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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행정수도 계획의 역사.jpg
"저는 박정희 정권을 계속 반대해왔던 사람입니다. 특히 유신헌법, 그리고 유신헌법 직전의 선거.. (중략)" "저는 또 그 분의 업적을 전혀 무시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상당한 업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 정부가 하는 일 하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계획을 계승하고 있는 겁니다. 바로 오늘 이 사업입니다." 이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는 바로 '행정중심복합도시'. 즉 세종특별자치시(세종 시)의 기공식이었다. 2007년 7월 20일. 정확히 30여년 전의 일이다. 1977년 2월 10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시 연두순시에 나섰다. 구자춘 시장과 하점생 교육감의 시정방향 보고가 끝난 뒤,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 전달이 이어졌다. 서울시 인구 억제와 도로 확충 등 현안을 언급한 그는,"다음은 임시행정수도에 관해서입니다." 라며 말을 꺼냈다. 행정수도를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충격적인 발표였다. "수도의 인구 집중 억제는 여러 가지 다른 정책도 수립해서 강력히 밀어야되겠지만, 결국은 우리가 통일될 때까지 임시행정수도를 만들어 다른 데로 옮겨야 되겠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하나의 구상이다. (중략)" "새로운 행정수도가 거기 앉음으로써 서울에 자꾸 오는 인구를 한쪽에서 잡아당기고 억제하는 상당히 큰 역할을 하고, 또 상당한 수를 그쪽으로 끌고 갈 수도 있게 된다."3월 7일, 제1무임소장관실 박봉환 실장으로부터 '수도권 인구 재배치 기본계획안' 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행정수도 건설은 국방력 증강 등 타 중요사업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장기 계획으로 무리 없이 추진한다.' '행정수도 건설의 방법은 먼저 백지(白紙) 계획부터 수립한다.' '백지계획 작업 기간은 2년으로 하여 청와대에서 직접한다.' '이전은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하나씩 수행한다.'기획단 실무작업팀에 참여했던 김병린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계획하고자 했던 임시행정수도를 어디에, 그리고 얼마의 자본을 언제까지 투자해 언제까지 건설할 것인지 등 모든 것이 미정이었고, 어떤 현실적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백지계획' 이라고 이름 붙였다."1987년부터 1991년까지 국토의 중심부인 대전 부근에 입법ㆍ사법ㆍ행정 3부 기관을 모두 옮겨 인구 25만명 규모의 행정도시를 건설한 뒤, 1996년까지 업무 상업지구를 더해 명실상부한 자족도시 형태로 가꾼다는 계획이었다. 후보지는 장기지구와 논산지구, 천안지구 셋으로 압축됬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는 1977년 7월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제정 공포했다이둘의 국정운영중 또 겹치는 부분이있는데바로 “미군철수”에 이은 “완전한 자주국방”이다박정희는 이를 유신선포와 함께핵무장국가를 완성시킨뒤 하야로 완성시키려했고노무현 역시 항상 입에 달고 살던 것이자주국방이었다.https://m.dcinside.com/board/newtheory/15663 박정희 전대통령의 마지막 단추 - 이론 마이너 갤러리1. 주요 인물유재흥: 현리전투의 주역, 전 국방장관. 1999년 MBC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핵무기 계획 언급.김철 박사: 원자력연구소 실무 책임자. 플루토늄 재처리 개념설계서 공개.오원철: 경제수석. 박정희에게 보고m.dcinside.com참고 현재는 이들의 못다 이룬 꿈을 좌우가 하나되어 이루려고하는 모습이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조선왕들 이름이 외자인 이유.jpg
1. 태조 이단 초명:이성계2. 정종 이경 초명:이방과3. 태종 이방원4. 세종 이도5. 문종 이향6. 단종 이홍위7. 세조 이유8. 예종 이황9. 성종 이혈10. 연산군 이융11. 중종 이역12. 인종 이호13. 명종 이환14. 선조 이공15. 광해군 이혼16. 인조 이종17. 효종 이호18. 숙종 이순19. 경종 이윤20. 영조 이금21. 정조 이산22. 순조 이공23. 헌종 이환24. 철종 이변25. 고종 이형26. 순종 이척 조선왕들 실명을 쭉 나열해보면4명을 제외하고 전부 외자인것을 알수있다우선으로 알아야할것이 ‘기휘(忌諱)’ 혹은 ‘피휘(避諱)’라는 유교문화권을 관습이자 예절인데유교의 창시자인 공자가 쓴 경전춘추에 주석을 단 춘추공양전이란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춘추는 존귀한 사람과 친한 사람, 어진 사람의 이름을 숨겼다.(春秋爲尊者諱 爲親者諱 爲賢者諱)”풀이해 보면,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유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이게 일종의 예의범절로 굳어지게 되지예전엔 필수도서였지만 이제는 아닌삼국지를봐도 우리 역시관우 조운 제갈량보다는관운장 조자룡 제갈공명이라고본명이 아닌 자나 호로 부르는 경향 역시유교의 기휘문화가 한몫했다고 볼수있지사람 이름조차 함부러 못부르는데왕이나 황제,성인의 이름을 부를수있었을까? 당연히 안되는거고 한자를 쓰던 당시엔왕이나 황제의 이름과 발음조차 같은건 쓸수도없었다고해이건 사람이 아니라 지명에도 적용된 사례가 있는데대구의 원래 지명은 대구(大丘)였는데근데 이 구(丘)자가 공자(孔子)의 실명이었기 때문에성인의 이름을 함부로 쓸수없다며 구(邱)자로 지명을바꾼게 대표적이지청나라 건륭제시절엔팽가병(彭家屛)이라는 사람이 가문의 족보에건륭제의 이름을 기휘하지 않았는데이것은 말도 안되는 행위라 삼족이 멸족당했다고해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역시 삼국사기에는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기록되어있는데 이유는 당시 당나라의 황제의 이름이연(李淵)의 연(淵)자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해위와 같은 일들이 그밖에도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조선의 왕들은 자식들을 외자로 지었어백성들의 불편함을 최대한으로 줄여주기 위함이었지조선왕족실록을 실시간으로 작성하는 자 역시기휘와 피휘를 하지 않으면 안됐기에쓰지 못하는 한자가 너무 많았다고해- dc official App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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