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판타지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판타지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돼지기름 라드유...몸에 좋은 이유 ㄹㅇ...jpg Adidas
- 상상력으로 인정받는 판타지 영화 TOP 20..gif 이시라
- 니하오라고 말한 서양인 참교육한 태국인 ㅇㅇ
- 이번 주 금쪽이 레전드 금쪽이
- 오타쿠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 ㅇㅇ
- 국힘 "문재인 정부, 부동산 통계조작은 대국민 사기" RESETKOREA
- 국민들이 세종을 알아볼 역량이 되는가? 중생
- 여자사람과 투자 이야기하는.manhwa 마포대교
- 아이유가 언젠가부터 연기할 때도 이름을 아이유로 통일한 이유 ㅇㅇ
- 결혼 10년차 고영배가 알려주는 플러팅 방법 ㅇㅇ
- 이와중에 러시아 일본 근황...jpg ㅇㅇ
- 요즘 식기세척기 성능 수준 ㅇㅇ
- 푸틴 30시간 휴전 선언에 젤렌스키 "30일 휴전부터 지켜라" NMH-523
- 2주만에 효과 대박인 거북목 운동 ㅇㅇ
- 오토바이 타다가 팔 날아간 여자...jpg 싱벙갤전용고닉
스압스압 조선이 해방되자...쫓겨난 일본인들....JPG
https://youtu.be/Cza090_MV_g'히키아게샤'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에서 살거나, 아예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을 뜻함 대충 직역하자면 '물에 빠져서 건져낸 사람'이라는 뜻해방되니까 강제로 본국에 돌아가게 됨...1946년 쫓겨나는 모습을 담은 뉴스"코리안 클리어-아웃" ㄷㄷㄷ나가기 전에 소독약 좀 쳐준다 기다리는 애엄마...다들 짐이 별로 없음..보따리 몇개 싸들고 바리바리 튀는중...애기들도 보인다...얘들은 왜 지들이 '고향' 떠나는지도 모름..배타고 튀는 중...이런 일본인들이 한국에만 약 70만명이 있었다고 함...1945년 당시 3%의 인구로 조선 재산의 83%를 먹고 있었다고 ㄷㄷ 물론 좋은 시절 다 끝나니까 조선인한테 린치당하고 재산 다 뺏김....ㅠㅠ특히 일본과 가까웠던 경상도에서 보복이 심했다고 함...당시 일본인들은 일본인끼리 도시 중심지에서 번화가를 이루고,조선인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 변두리로 쫓아내버렸는데 하루아침에 쫓겨나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함...하지만 나중에 진실을 알고 마음이 복잡해졌다고...이렇게 자기들끼리 모여살던 '히키아게샤'들은 해방 당시 조선인의 반응에 어마어마한 공포와 당혹감을 느꼈다고 함... 그 이유는..."당시 일본인들이 느꼈던 공포심은 평소 조선과 조선인들에 대한 총체적인 무관심에서 비롯됐다. 사실 조선에 살던 일본인들은 조선인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이런 경향은 식민 지배 초기에 수많은 조선인의 저항을 경험한 1세대와 달리, 문화통치 시기(1920년대)에 이주해 왔거나 조선에서 태어난 2세의 경우에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조선을 타지로 인식하기보다는 일본 본토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었다."- 호즈미 신로쿠로...즉, .3.1 운동을 겪어보지 않은 1920년대 이후 일본인들, 그리고 아예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이조선인들과 부대끼며 살지도 않았고, 정말 한반도를 일본 본토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임..."....여기 일본 아니었습니까?"“한 번도 조선인 친구와 놀아본 기억이 없다”“내가 기억하는 조선인은 가끔씩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다니며 물건을 팔던 아줌마가 전부”“원산에 그렇게 많은 조선인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패전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원산부립소학교 2학년 마쓰나가 아쿠오“패전했기로서니 꼭 내지(일본)로 돌아가야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부모님들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돌아가야 한다"고만 대답했다. 나는 왜 내가 고향인 충청도 강경 땅을 떠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패전 직후 조선인들이 왜 거리를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치는지도 이해 못 했다.- 나카무라 기미 (당시 23세). 충남 강경 경찰서 근무"1945년 8월 16일...독립만세 거리에는 가는 곳마다, 일장기를 재활용해 만든 어설픈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질주하는 트럭은 물론이고 전차 지붕에서도 조선인들이 외쳐대는 만세 소리가 들려왔다.""1945년 9월 5일....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인들의 만세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고 일본인들도 점점 무뎌져 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귀환 열차가 출발한다는 헛소문이 돌아 멀쩡한 가구를 헐값에 내다 팔며 부산을 떨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불편해서 못 살겠다며 다시 세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또 어느 정도 치안이 확보되는 낌새가 보이자 어떻게든 조선에 눌러앉아보려는 사람도 늘어갔다.""눈치 빠른 사람들은 지금 일본의 주요 도시들은 대공습으로 초토화되었고, 그나마 멀쩡한 도시도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에 돌아간다고 한들 미래가 없을 곳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조선에 어떻게든 남아있으려고 했다.""1945년 가을...8월 말부터 푸줏간에는 오랫동안 구경하기 힘들었던 고기가 내걸렸고 술집에는 각종 술이 넘쳐났다. 다시 문을 연 카페에서는 전쟁의 선전가요가 아닌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사람들의 차림새도 칙칙한 국민복을 벗어 던지고 여성들도 볼썽사나운 몸빼바지 대신 치마를 걸치기 시작하여 거리의 풍경도 한층 밝아졌다.거리 뒤편의 상점들에서는 “배척하자 일본인”이라고 적힌 전단을 떡 하니 붙여놓고 조선인들이 일본어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조선인들은 돈벌이를 위해 일본인에게 물건을 팔기는 했지만 가는 곳마다 왜노(倭奴) 추방이라고 써 붙인 자극적인 전단지가 계속해서 눈에 거슬렸다."1945년 겨울...11월에 들어서는 어느새 일본식 동네 이름들이 모두 조선식으로 바뀌어 길 찾기도 어려워졌다. 관청에서는 각종 서류에 ‘쇼와’, ‘메이지’ 같은 연호를 기재하면 아예 접수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데 경성은 어느새 낯선 공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라디오 방송도 10월 말부터 과도적으로 한일 양국어를 사용하다가 얼마 후 뉴스를 제외하고 모두 조선어로 단일화했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교수 다나카 마사시 <조선을 떠나며> 결국 당시 히키아게샤들은 조선에 조선인이 그렇게 많이 사는줄도 몰랐고조선이 정말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했으며왜 독립을 좋아하는지, 왜 린치를 당하는지도 몰랐던 것...그나마 남쪽에 살던 히키아게샤들은 빨리 도망이라도 쳤지북한 신의주에 살던 사람들은 소련군이 앞마당에 몰려올때까지도 몰랐음...고위관료, 군인들만 미리 튀어서 조선인인척 하고 살았다고 함...이는 お星さまのレール(1993)라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짐..남한과 다르게 소련군 + 현지주민들의 린치로 수천명이 뒤졌다고 함..어쨌든 대부분의 히키아게샤들은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재산을 전부 놔두고 왔기 때문에 본토에서 밥버러지 취급 받음... 식민지에서 개꿀빨다가 거지꼴 됐다 + 조센 출신이라며 비웃음 받음... 본토도 전쟁으로 씹창난 마당에이 새끼들까지 먹여 살려줄 판이 되니 당연히 눈총을 받았고조선에서 살다보니 일본어, 일본문화에 서투른 면도 있어서 상당수가 하층민이 됨..그래서 임시수용소를 건설해서 모조리 처박아놨더니 다들 흑화해서 절도, 강도, 강간등등 각종 범죄와 위생문제로 인해 '히키아게샤'는 일본사회의 골칫덩이가 됨...ㅠㅠ 특히 모리사키 가즈에라는 일본 할머니는17살까지 경주와 대구를 오가며 살았으나해방이후 일본으로 돌아갔는데자신을 키워준 조선인 유모와 경주의 풍경을 평생 잊지 못하고 '실향민'이라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함...고향인데도 역사적 문제로 감히 고향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고... 게다가 남동생은 일본에 적응 못 해서 결국 극단적 선택...ㅠㅠ반면 조선어에 능통하거나, 일본에 연고나 가족이 없던 사람들은그냥 조선에 눌러붙기도 했다고 함...제일 유명한 예시는 '부용회'...조선남자와 결혼했다가 사별한 일본여성들의 모임이다 과부의 몸으로 일본에 귀국했으나, 도저히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수는 4000~5000명이였다고 함 지금은 대부분 90대라 경주시에서 돌보고 있다고 함... '마산 고등학교'의 일화도 있다...동창회를 열었는데 히키아게샤 일본인 할배들이 돌아와서한국 할배들과 서로 알아보고 눈물 흘렸다고 함..이 사람들은 조선인끼리도 친했나봄..특히 '후지이'라는 사람은 1950년도까지 춘천에 살다가6,.25때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참전하다 거제포로수용소에 감금...일본인이라고 주장했으나, 일본어를 한국인보다도 못해서 안 믿어줌... 어찌저찌 풀려나서 부산역으로 갔으나, 이번엔 국군에 끌려가서 1년간 참전함...결국 개고생만 하다 56년도에 일본인임을 인증하고 가족과 함께 오사카로 돌아감...ㅠㅠ "일본 열도에 인양되어 온 나는 거기에서 이방인이었다.방언을 모르고, 살아야 할 집도 경작해야 할 땅도 없는 우리들은 일본에 고립되어 있었다."히키아게샤의 자식"이라 불리며 조소의 대상이 될 때마다 나는 한반도를 생각했다.그러나 거기는 거부당한 땅이었다." - 이츠키 히로유키, 서울/평양 출신 "내가 조선에서 태어난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그러나 나는 15년 동안 조선에 일본인으로서 있었다. 식민자로서 거기에 있었다.나는 아이였다고 해보아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아마 나는 조선인들에게 무해하였을 것이다, 라는 주장 역시 아무런 변명이 되지 않는다.역사란 이를테면 이와 같은 것으로, 내가 아이였으며 무해했을지언정,나 한 사람만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제외될 수는 없는 것이다.역사란 이렇게 냉혹한 것이요, 그 정도로 무거운 것이다.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모든 일본인은 이 역사를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짊어나가야만 한다."- 고바야시 마사루, 대구/안동 출신 내선일체고 뭐고 결국 다 지랄이였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벚꽃 막차 도쿄여행 2일차(1) : 도요쓰~시바공원
- 관련게시물 : 벚꽃 막차 일주일 도쿄여행_1일차 : 도쿄역항상 여행가면 아침일정을 시장으로 짜는걸 좋아했음. 아침에 열고, 이런저런 상품 많이보이고, 지역 특산물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요시노야, 야요이켄 같은 규동 프차로 시작하는 아침보다는 시장에서 먹는 신선한 카이센동 같은거로 시작하는게 훨씬 기분 좋으니까.첫 일본여행으로 온 도쿄여행때만 해도 찾아볼때 장외시장 대부분이 츠키지이고, 도매시장만이 남긴 했는데 그마저도 유리벽 통로로만 볼 수 있다라고 알아서 그러면 여기를 왜가나 싶었음. 이번여행을 계획하면서 약간 생각이 달라졌는데,그래도 도쿄의 가장 큰 시장 중에 하나인데 시장좋아하는 사람이 안가는게 말이 되나? 라고 생각이 들어서 들러보게 됨. 가장 큰 이유는 도요쓰 시장 식당들이 나름 좋은 편이라서.물론 도쿄 처음 가는 사람들은 츠키지 정도만 가는게 좋다고 여전히 생각함츠키지 간다면 ‘시겐‘이라는 카이센동 집을 꼭 가보셈, 전국에서 카이센동으로 제일 평이 좋은 식당으로 알고있음. 참치가 유명한데, 카이센동도 카이센동이지만 같이 나오는 참치 콘소메, 참치 조림 같은게 맛있음. 참치 싼거 먹으면 올라오는 혀끝에 느껴지는 피같은 쓴맛이랑 참치캔 같은 향은 전혀 안나고 순수한 참치향이 진하게 나고 감칠맛이 진해서 엄청 좋음. 다만 감칠맛이 강해서 짜게 느껴지긴한데, 간이 덜한 카이센동이랑 먹으면 밸런스가 맞는 느낌.사진의 건물은 수산 도매장동으로 알고있는데, 어차피 수산시장을 위의 아크릴 통로로 보는게 그닥인거같아서 저기 반대편의 중도매장으로 감. 거기에 ‘우오가시 요코초‘라는 시장 상인/관광객 대상 조리도구, 식재료 등 판매하는 층이 있고. 오늘 아침을 먹을 식당인 ‘오다야스(小田安)’가 있음 여기는 튀김류가 유명한 정식집인데, 특히 카키후라이가 유명한 식당 백명점임. 시장동이 여러개이긴한데, 사진에 보이는 육교같은거로 왔다갔다 할 수 있어서 막 불편하진 않더라.오늘의 일정은 이럼1 : 도요쓰 시장2 : 하마리큐 온시정원3~4 : 시바공원 + 도쿄타워 + 알데바란(버거집)5 : 치도리가후치 해자6~7 : 긴자 이토야, 긴자 장인쇼유(쇼유 전문 판매점)8 : 스시 히로야벚꽃 보러다니다가 긴자가서 잠깐 사고싶었던거 사고, 저녁에 스시먹으러 감숙소가 신바시라서 BRT라는 이름의 버스를 타기로 함, 물론 전철도 가긴하는데, 역에서 내려서 걸어야하니까 버스가 더 편하겠더라. 구글지도는 이쪽으로 가라고 안내해서 갔는데, 역 가보니까 공사중 팻말 붙어있더라고. 일본어를 잘 못해서 그런지 다른 푯말이나 그런게 안보여서 얼타고 있었는데, 건물 주차장 입출입 관리하시는 분이 뭐 도와드릴까요? 하시더니 여기 공사중이라 반대편에서 타야한다고 해주셔서 덕분에 제시간에 탔음. 엄청 고마워서 가는길에 두번 인사하고 버스 탐.이번이 나리타 출발 고속버스 빼면 도쿄에서 타는 첫 버스라서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후쿠오카랑 안달라서 편했음. 나중에 이바라키에서 타는게 좀 많이 달랐지만.거두절미하고 오늘 간 식당 오다야스의 메뉴판, 정식/식당 백명점 도는게 이번 여행의 주 목적 중 하나인 만큼 많이 기대한 상태임.원래 이 식당은 근본은 돈카츠 식당이긴 해서 식당 앞 간판 보면 돈까츠도 홍보하고 있더라고.타베로그 코멘트 보면 돈카츠보다는 이런저런 튀김류를 먹었길래 돈카츠보다는 ABC정식중에서 시키기로 함. 읽어보니 ABC정식 모두 궁금해서 고민했었음. A는 에비후라이랑 게크림 고로케는 각자 다른 정식집에서 먹어본거기도 했고C의 새우, 전갱이, 관자는 뭔가 평범해보여서 B세트인 복어, 메카지키, 연어튀김 시킴. 사실 메카지키를 잘 모르겠어서 뭐지 했는데, 그냥 기름진 생선 종류더라고샐러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메카지키, 사케, 복어였음. 튀김옷 엄청 바삭한건 좋았음. 근데 반절은 생선 살까지 부드러워서 좋았는데, 튀김 6개중 대략 반절은 좀 더 익어서 살이 뻑뻑하더라, 복어는 회로 먹을때랑 비슷하게 향이 있다기보단 담백했고, 연어는 연어향 났고, 메카지키는 기름진 생선구이에서 나는 좋은 향이 났음. 간도 약간 짭짤한데 밥이랑 미소시루랑 먹으면 맞고.하지만 뭔가 3.71이라는 평점에 기대하고 온거 치고는 너무 임팩트가 없어서 코멘트에서 보이던 카키후라이를 시키기로함. B세트는 잘튀긴, 바삭한 옷이랑 상태좋은건 맛있는 속살이긴한데 그래도 생선튀김이 생선튀김이네 느낌. 게 크림 고로케 시킬걸 그랬나 좀 후회되기 시작했었음.그래서 시킨 이 가게의 명물 카키후라이. 타베로그 코멘트에서 계속 나오던 메뉴인데, 봤으면 왜 첨부터 카키후라이 정식 안시켰냐! 하면 일단 슬슬 4월이라 날 더워서 노로바이러스 무섭기도 했고, 몇 주 전에 일본 노로바이러스 집단감염 기사도 좀 봤고, 내가 굴을 그렇게 안좋아함. 그래도 생선튀김에 그냥저냥한 기분만 느끼고 일어나기는 너무 아쉬워서 가게의 명물이라도 맛보려고 카키후라이 시킴근데 얘는 좀 다르긴 하더라 ㅋㅋ 튀김옷이야 앞의 생선튀김같이 바삭바삭하고 딱딱한 튀김옷인데, 그 아래의 부드러운 튀김옷 아래에 촉촉한 굴들 있는데, 씹으니 짭짤한데 진한 굴 향 올라오더라. 굴 씹으니 굴 육수라 해야하나 그거 쫙 나오고. 왜 높은 평인지는 알겠더라, 내가 굴을 싫어해서 다른 만족했던 정식 백명점보다는 만족하진 않았지만. 내가 다른 A나 C세트를 시켰으면 더 만족했을거라고 생각함, 그런 면에서 다시와서 진가를 느껴보고 싶은 가게.꼭 튀김류 아니더라도 버터생선구이나 게튀김, 게크림고로케같은거도 있으니 이정도 튀김옷이면 저 메뉴들은 분명 생선튀김류 보다는 훨 맛있을거라고 생각함이후에 식당동 건물 위층에 있는 우오가시 요코초로 옴, 와사비 원물은 저렇게 비싼거구나를 직접 보니 신기했음이런저런 반찬, 후리카케 이런거도 있고. 사진은 안찍었지만 말차 파는 곳도 있었고, 술 전문으로 파는 곳도 두세곳 있었음. 츠키지 시장 계란말이 처럼 계란말이 파는 곳도 있었고. 사람은 거의 없더라, 그만큼 막 길거리 음식 이런거도 없긴한데 막 1000엔짜리 와규꼬치 파는거 먹을바에 이런데 와서 진짜 사고싶은 특이한거 사가는게 난 좋더라고전체적인 분위기는 츠키지 같이 막 관광시장이라기 보다는 실제 상인들이 이용하는 시장과 관광시장의 중간 느낌이었음. 나름 메인 관광지는 아니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여기 업장 중에 핫카이산 전문으로 파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서 핫카이산 사케잔이랑 점주님 추천 사케 샀음시보리다테 원주 핫카이산 생주, 이게 한정판이라고 하더라고. 냉장필요하고 캐리어에 넣고 들고다니다간 빨리상할거같아서 남은 도쿄일정동안 냉장고에 짱박아두고 밤에 이거로 술 하기로함. 잘 기억은 안나는데 맛있었음 구수한 쌀향에 적당한 꽃향도 나고 막 부드럽지도 않아서 술마시는 기분도 나서 좋더라. 나중에 보이면 또 사볼듯이번 여행에 사케를 좀 이거저거 마시고 사게되는데, 이 병이 그 시작점이었던거같음앞으로도 지역 여행가면 사케 종종 찾아다녀야지나와서 다시 BRT타고 숙소돌아가서 사케 냉장고에 보관하러가기로 함. 어차피 다음 일정이 숙소에서 15분 걸어가면 되는 하마리큐 온시정원이라 크게 동선낭비도 아니어서근데 가는 길에 만요클럽이랑 그 앞의 옛날 컨셉 시장길 있더라, 개인적으로 좀 들어가봤는데 너무 관광느낌이라 걍 뒤돌아 나옴. 만요클럽도 이거저거 있다는데 그렇게 관심도 없었고 뒤에 일정 생각하면 마냥 시간이 널널하진 않아서 패스그렇게 숙소 들렀다가 온 하마리큐 온시정원. 날 맑아서 슬슬 덥더라, 원래 반팔에 외투 계획이었는데 이젠 반팔 입어도 되겠다고 느꼈음.들어가서 걷다보면 일단 유채꽃 밭이 보임, 슬슬 피려고 하는 계절이더라고벚꽃도 간간히 보이고, 일본인 여행객도 많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더라고도심에 있는 공원이라 되게 특이한 기분임, 정원 전체가 해자 느낌으로 물에 둘러싸인거도 특이하고한창 만개처럼 벚꽃이 막 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도쿄와서 본 첫번째 본격적인 벚꽃 명소라 되게 기분 좋았음 ㅋㅋㅋ강 같은 인공호수랑 벚꽃 핀 정원은 역시 예쁘더라호수 가운데에선 차도 마실 수 있으니 관심있으면 한번 가봐, 난 뭐 마시기 힘들정도로 배불러서 패스했음..나름 강철위장인데 아침부터 튀김을 때려넣으니까 힘들더라정원에 사진보다 벚꽃나무가 더 많긴했는데, 사람들 모여있어서 깔끔한 사진은 각이 애매해서 굳이 올리지는 않았음서양인 관광객들 죄다 벚꽃나무 하나씩 잡고 열심히 사진찍더라고다음은 버스타고 도쿄타워 보이는 시바공원 쪽으로 갔음, 동조궁(도쇼구) 보여서 들어가봤음신사 안쪽에서 찍으니까 엄청 예쁘더라고, 안에는 작은 신사고 일본인 조금이 와서 참배하고 가더라 나도 10엔넣고 날씨 좋게 해달라고 빌었어, 신사 사람 별로 없고 조용해서 좋더라날씨 좋아서 시바공원엔 사람들이 돗자리 펴고 피크닉 하고있었는데 부럽더라, 나도 그냥 벤토같은거 사와다 여기서 한두시간 멍때리다 가고싶었어이후에도 다른 장소를 가도 비슷한 생각이 계속 들어서 다음 여행에는 템포 느리고 즉흥적인 여행느낌으로 가보고 싶음 온천+느긋한 일정 느낌으로..도쿄타워 보이는데로 걷다보니 죠죠지에 도착했음, 이날은 무슨 행사하듯이 노점상들 들어서있더라노점상에는 야키소바 팔고, 호지차 팔고, 아이스크림도 팔고 이거저거날 더워서 말차 아이스크림 샀음죠죠지 왼편으로 들어가니까 이런 곳이 나오더라고. 사진엔 잘 안나오는데 바람부니 벚꽃 흩날리는게 너무 예뻤음..사진으로는 안담기고 영상으로 찍어올걸 잘 몰랐네, 일단 도쿄타워 + 벚꽃이라는 초기의 목적은 여기서 달성함참고로 저 오른쪽의 빨간 모자 쓴 상들은 어린이의 무사를 기원하는 그런 상이라더라별도로 이 뒤에 이 절이 도쿠가와 가를 모신 절이라, 도쿠가와 이에야스 특별 참배였나 공개였나 그런거 하던거같던데, 500엔 입장료도 받고 한국인이라 껄끄러워서 패스그렇게 나와서 도쿄타워 보이는 쪽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함시바공원 쪽 좀 벗어났는데도 길거리에 벚꽃 많아서 좋더라고 사람들도 나와서 사진 많이 찍고 있었고강아지도 나와서 쉬고 있었음그렇게 걷다가 도착한 사쿠라도리에서 사진찍고 벚꽃이랑 도쿄타워도 슬 충분히 본거같아서 조금 늦은 점심 먹으러 감오늘의 점심은 도쿄에서 평점에 제일 높은 버거 백명점, ‘알데바란‘임리뷰는 아래 참고https://m.dcinside.com/board/nokanto/567066진짜 너무 좋았고, 다음에 다른 버거도 먹으러 가보고싶음, 기본기가 너무 좋아이제 버거도 먹었겠다 도쿄의 다른 벚꽃명소인 ‘치도리가후치 해자’로 가기로 했음- dc official App
작성자 : sherreat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