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E는 누가 뭐래도 엔터테인먼트를 가장 우선시하는 프로레슬링 단체이다. 엔터테인이라는 단어는 모두가 잘 알듯 "즐겁게 해 주다"라는 뜻이다.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이를 즐겁게 해 주는 행위는 유머를 깔고 있기 마련이다.
애티튜드 시대가 그랬다. 개쩌는 말빨로 속사포같이 EDPS를 쏟아내며 관중을 빵빵터지게 한 더 락, 그냥 줘패는 거 하나 하나가 막무가내식 코미디였던 스티브 오스틴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말이 필요없다. 그냥 마이크 잡고 떠들거나, 아니면 그냥 누굴 줘패기만 해도 빵터지는 맛이 있었다. 오스틴에게 쫓겨 부리나케 도망가고, 결국 잡혀서 엉망진창으로 줘터지는 구린갑의 모습을 보며 웃지 않기도 힘들다. 애티튜드는 잘 만들어진 엔터테인먼트였다. 그 시기 회사가 페더레이션을 버리고 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를 사명으로 삼은 것만 보아도 자신들이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에 제법 자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애티튜드를 넘어 과도기를 맞은 WWE에도 유머를 아는 이들은 많았다. 에디 게레로는 링 위에서의 몸짓만으로 관객을 웃길 줄 아는 최고의 광대였다. 산티노 마렐라는 아예 작정하고 웃기려고 링에 들어온다. 애티튜드 시대와 과도기를 거치며 병맛 넘치는 마이크웍과 제스쳐로 인기를 끈 구린갑은 아예 구린왕으로 기믹전환해서 그 자애로운 표정만으로도 모든 이를 웃겼다.
시대는 리얼리티 에라로 넘어오고, 그 이후에도 산티노 마렐라같은 개그맨은 여전히 활동을 계속했지만 WWE에서 유머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만 갔다. 숨막힐 듯한 진지함이 스토리를 가득 채웠고, 2014년쯤에 이르면 두 시간 짜리 RAW를 보면서 한 번 웃기도 힘든 지경에 다다른다. 나름 웃기려고 등장한 듯한 스타더스트는 세상에, 코디의 연기가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웃기기는 커녕 광대 공포증을 가진 시청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수준이다. 이 와중에 개그계의 거성 산티노 마렐라는 은퇴하고, 유쾌한 삼명박은 두 명이나 방출당하며, 잭 라이더는 티비에서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티비를 틀면 지독하게 엄숙한 트리플H의 잔뜩 찌푸린 얼굴이 보이고, 존 "the 진지" 시나의 정색한 얼굴이 보인다. 뛟! 하는 소리와 함께 음산한 표정의 털보 세 명이 등불을 들고 걸어온다. 화려한 열혈 사나이 돌프 지글러조차 예전의 위트는 모조리 잃어버리고 쳐맞다가 역전하는 기계로 변했다. 이런 지랄맞은 상황에서 대미언 샌도우는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하여 2014년 최고의 개그맨으로 분투했으나 그 혼자 쇼의 웃음을 모조리 책임지기엔 역부족이었다.
2015년 로드 투 레슬매니아 시즌은 역대급 노잼 시즌으로 기억될만 하다. 쇼라는 걸레를 꽉 쥐어짜서 유머라는 물기를 싹 짜내버린 느낌의 스토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너무나 진지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나름 유머러스해야 할 스타더스트는 자아 정체성이라는 더럽게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아버지 및 형과 대립했다. 로만 레인즈는 파우파우 하면서 너무 진지빤 인터뷰로 헤비 팬들을 자극했다. 브록 레스너는 나와서 벨트 어깨에 걸치고 말 한마디 안 한다. 존 "the 씹선비" 시나는? 러시아놈에게 빼앗긴 US벨트를 되찾고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여전히 진지빨고 계셨다. 10년 내내 진지빨고 계신 것이다. 여전히 대미언 미즈도우의 분투가 있었으나 솔직히 약빨은 이 즈음 다 떨어져가기 시작했다.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 중 하나가 바로 역대 로열럼블 최장시간 생존자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에 빛나는 커티스 "액슬마니아" 액슬이다. 커리어 내내 씹노잼, 무능력, 노매력을 자랑하던 그는 자폭에 가까운 #Axelmania 운동을 통해 가까스로 기회를 잡았다. 티셔츠를 쫙쫙찢어가면서. 희대의 병신 스테이블로 영원히 기록될 뻔한 뉴 데이는 어느 날 관중들이 너무나 노잼인 그들을 조롱하기 위해 날린 "뉴! 데이썩!" 챈트에 대오각성하여 병신인 건 여전하지만 웃기긴 웃긴 스테이블로 다시 태어났다. 딘 앰브로스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예측불허한 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부조리한 모습을 보여주는 천연덕스러움으로 탈모갤 아재들 모근마냥 사멸해가던 엔터테인먼트를 다시 되살렸다.
엔터테인먼트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태그팀 디비전을 보라. 뉴 데이, 메타 파워스, PTP 등 웃긴 놈들 천지다. 메인급 대립구도에서도 한 유머하는 딘 앰브로스가 끼어들자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로드 투 레슬매니아 시즌의 숨막히는 분위기는 서서히 걷히고 섬머슬램을 향해 꽤 유쾌한 분위기로 순항하기 시작했다.
진지한 분위기도 좋다. 하지만 그게 너무 길면 시청자는 지치고, 개덥이 씹노잼이라며 욕하기 시작한다. 애티튜드는 (물론 세월이 지나며 미화된 부분도 없잖아 있겠지만) 존나 웃겼다. 그러니 그 시절과 현재를 대조하며 씹노잼이라 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름의 축제 섬머슬램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많이 양호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좋았던 시절에 비하면 유머가 부족하다. 에디 게레로같은 엔터테인먼트의 귀재가 다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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