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세상이 눈을 뜨고 나니 사라져있다면 어떨까

어릴 땐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잠에서 깨니 사라져있었다면

이 세상이 평화롭고 이상적인 낙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엔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혼자서 이룰 수 없는 일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적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 역시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생존을 기반으로 한 가장 원초적인 욕구 이외엔

항상 남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란 걸 시간이 지나며 어느새 깨달아버렸다

세상의 비밀을 모두 파헤치고 우주의 규칙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되어도

그걸 보여주거나 행사할 대상이 없다면 참 억울하면서도 공허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야기가 새지만 결국 누군가를 증오하는 그 생각 역시

그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 깊숙히 박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고 나를 어떤 식으로든 그 누군가와 연결시키려 하는 걸까

썩었던 삭았던 일단 고리는 고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