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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잘나오네

썬컷1.7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26 22:16:28
조회 64 추천 0 댓글 0

빗줄기를 뚫고 얼마나 달렸을까.




익숙한,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낯선 감각으로 도시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CCTV의 사각지대.


버려진 지하철 터널.


오래된 건물의 낡은 비상계단.




과거의 내가, 만약을 대비해 심어둔 루트였다.


추적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길이 아니라,


추적자로서 목표물을 몰아넣기 위한 길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길이 이제 나의 도주로가 되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구도심에서도 가장 낙후된 구역.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폐건물.




하지만 나는 안다.


저 녹슨 철문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주변을 살폈다.


추격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빗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낡은 벽돌담 아래, 눈에 띄지 않는 곳.


손을 뻗어 특정 벽돌을 눌렀다.


미세한 기계음과 함께 작은 패널이 드러났다.




익숙하게 지문 인식 센서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작고 가늘어진 손가락.




[인식 실패.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차가운 기계음.


아차. 당연한 일이었다.


TS병으로 신체가 재구성되면서 지문까지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젠장. 이럴 때를 대비한 절차가 있었지.


패널 아래쪽, 거의 보이지 않는 틈새.


손톱 끝으로 작은 커버를 밀어 올렸다.


먼지 쌓인 슬롯이 드러났다.




허리춤에 숨겨두었던, 동전보다 작은 크기의 데이터 칩.


마지막 임무 직전에 만약을 위해 챙겨두었던 비상용 키였다.


이 안전가옥의 모든 생체 인식을 우회할 수 있는 마스터키.




칩을 슬롯에 밀어 넣었다.


[비상 프로토콜 활성화. 2단계 인증을 진행합니다.]




다행히 다음 단계는 숫자 암호였다.


더듬거리며 작은 손으로 열여섯 자리 암호를 입력했다.


손가락이 작아져서 오히려 누르기 편한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음성 인식.


이건 미리 녹음해 둔 내 목소리가 필요했다.


패널의 특정 부분을 다시 누르자, 숨겨진 마이크가 작동했다.




"...접근 코드, 카시오페이아."




이런 비상 상황을 대비해 미리 녹음해둔 것이다.




TS병 감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건 아니었지만, 변장이나 목소리 변조 상황은 고려했었다.




과거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강태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성 패턴 일치. 최종 승인 완료.]








끼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녹슨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두꺼운 강철판이 미끄러지는 마찰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았다.


육중한 잠금장치가 여러 개 걸리는 소리가 울렸다.




완벽한 어둠.


그리고 정적.


바깥의 빗소리조차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손을 더듬어 벽의 스위치를 눌렀다.


최소한의 조명이 공간을 밝혔다.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내부.


차가운 금속 벽과 바닥.


최첨단 보안 시스템이 갖춰진, 작은 요새.


나만의 안전가옥이었다.




유성 그룹 몰래, 개인적인 자금과 인맥을 동원해 만든 비밀 공간.


언젠가 버려질 것을 대비한 보험이었다.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이런 식으로 올 줄은 몰랐지만.




털썩.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의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특히 왼쪽 어깨.




재킷을 벗었다.


방탄 소재 안쪽까지 열기에 그을려 있었다.


그 아래 셔츠는 피와 진물로 젖어 살갗에 달라붙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옷을 걷어냈다.


에너지 블라스트가 스친 자리는 끔찍했다.


피부가 녹아내려 시뻘건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열기로 인한 화상과 충격파로 인한 조직 손상.




이 작은 몸으로 이 정도 고통을 견디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이 몸이기에 견딜 수 있는 건가.


TS병으로 인한 신체 재구성은, 회복력 또한 극도로 높이니까.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벽 한쪽에 마련된 의료 캐비닛으로 향했다.




자동 진단 스캐너에 어깨를 가져다 댔다.


[2도 화상 및 심부 조직 손상. 신경계 일부 손상 의심. 감염 위험 높음.]




차가운 기계음이 상태를 알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소독제를 꺼냈다.


상처에 들이붓자 비명이 터져 나올 뻔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켰다.




이런 고통은 익숙했다.


과거의 나는 훈련과 실전에서 이것보다 더한 부상도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이 작은 소녀의 몸으로 느끼는 고통은, 어딘가 달랐다.


더 날카롭고, 더 직접적으로 영혼을 파고드는 느낌.




진통제를 주사했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잠시 기다렸다.


서서히 통증이 둔해졌다.




재생 촉진 연고를 바르고, 의료용 합성피부를 덮었다.


붕대를 감는 손길은 여전히 능숙했지만, 어색했다.


팔 길이가 짧아져서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거울 앞에 섰다.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나의 새로운 모습.




어깨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백발.


피처럼 붉은 눈동자.


어린아이 특유의 앳된 얼굴선.


하지만 그 눈빛만은 과거의 냉혹함을 담고 있었다.




이질적인 조합.


낯선 소녀의 모습 속에, 사냥꾼 '강태준'의 영혼이 갇혀 있었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모습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유성 그룹의 추적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아야만 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나를 이렇게 만든 자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증명해야 했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응급처치를 마친 후, 통신 장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전가옥의 핵심.


외부와 연결될 유일한 창구.




특수 제작된 보안 터미널이었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네트워크.


다중 암호화는 기본.


접속 기록조차 남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전원을 켰다.


복잡한 부팅 시퀀스가 화면을 수놓았다.




[생체 인식 스캔을 시작합니다. 지문 또는 홍채를 인식시켜 주십시오.]




또다시 벽에 부딪혔다.


지문도, 홍채도 모두 변했을 터.




하지만 이것 역시 대비되어 있었다.


키보드의 특정 키 조합을 입력했다.


Ctrl + Alt + Shift, 그리고 F13키.


일반 키보드에는 없는, 특수 제작된 키였다.




화면이 바뀌었다.


[비상 마스터 코드 입력 모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머릿속에 각인된 서른 두 자리의 영숫자 조합.


오직 나만이 아는, 최후의 수단.




작은 손으로 빠르게 코드를 입력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터미널은 영구적으로 잠기고 내부 데이터는 파기될 터였다.


마지막 글자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눌렀다.




잠시의 정적.




[마스터 코드 확인. 보안 채널 활성화.]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화면에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정보를 거래하는 자들.


그림자 세계의 브로커들과 연결되는 통로.




수많은 연락처 중 하나를 선택했다.


코드네임: 미스터 쉐2이드.




신분 세탁, 정보 조작, 밀입국 알선...


돈만 주면 무엇이든 '지워주고' '만들어주는' 업계 최고의 전문가.


물론,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리 약속된 암호화 프로토콜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송신: 코드명 아틀라스]


[수신: 미스터 쉐2이드]


[내용: 레벨 4 클린 슬레이트 요청. 최우선 순위. 조건은 최고가로.]




아틀라스. 내가 예전에 비상용으로 만들어둔 가명 중 하나였다.


레벨 4 클린 슬레이트.


과거의 모든 기록을 지우고, 완벽하게 새로운 신분을 만드는 최고 등급의 작업.


존재하지 않았던 한 사람을 창조해내는 수준이다.




메시지를 보내고 잠시 기다렸다.


1분. 2분.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수신: 미스터 쉐2이드]


[내용: 아틀라스? 오랜만이군. 위험한 불장난이라도 했나? 레벨 4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선금 50%. 나머지는 완료 후. 내 암호화 지갑 주소는 그대로다.]




짧고 간결한 답신.


역시 프로다웠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나는 즉시 준비해둔 비자금 계좌에 접속했다.


추적이 불가능한 암호화폐 지갑.


수년간 비밀 작전의 대가로, 혹은 부정한 방법으로 긁어모은 돈이었다.


유성 그룹의 감시망을 피해 숨겨둔 자산.




미스터 쉐2이드가 보낸 주소로 거액의 암호화폐를 전송했다.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송신: 코드명 아틀라스]


[내용: 선금 전송 완료. 최대한 신속하게. 얼굴 데이터는 곧 전송하겠다.]




터미널 옆의 소형 스캐너를 이용해 내 얼굴을 스캔했다.


백발과 붉은 눈의 어린 소녀.


이 얼굴이 이제 나의 새로운 가면이 될 것이다.


데이터를 암호화하여 미스터 쉐2이드에게 전송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미스터 쉐2이드가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내는 동안, 나는 여기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언제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강태준'은 죽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문이나 홍채로 인식하는 찐빠가 나와서 그것좀 고치라고 하긴 했는데



한 3화까지는 안정적으로 나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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