나다에서 열리니까, 제 3자로 들어가서 존재감이 약한 것 아니냐 - 싶었던 마이클스의 존재가 되려 시너지 효과를 내서 크리스 벤와가, 숀 마이클스, 캐나다에서, 샤프 슈터로 이기는 명장면이 나옴.

이후 삼치는 벤와에게 다시 재도전하지만 실패하고(이떄 벤와는 일관성있게 삼치에게 강해서 성민수가 벤와와 삼치가 같이 있으면 벤와가 삼치에게 강하다는 측면을 늘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잠시 챔피언 전선에서 이탈한 삼치와 마이클스는 이제야말로 진정한 라이벌리의 마침표를 찍음. 그것도 헬 인 어 셀에서, 엄청난 시간 동안 혈투를 벌이면서. 경기 자체는 너무 처절만 강조하고 느려서 취향에는 안 맞았다만 기나긴 대립의 종지부를 찍기엔 적절한 경기였지. 그리고 모든것이 다 풀린 상황에서 어색한 화해.

몇년 뒤에 레메 22에서 마이클스와 삼치의 dx챱이 터지니까, dx를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걸 모르던 어린 시청자들까지 모두 환호해서 미쳐 날뛌지. 불과 몇년전까지 펼쳐지던 두 사람의 지독한 라이벌리는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까, 이만한 끝판왕들이 서로 힘을 합치면 정말 후덜덜 하지 않을까 하고. 몇년전 각본이지만 결국 이게 계속 뒤에 영향을 조금씩이라도 준건데...

지금은 어떠냐? 난데없이 친구랍시고 같이 다니던 마크 헨리하고 빅 쇼 사이에서 마크 헨리가 통수쳐서 싸우다가, 다시 빅 쇼는 또 통수쳐서 자기 통수친 마크 헨리와 같이 붙어 다니는걸 불과 3달 안 사이에 하고 있음. 물론 예전도 01년 턴힐 무렵의 오스틴이 삼치랑 같이 다닌건 사이코패스 같은 짓이었다만 레메 다음날 오스틴과 락하고의 경기에서 삼치가 난입해 '과연 삼치는 누구를 공격할까' 하는 고민이라도 안겨줬다면 지금은 그냥 아무런 설명조차 없고 보여주고 납득하라는 식임.

난 역대 wwe 각본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각본은 바티스타의 메인이벤터 등극이라고 생각하는데, 재미만 따지면 다른 각본들이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정교하고 서사가 완벽한 각본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래. 반년, 아니 바티스타가 삼치와 짜고 욕할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니 반년도 훨씬 넘어서 진행된 각본이었으니 정말로 장기 각본이었지만 발단부터 전개 극적인 반전 장렬한 결말까지 한 편의 영화나 다름 없었음. 힘만 쎈 꼬붕이었던 바티스타가 결국 자기 우상이자 적수였던 트리플 h를 수차례에 걸쳐 개박살내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란 수단은 다 썼지만 패배하고 피투성이가 되서 넝마가 된 옛 우상에게 마지막으로 찾아가 화해하는 모습까지.

근데 지금은 뭐냐? 쉴드의 의지를 잇는다던 로만은 세스 잡는 일은 코뺴기도 신경 안 쓰고 딘앰브로스만 죽어라 쫒아다니다가, 갑자기 브레이와 엮이더니 이제는 세스 롤린스는 상관도 하지 않고, 로만은 세스는 종일 관심도 없고 브록 상대하더니 겸사겸사 상대한다는 느낌으로 세스를 몇번 위클리 쇼에서 혼내주는데, 로만하고 세스가 같은 링에 있다면 뭔가 싸한 전율이라도 들어야 할텐데 그딴게 전혀 없음. 

애티튜드 추억팔이라고 하지만 거기까지 갈 것도 없고, 루쓰레스 어그레션 시대 각본만 해도 정말로 '스토리' 를 보는 느낌이 났는데, 지금은 그냥 매주매주 돌림노래를 보는 기분임. 물론 예전에도 똥각본은 얼마든지 있었지. 근데 장기적으로 안목이 있는 각본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모든게 쪽대본 느낌이야. 

이상할 정도로 각본에서 장기적인 서사라는게 안 보인다. 깊이 생각을 하면 그게 오히려 병신이 되는 느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